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연극 한 번 해보자 2011년 봄, ‘나가수’가 한창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들던 즈음, 우리도 연극 한 번 해보자고 모인 분들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동네에서 연극을 하자고? 이거 사건이다!’라는 놀람과 반가움이 동시에 일었습니다. 흥이 올라도 젓가락장단 한 번 못 두드리고 노래는 노래방에서만 하는 건 줄 아는 세상, 집에선 TV에 차에선 스마트한 기계에 눈 붙잡아 매고 입담 역시 방송에 나오거나 조회 수 많은 토픽들 재탕하는 데 머무는 시절에, 스펙타클한 영화를 보자는 것도 아니고 고리타분한 연극을 동네에서 직접 하자니... 역시 동천동이다 싶었습니다. 이우학부모 몇 분이 우리도 연극 한 번 해보자고 깃발을 들었고 금세 열댓 분이 좋다고 맞장구를 치며 모였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대본을 읽고 몸을 움직이며 놀이를 하는 등 연극의 기본적인 맛을 보고 있었답니다. 당시 졸부 2년차였던 저는 대학 시절 동아리 친구들과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들 전업 연극인은 아니었지만, 대학시절 연극에 빠져 살던 군상들이 밥만 먹곤 못 살겠다고 이삼 년에 한 번씩 약발이 떨어질 만하면 판을 벌이는 공연이었습니다. 사실 현역 학부모였던 동안은 연극을 못했습니다. 공차고, 돌 깨고, 나들이 하고, 학부모 모임에도 나가고 이러면서 학교와 동네에서 배우고 노는 것이 재미있어서 딴 생각 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학부모회와 생협의 임원을 하면서 연극 얘기를 나눈 적이 있기는 했지만 진도가 나가진 않았고요.아무튼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왔고, 서로 눈이 맞았습니다. 이후 저도 합류하여 작품들을 소개하고 연극에 대한 감을 익히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정확한 발음과 큰 소리로 대본들을 읽으며, 또 다양한 방식으로 몸을 써보며 연극 맛의 중심으로 서서히 함께 빠져 들었습니다. 그리고 ‘맛을 볼 테면 제대로 보자, 공연을 하자’라는 의욕에 다들 스스로 낚였습니다. 저는 겁 없이 연출이라는 자리를 맡았습니다.
*소풍갈까요? 창단 공연 작품은 4개의 단막극으로 구성했는데, 셋은 기존의 작품들을 조금 수정해서, 하나는 ‘위기의 여자’란 시몬 보봐르의 소설을 각색하여 전체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제목은 ‘소풍 갈까요?’라고 붙였습니다. 저마다의 팍팍하고 갑갑한 일상에 묻혀있는 개인들이 ‘우리 소풍 한 번 가자’라고 얘기하게 되는 가벼운 터치의 에피소드들이었고, 단원들에게는 연극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소풍이었습니다. 연습은 꽤나 진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열 명이나 되는 배우들은 모두 연극을 처음 해보는 깨끗한 분들이었습니다. 생전 안 해본 걸 한다는 경이로움 속에 가볍게 또 즐겁게 시작했으나, 배역이 결정되고 공연이 다가오면서 긴장과 부담은 점점 커갔습니다. 과정이 진행되고 연습이 거듭될수록 피로는 누적되었고 만만치 않은 일상의 압박은 배우들을 힘들고 답답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몸과 입을 새로운 방식으로 움직이는 속에서 탈진할 것 같은 곤함 속에서 오히려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들, 여태껏 알고 느껴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고 만나는 희열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놀이를 하고 있었고, 그것을 즐겼으며, 놀고 있음을 알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놀이에 필요한 배움을, 그 과정의 어려움을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때부턴가 시나브로 우리의 놀이에는 거룩한 몰입의 시간들이 생겨났습니다. 어쩌면 그 시간들이 바로 예술의 순간이었고 예술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거듭되는 소풍 이후의 공연들에 대해서는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올해까지 두 편의 창작극과 두 편의 각색 작품을 더 올렸습니다. 창작희곡이 다양하지 않고 더구나 중장년의 아줌마 아저씨들만으로 할 수 있는 작품은 더욱 드문 까닭에 늘 공연작품을 정하는 고충이 큽니다. 그런 중에 창작을 도모하고 공연을 올린 것은 큰 수확입니다. 2번째 작품 ‘괜찮으세요?’는 그렇게 창작 초연된 작품으로서 성미산 연극제에 초청받아 재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3번째 작품부터 외형적인 변화가 왔습니다. 용인문화재단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공연 시기를 12월로 당겨야 했습니다. 이에 따라 공연장으로 활용해 오던 한빛중학교 소강당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어 용인여성회관으로 공연장을 옮겼고, 3년째 이곳에서 정기공연을 올리고 있습니다. 3회 공연인 ‘아쉬운 유산’은 큰 공연장의 좋은 조명 음향 시설을 활용하며 대극장 공연 체계로 올리게 되었으며, 이듬해 근로자 연극제에 초청되어 대학로에서 재공연을 했습니다. 4회 공연인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는 창작 작품으로 동네의 다른 문예인들과 협업을 진행했습니다. 풍물패 ‘덩더쿵’은 극의 끝을 놀이판으로 만들어 주었고, 이우학생 이빈 양은 소리로 감동을 더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가을 5회 정기공연으로 고전비극 ‘안티고네’를 올렸습니다.
