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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새로운 시를 찾아서·3
──김신영 시인 편
·일시 : 2008. 5. 2. 오전 10시~12시
·장소 : 시와산문사
·인터뷰 및 기사정리 : 엄미선<시인>
빛밝은 평일 오전, 새로운 시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설레임과 초조함을 동반한다. ‘새롭다’는 형용사가 내포하는 것은 과거와 다른 그 무엇을 요구하기 때문에 설레임과 초조함을 동반하나 보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시인을 기다리며 따뜻한 찻물을 끓이고, 편안한 인터뷰를 위해 다과를 준비한다. 그 사이 빛밝은 햇살이 풀내 진한 향을 머금고 김신영 시인을 데리고 왔다. 사람사는 이야기가 사방에 퍼져나갈 우리의 인터뷰를 위해 시인과 마주 앉는다. ‘불혹’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의 ‘새로운 시’ 찾기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엄미선 : 『불혹의 묵시록』은 첫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이후 11년만에 나온 시집인데, 시집 발간이 늦어진 이유가 있는지요.
김신영 : 시집을 발간하는 것은 영혼을 보여주는 일이라 생각해요. 시를 쓰는 시간은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갖으라고 했듯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자신과 대면하고 시를 쓸 수 있어요. 시를 쓰기 위해서는 치열한 정신이 필요하지요. 지난 11년 동안 육아와 학업을 동시에 수행하며 나름대로 시를 썼지만, 그런 의미에서 만족할 수 없었어요. 시가 치열하지 못하고 흩어지는 경향이 보이더군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시집 발간을 위한 작업을 하다 보니 이렇게 늦어졌네요.
엄미선 : 시집을 읽어보니 첫시집과 두 번째 시집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시인의 내적고백이었어요.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려는 것은 시작태도에서 비롯되는 건가요 아니면 시적 장치인가요.
김신영 : ‘나’라는 자아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눈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것은 삶의 경험이 내 시의 기저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하는데,저는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일상을 통해 경험하는 것은 한계를 갖기 때문에 의미를 확장해서 쓰게 되죠. 첫 번째, 두 번째 시집에도 그런 부분이 많이 나타나 있는데 이제는 이런 시를 지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엄미선 : 시집 제목이 『불혹의 묵시록』인데, 시인에게 불혹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시에도 ‘불혹不惑’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김신영 : 불혹이라는 시간은 ‘미혹이 없는 시간’이란 뜻으로 공자께서 쓴 용어지요. 그런데 그것이 마치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것처럼 쓰이고 있어서 문제에요. 공자가 40세를 불혹이라고 한 것은 당시의 사상·배경·정치·문화를 토대로 한 의미였을 거예요. 당시에는 인간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기 때문에 40세를 ‘불혹’이라고 지칭할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현대의 인간수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어요. 결혼 연령이 늦어진 것도 그 일환이죠. 이런 가운데 40세를 ‘불혹’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불혹이라는 ‘시기’는 그런 의미에서 더 늦춰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의 40대는 불혹이 아니라 ‘미혹과 유혹’이 넘쳐나는 시기라고 봐요. 혹이 늘어나는 시기잖아요. 자녀, 사회, 배우자, 직장 등등 혹이 여러 개 늘어났잖아요.(웃음)
시에서의 불혹이라면 글쎄요. 시단에서 나름의 이력이 붙은 시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보통 중견시인이라고 불리는 때를 의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중견 시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만, 저는 등단한 지 10 년 정도 되고 시집을 2, 3권 출간하고 문단이력과 활동이 쌓인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요. 내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시의 불혹은 시를 쓸 때 자기의 확고한 인식을 표현하는 시기가 아닐까요? 제 경우에는 지금껏 시를 쓰면서 욕망에 시달려 왔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직 불혹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미선 : 그렇다면 시집 제목을 『불혹의 묵시록』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 인지요? ‘묵시록’이라고 하면 예언자적인 의미가 강하게 느껴지는데, 어떤 의미나 상징을 주기 위한 것인지요.
김신영 : 묵시록이란 예언이나 예고 환란에 대한 통지라고 할 수 있는데, 제 경우 40대에 그런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40대가 되면 아파트 평수가 40평은 돼야 하고 나름대로 삶의 안정을 찾아야 하며 자녀들도 어느 정도 성장한 시기라고 생각 했어요.(웃음) 그런데 제가 막상 40대에 도달했더니 오히려 삶이 더 힘들고 버거워지더라고요. 환란이 예고되는 것처럼 힘든 시기였기에 묵시록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해 봤어요.
