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첫 일정은 명사산입니다. 호텔이 이 산을 배경으로 하는 있으니 짧은 거리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차로 5분도 안되어 입구에 도착합니다. 이곳도 예외 없이 기념품이며 물, 음료수를 파는 상인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가지 특이할 점은 상인들이 하나에 2원씩 받고 마스크를 판다는 점입니다. 물론 모래바람 때문에 단단히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죠. 미리 손수건을 말아 마스크로 쓴 사람도 일행도 많고요.. 선글라스까지 착용하면 그야말로 '마적단'을 연상하게 하죠. 실제로도 우리 스스로를 마적단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입구에서는 난타를 타고 갈사람, 차량을 타고 갈사람(서울대공원의 코끼리 열차 같은것), 11자전차, 그러니까 도보로 갈사람으로 나뉘어져 자기가 가고 싶은 방법을 선택하여 가는 것입니다. 목적지는 월하천이 되겠지요.
바람이 거세게 불어 쓰고 있던 밀집모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는군요. 목걸이 같은 것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김정기 선생님의 추천코스를 따라 11자 전차군단 출발! 먼저 사막을 느끼려는 듯 신발을 벗고 맨발로 가시는 분 들이 많습니다. 저 멀리로는 한 떼의 낙타가 주인에게 이끌려 한줄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습니다. 정말로 다큐멘터리나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장면이 떠오르는군요. 실크로드의 모습도 연상되고요. 하지만 등위에는 짐이 있는 장면이 더 익숙해지겠지만 월하천에서 돌아오는 관광객들을 태우고 있습니다. 왕복은 30원, 편도는 20원이라고 합니다.
명사산은 한층 더 가까워지나 싶더니 이내 명사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모래바람은 이번에도 거세게 불어 면상을 후려갈깁니다. 모래산길은 발을 디딜때 마다 무너져내려 오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처음 밝는 곳보다는 여러사람이 이미 지나간 길을 밟아야 밟은 곳이 단단해져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모래바람은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계속 불고 있습니다. 이 모래바람에 의해 명사산의 각이진 능선은 조금씩 옆으로 이동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아래로는 이내 월하천과 오아시스주변의 농사지대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오아시스를 볼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하얀 모래벌판 가운데의 농사지대는 저에게 벅찬 감격을 안겨줍니다.
월하천은 초승달 모양을 띄며 천년이라는 세월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옆에는 목조건물이 월하천과 콤비를 이루며 장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무언가 조미료나 감초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월하천 하나만 덩그러니 놓이면 웬지 허전할테고요. 목조건물을 보태어 한 층 돋보이게 한 것이죠. 참고로 겨울에는 물이 얼어붙어 사막에서는 정말로 커다란 구경거리가 되는 셈이죠. 월하천의 호수 위로는 바람이 불고 있어 물이 마르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돈황이 갑자기 사막으로 변하자 선녀가 슬퍼 눈물을 흘리고 눈물이 셈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한편 다소 고생스럽게 느껴졌던 명사산 등반길은 그만큼 보람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월하천을 가장 효과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계속 불어오는 바람은 머리속에 있던 잡념을 이내 날려버리는 듯 합니다. 마침 독일에서 오신 분들도 마스크며 선글라스로 완전무장을 하고 있군요. 명사산 정면으로는 우리가 묶었던 호텔과 돈황시내가 아스라이 보이는군요. 저도 신발을 벗어보고 다른 신발과 함께 배경삼아 사진에 담아봅니다. 마치 광고의 한장면 같습니다. 아무래도 배경이 멋져 연신 사진을 찍기에 바쁩니다. 우리들의 모습을 몇번이고 카메라에 앞에 비추어보고..
