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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발 : 야탑역 1번출구.(08:00)
집 결 : 법원읍 초릿골 초계탕집.(약 09:30분~10:00. 분당에서 약1시간30분소요)
산행 안내판.
등산로에서 바라본 초릿골 전경.
장군바위.
박정희 목 따러 왔수다.”
1968년 1월 21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엄청난 난리가 터졌다. 따발총에 수류탄까지 중무장을 한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 뒷길까지 행진해왔으니,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그들이 휴대한 무기들을 볼짝시면, 기관단총(PPS) 31정, 실탄 9300발, TT권총 31정, 대전차용 수류탄 252발, 방어용 수류탄 252발, 단검 31정.
그때 부대장 이름은 김신조. 지금 목사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조선인민군 제124군부대 소위였다. 당시 나이 스물 여섯 살! 공비들은 경찰과 군부대 합동작전으로 일망타진되고, 김신조는 생포돼 투항을 한다.
사건 16시간 뒤 벌어진 기자회견장에서 김신조가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 모가지를 떼고, 수하간부들을 총살하러 내려왔다.” 국민들, 경악했다. 중무장한 공비들이 서울 시내까지 들어오면서 검문 검색 한번도 받지 않았다고 증언했으니, 국민들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15년이 채 지나지 않은 세월이었다. 그리고 한마디 더했다. “삼봉산에서 나무꾼들 한번 만나고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
삼봉산. 경기도 파주 초릿골에 있는 얕은 산이다. 오늘 이 가을날에 우리의 마시무스 뷁이 다녀온 산이다. 40년 전, 삼봉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꼬!
1968년 1월 20일 삼봉산
“너 쌀밥 일년에 얼마나 먹어봤어?” “밥은 하루에 세 번 먹잖아요.” 그리고 긴 침묵.
“신고하면 우리 후원 부대가 와서 가족들 전부를 다 죽일 것이다.” “이제 곧 세상이 바뀐다. 조금만 더 참아라. 이북에 데려가 무상으로 대학까지 보내 주겠다.” 그리고 큰소리, “한달 뒤 올테니 동동주 담아 놓고 기다려라.”
그게 1968년 1월 20일 파주 초리골 우씨 4형제와 김신조 부대가 나눈 대화였다. 삼봉산은 1960년대 간첩들이 남한에 침투하는 주요 루트였다. 우거진 산림에 능선이 얕아 서울로 침투하기 딱 좋았다. 전날 남으로 내려온 김신조부대가 삼봉산에 이르니, 날이 무척 추웠다. 그래서 원래 응달지대에 은폐하려고 했는데 너무 너무 추워서 양지바른 곳에 숙영을 했고, 그리하여 나무를 하러 올라온 우씨 형제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조우했으니 궁금한 게 좀 많았겠는가. 그리하여 쌀밥 이야기가 나왔고, 자신만만한 혁명전사(?)들은 이 나무꾼들을 살려주고 사라지고 말았다. 우씨 형제는 초리골 단양 우씨 종가집 우종하씨(작고)한테 뛰어와 경찰에 신고했고 이들은 좍 깔린 군경을 피해 도주하다 사살됐다. ‘청년 해방전사’들이 추위 탓에 그렇게 덧없이 죽었고 소위 해방은 없던 일이 됐으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공비를 신고한 우씨들에게 포상이 내려졌다. 아직 간첩 신고 몇천 만 원 하던 제도가 없던 시절이다. 6촌, 8촌지간이던 형제들이 이렇게 말했다. “경찰관 시켜달라.” “인천 유리공장에 취직시켜달라”기타 등등. 그래서 파출소장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우성제씨는 훗날 “당시 바로 신고하지 않았으면 서울시내에서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신조부대가 하루를 머물렀던 양지바른 곳, ‘무장공비 숙영지’라는 비석이 서 있다. 환상적인 산행길, 김신조 루트 초입에 있다.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의 마시무스 뷁이 삼봉산으로 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계속)
2008년 초릿골과 단양 우씨, 그리고 초호쉼터
초릿골은 단양 우씨가 7대째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골짜기 80%를 소유한 우씨 집안 고집 덕에 1970년대 말 잣나무 같은 침엽수 일색으로 산을 바꾸려는 수종 개량사업을 면했다. 그래서 산에는 활엽수와 유실수 천지다. 해마다 식목일이면 나무를 심었다. 물론 우씨들이 앞장섰다. 그리고 극성맞은 우씨네 자연 사랑 덕에 골짜기는 난개발을 피해 지금처럼 청정한 자연을 소유하게 되었다.
