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산골에 건축과 디자인이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갤러리와 찻집이 있어
이를 알고 찾는 지역주민들과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참 근사해 반가웠다.
오스갤러리를 지나자 곶감말리고 벌꿀을 치는 마을을 지나 산길을 올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름다운 순례길의 길잡이인 달팽이가 보이지 않는다.
길에서 공사하는 아저씨들께 고산 독촉골로 이어지는 소양 오도재와 오덕사를 물었더니
임도를 계속 타고 걸어가면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산을 타고 넘으면 된다 한다.
안개 낀 조봇한 산길임도는 가파르지도 않고 굽이굽이 한적하기 그지없고,
숲들은 그윽한 향내 함께 예쁜 새소리 외엔 너무도 조용하다.
새소리는 내 마음을 묘하게 울리며 청순한 기쁨속에 머물게 한다.
단조로우며 곱고 청아한 노래가 내 마음에 와 닫아 수를 놓는다.
새들의 노래와 나의 호흡이 조화를 이루고
깊이 머물며, 천상의 음향이 내 혼을 흔들어 깨운다.
천국이 따로 없다.
이런 길을 걷다보면 한없이 단순해지고
마주치는 모든 자연과 사람에 경탄할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을 열어주는 것 같다.
우리의 행복이란
많은 걸 소유하고 지배할 수 있는 것이나
심지어 뭘 좀 더 안다는 것과 별 관계가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사랑의 능력이랄 수 있는
만나게 되는 모든 대상들과 사랑스럽고 자유롭고 지혜로운 관계를 맺는데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랑은 너그러워 주위에 평화를 창조하고, 각자마다의 다름과 존중하고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대상들을 축복하며 평화를 기원할 수 있으리라...
참되게 열린 마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생을 보듬고 함께하는 서로를 어루만져야 하리라.
행복이란 바이러스는 내가 행복하면 내 남편도 자녀들도 행복해지고,
내가 마주하는 친구들도 이웃도 함께 행복해지는 것임을 잘 안다.
“그래, 나는 내 마음과 함께 하는 길을 따라 살았어!!!~”를 말할 수 있기를....
임도 끝에서 산으로 오르니 네 갈림길이 나오며 나무를 깎아만든 솟대들과 돌탑이 나왔다.
땀의 순교자이신 최양업 신부님께서 호남 교우들을 돌보기 위해 걸으셨다는 오도재다.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민간신앙 중에 솟대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
긴 장대 끝에 하늘에 맞닿을 높이위에 오리와 기러기 등의 모양을 세우면,
땅위의 인간이 하늘에게 소망을 담아 기원하는 전령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인근에서 표식을 찾지 못해,
순례길을 아름답게 만드느라 수없는 행보를 하며 고민해
순례길 마다를 손바닥 읽듯이 훤히 아신다는 이진식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솟대에서 깎아지른 비탈길로 내려가면 된다고 하신다.
한참을 가다보니 10시 30분이다.
또다시 산은 세 갈래 길인데 어느 방향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평화신문의 이창훈기자도 여기에서 길을 잃어 더운 여름에 고생을 했다는데
우리도 비슷한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그래 또다시 전화를 시도했으나 발신이 안되는 지역인지 소통이 안된다.
이창훈기자의 순례길 출력해온 기사를 읽어보며 정확한 판단이 서진 않지만
또 그 길이 아니어도 어떠하랴 생각하며 내리막 길을 택한다.
그런데 이때부터 예상밖의 긴급상황이 벌어진다.
낙엽이 어찌나 많이 쌓였는지 길은 분간이 안되고 발을 디디면 낙엽이 무릎까지 빠진다.
낙엽속에 집어넣는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 한발도 보장받을 수 없는
발길질을 무지하게 해대는 것이다.
순례를 다 마치기는커녕 오늘의 발목이 온전할 지 염려되는 상황의 연속이다.
아슬아슬한 곡예의 시간을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산이 끝나는 곳에 까치밥으로 남겨둔 홍시감들이 빠알갛게 익어있는 마을이 나온다.
산을 내려오며 졸였던 가슴도 내려놓을 겸, 키가 큰 아네스님이 그래도 자기가 오르는게 낫겠다며
감나무에 올라가 스틱으로 나무 가지를 흔들어댄다.
감이 떨어지는데, 나무에서 농익은 감은 떨어지는 순간 아쉽게도 파삭 깨어져 버린다.
우린 그 중에 나뭇잎 위에 떨어져 흙이 덜묻고 덜깨진 감을 골라서 먹는데
어찌나 달고 시원한지
조금 전까지 힘들어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가슴을 식혀주기에 충분하다.
몇 개 씩를 먹고 나니 입도손도 다 얼얼한 한기가 느껴진다.
그런 우리를, 마을을 지나던 사람이 어디서 왔느냐기에 뒷산을 통해 내려왔다고 하니
그 마을 뒤에 산길이 있더냐고 의아해 한다.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들에
이 시간 당신안에 순례코자 하는 우리에게 특별한 돌보심주시어 무사히 내려와,
순례 내내 안녕과 평화만이 있을 것을 믿으며 감사했다.
