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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러운 안정효 씨의 번역: 『권력』 번역 비판
이덕하
2011-01-31
『권력』, 버트런드 러셀 지음, 안정효 옮김, 열린책들, 2007년, 신판 3쇄
『Power: A New Social Analysis』, Bertrand Russell, Routledge, 2007(초판: 1938)
안정효 씨만큼 한국에서 명성이 높은 번역가도 있을까? 번역의 양도 엄청나서 무려 150권 정도를 번역했다고 한다.
나에게는 『번역의 공격과 수비』라는 책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깔아뭉개는 듯한 말투가 마음에 안 든다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아는 한 이 책은 제일 좋은 영한 번역 입문서다. 내용이 알찰 뿐 아니라 엄밀한 번역에 대한 강조도 마음에 들었다. 내용이 알차다면 거슬리는 말투 정도야 참고 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번역의 공격과 수비』와 『영어 길들이기 - 번역편』에서 받은 인상과 대단한 명성 때문에 나는 버트런드 러셀의 『권력』을 원서와 함께 샀다. 제일 큰 이유는 안정효 씨에게 번역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문학 번역보다는 학술 번역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한 동안 이 책은 책장에서 쉬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전부터 하고 싶었던 <이덕하가 추천하는 양호한 번역서> 시리즈(?)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로 마음을 먹고 「이덕하가 추천하는 양호한 번역서: 머리말」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제일 처음으로 어떤 책의 번역을 검토할지 약간은 망설였지만 양호한 번역일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이는 안정효 씨의 번역서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권력』의 번역은 아주 실망스러웠다. 영어판으로 21쪽의 번역(15장 <권력과 도덕률>)을 검토했는데 내가 여기에서 오역으로 분류한 것이 29개나 나왔다. 오역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엄밀하지 못한 번역도 꽤 많았다. 나는 안정효 씨의 위치를 생각해서 다른 번역서보다 훨씬 더 상세하게 번역을 비판하기로 했다. 그래서 <엄밀하지 못한 번역>이라고 묶은 것들까지 포함시킨 것이다.
오자로 보이는 것과 같이 무성의 때문에 생긴 오역도 많았지만 안정효 씨의 원문 이해 능력이 의심스러운 곳도 꽤 있었다. 150권이라는 엄청난 작업량의 배후에 무성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씁쓸하다. 오역이 무성의 때문이든 무능력 때문이든 내가 알 바도 아니고 내가 알아내기도 힘들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에서 내가 검토한 부분에는 오역(물론 나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오역된 구절)이 많다.
문단 나누기를 그대로 보존하려는 노력(하지만 두 군데 실수를 했다), 문장을 함부로 자르지 않으려는 노력, 한 단어도 함부로 빼 먹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몇 군데 실수를 했지만) 등이 눈에 띈다. 그리고 소위 번역투의 어색한 문장도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오역이 이렇게 많다면 그 모든 장점이 크게 빛나기는 힘들다.
이 번역서만 봐서는 왜 안정효 씨의 명성이 그렇게 높은지 이해가 안 된다. 이 책만 오역이 많고 다른 책에는 오역이 거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내가 오역으로 분류한 것들이 별로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대단한 명성이 거품에 불과한 것일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나중에 안정효 씨의 번역서를 한 두 권 정도 더 검토해 볼 생각이다.
Russell(186쪽): The kind which is analogous to law is called ‘positive’ morality; the other kind may be called ‘personal’.
안정효(213쪽): 법에 유사한 종류는 <실천적인> 도덕이라고 일컫고, 다른 종류는 <개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l 여기서 “positive morality”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도덕을 말하고 “personal morality”는 개인이 생각하는 도덕을 말한다. 노예제가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노예제에 반대한다고 하자. 이 때 법과 positive morality에 따르면 노예제가 옳고, 그 사람의 personal morality에 따르면 노예제는 그르다. 여기서 “positive”를 번역하기가 까다로워 보인다. 나라면 “실재하는”으로 번역하겠다. 어쨌든 “실천적인”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personal morality도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천적인 도덕인 것은 마찬가지다.
l 원문에서 “called”를 반복하고 있다. 따라서 번역할 때에도 “일컫다”를 반복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Russell(187쪽): The community therefore had an interest in the matter, which they could deal with either by punishment or by ceremonies of purification.
안정효(214쪽): 따라서 집단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으며 재계 의식이나 천벌로 그것을 처리할 수가 있었다.
l “punishment”는 “천벌”이 아니라 “처벌”이다. 부족 사회에서 개인을 처벌하는 것이기 때문에 천벌은 어울리지 않는다. 단순한 오자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어판만 보는 입장에서는 오자라고 짐작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l “community”는 “집단 사회”보다는 “공동체”로 번역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Russell(188쪽): And so we find the Ten Commandments suggesting that if you fail to honour your father and mother you will die young, the Romans considering patricide the most atrocious of crimes, and Confucius making filial piety the very basis of morality.