우씨 나무꾼들의 사촌 동생인 우능제씨는 그때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능제씨는 종가집 우종하씨 장손이다. 능제씨는 “아버지 생전에는 해마다 김신조씨가 찾아와 인사드리며 그때를 떠올리곤 했다”며 “특히 누나 한 분은 입대하고 남파되기까지 10년 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자기 누이와 나이가 같아 의형제를 맺었다”고 했다. 울울창창한 활엽수림을 보며 한마디 더했다. “신제가 심은 나무는 다 죽었다”라고. 신제는 능제씨의 막내 여동생이다.능제씨는 대학교 졸업하고 가업을 물려받아 벼농사를 지었다. 한 해 농사 짓고 보니 300가마에 1200만원. 대졸 초임이 되지 않았다. 초릿골에게 농사는 더 이상 미래가 없었다.
1990년대 중반, 선친이 낚시를 즐기던 양어장을 다시 가꾸어 연못을 만들었다. 그리고 선친이 쉬던 정자 자리에 돌로 만든 카페를 세웠다. 어디선가 구해온 빽판 몇천장을 꽂았다. 연못에는 오리들이 놀고 새파란 물총새가 수시로 피라미를 낚는다. 물가 새장엔 금계, 장미계, 공작, 공작비둘기,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 깃털이 앞을 가려 가끔씩 벽에 부딪치는 ‘히피 닭’같은 보기 드문 새들이 산다.
족구, 농구장과 계곡물을 담은 수영장도 만들고 숲 속에 오두막집도 지어서 펜션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초호 쉼터’다. 초호(草湖)는 선친의 호다(아래 여행수첩 참조). 2000년대 초에 완성된 초호쉼터 위에 초호쉼터2가 또 생겨났다. 더 우아한 펜션에 더 우아한 카페에 김신조루트로 바로 연결되는 등산로가 있는 쉼터다.
김신조 루트
포장길을 따라 골짜기 안쪽으로 올라가면 오른편 초호쉼터2 옆에 두루뫼박물관이 보인다. 소설가 강위수씨가 평생 걸려 모은 민속생활용품이 전시된 공간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옛날 시골에서 봤다가 까먹고 살아온 많은 풍경들이 보인다. 솟대며 장독대며, 원두막이며. 그리고 안에 들어가면 빼곡이 생활용품들이 빛나고 있다. 김신조 루트는 이 박물관과 쉼터2 사이 뒷길에서 시작한다.
완만한 능선을 타고 길을 걷다보면 문득 ‘북한남파무장공비숙영지’라는 비석이 보인다. 이렇게 낮은 곳에! 이렇게 개나 소나 다 눈치챌 수 있는 양지바른 곳에! 겨울 밤이 얼마나 추웠으면 특수훈련을 받은 게릴라들이 이런 멍청한 곳에서 하루를 지샜을꼬! 그 20대 청년들이 겪었을 인고를 생각하니 인간적으로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념이 뭐길래.
등산길 내내 가을 꽃들과 억새, 울창한 숲과 노릇노릇 물들어가는 잎새들이 눈에 들어온다. 발치를 보면 밤톨들이 곳곳에 떨어져 있다. 큼직한 개량종이 아닌 토종 알밤이다. 그 위로 ‘은굴’이 있다. 일제시대 은광의 입구였다고도 하고 공비들이 침투할 때 비트로 사용했던 굴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너무 추락사고가 많아서 시멘트로 입구를 막아버렸다. 그리고 길을 간다. 아래에 있는 꽃들을 보시라. 이렇게 세상은 아름답다. 공비가 가든, 등산객이 가든 꽃들은 이리도 아름다운 우주를 밝힌다.
저수지
김신조 루트라는 길이 굉장히 길어서, 끝까지 가려면 왕복 4시간이다. 중간에 ‘초리동’이라는 이정표가 보이면 그쪽으로 내려와도 좋다. 물론 산을 좋아하는 분들은 ‘장군바위’쪽으로 끝까지 가면 좋겠다. 거기에는 전망대도 있고 괴상하게 생긴 소나무도 있어서 사람들을 매혹한다. 하지만 초릿골을 종합적으로 즐기고 가려는 분들은 ‘초리동’에서 하산하실 것. 그리고 저수지다.
과연 자연은 위·대·하·였·다. 위와 아래가 뒤바뀌어도 똑같을 그런 풍경이 우리의 눈 앞에 스스로를 펼치며 가만히 숨을 쉬고 있다. 거울과도 같은 그 저수지 풍경에서 뷁이 말없이 자기를 반성한다. 반성한다 싶었더니 냉큼 물 위를 날아가 건너편 숲 속에 꽂힌다. 꽂혀서 나를 보고 혀를 낼름거리며 말한다. “나 잡아봐라~!”
