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나 비슷하겠지만 클래식 음악 감상에 관한 얘기를 할때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주제는 초심자를 위한 것이다
처음 방향 제시가 중요헌 것은 물론이고 흥미를 잃거나
잘못 시작해서 음악에 겁을 먹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겁을 먹는다는 표현에 어폐가 있을지 모르나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아름다운 음악이
어느새 높은 문턱에 가로막힌 느낌이라면 공포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유없는 거부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흔히 얘기하는 고전음악의 감상 순서라는 것이 있다
기악곡 쪽에서 간략히 설명하면 짧은 관현악곡-협주곡-교향곡-독주곡(소나타 포함)- 실내악의 순서다
아주 잘 맞추어진 순서지만 요즘같이 정신없이 빨리 돌아가고 널려 있는 정보가 무작위로 떠다니는 세상에서
한자리에 차분히 앉아 선생이 정해준 대로 한 곡 한곡 순서를 지킬수 있는 애호가는 많지 않다
다소 무심하게 들릴지 모르나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스쳐 지나가다 듣게 된 '멋있는 곡'이
클래식이라면 그게 감상의 시작이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작품이 실마리가 되어 호기심이 가지를 치고
부족한 상식을 메워줄 정보를 잘 활용하면 어느정도 수준의 애호가가 되는 것은 단시간에도 가능하다
음악에 늘 열려있는 마음과 적극적인 관심,적당히 예민한 '촉'만 있으면 된다
입문과정이 조금 지난 후 천천히 접근하라고 추천해주는 분야는 실내악 , 그중에서도 현악사중주디
다른 편성도 비슷하지만 제일 예민하고 빈틈없이 호흡하는 것이l실내악이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둘 , 비올라 첼로 이렇게 네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현악4중주는
활로 연주하는 고음악기와 저음악기 간 리듬, 음정 , 뉘앙스가 완전히 일치해야 하기때문에
연주자에게도 난이도가 매우 높은 앙상블이라 할 수 있다
실내악의 매력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귀속말 엿듣기'라 표현하고 싶다
작곡과 연주는 언어가 아닌 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행위이다
대규모 관현악이 일치된 호흡으로 강하고 큰 메시지를 청중에게 전달하는 것이라면
열 명 이내가 모여 연주하는 실내악에서는 연주자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여러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 사람끼리 혹은 일대일 로 하는 대화인만큼
은밀하고 자신들만 통하는 친근한 언어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내악 감상은 바로 소곤소곤 나누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이다
원래 옆 사람끼리 하는 , 내게 안 들리는 말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처럼
실내악만의 은밀한 감상에 빠지면 그 재미에서 헤어나오기 어렵다
그 매력에 빠져 실내악에 중독된 애호가들 중에는 다른 장르를 일절 듣지 않는 이들도 있다
누구든 잘 모르는 사람하고 얘기할 때와 집에서 가족과 대화할 때 쓰는 언어거 다르듯
실내악 역시 잘 알고 친근한 성대와 대화할 때 더 호흡이 잘 맞고 자연스러운 말들이 나오기 마련
그때문에 오래된 팀일수록 좋은 연주를 하는 경우가 많고 청중으로서도 더욱 흥미진진하다
현악4중주가 그런 특성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데 , 세계적인 현악4중주단 중에는
30년이상 멤버 교체없이 호흡을 맞춰온 노련한 팀이 많고 그리고 그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조합된 소리를 사랑하는 매니아가 많다
둘 이상이 연주하는 실내악 분야에서의 팀 워크가 개개인 기량보다 중요하다
현악4중주가 정확히 언제 시작됐는지 그 기원을 찾기는 어렵다
보통 바로크 시대 후기에 인기를 얻은 트리오 소나타에 중간 음역대의 안정감을 위해
비올라등의 중음악기가 첨가된 형태를 그 시작으로 보는 학설이 일반적 ,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란츠 하이든 은 약 80곡에 가까운 현악4중주곡을 쓰면서
후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뒤를 이어 모차르트, 베토븐 도 현악4중주를 다수 써서
다양한 악상과 풍부한 화성표현이 가능한 인기 편성으로 만들었다
특히 베토븐 창작 후기에 만들어진 현악4중주곡들은 작곡가의 가장 높은 영감과