엄미선 : 「불혹의 묵시론」 시편은 대상과의 ‘관계맺기’가 일방적인 것처럼 읽혔어요. 가령 「불혹의 묵시론·3」을 보면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광우병’의 폐해가 눈물겹게 느껴지더군요.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서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 시는 공감대를 자극하더군요. 이러한 공감대 형성이 시인의 장점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신영 :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르겠으나 제 자의식에 비추어 보면 혹이 붙어서 불혹인 경우가 「불혹의 묵시록·1」이에요. 저의 강한 자의식은 삶의 문제에서 비롯되지요. 서민의 한 사람으로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그래도 견뎌내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다만 금값이 아니라 은값을 주고 쇠고기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삶에 한숨이 나죠. 그래서 쓴 시가 「불혹의 묵시록·3」이에요.
엄미선 : 시인은 서민이기 이전에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 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까요.
김신영 : 언젠가 김종철 시인이 <시의 마음>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시가 아닌 ‘시의 마음’이라는 문구에 눈길이 갔지요. 그동안 제가 쓴 시는 상당히 투쟁적이고 또한 욕망을 감추지 못했어요. 그런데 김종철 시인이 말하는 ‘시의 마음’이란 투쟁과 상극이 아닌 상생을 말하고 있더군요.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이 ‘시의 마음’이라는 거죠. 물론 사회적 문제에 시인이 나설 필요도 있겠지만 제 기본적인 생각은 상생에 있어요.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시의 사회참여 기능 자체가 여러 의미를 갖는데 직접적으로 부닥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엄미선 : 시의 사회참여 여부에 관한 논의는 우리 문학사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쉬운 일은 아니지요. 참여냐 아니냐는 시인의 주체적인 태도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그동안 시창작과 시평론으로 꾸준한 작품활동을 해온 것으로 아는데, 어느 장르가 더 매력적인가요.(웃음)
김신영 : 그야 당연히 시죠. 문학의 진정성에 비추어 본다면 시처럼 매력있는 장르가 또 있겠어요? 시는 삶의 진정성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시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와 인간 문제에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죠. 진정한 사랑과 깊은 인생의 의미 그리고 살아가는 방법 등을 시에서는 매우 진지하게 표현할 수 있어요. 평론은 시를 해석해주는 것이므로 시에 표현된 진지함을 풀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엄미선 : 시평론이 시에 표현된 진지함을 풀어준다는 말은 일종의 방법론을 의미할 텐데요, 시를 해석할 때 특히 관심을 두고 보는 부분이 있는지요.
김신영 : 저는 시를 읽을 때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에 중점을 둬요. 삶과 죽음, 삶의 이유, 존재 이유에 질문을 던지고 그런 문제에 늘 관심을 갖고 있어요. 평론을 쓸 때도 그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돼요. 최근에는 김선우 시의 『도화아래 잠들다』라는 시집을 눈여겨 봤고, 이기화 시인의 「그녀들 비탈에 서다」를 읽었어요. 그들의 소외계층에 대한 시편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 봤어요….
엄미선 : 아, 김선우 이기화 시인 등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후에 말씀해주세요. 여성시인의 시쓰기에 대해서도 질문드릴게요.(웃음)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창작자와 평론가는 대상을 보는 관점이나 입장이 다를텐데요, 쌍방향에서 글을 쓰며 느끼는 어려움이나 곤혹스러움은 없는지요.
김신영 : 창작과 평론의 태도가 다르다는 데서 상이한 입장 차이를 느껴요. 평론가로서 글을 쓸 때는 창작자의 의도를 다르게 해석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요. 창작을 할 때는 창작자의 의도가 있잖아요. 그 의도에 의해 창작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평론을 하다보면 시인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때가 있어요. 물론 시인의 의도가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시창작의 문제나 오류가 생긴 경우라고 할 수도 있지만요. 제 시 또한 상당 부분 제 의도와 다르게 읽히는 부분이 있죠. 그럴 땐 저 역시 제가 시를 잘못 쓰지 않았나 생각해요.(웃음) 저는 그 부분에 대해 항상 우려고 있죠.