안정효(215쪽): 그래서 십계명에서는 부모를 잘 공경하지 않았다가는 젊어서 죽으리라는 암시가 나오고, 로마 인들은 친족 살해가 가장 극악한 범죄라고 생각했으며 공자는 효도를 도덕의 기본으로 삼았다.
l “patricide”는 “친족 살해”가 아니라 “부친 살해” 또는 “아버지 살해”다. 여기에서는 부모 공경의 규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 살해가 아닌 아버지 살해를 가장 극악한 범죄라고 본 점은 로마 인들의 성 차별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Russell(188쪽): The authority of parents has of course been reinforced by their possession of property, but if filial piety had not existed young men would not have allowed their fathers to retain control of their flocks and herds after they had become feeble.
안정효(215쪽): 부모의 권위는 물론 재산의 소유로 강화되었지만, 만일 효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젊은이들은 아버지가 기운이 없어진 다음에도 가축과 가족의 통제력을 계속 간직하도록 용납하지 않았으리라.
l “flocks and herds”는 “가축과 가족”이 아니다. 왜 “가족”이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l “통제력을 계속 간직하도록”은 “계속 통제하도록”으로 바꾸는 것이 나아 보인다.
Russell(188쪽): The superior strength of male animals does not, in most cases, lead to a continual subjection of the females, because the males have not a sufficient constancy of purpose.
안정효(215쪽): 수컷들은 계속되는 목적 의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암컷의 계속되는 복종은 대부분의 경우에 수컷 동물들의 우월한 힘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l 수컷의 우월한 힘이 거의 모든 경우에는 암컷의 지속적인 예속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번역문을 보면, 암컷이 대부분의 경우에 계속되는 복종 상태에 빠져 있지만 힘과는 다른 이유 때문이다. 반면 원문에서는 암컷이 보통 지속적인 예속 상태에 빠지지 않음을 암시한다.
l “purpose”를 굳이 “의식”을 추가하여 “목적 의식”으로 번역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동물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추가가 부적절해 보인다.
Russell(190쪽): The world ‘treason’, even in republics, has still a flavour of impiety.
안정효(217쪽): <반역>이라는 말은 공화국에서조차 아직 불결한 면모를 보인다.
l “impiety”를 “불결한”으로 번역했다. 다른 곳에서 “불경”으로 제대로 번역한 것으로 보아 단순한 오자로 보인다. 어쨌든 번역문만 보는 독자는 이것이 오자라고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단순한 오자든 아니든 오역은 오역일 뿐이다.
Russell(191쪽): Monarchy makes social cohesion easy, first, because it is not so difficult to feel loyalty to an individual as to an abstraction, and secondly, because kingship, in its long history, has accumulated sentiments of veneration which no new institution can inspire.
안정효(218쪽): 군주제는, 첫째,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서나 마찬가지로 어느 개인에 대해서 충성심을 느끼기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둘째, 오랜 역사를 통해서 왕권은 어떤 새로운 제도도 불러일으킬 수 없는 숭배의 감정을 축적시켰기 때문에 사회적인 결속이 쉽게 이루어진다.
l 추상적인 개념에 비해 구체적인 개인에 대한 충성심을 느끼기가 더 쉽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라고 번역했다.
Russell(191쪽): It is amusing to note, in the confessions of the accused in Russian trials, the acceptance of a morality of submission to the ruler such as would be appropriate in the most ancient and traditional of absolute monarchies.
안정효(218쪽): 러시아의 재판에서 피고들이 한 고백 가운데 지극히 오해되고 전통적인 절대 군주제에 어울릴 정도로 통치자에 순종한다는 도덕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면 재미 있게 느껴진다.
l “anceint”를 “오해되고”라고 번역했는데 “오래되고”의 오자인 듯하다. 벌써 단순한 오자로 보이는 오역이 몇 번째인가? 너무 성의가 없다.
l 재판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confessions”는 “고백”보다는 “자백” 또는 “진술서”가 더 어울린다.
l “재미 있게 느껴진다”는 그냥 “재미 있다”라고 쓰는 것이 나아 보인다.
Russell(192쪽): In the case of the Church, the relation between power and morals is, to some extent, the opposite of what it is in the cases we have hitherto considered.
안정효(220쪽): 교회의 경우에는 권력과 교회의 관계가 지금까지 우리들이 살펴본 경우들과는 어느 정도 상반된다.
l “power and moral”을 “권력과 교회”로 번역했다. 이번에도 단순한 실수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실수를 많이 하는 것은 성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Russell(193쪽): It must not be supposed that personal morality is in general worse that official priestly morality, even when it is less severe.
