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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경도에서 유명한 갯(참, 하모)장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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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보양식'하면 추어탕, 사철탕, 삼계탕 등을 떠올린다. 여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장어'다.
장어로 유명한 전남 여수에서도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게 갯장어(하모)다. 여수 사람들은
"하모 먹으러 가자" 하면 만사를 제치고 나선다. 그만큼 인기 식품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여름은 곤혹(?)의 계절이다. 장어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저 입은 왜 그리 까다로울까" 퉁박이시니 오죽할까. 이런 식성을 아는 지인들은 드러내놓고 말한다.
"어이, 우리 하모 먹으러 경도 가세. 하하∼" "또, 그 소리. 난 안 갈라요. 가서 맛있게 묵고 오시오. 허허∼"
곱지 않은 어투의 소리가 튀어나온다. 하모뿐만 아니라 장어탕도 심심찮게 날 귀찮게 한다.
안 간다는 소리에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묻는다.
"왜 안 가요?" "저 사람은 장어를 안 먹는대." "여수 사람 중에 장어 안 먹는 사람도 있어요. 정력에 그만인데 이걸 안 먹어?" "저는 정력이 넘쳐 안 먹어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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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경도행 나룻배. 뒤로 보이는 섬이 대경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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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쭙잖은 변명과 한바탕 웃음 뒤에 다른 메뉴를 택한다. 어떨 땐, 마지못해 따라나서 밑반찬과
채소만 입에 댄다. 땀 뻘뻘 흘리고 먹는 품새가 그렇게 맛있을까, 싶다. 먹을 땐 말도 없다.
그러다 배가 차면 "한 번 먹어봐, 이 맛난 걸 왜 안 먹어" 하지만 이럴 땐 아무 말 안 하는 게 오히려
신간 편하다. '안 먹는 거 먹어라'는 말 정말 짜증이다. 그러나 나도 눈과 귀와 코로 음식을 먹고 있다.
꼭 입으로 먹는 것만 맛은 아닐 터.
고래를 닮은 섬, 대경도(大鯨島). 섬마다 한 가지 이상 유명한 게 있기 마련. 대경도는 생긴
모양과는 달리 갯장어로 유명하다. 지난 10일 오후 대경도를 찾았다.
차를 타고 경도 나루터에 당도하니 수시로 오가는 배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국동항과 어우러진
돌산대교의 정취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여수와 3분 거리의 대경도는 도시와는 달리 여유롭고 한산하다. 완만한 구릉지인 대경도는 마치 어머니 젖같이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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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경도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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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경도 내동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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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장어로 유명한 이유... 기술, 먹이
대경도 입구에 즐비한 횟집은 대부분 갯장어를 취급한다. 경도의 대표 상품인 갯장어는 6월에서
9월까지 잡아 올린다. 갯장어는 맛이 좋아 전량 일본으로 수출하였으나 지금은 거의 내수로 소비된다.
대경도의 끝자락 오복 마을 방파제에서 건너편의 돌산을 바라본다. 어느새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를 줍고 있다. "야, 꽃게다"며 좋아한다. 최용규(51)씨와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은 갯장어 시세, 좋나요?" "씨알 굵은 것은 ㎏당 1만5000원 선, 작은 것은 4000∼5000원 정도 해. 많이 내렸어."
"많이 잡히나요?" "많이 잡히긴 고기가 없어 죽을 맛이지…."
"경도 하모가 유명한 이유가 따로 있나요?" "보통 통발을 하는데 이곳은 주낙으로 갯장어를 잡아 올려. 한 번 나가면 3일에서 7일 정도 가막만
등에서 잡는데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를 먹이로 써. 장어가 주 소득원이라
오랫동안 잡는 기술이 좋아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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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가에서 추억을 줍는 아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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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복 마을의 갯장어 잡이 배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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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장어 요리의 별미 '샤브샤브'
경도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루터 부근의 횟집으로 들어선다. 아직 이른 저녁시간인데도 사람들이
즐비하다. 하모 외에 다른 메뉴는 아무것도 없다. 또 눈과 코와 귀로 맛을 봐야 할 처지다.
김태성(40)씨는 "장어는 여름이 제철로, 단백질과 지방질이 풍부해 체력 보강에 매우 좋다"면서
"일명 '꼼장어'라고 불리는 먹장어는 포장마차에서 즐기고, '아나고'라 불리는 붕장어는 회와
숯불구이로, 갯(참, 하모)장어는 구이, 국, 회, 샤브샤브, 죽 등 어느 것을 먹어도 맛이 좋으나
특히 샤브샤브를 많이 먹는다"고 소개한다.
먹어야 직접 맛을 표현할 터인데 혀로 느끼는 맛을 모르니 쓸 수가 없다. 대신 코와 귀, 눈에
의지할 수밖에.
데쳐서 먹는 샤브샤브(혹은 유비끼). 갯장어를 넣으니 꼼지락 꼼지락거리며 오므라든다. 그러면
건져내 소스에 묻혀 상추와 깻잎에 올려놓고, 먼저 소주 한잔 탁 털어 마신 후 입에 넣는다.
으∼으∼ 미칠 지경이다. 입맛은 당기는데 손이 가질 않는다. 맛있게 먹는 것 쳐다보는 것처럼
괴로운 게 없다. 또 남들 먹는 거 쳐다보는 것처럼 궁상맞은 게 없다. 애꿎은 상추와 깻잎에 양파와
마늘, 고추를 넣어 아쉬움을 달랜다. 땀을 쭈∼욱 쭉, 흘리며 먹는 그들 사이에서 떨어져 나온다.
여수에선 장어를 먹어야 맛이고, 그 중 갯장어를 먹어야 한다는데…. 여수에 사는 난 대체 뭐란 말인가.
대경도는 이렇게 먹을 때면 내겐 아픔이다. 덩달아 주위 풍경도 아픔으로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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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장어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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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장어 샤브샤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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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장어 샤브샤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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