엄미선 : 그것이 창작과 비평 사이의 어려움 중 하나겠네요. 이번 시집을 두고 “원숙기에 이르렀다”(류근조), “삶에 대한 성찰과 치유”(유성호, 강영은)라고 말하던데,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신영 : 아직도 많은 부족함을 느껴요. 제 시에 대한 과대평가들이지요. 시를 쓰면 쓸수록 어떤 수렁에 빠지는 것 같아요. 사실 제 시는 단점이 더 많아요. 원숙기 같은 시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시들은 아직도 어수룩한 자의식을 드러내는 생경한 시들이거든요. 도대체 나를 비울 수가 없어요. 이제는 저를 비우는 시를 쓰고 싶어요.(웃음) 여기서 ‘비운다’고 하는 것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 시집은 지금껏 욕망의 형태를 내재하고 있었지요. 이제는 그 욕망을 비웠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 대신 자연의 일부가 되어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형태로 바뀌었으면 해요. 나를 비운다는 것은 자신의 세속적 욕심을 버린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어요.
엄미선 : 신작시 5편을 보면 현대인의 물질만능, 소외된 삶 등을 볼 수 있는데요, 앞으로의 시작 방향이 욕망버리기라고 했을 때, 소외된 삶과 그들의 삶을 치유하는 시를 쓰고 싶다는 의미인지요.
김신영 : 제가 말한 ‘비우기의 시’를 이번에 발표한 신작시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콘크리트 키드」의 경우 ‘소외’라기 보다는 우리 모두를 의미해요. 세상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요. 우리는 그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콘크리트 키드’지요. 오히려 콘크리트 밖을 벗어나면 문제가 되는 세상이에요. 그런 의미를 시에 표현했어요. 「염생하다」의 경우에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 염분이 많은 토양에서도 붉은 줄기를 솟구치며 살아가는 식물을 비유했지요. 「미안합니다」는 ‘비우기’의 모습이 조금씩 보여진다고 할 수 있어요. 콘크리트를 벗어나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울리는 세상을 소망한 것이니까요. 물론 현실은 콘크리트 밖을 벗어나기 힘들겠지만 그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소망하고 기대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을 ‘즐김’의 대상이 아니라 ‘상생’의 대상으로 보아야 하지요.
엄미선 : ‘상생’에 대해 계속 말씀하시는데, 두 권의 시집을 보면 화자의 어조가 마치 신께 간구하는 듯한 애절함으로 읽히거든요. 기독교에서는 자연을 ‘상생’으로 보고 있지 않잖아요. 종교적인 향이 짙은데 어떤가요.
김신영 : 본질적으로 기독교적인 색체를 띠고 있는 것이 제 시의 특징이에요. 그러나 신을 나의 신으로 대하기 보다는 보편적이며 객관적인, 어느 곳에라도 내재하는 신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 제 생각이에요. 사실 기독교가 많은 면에서 거부되는 사회현상을 목도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 싶었어요. 찬양일변도나 신앙고백식의 시는 ‘종교시’라는 아류 영역으로 추락했지요. 그것이 안타까워 나름의 기법을 통해 표현한 것이에요. 엄밀히 말하자면 기독교에서도 ‘상생’을 말하고 있어요. ‘사랑’이 그 대표적인 경우지요.
엄미선 : 그렇다면 “보편적이며 객관적”인 신으로 표현하기 위한 나름의 기법이 시인이 말하는 ‘종교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김신영 : 종교시의 언어는 대부분 기존 종교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요. ‘기도’, ‘찬송’ 등 기존의 언어를 답습하는 경향이 강하지요. 하지만 그런 것을 과감히 벗어나야 해요. 기독교적 성향을 표면화하지 않은 현대적 언어와 감각이 필요하지요. 기독교적인 냄새가 나면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껴요. 문단에서 불교적 용어를 쓰는 것은 용납하지만 기독교적인 용어를 쓰는 것은 아류로 보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기독교적인 용어를 쓸 때는 비유, 상징 등을 통해 완전히 바꿔야 해요. 제 시에서는 많은 부분 그런 기법을 사용해 차별화를 시도 했어요.