안정효(220쪽): 아무리 덜 엄격하다 해도 공식적인 성직자의 도덕보다 인간적인 도덕이 일반적으로 보다 나쁘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l “personal morality”를 “인간적인 도덕”이라고 번역했는데 “개인적인 도덕”이 옳다. 위에 인용된 213쪽(한국어판)의 문장에서는 “개인적인”이라고 제대로 번역했다. 역시 이번에도 무성의가 문제였다.
Russell(193쪽): Morality, where the Church has lost power, has not become genuinely personal except for a few exceptional people.
안정효(220쪽): 교회가 권력을 상실한 곳에서는 몇몇 예외적인 사람들에 대한 것 이외에는 도덕이 순수하게 인간적이 되지를 못했다.
l “몇몇 예외적인 사람들에 대한 것 이외에는”이 아니라 “몇몇 예외적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라는 뜻이다.
l 위에서 지적했듯이 “personal”은 “인간적”이 아니라 “개인적”이다.
Russell(194쪽): From the exogamous rules of savages onward, there are, at all stages of civilization, ethical principles which have no visible relation to power – among ourselves; the condemnation of homosexuality may serve as an example.
안정효(221쪽): 야만인들의 이족(異族) 통치 이래 문명의 모든 단계에는 권력과 아무런 현저한 관계가 없는 윤리적인 원칙들이 존재하는데 – 우리들의 시대에도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자세가 한 가지 본보기 노릇을 한다.
l “exogamous rules”는 “이족 통치”가 아니라 “족외혹 규칙”이다.
Russell(194쪽): The Society of Friends, practically if not theoretically, excluded bankrupts until very recently.
안정효(221쪽): 퀘이커 교도들은 파산을 제외하는데,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그랬다.
l “bankrupts”는 “파산”이 아니라 “파산자들”이다. “퀘이커 교도들은 파산을 제외하는데”은 도통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구절이다.
l “practically if not theoretically”를 빼 먹었다.
l 나 같으면 “The Society of Friends”를 “그리스도 우인회”로 번역하고 퀘이커 교도를 뜻한다고 각주에서 밝힐 것이다.
Russell(194쪽): The moral code towards enemies is a matter as to which different ages have differed greatly, largely because the profitable uses of power have differed.
안정효(222쪽): 적들에 대한 도덕률은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문제였는데, 그 중요한 이유는 이들을 위한 권력의 이용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l “profitable”을 “이들을 위한”으로 번역했는데 “이득을 위한”의 오자인 듯하다.
Russell(194쪽): When the Lord thy God shall bring thee into the land whither thou goest to possess it, and hath cast out many nations before thee, the Hittites, and the Girgashites, and the Amorites, and the Canaanites, and the Perizzites, and the Hivites and the Jebusites, seven nations greater and mightier that thou;
안정효(222쪽):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이제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려는 땅에 너희를 이끌어들이시고 인구가 많은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모조리 쫓아내실 것이다. 그들은 너희보다 인구가 많고 강대한 헷 족, 기르가스 족, 아모리 족, 가나안 족, 브리즈 족, 히위 족, 여부스 족, 이렇게 일곱 민족이다.
l 원문에는 “인구가 많은”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 “many”를 그런 식으로 번역한 것일까? “many nations”는 “여러 민족들”이라는 뜻이다.
l “greater”를 “인구가 많고”로 번역했는데 “더 크고” 또는 “더 위대하고”가 더 적절해 보인다.
Russell(195쪽): And he took Agag the king of the Amalekites alive and utterly destroyed all the people with the edge of the sword.
안정효(223쪽): 그는 아말렉과 아각만 사로잡고 나머지 군대는 모조리 칼로 쳐죽였다.
l “Agag the king of the Amalekites”은 “아말렉과 아각”이 아니라 “아말렉의 왕 아각”이다.
Russell(198쪽): Sometimes the origin of the abhorrence is unknown, sometimes it can be traced to a historical personage who was a mortal innovator.
안정효(226쪽): 때때로 혐오의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고 때로는 도덕적인 혁신가였던 역사적인 인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l “mortal”을 “moral”로 잘못 보고 “도덕적인”으로 번역한 것 같다. “mortal”은 “immortal(불사의, 불멸의, 죽지 않는)”의 반대말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뜻한다.
Russell(199쪽): The minimum that must be accepted by any thoughtful person who either adheres to a religion having a historical origin, or thinks that some such religion was an improvement on what went before, is this: that a way of life which was in some sense better than some previous way of life was first advocated by some individual or set of individuals, in opposition to the teaching of State and Church in their day.
