길 가던 사람들에게 "미야모토 시게루(宮本茂)"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느냐고 물 어보면, 과연 몇명이나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아마 국내에선 그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 '마리오'나 '동키콩'을 보여주면서 이 게임을 아느냐고 물어본다면? 아마도 질문 받은 사람이 게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나이가 10대 후반을 넘은 사람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토요일 오후, TV 앞에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앉아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은 또래 친구처럼 정신없이 조이스틱을 움직이며 비명을 지르고 환호를 하면서 정신없이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부자(父子). 그들이 하고 있는 게임이 바로 '슈퍼 마리오'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미야모토 시게루, 닌텐도의 수석 게임 디렉터이자 '동키콩'과 '마리오'의 아버지인 그가 바로 전세계에 2억 5천만개의 게임팩을 팔아서 세계인을 게임 하나로 묶은 사람이다.
미국에서 "게임을 하다"라는 말을 할 때 "Play Nintendo"라고 해도 통할 정도로 닌텐도와 마리오의 인기는 대단해서, 멍청하고 무식한 고릴라 동키콩과 큰 코에 턱수염, 작업복 바지를 입은 배관공 마리오는 게임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알 정도로 꽤 알려진 유명인사(?)다. 이렇게 아버지보다 훨씬 잘 알려진 유명인사들을 자식으로 둔 게임 디자이너 미야모토 시게루란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이길래 자식농사(-_-)를 이렇게 잘 지었는지 그 비결(?)을 한번 알아보자.
만화가가 꿈이었던 소년에서 게임 디자이너로
미야모토 시게루는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쉰 둘이 되는 1952년생으로, 일본 교토의 전원마을 소 노베쵸(園部町)출신이다. 그의 학창시절 관심사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전형적인 게임 디자이너의 그것으로, 학창시절부터 게임 디자이너가 될 싹수(?)를 보여줬다(물론 그 때는 게임 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체가 없긴 했지만). 미야모토 시게루는 소학교 시절에 NHK의 인형극을 보면서 인형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막연히 인형제작자가 되고 싶어했다.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만화에 열중해서, 엄청난 기세로 만화책을 읽으면서 시간만 나면 만화를 그리는 등 만화가의 꿈을 키운다.
그러나 곧 프로가 되기에는 자신의 역량이 부족함을 깨닫고 만화가에 대한 꿈을 접어버린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새로운 꿈을 찾기위해 공부에 열중하게 된다. 하지만 미야모토 시게루는 만화에 대한 자신의 꿈을 버릴 수 없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공학부에 진학하는 것과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는 자신의 두 꿈을 절충시켜, 카나자와 시립미술공예대학에 입학하여 공업디자인을 전공하게 된다. 대학에 진학한 그는 음악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 기타를 배워서 밴드 활동을 했을 정도로 음악에도 열중하게 되었다(일례로, 그의 취미는 '기타 연주'와 스포츠라고 한다).
카나자와 시립미술대학에서 게임 디자이너로서의 기초를 닦은 미야모토 시게루는 1977년에 닌텐도사에 입사한다. 완구회사에 취직하고 싶어했던 그는, 당시 여러 게임도구들을 만들고 있던 닌텐도사야말로(본디 닌텐도는 화투와 트럼프를 제작했던 회사이다) 자신이 원하던 회사라고 생각, 제1순위로 닌텐도사에 지원해서 기획부 기획과에 배치되게 된다.
입사 후에는 대학 때 공업 디자인을 전공한 경력과 만화를 그렸던 경험을 살려서 캐릭터 디자인부터 게임제작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지식을 쌓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 그는 디자이너로서 입사한게 아니라는 것이라, 단지 기획부의 "그림그리는 것이 가능한" 평사원으로 입사했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업무가 그에게 디자인뿐 아니라 제작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고, 이렇게 다방면으로 쌓은 지식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 세계인을 게임 하나로 묶은 그의 능력의 밑바탕이 되었다.
