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친정에 다녀 왔습니다.
아버지 생신때도 못가고 시어머님 김장도 드릴겸 겸사 겸사 다녀왔지요.
시댁에 들려서 친정으로 갔는데 간다는 전화도 안하고 가서 동생들은
회사 사무실에서 깜짝 놀라며 반겨주었습니다.
" 아버지 오토바이는 있는데 어디가셨냐? " 고 물어도 동생들은 아까 나가셨는데
어디가셨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여동생 집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시내에 잠깐 나왔다,
곧 들어가마고 하셨습니다.
과일과 차를 마시고 있는데 아버지가 손에 빨강 금강제화구두가방을 들고 오셨습니다.
" 아버지, 구두 좋은거 사셨네요. " " 그래. 백화점 세일 한다고 그래서 가서 샀다 "
아버지는 구두가방을 들고 이층에 남동생집으로 올라가시고 저도 이내 따라 올라갔습니다.
방안에는 붓글씨 쓴 종이며 과자,차주전자등이 있었고 한쪽 벽에는
아까 사 온 구두를 가지런히 세워 놓았습니다.
구두를 들어보니 아주 가볍고 편해보여서 " 아버지, 구두가 편하겠어요. "
" 그래 내가 250을 신었는데 발이 줄어서 이제 245신는다 "
" 한번 신어보셔요 " 했더니 바지를 걷고 앙상한 다리를 보이며 신발을 신어보시더니
" 내가 이 구두가 마지막이지 또 새구두 한번 더 사신겠나 " 하는 것이다.
아버지 얼굴을 보니 쓸쓸한 표정이 가득한 것같아 보였습니다.
" 아버지, 이제 구두 아끼지 말고 신어요. " 나도 그렇게 말하는데
" 신던 구두도 새건데 티켓이 하나 있어서 샀는데 마지막 구두지...
이 구두도 다 못신고 죽지 " 그러신다.
" 저 옷은 다 어쩌노. 누가 입을 사람도 없고 옷도 좋아서 아까운데... "
올해 82세. 마르셔도 잔병치레 안하시고 건강관리를 잘하셔서
우리형제가 이 부분에서는 편했습니다.
그랬는데 전에 안하시던 말씀을 오늘은 자꾸 하시는것입니다.
" 아버지 허무하고 쓸쓸 하셔요 ? " 하고 물었더니
" 허허 " 딱 두번 웃고 마시는데 웃음도, 얼굴도 쓸쓸함이 가득 넘쳐났습니다.
올케가 저녁을 차려 와서 식사를 하는데 아버지가 나물이 맛있다고 하셔서
내가 " 아버지, 맛을 몰라야 죽는대요. 나물이 맛있다고
하는거 보니까 구두 세컬레는 더 신어야 되겠다 " 고 해서 식구들이 다 " 와 " 하고 웃었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아침에 오려고 하는데
" 살아서 니를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 고 하신다.
" 자주 올께요. " " 노인들은 내일이 어떨지 모른다. "
" 알았어요. 자주 올께요 " 그러고 오는 차속에서 자꾸만 구두가
아른 거리고 빠짝 말라버린 아버지의 다리가 눈에 떠 올랐다.
호랑이 같이 무섭던 아버지.. 이제는 종이처럼 약하고 쓸쓸함이 마치 이 계절같아 보입니다.
다음에 갈때는 색깔이 고운 티셔츠와 즐겨쓰시는 멋있는 모자를 사 가야 되겠습니다.
바라기는 이 구두가 마지막 구두가 아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