안정효(227쪽): 역사적인 기원을 가진 종교에 집착하거나 전에 있었던 것보다는 그런 어떤 종교가 더 좋다고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사람이 최소한으로 꼭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은 이것이다 – 과거의 어떤 생활 방식보다 어느 의미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한 생활 방식을 당신의 국가와 교회가 가르치는 바에 반대하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먼저 주창하고 나선다.
l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사람이”가 아니라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라는 뜻이다.
l “in their day”를 “당신의”라고 번역했는데 “당시의”의 오자인 듯하다.
Russell(199쪽): In science, every one now admits the corresponding doctrine; but in science the ways of testing a new doctrine are known, and it soon comes to be generally accepted, or else rejected on other grounds than tradition. In ethics, no such obvious ways exist by which a new doctrine cane be tested.
안정효(227쪽): 과학에서는 이제 모든 사람이 유사한 사상을 받아들이는데, 과학에서는 새로운 이론을 실천하는 방법들이 알려져 있고, 그 이론은 전통이 아닌 다른 근거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아니면 폐기하게 된다. 윤리학에서는 새로운 이론을 실험할 수 있는 아무런 뚜렷한 방법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l “test”를 첫 번째 문장에서는 “실천”으로 두 번째 문장에서는 “실험”으로 번역했다. “실천”은 명백한 오역이다. 둘 모두 “검증”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Russell(201쪽): I am not quite sure how far this argument is honest: I think I should refuse to use such means even if I were persuaded that they would secure the end and that no others would.
안정효(229쪽): 나는 그런 주장이 어느 만큼이나 정직한 것인지를 별로 확신할 수가 없으며, 아무리 다른 방법이 없고 오직 그 수단만이 목적을 달성하는 길이라고 누가 설득을 하더라도 나는 그런 수단의 사용을 거절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l “even if I were persuaded”를 “누가 설득을 하더라도”라고 번역했는데 “설사 내가 설득되더라도”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원문에는 설득 당했다는 뜻이 들어 있는데 안정효 씨의 번역에는 남이 설득을 시도했다는 뜻만 들어 있다.
Russell(201쪽): On the whole, I think that, speaking philosophically, all acts ought to be judged by their effects; but as this is difficult and uncertain and takes time, it is desirable, in practice, that some kinds of acts should be condemned and others praised without waiting to investigate consequences.
안정효(229쪽): 전체적인 면에서 철학적으로 얘기하자면 모든 행위는 그 결과에 의거하여 판단해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어렵고 불확실하고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결과를 기다렸다가 따져 보지 않고도 어떤 종류의 행동을 비난을 받고 또 어떤 행동은 칭찬을 듣는다는 것이 바람직하다.
l “결과를 기다렸다가”는 잘못된 번역이다. 결과가 어떨지를 미리 예측해 본다는 뜻이다.
Russell(201쪽): I should say, therefore, with the utilitarians, that the right act, in any given circumstances, is that which, on the data, will probably produce the greatest balance of good over evil of all the acts that are possible; but that the performance of such acts may be promoted by the existence of a moral code.
안정효(229쪽): 따라서 나는 공리주의자들의 주장에 찬성하여 어떤 주어진 여건에서 올바른 행동이란 가능한 모든 행위의 악을 능가하는 선의 최대 균형을 이룩할지도 모른다고 자료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해야 되겠지만, 그런 행위들의 실행은 도덕률의 존재에 의해서 추진될 수도 있다.
l “가능한 모든 행위의”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가능한 모든 행위들 중에서 전체적으로 선이 악을 가장 많이 압도할 것 같은 행위가 옳은 행위라는 뜻이다.
Russell(202쪽): Accepting this view, ethics is reduced to defining ‘good’ and ‘bad’, not as means, but as ends in themselves.
안정효(229쪽): 이 관점을 받아들이자면 윤리학이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목적인 <선>과 <악>을 정의하는 것으로 줄어든다.
l 여기서 “is reduced”은 “줄어든다”가 아니라 “환원된다”이다.
Russell(202쪽): One man says ‘the good is pleasure’; another, ‘the good is pleasure for Aryans and pain for Jews’; another, ‘the good is to praise God and glorify Him forever’.
안정효(229쪽): 어떤 사람은 <선은 쾌락이다>하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선은 아리안 족에게는 기쁨이요 유대 인들에게는 고통이다>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선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영원히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l “선은 아리안 족에게는 기쁨이요 유대 인들에게는 고통이다”는 잘못된 번역이다. 어떤 사람은 “쾌락이 곧 선”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아리안 족에게 쾌락을 주고 유대 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곧 선”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에게 영원히 영광을 돌리는 것이 곧 선”이라고 말한다는 뜻이다.
