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를 마치고 다시 북상을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6,25의 격전지 다부동을 들려서 국가를 위하여 산화하신 선배님들의 명복을 빌어 드릴까?
안동으로가서 문화 유산 이것 저것을 두루 살펴 볼까?
그런생각속에서 왜관을 거쳐 구미에서 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문경의 온천을 들르기로 하고 내륙고속도로를 달리니 이곳은 경부나 호남에 비하여 통행량이 적어서 고속도로 치고는 운전하기에 쾌적하여 좋았다.
문경에 도착하여 방을 잡으려 문경 온천장 앞의 에이스 라는 모텔로 그집 주인이 우리를 잘 보았는지 콤퓨터가 설치된 특실을 주는데 들어가서 4 성급은 됨직한 넓은 방에 퀸 사이즈 침대가 2 개 그리고 응접세트며 별도로 마련된 콤퓨터 실까지 가춘 그야말로 호화 스러운 방을 특별히 우리에게 준단다. 고마웠다.
문경에도 지방 특화 사업으로 한우가 유명하다고 하길레 주인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곳이 KBS 드라마 촬영장 근처, 다시말해서 문경 새재 구길 오르기직전의 초대형 한우 식당에 들려 우선 육회 부터 식혀 놓고 먹어보니 이것은 진짜 좋은 한우임을 알아 보겠다.
육질도 좋고 무쳐오는 내용도 좋앗고 딸려나오는 반찬이며 상추 나물이 아주 상큼했다.
맛갈스러운 된장 찌게에 저녁을 먹고 계산을 하려니 주인이 왈 10 % DC 를 해 준댄다. 멀리서 찾아 왔기에 그렇다고 하는데 몇푼이던 절약이 되는것 누가 싫어 하겠는가?
식당을 나서니 한밤중이라 그들이 안내하는곳으로 가는데 도대체 동서남북을 분간할길이 없고 우리의 목적지는 쉽게 나오지를 않는다.
마침 한잔을 한지라 아내가 운전대를 잡고 가는데 눈앞에 수안보 터널이라는 표지가 보이는데 문경 온천에 짐만 없다면 수안보에 가서 하루를 묵어도 좋으련만 꼭 돌아가야하니 이를어지하랴 싶어 회차 지점을 찾는데 중간 막이가 있어서 터널 앞까지 가니 겨우 차를 회전할수 있는 공간이 나와서 그리로 돌아 남행을 하다보니 이번에는 점촌의 싸인이 보이니 이러다가는 길위에서 밤을 새지 않을까하며 또 돌아서 간신히 찾아온 문경은 의외로 조용하고 작은 도시임을 알수 잇었다.
아주 편안한 밤을 지내고 아침에 온천에 들어가니 그 맑고 깨끗한 물에 각가지 워터 안마 시설이 많아서 그 안마 받느라 시간 가는줄 모르고 한참을 지내니 여기가 낙원이구나 그래서 삶들은 온천장을 좋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경에는 사격장이 있다.
여러번 왔었지만 사격장은 가보질 못했기에 사격장으로 갈려는길에 무슨 자연산 차를 판다는 큰 건물에 들르고 싶다는 아내의 말을 따라 들어가니 각종 차, 도자기, 수예품을 진열하고 천연산 각종차와 중국에서 수입한 보이차들로 가득한데 이집 주인이 전 문경시장을 지낸 사람 이라고 하고 문경 종합 온천장도 이사람 소유라면서 자랑이 대단하다.
그집에서 주는 각종 자연차를 몇잔씩 마시고 보이차도 얻어 먹고 일본의 녹차도 얻어 마시며 육포에 곳감에 잔뜩 주니 먹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들의 입담에 반하여 시간 가는줄 모르고 놀다가 아예 사격장을 가는 일은 접기로 하고 4시가지나 문경성당에 들러 조배를 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문경 초등학교 교사시절 하숙 했다는 학교 옆의 청운의 집을 방문하여 그분 영정 앞에 묵례를 올리고 떠나니 이제 우리의 목표는 이천에 사는 강승균 군을 만나는 것으로 오늘의 일과를 접기로 하고 전화로 지금 문경에서 출발 한다고 고 하였다.
지루하게 충주로해서 장호원을 거치는데 서울이 가까워지니 길에 자동차가 메인다.
6시 반쯤에 이천에 도착하여 친구와 더불어 간곳은 횟집.
반도체 회사며 맥주 회사등 굵직한 회사가 있어서 이천의 음식 값은 서울과 다를바 없는데 그많금 장사도 잘되는 지방 도시 란다.
옛날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주먹들의 고향이기도 했으며 이천쌀, 온천등으로 유명한 이곳은 시로 승격하기 전에도 벤즈 자동차가 수십대나 있는 대한민국의 제일 부자 읍이 었었다.
맛있는 저녁이며 재미난 이야기며 지진때에 일본에 있엇던 이야기등등 긴 시간을 이야기하고 헤어지니 이제는 아내가 밤 운전 하기 싫다고 하기에 그곳에서 숙소를 정하고 하루를 더 묵기로 하였다.
(설봉공원의 조형물로 수천개의 세라믹 풍경이 달려 있다)
다음날 이천에서 제일 유명한 놀이터인 설봉 공원에 들럿다.
벌서 주차장이고 그늘이고 사람이 있을만한곳에는 모두 만원이다.
도자기 체험관도 문을 닫았고 무슨무슨 여러곳이 수리중 아니면 잠겨 있는 그런 날이었다.
어느 문화공원 앞에서 사진 몇장을 건진것 외에는 달리 갈곳도 없고하여 서울로 머리를 돌렸다.
집에 오니 늦은 점심 시간이지만 집에서 먹는 음식의 맛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다.
이렇게 충청 전라 경상 경기로 돌아서 온 날수는 오늘로 아흐레째 인데 집을 떠난지 몇달이나 된듯이 궁금하고 그리웠다.
지방마다 특화 사업으로 음식, 시설,도로,등등 많은 노력을하고 발전 시키는 모습을 보며 엣날 박정희 대통령때 근면, 자조, 협동, 등등의 구호가 생각이 나고 그 선각자들의 눈부신 유산이 오늘날 이렇게 서로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양태로 발전했구나 하며 역사란 참으로 배우고 전승할 가치가 있는것이구나 생각을 하였다.
팔도를 여행하면서 그때마다 느끼는것을 한마디 첨언 하자면 각 지역마다 특이한 사람들의 인성이 있고 언어가 있고 음식이 있고 전통이 달르다지만 나그네가 길을 물으면 그 태도가
눈에 보이게 다른데 경기도나 서울사람들은 모른다는것이 대답의 전부 이고 충청도 삶들은 시간을 끌면서 아주 불 분명하게 대충 일러주는 반면 전라도 사람들은 정말로 친절하게 나와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 주는데 이것 내 나름대로 수 십년간 한국을몇바퀴 돈 나도 과문 일까를 생각하며 의심한다.
좁은 이 땅에 어찌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공존 한단 말인가?
이렇게 나의 봄 나들이는 끝이 났다. 좋은 계절에 또 다른곳으로 달리고 싶다.
달려라 3000 리의 나의 애마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옆에서 도와준 아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읽어준분들께도 감사,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