*‘마을극단 동동’에서 ‘극단 동동’으로 ‘동동’이란 이름은 ‘동천동 동네사람들’ ‘동네사람들이 움직인다.’ 이런 데서 시작되었는데, 연기를 영어로 action이라고 하니 ‘동’자와 어울리고, 무엇보다 ‘동동’의 어감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움직이며 움직인다.’라고 뜻매김하고 이름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마을극단 동동’으로 이름 붙였습니다만 지금은 그냥 ‘극단 동동’이라 합니다. 3회 공연 쫑파티 때, 무대 작업을 해준 5기 졸업생 김지원 군은 동동에 대해 ‘이우에서 비롯되었으나 이우를 넘어선 조직이다’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실제로 3회 공연 즈음해서, 이우 출신이 아닌 단원들이 많아졌고 공연장도 동네를 벗어났으며 관객 또한 동네사람 아닌 분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마을’이라는 단어가 협소하게 느껴졌고, 마을을 고집하는 것이 어쩌면 배타적일 수도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마을’이 붙음으로써 동천동 혹은 이우학교동네라는 데의 특별함이 내비치며 다른 동네 분들이 오기 저어하게 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름에서 마을을 떼도 동동이 선 자리는 마을임에 변함없으며, 다른 마을 사람들도 편히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그 많은 대사를 어떻게 다 외우냐? 아는 사람이 출연해서 극장에 오신 분들은 대개 이 질문을 하십니다. 근데 사실 배우들이 대사를 외는 것 때문에 힘들어 하는 시간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독서백번 의자통’이라 했습니다. 여러 번 읽다 보면 뜻이 절로 통한다는 거죠. 처음 연극을 하는 분들께 ‘대사백번 구자통’이라고 얘기합니다. 공연 때까지 대사를 적어도 백 번은 하게 되니 뜻은 물론 입이 절로 뚫린다는 얘기죠. 연극 연습의 과정은 일단 대본을 많이 읽습니다(리딩). 그런 다음 배우들이 움직일 동작선을 만들고(블록킹) 섬세한 동작들을 다듬고(디테일) 상대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앙상블을 구축합니다. 그리고 조명 음향 무대장치 소품 의상 분장 등등을 구비하고 리허설을 합니다. 그리고 긴장 속에 공연을 하고 나면, 찬사와 함께 꽃다발과 선물도 받습니다. 관객에게 보이는 모습이 어떠하든 연습의 과정은 힘듭니다. 좀 한다 싶다면 그건 타고난 재능 때문이 아니라 진지하게 많은 연습을 한 때문입니다. 백프롭니다. 프로나 아마나 매한가지입니다.
연극은 현행적인 예술입니다. 엔지가 나도 다시 가거나 편집할 수 없고 시작하면 끝까지 달려갈 수밖에 없는 현장 예술입니다. 깜깜한 무대 뒤에서 의상과 소품을 챙기다 보니, 마누라의 장례식장에 빨간 바바리를 입고 나오게 되기도 합니다. 마주선 배우들은 당혹감과 터져 나오려는 웃음 속에 입술을 깨물고라도 위기를 넘겨야 됩니다. 때로는 군무나 율동을 하고난 다음 거친 호흡을 다스리기도 전에 분위기 있는 말랑말랑한 대사를 읊어야 합니다. 한 장면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다음 장면에서 등장 자체를 잊어먹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번 공연 안티고네에선, 신하의 물음에 거칠게 응해야 할 크레온 왕이, 홀로 무대에서 ‘프리머스, 프리머스 넌 어디 있는가? 왜 말이 없는가?’하며 애타게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연극, 그딴 걸 왜 해? ‘리스본 행 야간열차’란 소설을 보면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많은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연극을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위의 구절이 생각날 때가 많습니다. 흔히 ‘인생이 연극’ ‘연극은 인생의 축소판’ 이란 얘기들을 합니다. 할수록 그럴 듯하고 타당한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미학에선 ‘예술은 인생을 인생은 예술을 서로 모방한다.’고 얘기하나 봅니다. 서너 달 간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하다 보면 배역과 내가 서로 혼재되고 누가 우선하는지 헷갈릴 때도 많습니다. 화가 세잔은 자신의 그림에 대해 ‘풍경이 내 속에서 스스로를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배우들은 ‘나는 인물의 의식이다. 인물이 내 속에서 스스로를 행동한다.’라고 되뇝니다. 그리하여 나와 극중 인물이 씨줄과 날줄로 교직하며 연기를 하게 되죠. 이런 속에서 간접적인 동시에 직접적으로 나 아닌 다른 인물의 삶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고, 이건 다른 데서 맛보기 힘든 매력이 됩니다. 꽃다발이나 찬사는 부수적인 것이겠고요.