Russell(202쪽): The bearer can gather that I feel this wish but that is the only fact that he can gather, and that is a fact of psychology.
안정효(230쪽): 말을 듣는 사람은 내가 이 소망을 느끼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지만, 그가 추단할 수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사실>이며 그것도 심리의 사실일 따름이다.
l “bearer”는 “hearer”의 오자임이 분명하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다른 판에서는 “hearer”라고 표기되어 있다.
l “그가 추단할 수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사실>이며”는 오역이다. “그것이 그가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며”라는 뜻이다.
Russell(202쪽): The great ethical innovators have not been men who knew more than others; they have been men who desired more, or, to be more accurate, men whose desires were more impersonal and of larger scope than those of average men.
안정효(230쪽): 위대한 윤리의 혁신가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졌던 사람들이 아니고, 더 많은 <소망>을 느꼈던 사람들, 그러니까 보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소망이 비개인적이고 보다 관찰력이 넓은 사람들이었다.
l “of larger scope”은 “관찰력이 넓은”이라는 뜻이 아니다. 가족이나 민족을 넘어서 인류 전체를 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l 원문에서 “knew”가 강조되었는데 번역문에서는 강조를 빼 먹었다.
l “desire”는 “소망”보다는 “욕망”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Russell(203쪽): Where there is limitation of sympathy there is a corresponding limitation in the conception of the good: the good becomes something to be enjoyed only by the magnanimous man, or only by the superman, or the Aryan, or the proletarian, or the Christadelphian.
안정효(231쪽): 공감의 한계가 있는 곳에는 선의 개념에 대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제한이 있어서, 선은 너그러운 사람이나, 초인이나, 아리안 족이나, 프롤레타리아나, 기독교 박애주의자만 누리는 무엇이 된다.
l “Christadelphian”는 “기독교 박애주의자”가 아니라 “크리스타델피안파” 또는 “그리스도 형제단”을 말한다.
Russell(204쪽): At an auto-da-fé, the mob had to be prevented by the police from attacking the victims, and was furious if one whom it had hoped to see burnt alive succeeded, by a tardy recantation, in winning the privilege of being strangled first and burnt afterwards.
안정효(233쪽): 종교 재판에 따른 이단의 화형식에서는 희생자들을 폭도가 공격하지 못하도록 경찰이 막아야 했으며, 만일 산 채로 타죽는 광경을 보고 싶어 했는데 뒤늦게 철회되어 희생자가 먼저 목이 졸려 죽고 나중에 불에 태운다는 특혜를 받는 데 성공한다면 군중은 분노하였다.
l “by a tardy recantation”를 “뒤늦게 철회되어”라고 번역했는데 산채로 화형에 처하는 것을 철회했다는 뜻이 아니라 화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이단과 관련된 진술을 철회했다는 뜻이다.
Russell(206쪽): Rebellion is of two sorts: it may be purely personal, or it may be inspired by desire for a different kind of community from that in which the rebel finds himself.
안정효(234쪽): 반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서, 그것은 순수히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반란자가 자신의 소재를 발견하게 되는 어떤 다른 종류의 사회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일 수도 있다.
l “자신의 소재를 발견하게 되는 어떤 다른 종류의 사회에 대한”은 잘못된 번역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와는 다른 종류의 공동체에 대한 욕망을 뜻한다.
Russell(186쪽): This part of positive morality appears to have no relation to social inequalities; it neither confers exceptional power nor assumes its existence.
안정효(214쪽): 실천적인 도덕의 이 부분은 사회적인 불평등과 어떤 관계도 없는 것 같으며, 그것은 예외적인 권력을 부여하지도 않고 그 권력의 존재를 당연시하지도 않는다.
l “assumes”는 “당연시하지도”보다는 “전제하지도”가 더 어울린다.
Russell(187쪽): The Greek Church prohibits the marriage of godparents of the same child, a prohibition which fulfils no social purpose, either good or bad, but has its source solely in theology.
안정효(214쪽): 그리스 교회는 같은 아이의 대부와 대모가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는데, 이 금지 사항은 좋든 나쁘든 간에 아무런 사회적인 목적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단순히 신학에서 비롯되는 규정일 따름이다.
l “Greek Church”는 “Greek Orthodox Church”를 뜻한다. 나라면 “Greek Church”도 “그리스 정교회”라고 번역하겠다.
l “fulfils”는 “충족시키지”보다는 “이루지”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l “solely”는 “단순히”보다는 “순전히”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Russell(187쪽): Murder was objectionable because of the hostility of the ghost, which was not directed only against the murderer, but against his community.