만년의 달관이 어우러진 걸작이라 할 수 있다
현악4중주곡은 19세기 낭만파 작곡가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세기가 바뀌어도 계속된 인기에 대해 많은 학자가 분석을 내놓았는데
무엇보다 4중주는 축소된 교향곡 편성이라는데 이유가 있다는 주장이 흥미롭다
주제와 여러 요소를 각 악기에 배분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에서 오케스트라와 현악4중주의 방법이
매우 비슷하고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게 용이하다는 것이 그 증거
하이든의 경우 교향곡을 쓰기위한 예비과정으로 4중주를 활용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낭만파 작곡자인 슈베르트.멘델스존, 브람스, 차이코프스키등도 훌륭한 4중주를 남겼는데
그들은 하이든과 달리 교향곡보다 좀더 은밀하게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은 교향곡의 개념으로 이 편성을 애호했다
현악4중주를 연주하는 네 주자는 보통 객석에서 봤을 때 왼쪽부터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첼로 비올라의 순서로 반원을 그리며 앉는다 때론 비올라와 첼로가 자리르 바꿔 앉기도 하며
다른 편성보다 네 사람이 가까이 앉아 긴밀하게 음악적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현악4중주의 연주가 어렵고 감상하기 힘들다고 하는 이유는 네 사람의 역할이 각자 다르고
맡은 바 역할을 완벽하게수행하기 어려워서다 2017년 6월 창단 40주년 기념 내한 공연을 한
미국의 <에머슨 현악4중주단>이 남긴 유명한 농담이 있다
"잘난척하기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와 또 한명의 형편없는 바이오리니스트 , 바이올린을 하다
전공을 바꾼 비올리스트와 세 사람을 모두 싫어하는 첼리스트가 모인 집단이 현악4중주단이다 "
반어법이 섞인 우스게소리지만 그만큼 각자 맡은 일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이야기
정확히 말하면 제1바이올리니스트는 독주자 , 제2바이올리니스트는 그의 파트너,
비올라는 그들을 반주하고 첼로는 전곡의 줄거리를 유지해주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피아니스트 입장에서 생각한 이유를 하나 더 말하면, 건반악기인 피아노처럼 흔드리지 않는 고정된
음정이 없는 편성이라는 점에서 화음을 정확히 맞추기가 어렵다는 점을 들 수있다
각자 지니고 있는 음정, 비브라토에 대한 감각이나 결론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새롭게 만나는 연주자들끼리 연주하면 의견을 일치하기가 더욱 힘들다
피아노나 타악기처럼 리듬을 쉽게 나타낼수 있는 악기가 없다는 점, 아래 위로 움직이는 활 쓰기를
통일시키는 데 많은 의논이 필요하다는것도 현악4중주의 어려움 중 하나
2012년 영화 <마지막 4중주>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이영화는 베토븐의 현악4중주 작품 131을 테마로 창단 25주년을 맞은 <푸가 4중주단> 멤버들의 일탈과
사랑, 우정과 의리를 다루고 있다
연장자인 첼리스트 피터의 병으로 시작된 갈등은 멤버들의 동요와 엇나간 사랑으로 한 차례폭풍을 겪지만 ,
결국 이들은 베토븐의 곡을 연주하기 위해 다시 무대에 오른다
생애 마지막 연주를 하려 했던 피터는 결국 컨디션 난조로 곡을 끝맺지 못하게 되고
자신의 뒤를 이어 첼로 연주를 해줄 젊은 연주자를 소개한 후 퇴장한다
잠시 중단했던 연주를 하기 앞서 했던 제1바이올주자 대니얼의 대사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곡은 모든 악장을 중단 없이 연주해야 합니다 , 우리 인생처럼.
베토븐은 마지막 부분에 "horse riding'을 지시했는데 이 말을 타려면 우리는 몇마디 앞으로
돌아가야 하죠 거기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
중단없는 삶, 인간이기에 어쩔수 없이 저지르는 크고 작은 실수들,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무척 아프지만 다시 멈춰 숨을 고르고
조금 뒷걸음치며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는 법
이렇게 베토븐의 걸작은 늘 실패와 좌절에 상처받고 그것을 이겨내려 애쓰는 ,
약하지만 소중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솔직 담백하게 가르침을 준다
작곡가의 의도와 영혼이 담겨 있으며 아름다음의 극치를 들려주는 실내악이 현악4중주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동시에 결코 완벽에 다다를 수 없는 것에 대한 끝없는 노력과 의지자체의
소중한 의미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