아름다운 순례길은 오도재를 넘고 숲길을 따라 오덕사를 거쳐 오덕저수지에 도착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가 내려온 곳을 물으니 엉뚱한 임풍의 양아리 저수지라 한다.
그래, 고산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묻는 어른들마다 그 배낭메고 여기서 어떻게 고산까지 걸어가느냐고 손사래를 치신다.
물어물어 1시 30분에야 드디어 고산천변 시작점에서 달팽이 표지기를 다시 만나니,
헤어졌던 형제를 만난 듯 너무 반갑다.
표지기에는 “한번 흘러간 물에는 두 번 다시 발을 씻을 수가 없답니다.” 는 글귀가....
고산천변을 흐르는 강물과 갈대숲의 어우러짐이 한없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고산에 들어가서야 식당을 만났다.
진행방향 다리건너 오른쪽 모퉁이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니
묵은김치 닭볶음탕과 아구찜만 된다고 한다. 얼른 차려진 백반을 먹고 갔으면 싶었고,
가격도 3, 4만원이라 한다.
순례자들이 이 길에서 점심을 먹으려면 고산읍내를 들어가지 않고도
이 식당이 안성맞춤인데 아쉬웠다.
발길을 돌려 읍내로 들어가 청국장 백반을 시키니 반찬이 한정식이다.
오늘 산길을 헤메느라 피곤했던 발을 쉬게 할 양으로 양말까지 벗었던 중등산화를
다시 조여매고 출발하니 3시 30분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시골길들은, 동지가 가까워 오는 계절인지라 5시 30분만 되면
사위에 어둑발이 드는데 아직도 남은 거가는 12km이다.
비봉면에 들어선 외율마을, 율곡마을, 안터골의 밭에선 김장용 배추를 추수하는 일이
한창이다.
비봉가는 741번 도로에서 전화통화만 하던 이진식 선생님과 강동암 선생님을 만났다.
우리가 산에서 길을 잃어 고생했다는 얘기를 듣고, 남은 일정동안 더 고생하는 상황이 발생할까봐, 주일인데도 표지기 작업을 보완하러 현장에 나오신 것이다.
평상시 스틱을 쓰지않는 아네스님께 그래도 이 길에선 스틱을 쓰는 것이 좋겠다며
가볍고 단단한 스틱을 건네주시며, 우리를 한껏 격려하고 가신다.
어둑발은 들어오는데 남은거리는 7-8km 되어오니 아네스님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얼만큼을 앞서가다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안젤라, 어서와~!!!”를 연발하며 기다린다.
종일 지친다리는 그만 쉬어가라 하는데 친구가 씩씩하게 앞서가니
뒤쳐진 주제에 친구에게 염려를 끼칠까 봐 쉬어버릴 수도 없다.
얼마나 감사한가....
걷는 역량이 미약하여 힘들어 못가겠다고 주저앉는 친구를 달래어 간다면
남은 이 길을 어떻게 다 온전히 기쁘게 걸을 수 있을까?
건강한 여유로 넉넉한 길동를 무 묶어주신 이끄심에 감사가 절로 나온다.
명곡마을을 지나며 천호성지 들어가는데 이미 어두워졌다.
6시 30분에 성지 3거리에서 피정의 집을 묻느라 천호성지에 전화를 하니
레아자매님께서 너무 늦었다며 차를 가지고 나오신다.
천호성지 피정의 집은 우리 둘만 묵는데도,
봉사자이신 레아 자매님은 우리들이 허기져 있을까봐
한상 가득 따뜻한 인정 넘치는 저녁을 차려주신다.
저녁먹고 씻는데, 오늘 길잃어 고생했다며
순례문화연구원의 박동진 차장님께서 전주의 특산품이라는 막걸리를 사오셨다.
그래, 막걸리를 한잔씩 하며 오늘까지 길에서 마주쳤던 문제점들이 뭐였는지,
우리들이 제안하고픈 얘기들을 빼곡이 수첩꺼내 적으신다.
곧이어, 천호성지의 이영춘 신부님께서 내려오셔, 오느라 고생많았다며
내일 아침 7시 15분에 우리들 위해 사제관 2층의 경당에서 미사를 준다 하신다.
어느새 오늘 길에서의 피곤함은 따뜻한 환대와 보살핌에 녹아내려
가슴속엔 맬겁시 뭉글뭉글 기쁨과 환희가 피어오른다.
첫댓글 10월 31일 저녁, 스님께서 차 공양이 있다고 하시기에 스님방에서 향기로운 차향과 함께 스님의 법어를 들은 기억이 새롭습니다. 18-19일 이틀간 고등학생들과 함께 충청남도 진산에서부터 되재공소를 거쳐 천호성지에 이르는 60Km 도보순례 봉사를 하게되었습니다. 이 길을 걸으며 보아미님과 아녜스님을 기억하며 기쁜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나팔님은 18일부터 29일까지 이틀간 또 도보순례를 하신다는데, 그것도 충청도 진산에서 되재공소를 거쳐 천호성지까지... 부럽기도 하고 따라나서지 못함을 아쉬워 하기도 하고... 저도 보아미님과 같이 언제나 훌훌 나설 수 있을까?
사진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사진 감상 잘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