안정효(214쪽): 살인은 유령이 살인자뿐 아니라 그가 사는 사회에 대해서도 원한을 품게 만들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여겨졌다.
l “community”를 “사회”라고 번역했는데 “공동체”로 번역하고 싶다. 가능하면 번역할 때 society(사회)와 community(공동체)를 구분하는 것이 좋다.
l 원문에 “grudge”가 아닌 “hostility”라고 되어 있는데 굳이 “적개심”이 아닌 “원한”으로 번역할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Russell(187쪽): It is (or rather was) the duty of children to submit to parents, wives to husbands, servants to masters, subjects to princes, and (in religious matters) laymen to priests; and there were also more specialised duties of obedience in armies and religious orders.
안정효(214쪽): 아이들이 부모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하인이 주인에게, 신하가 군주에게, 그리고 (종교적인 일에 있어서는) 신자가 성직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현재는 좀 다르더라도 과거에는) 의무였으며, 군대와 종파에는 또한 보다 전문화한 복종의 의무들이 있었다.
l 영한 사전을 찾아 보니 “religious order”는 “수도회”를 뜻한다고 나와 있다(그랜드 영한 사전). “종파”로 번역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l “specialised”는 “전문화한”보다는 “특수한”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Russell(188쪽): Probably there was at the moment some emaciated but unusually wise elder, whose advice was felt to be more valuable than his flesh.
안정효(215쪽): 아마도 그 무렵에 그의 충고가 그의 살보다 훨씬 가치가 많다고 여겨지는 어떤 앙상하게 야위고 놀랄 만큼 현명한 마을 원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l “어떤 앙상하게 야위고”보다는 “쇠약하지만”이 더 나은 것 같다. 여기서는 살이 빠졌다는 뜻보다는 늙어서 쇠약하다는 뜻이 더 강하다. 그리고 원문의 “but”의 의미도 살려 주어야 한다.
Russell(190쪽): This is a decaying sentiment, but as it decays government becomes less stable, and dictatorships of the Right or the Left become more possible.
안정효(217쪽): 이것은 사라져가는 감정이지만, 그 감정이 사라짐에 따라 국가는 덜 안정되고, 좌익이나 우익의 독재 가능성이 훨씬 증가한다.
l 원문에는 “훨씬”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으며 굳이 그 단어를 추가해야 할 이유도 모르겠다.
Russell(190쪽): The use of the Queen, in a dignified capacity, is incalculable.
안정효(217쪽): 고귀한 신분으로서의 여왕은 효율성이 무한하다.
l 여기서 “use”의 번역어로는 “효율성”보다는 “효용”이 더 나아 보인다.
Russell(193쪽): The Church being the official guardian of the moral code, its opponents are likely to revolt in morals as well as in doctrine and government.
안정효(220쪽): 교회가 도덕률의 공식적인 수호자이기 때문에 교회의 적은 이념과 통치뿐 아니라 도덕관에 있어서도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l 교회 이야기이기 때문에 “doctrine”은 “이념”보다는 “교리”로 번역하는 것이 낫다.
Russell(193쪽): This is not anarchy; it is democracy.
안정효(221쪽): 이것은 무정부 상태가 아니라 민주주의이다.
l 원문에서는 이 문장 다음에 문단 나누기가 되어 있는데 번역할 때에는 그것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안정효 씨 자신이 문단 나누기도 제대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ussell(194쪽): The Marxist thesis, that the moral code is an expression of economic power, is even less adequate than the thesis that it is an expression of power in general.
안정효(221쪽): 도덕률이 <경제적인> 세력의 한 가지 표현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명제는 그것이 일반적인 권력의 표현이라는 명제만큼도 충분하지 못하다.
l 원문에서는 “power”가 반복되고 있는데 “세력”과 “권력”으로 다르게 번역했다. 여기에서는 다르게 번역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경제> 권력”과 “권력 일반”으로 번역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Russell(194쪽): Creditor’s morality became the fashion, and non-payment of debts a heinous sin.
안정효(221쪽): 채권자의 도덕이 지배하게 되자 빚을 갚지 않는 것은 악질적인 죄악이 되었다.
l “fashion”을 “지배”로 번역했는데 원문의 의미 그대로 “유행”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저자가 비꼬기 위해 “유행(fashion)”이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했다는 느낌이 든다.
Russell(195쪽): As regards these seven nations, we are told in a later chapter even more explicitly.
안정효(222쪽): 그리고 그 일곱 민족에 대한 얘기가 나중에 보다 자세하게 나온다.
l “explicit”는 “자세하게”보다는 “명시적으로” 또는 “숨김없이”가 더 적절해 보인다.
l “chapter”도 살려서 번역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Russell(196쪽): [원문에는 인용되지 않은 문장임]
안정효(223쪽): 사무엘은 애가 타서 밤새도록 아훼께 부르짖었다.
l 원문에 인용되지 않은 성경 구절까지 인용했다. 단순한 실수로 보인다.