이렇게 미야모토는 닌텐도에 입사한 이후로 여러 게임을 만들어 내지만, 당시의 게임개발은 프로그래머가 주축이 되어 진행되었기 때문에 미야모토는 게임 제작보다는 게임 디자인을 주로 하였다. 그러나 1980년에 크게 실패한 게임 기계의 처리에 골머리를 썩히던 닌텐도사는 그때까지의 관행과는 달리, 프로그래머가 아닌 디자이너들에게 게임기계 안에 들어가는 롬만 바꿔서 새 비디오 게임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당시 닌텐도에서는 디자인이 가능하면서 비디오 게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던 사람이 미야모토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가 주축이 되어 땜빵용 새 비디오 게임을 제작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임이 1981년 6월 발매되어서 대 히트한 '동키콩'으로, 그 이후 미야모토는 "게임 디자이너"라는 그의 이름에 걸맞게 게임 제작자 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며 1983년 '마리오 브라더스', 1986년 '젤다의 전설', 1992년 '별의 카비'등의 히트작을 내놓는다.
게임의 본질에 가장 접근한 게임
우선 그의 첫 성공작인 '동키콩'을 살펴보자. 얼간이(Donkey)고릴라가 주인공인 마리오(이 때에는 아직 이름이 없긴 했지만)의 애인을 납치해서 공사장 꼭대기로 도망친다. 애인을 구하기 위해서는 사다리와 철근을 타고, 고릴라가 던지는 드럼통을 점프로 피하면서 무식한 얼간이 고릴라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간신히 고릴라가 있는 곳에 도착해서 고릴라와 한 판 승부를 해서 승리하면, 주인공은 사랑하는 애인을 다시 되찾을 수 있다. 지금 보면 조악한 그래픽에 단순하고 귀에 거슬리는 사운드의 너무나 단순하고 단조로운 게임이지만, '동키콩'이라는 게임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이 "단순한"게임의 재미와 중독성은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대단하다.
위에서 조악한 그래픽의 단순한 게임이라고 했지만 동키콩이 1982년에 만들어 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뭐, 그렇게까지 나쁘다고 말할 만한 그래픽은 아니다. 오히려 그 당시 가장 유행했던 남코의 '스페이스 인베이더'나 그의 카피 게임들에 비교해 보면, 그래픽도 괜찮고 무엇보다 우주에서 외계인의 비행선을 맞춰서 떨어뜨린다는 당시 게임들의 천편일률적인 내용에서 탈피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동키콩'의 뒤를 이어 나온 '마리오 브라더스'도 슈팅게임이 아닌, '동키콩'과 같은 형식의 게임이었다. '마리오 브라더스'는 이름도 없던 '동키콩'의 주인공에 "마리오"란 이름을 붙이고 그의 동생 "루이지"를 등장시켜서 둘이 동시에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스타일의 게임이었다. 이 '마리오 브라더스'와 그 후에 나온 '슈퍼 마리오'에 등장하는 점프, 동전 획득, 숨겨진 스테이지, 특정 아이템을 먹으면 정해진 시간동안 무적이 되는 것과 같은 '마리오'시리즈 고유의 특징적인 요소들은 이후에 등장하는 여러 게임에 조금씩 변형되어서 쓰이게 된다.
그의 또다른 히트 시리즈인 '젤다의 전설' 또한 독특한 형식의 게임이다. 1986년에 시리즈 첫 작품이 나온 '젤다의 전설'은 롤플레잉 게임에선 당연시 되었던 레벨업의 개념을 없애고, 퀘스트를 거쳐야 라이프업과 아이템의 강화가 이루어지는 형식으로 레벨업을 대신했다. 필드와 던전에서 아이템을 장착하고 몬스터를 처치한다는 점에서는 기존 롤플레잉 게임의 형식이지만, 레벨업이 없고 퍼즐과 전투를 강조했다는 것은 액션게임에 가까운 굳이 말하자면 "액션 롤플레잉 게임"이라고 부를만한 게임이다. '젤다의 전설'또한 '마리오'시리즈 처럼 이후에 나오는 여러 롤플레잉 게임의 모태가 된 그런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첫댓글 정말 존경하는 분입니다.
이분은 외계인일 껍니다.. ㅡ.ㅡ 너무나 그때 당시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했으니... 처음이 가장 어렵다는건 누구나 알수 있을겁니다.. 처음길을 만드는게 어려울뿐 그 뒤를 따라가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