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 요한복음 20:24-29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 20:25).
도마의 별명은 디두모라고 하는데 도마의 히브리말 이름이고 디두모는 헬라말의 이름이었습니다. 이것은 다 쌍동이라는 뜻입니다.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가 있으나 기타 일신상의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습니다. 공관복음에는 도마의 이름이 열두 제자의 명단에 들어 있을 뿐이고(마 10:3막 3:18:눅 6:15) 다른 기록은 없으나 요한 복음에는 여러 곳에 도마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요 11:6, 14:5, 20:24-28, 21:2). 그리고 사도행전 1:13에도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기도하는 제자들 명단에 도마의 이름도 들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기록들과 약간의 전설에 의하여 도마의 행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도마의 열심
처음에 도마는 참 열성이 대단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16에 보면 그때에 예수께서는 베다니의 나사로가 죽었다는 말을 들으시고 “내가 거기 있지 않은 것은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는데 그 이유는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나사로가 죽기는 하였으나 나사로가 죽은 것이 너희 신앙을 자라게 하는 결과를 가져 올 터이니까 너희를 위하여 기뻐한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나사로가 죽은 것이 어찌하여서 제자들의 신앙을 자라게 하는데 유익하다고 말씀하시었는가 하면 나사로가 죽기는 하였으나 예수께서 가셔서 살려 주시겠으니 이것을 보고 제자들은 예수께서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분이시라고 믿게 될 터이니 나사로가 죽은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한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고 하신 것은 죽은 나사로에게로 가자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도마는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하였습니다. 도마가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우리는 따라 가겠고 예수께서 죽으신다고 해도 우리는 따라가서 같이 죽겠다고 하는 비장한 결심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께서는 모든 기회를 이용하셔서 제자들의 믿음을 자라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것은 불행한 일이었으나 예수님께서는 이 불행한 일을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셨고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서 복음을 전하고 믿음을 키우는 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가장 기쁜 때는 결혼식이고 가장 슬픈때는 장례식인데 우리는 항상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모든 기회에 복음을 전해야 하고 믿음을 자라게 해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난관은 믿음 성장의 새로운 기회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새로 생기는 것은 믿음을 키우는 새로운 기회라는 말입니다. 성도 들은 고난을 당할 때에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이 고난을 이용하여서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고난뿐만 아니라 평안할 때에도 성도들은 이 평안에서 믿음을 키우는 데 힘써서 항상 믿음을 자라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루터 선생은 “다 되어 있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완성되어 있는 그리스도인은 없고 그리스도인은 항상 성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 도마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하는 열정은 대단하었으나 이 열정과 결심은 순수하게 신앙에서 나온 결심과 용기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에 말씀 드리는 바와 같이 도마는 의문과 의심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장담하고 다짐하는 것은 참 믿음에서 나온 신앙적 용기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2. 의심 많은 도마 동시에 도마는 많은 의문과 의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영원한 하늘나라를 믿지 못함 요한복음 14:5에 보면 예수께서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다시 와서 너희를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니까 도마는 선뜻 나서서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도마의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니께로 올 자자 없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인 하늘나라에 가셨다가 다시 오신다고 하셨는데, 도마는 이 말씀을 듣고도 그것을 몰랐고 또 하늘나라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예수님 자신이시라고 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어리고 우둔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도마는 아직도 신령한 나라 하늘나라를 몰랐습니다. 세상나라 밖에는 몰랐습니다. 그리로 가는 길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어리석은 질문을 하였는데, 그러나 이 질문에 대답하셔서 예수께서는 신비한 일들을 많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 아버지 집으로 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 있을 곳을 예비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오셔서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여 그곳에서 살게 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그리로 가려고 하면 길 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야 합니다. 이러한 교훈이었습니다.
(2)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함 그 다음에 요한 복음 20:24 하반절에 보면 도마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보았다고 하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듣고서도 의심하면서 “나는 내가 친히 그 손의 못자국을 보고 내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서 그 창 자국을 만져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아니하겠다”고 완강하게 불신앙을 고집하였습니다. 말만 들어가지고서는 못 믿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서야 믿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마에게는 전연 신앙이 없다기 보다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서야 믿겠다고 하는 것은 높은 신앙이 아니고 낮은 신앙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는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고 믿는 신앙보다는 보지 못하고 믿는 신앙이 더 복되다, 체험하고 믿는 신앙보다는 체험하지 못하고 믿는 신앙이 더 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3. 도마의 충성
이렇게 의심하는 도마에게 예수께서는 여드레 후에 다시 나타나셔서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손을 보고…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도마가 손을 내밀어서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았다는 말은 없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을 만나서 이 말씀을 듣고서는 곧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었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이다”라고 이렇게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주님을 만나 뵈옵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는 그렇게 신령한 것을 모르고 그렇게 의심 많던 도마도 모든 무지와 의심은 다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놀라운 신앙고백에서 완전히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인정하였고 예수님을 또 하나님이시라고 예수님의 신성을 확증하였습니다. 도마의 이 신앙고백은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함께 신앙고백의 쌍벽을 이루어서 기독교의 신학과 신앙의 초석으로 남아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하였고(마 16:16), 지금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요 20:28). 기독교의 중요하고 핵심적진리는 이 두 가지 신앙고백에 다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신앙고백한 도마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였고(행 1:13), 또 오순절에 성령강림하시는 그 현장에도 같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에 도마의 여생에 관한 기록이 성경에는 없습니다마는 다른 역사적 문헌과 전설에 의하면 도마는 동방전도에 힘쓰다가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도마는 유프라테스강 동안에 있는 에뎃사에 가서 전도하여 교회를 세웠고, 또 동쪽 인도에 가서 교회를 세우고 인도전도에 힘쓰다가 주후 72년경 그의 선교를 시기하는 바라문교도들에게 창에 찔려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이상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도마는 젊은 열정으로 주님을 따라 죽기까지 하겠다고 하였으나 그래도 그는 많은 의문과 의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 뵈옵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는 간곡하신 말씀을 듣고서는 예수님에게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신앙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다가 자기가 말한 바와 같이 주님을 위하여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