Russell(196쪽): It is obvious in these passages that the interests of the children of Israel were to prevail completely when they came into conflict with those of the Gentiles, but that internally the interests of religion, i.e. of the priests, were to prevail over the economic interests of the laity.
안정효(223쪽): 이 구절들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의 이해관계가 이교도들의 관심사와 상충할 때는 철저히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우세해야 하지만 내적으로 성직자들, 즉 종교의 관심사가 속세인들의 경제적인 관심사보다 우선했음이 확실하다.
l “interest”를 처음에는 “이해관계”로 번역했다 그 다음에는 “관심사”로 번역하고 있다. 의미가 같은 단어를 왜 바꿔서 번역하는지 모르겠다.
Russell(196쪽): To which Saul could only reply by confessing his sin.
안정효(223쪽): 그 말을 듣고 사울은 죄를 고백함으로써 응답할 수밖에 없었다.
l 이 다음에 문단 나누기가 되어 있는데 그것을 반영하지 않았다.
Russell(196쪽): Clemency was recognised as a virtue in antiquity, but only when it was successful, that is to say, when it turned enemies into friends; otherwise, it was condemned as a weakness.
안정효(224쪽): 고대에서는 자비가 미덕으로 인정되었지만, 그것은 성공적이었을 때, 그러니까 적을 친구로 만들어 놓았을 때의 얘기였고, 그렇지 못할 때는 약점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l “약점”보다는 “나약함”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Russell(197쪽): In our day, almost equal ferocity has been shown towards the victims of the white terrors in Finland, Hungary, Germany, and Spain, and hardly any protests have been aroused except among political opponents. The terror in Russia, likewise, has been condoned by most of the Left.
안정효(224쪽): 오늘날에는 핀란드와 헝가리와 독일과 스페인에서는 초보수주의자들이 폭력의 희생자들에 대해서 거의 같은 잔인성을 보여 주었으며, 정치적인 반대자들 이외에는 거의 아무런 항의의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도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좌익으로부터 묵인되었다.
l “white terrors”를 “초보수주의자들의 폭력”이라고 번역하고 “terror”를 “폭력 사태”로 번역했다. 그냥 “백색 테러”, “테러”로 번역해야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terror또는 terrorism은 나름대로 복잡한 역사가 있는 용어다.
Russell(198쪽): As a rule, these acts are held in abhorrence not only by one individual, but by a whole tribe or nation or sect or class.
안정효(225쪽): 그런 행위들은 한 사람의 개인뿐 아니라 전체 부족이나 민족이나 종파나 계층이 혐오의 대상으로 삼았다.
l “As a rule”을 빼 먹었다.
Russell(199쪽): The Hebrew prophets, at their best, transcend the Law, and advocate a new and more inward kind of virtue, recommended not by tradition, but by the words ‘thus saith the Lord’.
안정효(226쪽): 가장 훌륭한 헤브라이 선지자들은 법을 초월하고서는 전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라는 말로 추천하는 새롭고 보다 내적인 종류의 미덕을 내세웠다.
l “가장 훌륭한 헤브라이 선지자들은”이 아니라 “헤브라이 선지자들은 그들이 가장 나았을 때”라는 뜻이다.
Russell(199쪽): Socrates acts as his daemon commands, not as the legally constituted authorities desire; he is prepared to suffer martyrdom rather than be untrue to the inner voice.
안정효(226쪽): 소크라테스는 법에 의해서 수립된 권리자들이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그의 영혼이 내리는 명령에 따라 행동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진실하지 못하기보다는 차라리 순교를 당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l “authorities”를 “권리자들”이라고 번역했는데 “권위”가 더 나아 보인다.
l 소크라테스의 “daemon”을 “영혼”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라면 그냥 “다이몬”이라고 표기할 것 같다.
Russell(199쪽): All these men were rebels in their day, and all have come to be honoured.
안정효(226쪽): 이 모든 사람들이 당대에는 반항자들이었으나, 나중에 존경을 받았다.
l “rebel”은 “반항자”보다는 “반역자” 또는 “반란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냥 반항하는 사람이 아니라 뭔가 대의를 위해서 들고 있어선 사람이다.
Russell(199쪽): Something of what was new in them has come to be taken as a matter of course.
안정효(226쪽): 그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새로운 무엇이 올바르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l “올바르게”보다는 “당연하게”가 더 나은 것 같다.
Russell(199쪽): But it is not altogether easy to say what this something is.
