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건전한 성경적 사고력을 길러라
(생각의 통을 키워라)
바나바는 바울보다 대선배이다. 바울에게는 훌륭한 멘토이자, 바울을 바울되게 만든 주인공이다.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인
사도들이 바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교제하기를 꺼려할 때 바나바가 개입하여 신뢰 관계를 회복시켜 교제의 악수를
나누게 했다.
어디 그뿐인가? 안디옥교회에서 목회할 때 바나바는 다소에 있는 바울을 데려다가 함께 공동 목회를 했다. 사도행전은 13장을
중심으로 바울과 바나바의 이름을 기술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13장 전반부까지는 “바나바와 사울”(행 13:2)의 순으로 이름이
기록된다. 그런데 13장 후반부부터는 “바울과 바나바”(행 13;43,46,50)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자리바꿈, 즉 역전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바나바는 불쾌한 감정을 갖지 않았다. 2인자 자리로
내려가면서도 그는 기분 나쁜 표현을 하지 않았다. 바울도 훌륭한 인물이지만, 바나바 역시 영적인 거물 중에 거물이다.
바나바야말로 큰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후 6;13)고 당부한다.
고린도 교인들 주변에는 바울을 비방함으로 그의 사도권에 흠집을 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교린도 교인들 가운데는 그들의
이간과 충동질에 빠져 바울을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바울을 믿지 않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제발 마음을 넓히라”고 당부한다.
우리는 좁아진 마음으로는 자주 불신과 의심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생각의 통만 넓히고 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집사는 생각의 통을 넓혀야 한다. 생각이 좁은 사람은 이것저것 문제만 제기한다. 그러나 좀 더 넓게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별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생각의 틀만 넓히면 안 될 일도 되게 만든다.
세계적인 음료수 회사인 코카콜라가 어떻게 탄생했을까? 한 사람의 큰 꿈에서 시작했다. 세계2차 대전이 끝났을 때, 코카콜라
사장인 로버트 우드러프는 이런 결심을 했다. “내 꿈은 내 세대에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코카콜라를 한 잔이라도 맛보게
하는 것이다.”
그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혈관 속에는 피가 아니라 코카콜라가 흐른다.” 그는 코카콜라에 완전히 미쳤다. 오늘날
코카콜라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엔 가입수보다 코카콜라가 들어간 국가의 숫자가 더 많다고 한다. 이런
엄청난 일이 한 사람의 큰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고난 주간이 다가왔다. 어느 교회에서 세족식을 갖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교회에 광고하는 세족식을 준비했다. 그런데 세족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이없는 토론이 벌어졌다. “세족을 하는데, 어느 발부터 씻어주어야 하는가?” 한쪽에서는 “오른발부터
씻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쪽에서는 “왼발부터 씻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었다. 절대 서로 양보하지 않을 기세였다. 이들은 서로 싸우다가 결국 세족식은 무산되고 말았다. 대립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결국 “오른발부터 씻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인들이 나가서 새로운 교회를 세웠다. 그 뒤로 사람들은
그 교회를 ‘오른발교회’라고 불렀다.
어디 이게 그렇게 싸울 일인가? 교회가 분립되어야 할 이유가 되는가? 어리석은 교인들이다. 교회에 덕을 끼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자신이 경험한 것을 ‘진리’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문화일 뿐이고
전통일 뿐이다. 생각의 통이 작은 사람들이 벌이는 추태이다. 생각의 통만 좀 넓히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크게 생각하라」 는 책을 쓴 하동식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큰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혜안을 갖추게 하며, 이는 곧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 생각은 깊이가 정해져 있지 않다. 사고에 따라 생각의 샘은 깊어질 수도 있고 알아질 수도 있다. 큰 생각을 가진
사람의 가치는 돋보인다. 그러나 작은 생각의 소유자는 답답하게 느껴진다.
존 맥스웰은 「생각의 법칙」에서 말한다. “인생에서 우리가 새로운 기회를 얻으려면, 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원한다면,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 능력에 더 큰 사고(big thinking)를 가져야 한다.” 좋은 집사는 더 큰 사고력을 계발해야 한다.
생각의 통만 넓히면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지고, 사건을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좋은 집사는 작은 시야에서 벗어나 보다 큰 그림을 보는 탁월한 생각을 소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통찰력을 얻으려는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어른에게서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아이들에게서도 배우고자 하는 열린
사고를 가져야 한다. 직장 동료나 상사를 포함한 주변 모든 사람들과 진정한 대화를 나누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통찰력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큰 생각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빅토르 위고 역시 “작은 사람은 작은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작은 생각으로 자신만의 작은
우주를 진짜 우주로 착각하고 살아간다. 이렇게 작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스승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그들에게서 무엇인가 배우려는 태도를 갖고 있다. 사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우리에게 새로운 통찰력을 던져주고, 나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스승이다. 남들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훨씬 더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다.
덩치는 큰데 생각은 작은 사람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얼굴 붉히며 싸우는 것을 보면 참으로 답답하다. ‘왜 저런 문제를 갖고
목숨을 거는 거지? 집사가 목숨 걸어야 할 일이 한두 가지인가? 집사는 복음을 위해, 전도와 선교를 감당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잡동사니 같은 문제를 가지고 서로 피터지게 싸운다는 게 말이
되는가? 사소한 문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여유로운 생각을 가져야 한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 공로자 찰스 키델링 박사는 80세가 넘어서도 새로운 기계를 계속 발명했다. 83세 생일 때 그의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이젠 연구는 그만하시고 좀 편시 쉬시죠.” 그러자 찰스 키텔링은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 편한 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너는 늙은 것이고 이미 죽은 것이란다. 나는 늘 하나님의 축복을 생각하면서 미래를 생각하고 있으니까 젊고 언제나
살아 있는 것이지.”
근시안적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시안적 사고를 품는 사람도 있다. 오늘 당장 어떻게 될 것인가를 집착하다
보면 먼 미래를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 박사는 “우리는 10분 후와 10년 후를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지혜로운 집사는 10분 후를 동시에, 1시간 후만 생각하지 않는다. 10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 하나님 앞에 가서는
어떻게 될까? 그렇게 생각할 때 큰 결정을 할 수 있다. 롯은 당장 눈앞에 놓인 세계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먼 미래를 꿈꿨다. 좋은 집사는 인간적인 얄팍한 계산이 아니라, 매사를 인간의 게산을 초월하는 신앙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