*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연극은 만남의 예술이고 소통의 예술입니다. 처음엔 희곡과 만납니다. 그리고 배역이 정해지면서 극중 인물과 만나고 또 다른 극중 인물이 된 다른 배우들과 만나고 소통합니다. 그리고 공연이 다가오면서 조명, 음악, 무대장치와 소품들, 분장과 의상 등 많은 요소들과 만납니다. 이런 것들을 다 갖춘 뒤에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관객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자리가 공연입니다. 우리가 몇 달 동안 생각하고 느끼고 만들어 낸 것들이 처음 보는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공유될 때, 그래서 객석이 숙연해지거나 어떤 물결이 일 때, 우리는 희열을 느낍니다. 밥과 돈이 주는 기쁨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 가운데 자기 자신과의 만나는 시간이 생기며 그 시간들의 축적이 성장의 시공간이 됩니다. 동동은 프로 극단이 아닙니다. 사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 프로는 잘 한다, 잘하면 프로라고 얘기하는 것 등은 사고파는 습속이 만들어낸 착각이고 허언이 아닐까요? 예술에는 프로와 아마의 구분이 없습니다. 흥행의 목적에 차이가 있을 뿐이죠. 업으로 삼는 사람들만 공차고 노래하란 법은 없는 것이고, 세계 유수의 페스티발들은 스스로 뛰쳐나와 제대로 노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들이죠. 손에 잡히고 쌓아둘 수 있는 어떤 목적물을 위해 움직이지 않지만 얼마든지 아름답고 장해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얼마 전 영화 ‘사도’를 보았습니다. 과녁을 향해 시위를 당기던 사도세자가, 활을 들어 청한 하늘로 화살을 날렸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어린 정조에게 한 마디 날립니다. 참 아름다웠습니다. ‘허공을 향한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한가!’
*예술? 그거 뭐 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거 아닌가? 한편으론 그렇기도 하고 좀 더 생각해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 조금 깊이 알면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도 없고, 때론 정말 독특하다 싶은 생각까지 듭니다. 예술한다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사는 것 같은 동네 아저씨아줌마들도요. 그러니 특별한 사람들이 예술한다는 게 맞기도 하고, 다들 특별하니까 아무나 하는 것이 예술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예술이라는 거 또한 뭐 별 건가요? 붓이든 악기든 제 몸이든 뭐든 갖고 한 판 제대로 놀면 그게 예술 아닌가요? 연극, 막 내리면 그뿐인 허무한 예술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대충대충 허투루 하지 않습니다. 눈 감으면 그뿐인 허망한 게 인생이지만 아무렇게나 살지 않듯이.
*그래서 앞으로 어떡할 건데? 동동에는 회칙이나 정관 같은 것이 없습니다. 대여섯 달은 그저 노니는 듯 대본을 읽고 놀이를 하며, 너댓 달은 가열차게 공연 준비에 매진합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다양한 나들이를 합니다. 규율이 없어 쉬 사그러들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끈끈탄탄하게 나름의 호흡과 살을 다지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또 밖으로 더 열려 있으려 하고 스스로 움직이려 합니다. 매번 새로운 공연을 해야 하니 작품을 찾고 짓고 만드느라 진담을 빼지만, 그래서 더욱 세상과 사람들의 흐름에도 눈과 귀를 열어 두려 합니다. 동동이 오래 움직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딱히 크게 도모하는 바는 없지만, 꾸준하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기운이 일어나, 좋은 작품을 공연하기를 기대하며 안팎을 갈무리한다는 정도의 생각으로 눈빛을 견주고 있습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을 만나고 도움을 받았습니다. 연습 및 공연장 확보, 무대 제작, 홍보, 조명과 음악, 물심의 찬조와 후원,......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이우와 동네 사람들의 도움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덕에 공연이 성황리에 막을 올리고 내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나면 배우 아닌 스텝들도 관객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창단공연 ‘소풍갈까요?’의 무대 인사 때, 준비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튀어나왔습니다. ‘고마운 것들을 거슬러 올라가니 이우교육공동체를 만나게 된다. 처음 이우와 마을을 꿈꾸고 실현시켜 오신 그리고 지금도 짐을 지고 있는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의 많은 사람들과 도움은 물론, 앞서 여기다 거름을 뿌리고 일구어 오신 분들 덕에 동동이 움직이며 잘 놀고 있습니다. 요즘도 동네에선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줄 압니다. 이런 일들 역시 훗날 마을 풍경의 바닥과 배경이 되겠지요. 시인은,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 했습니다. 동네의 겉모습이 변하더라도 사람들이 가고 오더라도, 내도록 우리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사람들 사이에선 향기가 그윽하기를 바랍니다. 그 속에서 동동도 꾸준히 움직이면 좋겠습니다. 꾸벅~!
첫댓글 움직이는 동동~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