40년 전에 공비들이 내려와 “나 잡아봐라”고 했다. 40년이 지난 오늘 마시무스 뷁이라는 외계인이 뜬금없이 삼봉산에 추락해 자기를 잡으라고 한다. 말이 되는가. 나는 수면을 한번 보고, 하늘을 한번 보고, 나의 무반응에 저절로 다가온 뷁을 한없이 구타했다. 좋은 가을날이었다.
* 하나 더!
초리골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에 파주 출신인 율곡 이이를 모신 자운서원이 있다. 서원이라기보다는 아주 큰 공원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숲이 울창하고 터가 넓어 가족 나들이에 딱 알맞다. 율곡과 어머니 신사임당이 다른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잠들어 있다. 서원과 가족묘로 가는 오솔길은 어둑어둑할 정도로 거목들이 우거져 있다. 율곡 부인인 노씨는 선생 사후 시종 둘과 함께 무덤을 지키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목숨을 잃고 선생 묘지 위쪽에 버려졌다고 한다. 전쟁 뒤 그 세 주검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어 함께 아들 묘 위편에 합장했다. 부부 묘소는 맨 위편, 사임당은 아래에서 두번째에 묻혀 있다.
▶ 가는 길(서울 기준)
▲ 파주 지도.(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로 보실 수 있습니다)
1.외부순환도로 일산방면으로 가다가 자유로로 지입, 자유로 문산IC에서 나와 전곡 방향으로 3.5km→오른쪽에 화석정 방향으로 진입, 직진 4km→독서동삼거리에서 법원, 의정부 방면 좌회전, 직진 6km→법원사거리에서 의정부 방면으로 직진 1.3km→왼편에 법원시립도서관 보이고 ‘초릿골’ 커다란 입석 보면서 좌회전.
2.외부순환도로 의정부 방면, 의정부 ic로 나와서 양주시청 사거리에서 문산 법원리 방면으로 오다가 오른편에 법원시립도서관 보이고 ‘초릿골’ 커다란 입석 보면서 우회전.
3.대중교통:서울 불광동 버스터미널에서 법원리행 버스 수시. 법원리에서 택시 혹은 도보로 30분.
▶ 먹을 곳
1.초리연:김신조부대 출현사실을 신고한 우씨네 형제가 운영하는 두부요리식당. 삼봉산 및 장군바위 산행 후 처음 만나는 식당. 우아한 한옥 흙집도 운치 있다. 김치두부전골 2만5000원. 파주 콩으로 만든 두부 요리를 낸다. (031)959-2179
2.승잠원:초릿골에서 처음 마주치는 고급 음식점. 궁중요리 한정식을 낸다. 드라마 ‘식객’ 촬영장소. 정식 코스는 2만원~6만원. 간장게장 정식 1만2000원, 청국장 정식 7000원. (031)958-9522, www.sjwgarden.co.kr
3.초리골 초계탕:더 설명이 필요없는 식당. 궁중요리 주방장 출신 사장이 만드는 평양식 요리다. 조리된 닭고기를 잘게 찢어 식초로 간을 낸 차가운 육수에 담가 먹는 음식. 2인분 2만7000원. (031)958-5250
▶ 묵을 곳, 즐길 곳
1.초호쉼터:초리골 장손 우능제씨가 운영하는 복합형 리조트. 나무꾼 우씨 4형제의 사촌이다. 나무꾼 형제들은 공비들에게 풀려난 후 능제씨 아버지에게 달려와 신고를 했다고. 우능제씨에게 1968년 당시 상황을 물어보면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다.
펜션과 잔디구장, 연못, 카페, 식당이 종합적으로 있다. 펜션은 주중에는 개인 이용 가능. 주말에는 10인 이상 단체만 이용할 수 있다. 단체 1인당 5만5000원을 내면 펜션 및 저녁 야외 바비큐, 술, 음료 무한대 제공. 아침식사도 나온다. 잔디 족구장, 테니스장, 수영장, 카페, 세미나실(비용 별도)도 있다. 펜션은 25평형. 숲 속에 지어져 분위기가 좋다. 주변에 상가가 없으니 담배 및 기타 필수품은 미리 가져가는 센스! 펜션 사용 없이 당일 시설 이용은 1인당 3만5000원. (031)959-0029, www.chohopark.com
2.두루뫼박물관:소설가 강위수씨가 평생 동안 수집한 민속생활용품을 전시하는 공간. 장독대부터 요강까지, 솟대부터 대문까지, 예전에는 쉽게 보였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있는 아쉬운 물건들을 볼 수 있다. 입장료 성인 3000원, 어린이 2000원. www.durumea.org
첫댓글 함백산, 푸른소나무 참석합니다...
영원만 참석합니다
참석합니다.ㅎ
산소리 내외분, 매패선배님 참석합니다
부득이 요번에도 불참힙니다 첫재주라 산행이 없는줄알고 선약을 했는데 대단히 죄송합니다 잘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