엄미선 : 기독교적 성향의 시가 독자로 하여금 거부감을 갖게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김신영 : 불교와 기독교의 종교 교리는 많은 부분 다르죠. 기독교는 유일신 신앙이며 불변하는 진리에요. 그 불변의 진리는 건드릴 수 없지요. 그것을 건드리면 교리를 위반하는 것이고 문제가 발생해요. 반면 불교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고 해탈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요. 교리 자체가 순환적, 명상적이고 해탈의 방법도 다양해요. 동양적 색깔과 사고가 유럽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은 불교적 사유의 다양성에 있다고 봐요. 고정된 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사고할 수 있다는 점이 그들을 매혹시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불교적 언어를 쓰는 것은 많은 사유를 일으키지만 기독교적 언어를 쓰는 것은 사고를 가로막는 형태가 된다고 할 수 있어요. 물론 기독교 자체는 다양한 부분을 갖고 있어요. 잠언, 시편, 아가, 말라 등 성경에도 여러 부분이 나타나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교회가 유지되고 교인을 압도하기 위한 견제장치들이 사고를 가로막죠. 그래서 사람들에게 거부된다고 생각해요.
엄미선 : 신앙생활이 시인의 창작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요.
김신영 : 교회에서의 믿음의 세계는 불변하는 세계를 지향하고 그 세계는 부동적이에요. 어딘가에 존재하는 완전무결한 세계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에른스트 블로흐에 의하면 믿음은 가변적이며 유동적인 세계지요. 그러니까 일반 교회들이 주장하는 세뇌식 믿음이나 신앙에는 찬성하지 않아요. 저의 신앙생활이 창작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고 물으셨지만 사실 신앙생활과 창작은 별개라고 할 수 없어요. 다만 표현 방식의 차이라고 할까요.
엄미선 : 신앙생활과 창작행위가 같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블로흐가 말하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세계”의 표현방식보다는 루카치가 말하는 “사실주의”가 오히려 ‘신앙생활=창작행위’를 설명하는데 적절할 듯싶은데, 기법문제에 있어서 그렇다는 건가요?
김신영 : 블로흐는 믿음을 희망으로 보고 있어요. 희망이라는 것은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세계이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불변 부동의 세계가 아니에요. 이것은 굉장한 차이입니다. 블로흐가 「희망의 원리」를 발표한 것은 1960년대인데 이전까지 불변 부동의 세계는 변함이 없었지요. 그러나 『희망의 원리』 출간 이후 사람들은 믿음도 유동적이고 가변적임을 알게 되었죠. 그것에 비추어본다면 신앙생활도 자신의 생활과 시대적 변수에 따라 변화하고 유동적이라는 이야기가 돼요. 블로흐가 말하는 ‘유토피아’도 고정 불변이 아닌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유토피아에요. 블로흐가 루카치와 벌인 표현주의 논쟁을 보면, 궁극적으로 이들의 지향점은 같은 것이에요. 표현 방식의 차이일 뿐이죠. 그것이 혁명적 과제와 당위를 사실적으로 드러내든(루카치), 미래의 유토피아를 예견적으로 묘사하든(블로흐), 이들이 문학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의식된 경향을 새로움으로 창출해내는 이론과 실천과정에 있었어요. 그러니 ‘신앙과 창작’은 믿음이라는 굳건한 대지 위에서 그것을 어떻게 틔워내느냐 하는 방법의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엄미선 : 그렇군요. 문학뿐만 아니라 현대 예술은 항상 ‘어떻게’가 중요한 것 같아요.(웃음) 화제를 바꿔보죠. 80년대 이후 여성시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졌잖아요. 최승자, 김혜순, 김정란, 박서원 시인이 그렇고, 최근의 김이듬, 김민정 시인에 이르기까지 여성시인의 시쓰기가 과거에 비해 매우 활발해졌어요. 이들 일련의 여성시인의 시쓰기를 두고 말들이 많은데, 시인은 어떻게 보는지요.
김신영 : 여성들의 시쓰기 방식에서는 깊은 통찰을 볼 수 없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삶에 대한 소소한 일상은 섬세하게 잘 표현하고 있지만, 우주적인 세계관이나 사고에는 접목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앞으로 여성시인들은 섬세한 표현(엽기도 포함)은 물론 더 큰 사고의 틀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소망하고 있어요.