안정효(226쪽): 그러나 그 무엇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를 얘기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l “아니었다”라고 번역했는데 원문은 현재형이다. 그리고 과거형으로 번역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Russell(199쪽): A prophet may preface his teaching ‘thus saith the Lord’, which is sufficient for him; but how are other people to know that he has had a genuine revelation?
안정효(227쪽): 선지자는 <하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였다>라는 서두와 더불어 가르침을 전하면 충분하겠지만, 그가 진실로 계시를 받았는지 어쩐지를 과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l “for him(자신에게는)”을 빼 먹었다.
Russell(200쪽): For most men, authority has sufficed: what is laid down as right or wrong by the Bible or the Church is right or wrong.
안정효(227쪽): 그 까닭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충분한 권위가 마련되어 있었으니, 성경이나 교회에서 옳다거나 잘못이라고 결정하면 그것이 곧 옳거나 잘못이었기 때문이다.
l “충분한 권위가 마련되어 있었으니”가 아니라 “권위라면 충분했으니”라는 뜻이다.
Russell(200쪽): The matter is, however, rather more difficult than it appeared to them.
안정효(228쪽): 그러나 피상적으로 보는 것보다는 문제가 상당히 더 어렵다.
l “to them”을 빼 먹었다. 여기에서 them은 공리주의자들을 뜻한다.
Russell(202쪽): They cannot, as men of science do, appeal to facts: no facts are relevant to the dispute.
안정효(230쪽): 그들의 주장을 사실들이 실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과학인들처럼 사실에 호소하지를 않는다.
l “no facts are relevant to the dispute”는 그냥 “어떤 사실도 그런 논란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로 번역해도 충분하다. 그리고 도덕 철학에 대한 논쟁에서 “실증”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l 원문에는 “cannot”이 있는데 빼 먹었다.
Russell(202쪽): The first part of this statement is indubitably ethical, but his pleasure in being a monarch only becomes ethical if a survey persuades him that no one else would make such a good king.
안정효(230쪽): 이 진술의 처음 부분은 의심할 나위가 없이 윤리적인 내용이지만, 군주 노릇을 한다는 그의 기쁨은 다른 어떤 누구도 그런 좋은 왕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때 윤리적이 된다.
l 원문에는 “persuades him”이라고 되어 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가 아니라 왕 자신이 설득될 때를 말한다.
Russell(204쪽): The contest is, in short, an ordinary contest for power.
안정효(232쪽): 간단히 얘기하자면 경쟁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일반적인 경쟁이다.
l “The contest”를 그냥 “경쟁”이라고 번역했는데 “그 경쟁” 또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윤리를 둘러싼 경쟁”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Russell(205쪽): They may be succeeded, as in the Renaissance, by an absence of moral restraint, or, as in the Reformation, by a new code in many ways more strict than those that have become obsolete.
안정효(233쪽): 그것은 르네상스 시대처럼 도덕적인 규제의 부재라던가, 종교 개혁 시대처럼 없어져 버린 것보다 여러 면에서 훨씬 엄격한 새로운 율법에 의해서 계승된다.
l 원문의 “may”를 빼 먹고 번역했다.
Russell(206쪽): Those who suffer by some part of the social system which the prophet or sage wishes to alter have personal reasons for supporting his opinion; it is the union of their self-seeking with his impersonal ethic that makes the resulting revolutionary movement irresistible.
안정효(233쪽): 선지자들이나 현인들이 바꿔 놓기를 바라는 사회 체제의 어느 부분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은 그의 견해를 지지할 개인적인 이유들이 있고, 결과적으로 뒤따라오는 혁명적인 운동에 저항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추구하는 바와 그의 비개인적인 윤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치 때문이다.
l “self-seeking”을 “스스로 추구하는 바”로 번역했는데 “이기적인 추구”를 뜻한다. 선지자나 현인도 스스로 추구하기는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과 똑 같다. 노예제의 예를 들자면, 여기에서는 이기심 때문에 노예제에 반대하는 노예들과 인류 전체를 위해 노예제에 반대하는 선지자와 현인을 대비하고 있다.
l “union”은 “일치”보다는 “결합”으로 번역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Russell(206쪽): This type of rebel is constructive, not anarchic; even if his movement leads to temporary anarchy, it is intended to give rise, in the end, to a new stable community.
안정효(234쪽): 이 유형의 반란자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 건설적인 사람이고, 비록 그의 행동이 일시적인 무정부 상태를 유발하기는 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안정된 새로운 사회를 수립하기 위한 것이다.
l “anarchic”은 무정부주의 즉 바쿠닌주의를 뜻하기도 하지만 “무법자적”을 뜻하기도 한다. 무정부주의자는 건설적인 이상을 품고 있는 혁명가다. 반면 무법자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 법을 무시하는 사람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그냥 무법자와 무법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무정부주의”라는 번역어는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