이제는 월하천쪽으로 내려가야지요. 맨발에 느껴지는 모래의 감촉은 의외로 시원합니다. 해수욕장모래 깊숙히 발을 묻은 기분입니다. 하긴 해수욕장 모래는 여기 모래에 비하면 댈것이 못되지만요. 그리고 해수욕장에서는 절대로 못하는 것, 모래썰매 타기가 시작됩니다. 물론 미끄럼타듯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죠. 눈썰매와는 달리 얼마안가 멈추고 다기 가기를 반복합니다. 다소 번거로운 감은 있지만 아찔한 것 없이 즐길수 있다는 것이 좋죠. 아무래도 행동도 더 자유롭고요. 전 스키타기처럼 모래사이를 누비며 꼬불꼬불 코스를 잡아 내려옵니다. 방향전환도 속도조절도 쉽게 할 수 있죠. 산을 올라가며 몇 줄 이어진 나무판자들은 모래썰매를 타기위해 올라가는 코스라고 합니다. 일부러 돈을 내야하는 셈이지만 우리는 맨몸으로 했기에 돈도 절약되고 재미도 배가 되어 정말로 횡재한 셈입니다.
저 밑으로는 낙타가 질서정연하게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낙타는 돼시김질을 하는 것인지 지루하다는 것인지 한가한 눈을 껌뻑이며 입을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낙타의 표정은 정말로 세상만사를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한 표정이죠.
바닥에는 낙타의 분비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신발을 신습니다. 휴식처가 따로 있군요. 정면의 월하천으로 바로 가봅니다. 정작 가까이서 본 월하천은 보통호수와 다를 것이 없는 모습입니다. 특이할 점은 정말로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입니다. 호수 주위에는 울타리를 쳐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 같습니다. 목조건물은 멀리서 보이는 모습은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모습이었건만 가까이에선 웬지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물도 마시고 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이번에는 낙타로 입구까지 가봅니다. 한명이 여러마리의 낙타를 이끌고 가고 있군요. 터벅터벅 걷는 낙타는 2일날의 말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느낌입니다. 속도감은 떨어지진만 운치는 만점입니다. 어느 시골철길을 완행열차를 타고 다니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앉을 때는 정말로 휘청 하는 느낌이 들어 깜짝 놀라기도합니다. 낙타들은 코뚜레에 걸린 줄에 연결되어 다니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엽기도 하지요.
옷안이고 입이고 귀고 모두 모래가 들어가 있어 험난했지만 즐거웟던 여정의 증인디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번여행에서 가장 많이 기억에 남을듯..
호텔에서는 바로 모래로 범벅이 된 몸을 샤워로 씻어내고 바로 출발합니다. 돈황시내에서 식사를 합니다. 가욕관으로 가기전에 화장실도 들릴 겸해서 쇼핑센터에도 들리고요. 가욕관까지 자그마치 5시간 거리니까 물을 미리 비워두는 것이 좋겠죠. 바람이 많으면 7시간 까지도 걸린다고 합니다.
가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오전에 명사산의 일정이 원인이 아니었나 합합니다. 단잠이라고 할 수 있죠. 깼을 때 보니 마침 어떤 도시를 지나고 있었는데 안서라는 도시입니다. 안서라면 실크로드에서 주요 교통로로서의 도시로 번영했던 곳이죠. 도시의 규모는 돈황과 비슷한 듯 합니다. 한무제 시대 점령하고 이민, 둔전(국가에서 땅을 농민들에게 짓게하여 일정량의 세금을 바치도록 한 것)이 실시되어 지금도 한족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귀의 절도사는 당 왕조의 책정을 받은 자치 절도사죠. 당나라 시대에 실크로드 길로 많이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여기를 설명해주기 위해 학생차량에 탑승하신 조명화 선생님의 강의가 시작되는군요. 당나라가 망하고 토번이 이곳을 150년간 자치하고 탕구트족, 서하가 이곳을 점령합니다. 금산, 몽골이 이어 이곳을 차지하였죠. 명대에는 가욕관 이후인 곳으로 방치되었다가 청나라때 점령됩니다. 이 곳 옆에 위치한 신강자치구, 즉, 신강이라는 이름은 이때 붙여진 것이죠. '새로차지한 땅'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현대사로 가면 러시아가 이 땅을 많이 탐냈다고 하죠.