엄미선 : 자칫 잘못 들으면 여성시인은 “우주적인 세계관이나 사고”가 없는 것처럼 들리겠어요.(웃음) 일련의 여성시인들이 쓰는 ‘억압’의 코드가 성性이든 권력이든 그것이 “섬세” 혹은 “엽기”적으로 표현된다고 해서 “우주적 세계관이나 사고”가 없다고 말하기에는 좀 석연찮은데, 어떤가요. 더 큰 사고의 틀이라다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요?
김신영 : 제가 읽었던 여성시인의 시에 국한해 말씀드리자면, 너무나 지엽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엽기도 마찬가지에요. 그런 시가 어떤 큰 가치관과 연계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죠.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지엽적인 것들로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곤 해요. 그런 부분이 여성 시에서 많이 보여졌다는게 제 소견입니다. 좀더 큰 세계관, 좀더 근본적인 시창작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김선우의 『도화아래 잠들다』는 자연과의 합일, 조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어 그것에 탐닉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인간이 자연과 동화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런 면에서 근본적인 상생, 조화, 존재론적인 모습이 좀 더 큰 틀에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엄미선 : 김선우의 시는 ‘상생·조화’보다는 ‘여성성’이 육감적으로 강조된 시로 보이는데, 어떤 점이 앞서 열거한 여성시인들과 차이가 있나요? 여성의 ‘욕망’ 표출이 ‘엽기’적으로 표출된다고 해서 그것의 세계관이 ‘지엽적’이란 생각은 들지 않던데요.
김신영 : 앞서도 얘기했지만 저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선우 시인이 보이는 ‘여성성’은 육감적이지만 그가 표현해내는 ‘여성’적 세계는 앞서 열거했던 시인들의 시세계와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예를 들면, 김선우의 시에 나타나는 신화적인 시공간은 엽기적인 표현이 아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여성성의 이미지에요. 우리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이야기인 동시에 나의 이야기이지요. 다시 말해, 순환적인 시공간에 여성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나타나요. 이러한 시적 표현은 같은 ‘성(욕망)’을 말하더라도 엽기적이지 않잖아요. 엽기가 신선함 그리고 놀라움 등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지엽적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물론 그러한 시적 세계도 필요하겠지만 저는 인간 존재의 순환적인 삶을 통해 드러나는 시적 세계관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 역시 시를 창작할 때 그러한 관점에서 ‘비우기’를 시도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엄미선 : 그러니까 시적 표현이 문제가 되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시와산문』 독자가 시인의 시적 표현을 어떤 관점에서 읽어주었으면 하는지요.
김신영 : 문학의 진정성 측면에서 읽어주었으면 해요. 진정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사막과 그늘에 몰입하는 것을 눈여겨 보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사막은 우리들의 삭막한 삶의 현장을 의미하며, 그늘은 욕망을 이루지 못한 자가 살고 있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욕망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이루지 못한 욕망 때문에 늘 그것으로부터 시달림을 받아요. 그 소망으로 인해 다른 일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잡히지 않기도 하죠. 그런 것을 눈여겨 봐 달라는 의미에요.
엄미선 : ‘진정성’이란 말은 참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관점에 따라 대상의 ‘진정성’이 달라지니까요.(웃음) 앞으로 시인이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김신영 : 지난해 가을 박사학위 논문을 쓰느라 몸을 많이 해쳤어요. 그러서 올해는 힘에 부치기도 합니다만,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창작하려고 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그래도 강단에 서는 일이에요. 강단에서 학생들과 인생과 사랑과 문학을 논할 수 있는 것이 저의 소망이지요.
엄미선 : 그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랄게요. 그런데 벌써부터 세 번째 시집이 기다려지는데, 혹 11년 후에나 볼 수 있는건 아니겠죠.(웃음)
김신영 : 그럼요.(웃음) 긴 학업의 과정을 마쳤으니 이제는 좀더 빨리 시집을 출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요. 세 번째 시집은 지금까지와는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엄미선 :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신영 시인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상생과 조화’, ‘비우기’의 삶을 되새겨 본다. 한 편의 시가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관점에서 비롯될터, 그렇다면 그것은 대상을 배려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그래야 서로 더불어 살 수 있는 조화로운 삶이 될 테니 말이다. 시인의 말처럼 삶의 ‘비우기’가 곧 새로운 시의 시작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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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선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추계예술대학원 영상시나리오학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2002년 『시와산문』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