이 지역은 폭 40km의 지역이 1000km이상 분지를 이루고 있다고 하며 실크로드 정식루트였습니다. 여기엔 중국에서 가장 많이 난다는 백양나무가 심어졌는데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녹화를 하기 위해서 이겠지만 이 나무가 그다지 쓸모가 없다고 하는군요. 녹화사업하면 독일이 유명한데 마로니에와 보리수 나무를 많이 심었죠. 이에 박통이 독일을 본따 녹화사업을 하였죠. 독일과 우리나라는 일단은 녹화에 성공한 경우입니다.
허원 선생님께서는 여기가 312번 공로로 신강에서 상해까지 뻗어있다고 합니다. 거리는 9,000km된다고 하는군요. 사막의 풍경은 계속 펼쳐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기하게만 느껴졌던 하얀빛, 황색의 사막은 이제 익숙해져 무덤덤 합니다. 풍경의 변화가 없어 지루하게 느껴지는군요. 도로는 그러 울퉁불퉁한 면상을 드러낸체 직선으로 사막위에 길게 드러누워 있습니다. 도로 옆의 철도에는 화물열차가 헐떡이며 신강쪽으로 갈길을 가고 있습니다. 유조화차가 많군요. 기차가 지나간 자리에는 철도 신호기가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어쩌다 만나는 간이역은 모래바다안의 섬처럼 느껴집니다. 가끔 마을이 나타나면 농사지대가 보여 푸른 빛을 보여주어 긴 버스여행의 지루함을 덜어줍니다. 우리나라의 그 흔하던 푸른 빛깔의 나무잎들며 풀들이 그리워 집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20분간 쉬어갑니다. 이 지역 도로 안내판이 우리가 왔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장실은 5각을 지불하여 들어갑니다. 제 가 어릴 때 동대문인가 남대문인가 지하상가에서 20원을 내고 화장실에 출입한 기억이 나기도 합니다. 각은 원의 하위단위이죠. 한편 이 곳 근방에선 북이 하나 있는데 죄인의 뱃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섬찟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앞에는 '중국석유'라고 쓰여진 주유소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중국전역의 주유소가 '중국석유'라고 되어있죠. 국영기업체나 국가관리인 듯 합니다.
울퉁불퉁하고 쭉 뻗은 도로를 달리자 멀리 유난히 선명해 보이는 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도로 옆에는 만리장성의 유적이 간간이 보이고요. 가욕관에서 관리되던 곳이었겠죠. 가욕관은 성을 지키는 지역 본부였던 셈이고 어느정도 떨어진 곳까지 성벽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죠. 가욕관은 명대 만리장성의 종점이었던 셈이고 마지막 관이었던 것이죠. 만리장성은 가욕관에서 바닷가인 산해관까지 장장 12700리에 걸쳐 중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죠. 중원지방은 한편 양자강 이북을 나타내며 이남은 강남지방입니다. 그리고 이 곳 가욕관을 넘어서는 서역이라고 부른 것이죠.
어느덧 가욕관시에 도착합니다. 한가한 도시라는 인상을 주는데 가로등이 이쁘게 길을 단장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도시마다 지역의 특성을 살려 가로등을 다르게 놓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최근에 이런 움직임으 보이고 있죠. 숙소는 로타리 바로 앞이로군요. 호텔은 그저 시내안의 보통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을 비교적 높은 곳인데 시내가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오늘도 야시장으로 나가봅니다. 가로등이 푸른 빛인데다가 가로수를 비추니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것을 도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서울같은 대도시가 시급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중국의 이런 아이디어에 놀랍기도 하고요. 중국에 대해 선입견만 가질 것이 아니라 이런데서 새로 배우는 자세가 더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