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보우는 18세기 말 뚜르뜨의 공방에서 탄생되었다.
피터 옥슬리가 뚜르뜨 이후 모던 보우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았다.
활 제작은 17. 18세기에 아주 중요한 발전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프랑스와 자비에 뚜르뜨에 의해 모던보우가 확립되는 1790년경을 그 장점으로 볼 수 있다. 뚜르뜨 이후 전개되는 활의 변화는 혁신적이라기보다는 개선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런 맥락에서 뚜르뜨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활 제작의 실제적인 양식변화를 살펴 보았다. 또한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지역은 제외하고 프랑스의 활들만을 조사했음을 밝혔다.
19.20세기 프랑스의 활 제작
프랑스의 활 제작학파는 양심적으로 뚜르뜨 (Tourte), 파제오 (Pajeot), 뻬까뜨 (Peccatte), 브와랭 (Voirin) 등 크게 4개로 나눌 수 있다. 이 시기의 장 아당 (Jean adam. 1755~1812). 자콥 에우리 (Jacob eury. 1776~1848). 프랑스와 루포 (Francois Lupot. 1774~1838). 장 피에르 마리에 페르시와 (Jean pierre Marie Persoit. 1783~?). 피에르 시몽(Pirre Simon.1808~1881). 으젠 세르토리 (Eugene Sartory.1871~1946)
등도 자심남의 모델을 확립하고 다른 제작자들에게 영향을 끼친 중요한 제작자들이다.
활 제작자들은 서로 많은 아이디어들을 교환(특히 19세기에..) 해 왔을지라도 여러 학파로 분류하여 각 학파의 영향을 받은 주요인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제작자들은 한명이 아닌 여러 스승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대부분 한가지 제작 양식만 을 고집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제작자가 특정학파에 속한다는 것은 그의 작품에 학파의 이름을 딴 대가로부터 이어받은, 개념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영향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제작자가 유명한 대가와 함께 (혹은 그를 위해 ) 작업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 뚜르뜨 학파.
장 그라다담 Jean grandadam (1823~69), 자콥 에우리 Jacob eury. 장 피에르 마리에 페르시와 J.M.Persoit
19세기 초반 프랑스에서 제작된 활들에서도 위대한 대가, 프랑스와 자비에 뜨르뜨의 영향을 살펴볼 수 있다. 스틱은 거의 팔각 (octangonal-뚜르뜨 자신이 즐겨 사용한 형태) 이고 언더슬라이드가 없는 프로그의 높이는 이후의 모델들보다 약간 낮다.
카피를 불허하는 자콥 에우리,잘 그랑다담 같은 위대한 제작자들이 만든 활의 헤드는 대담라고 단호한 형태와 아주 훌륭한 솜씨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뚜르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언더슬라이드(바텀 플레이트)는 프랑스와 루포에 의해 발명돤 것이라고 한다. 루포의 작품들에서는 간혹 뚜르뜨의 영향인 듯한 흔적이 살펴지긴 했지만 그 특징이 너무 다양하므로 특정 학파로 규정짓기는 힘들다.
1820년경 도입된, 언더슬라이드는 손상되기 쉬운 프로그의 엣지부분을 보호하고 스틱과 프로그 사이의 마찰을 줄이는 중요한 장치다. 이 외 모던보우의 중요한 특색들이 뚜르뜨에 의해 갖추어 졌다.
1860년 경 캠버(camber :활의 볼록하게 구부러진 부분)와 스틱길이의 변화를 제외한다면 뚜르뜨가 확립된 것 이상의 큰 변화는 극히 적었다고 볼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기능보다 스타일상의 변화가 있었다고 하겠다.
-파제오 학파.
니콜라스 메어Nicolas Maire(1800~78)
프랑스의 활 제작자들 대부분은 미레꾸르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파리로 옮겨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런 경향에 반대되는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에티엔느 파제오(1792~1849)가 있다. 미레꾸르의 활 제작자 루이 파제오(Louis Simon Pajeot)의 아들인 에티엔느는 아버지의 기초적인 제작기법 대신 그만의 특성을 지닌 모델(사진 2) 을 1825년 경 개발했다. 파제오가 만든 전형적인 헤드의 측면은 보다 거칠고 대담한 뜨르뜨의 모델과는 달리 온화하고 우아하다.
파제오의 기술은 최고였다. 그의 뛰어난 작품에서는 헤드의 샹페와 스로트(throat)의 마감질에서 완벽에 가까운 신기를 확인할 수 있다. 프로그의 형태는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으나 뚜르뜨의 것 보다는 다소 밋밋한 맛이 난다. 언더슬라이드 끝에 납땜된 섬플레이트를 누가 발명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파제오가 이 방식을 수년간 즐겨 사용했음은 분명하다. 섬플레이트는 프로그의 가장 잘 닿는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섬플레이트는 이 점에 있어서는 성공적이었으나 -이특성을 지닌 파제오의 작품들은 지금도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다- 엄지손가락에 약간의 불편함을 주는 탓에 폭넓은 대중성을 얻지는 못했다.
이 시기의 다른 제작자들로는 활 제작의 대가인 니콜라스 메어가 있는데 그는 파제오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파제오가 후대의 유명 제작자들에게 보다 많은 영향을 줄 수 없었던 것은 미레꾸르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빼까뜨 학파.
피에르 시몽 Pierre Simon. 조셉앙리 Joseph henry(1823~70) 프랑스와 빼까뜨 Francois Peccatte(1821~55).니콜라스 메어 Nocolas Maire. 니콜라스 말렝 Nicolas Maline (1822~77)
뚜르뜨 이후 프랑스 활 제작분야에서 가장 명성을 떨친 이는 도미니끄 빼까뜨이다. 뷔욤의 공방에서 도제생활을 한 빼까뜨는 이 기간(1826~36)동안 개성있는 스타일 (사진4) 을 개발했는데 이것은 브와랭의 모델이 나오기까지 여러 활 제작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빼까뜨는 주로 라운드 스틱만을 고집했으나 각 부분을 살펴보면 헤드 바로 뒷부분의 모양은 삼각형에 가깝다. 이 스틱의 형태는 래핑 바로 앞부분에 희미한 삼각모양이 엿보이긴 하나 프로그 쪽으로 가면서 점차 둥근 모양에 가까워진다.
이렇게 활을 제작할 경우 활 측면의 안정성이 좋아질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강한 활을 얻을수 있다. 빼까뜨는 활동기간 내내 빼까뜨 학파의 본질이라 말할 수 있는 이 방식만을 고수 했다.
미학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빼까뜨는 헤드를 디자인하는데 있어 비율에 의한 튼튼함과 조화로움을 중요시 했다. 빼까뜨의 프로그는 뚜르뜨나 파제오의 프로그보다 약간 높으며 측면은 매우 깊게 파여있다. 또한 시원하게 개방된 스로트도 그만의 특징이다.
기술적인 면에서 빼까뜨와 견줄만한 활 제작자들도 이 스타일을 따랐으며 그와 동시대에 활동한 제작자인 조셉 앙리는 이 모델을 약간 변형하기도 했다.
-브와랭 학파.
라미 A.J.Lamy(1850~1919). 끌로드토마생Claude Thomassin(1870~1942). 으젠 세르토리 Eugene Saratory. 빅토르 페띠끄Victor Fetique(1872~1933). 에밀 오샤르 Emile Ouchard(1900~69)
빼까뜨 학파의 대중적인 성공 이후 프랑스와 니콜라스 브와랭(1883~1885)에 의해 최고의 극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브와랭은 미레꾸르에서 도제생활을 한 후 뷔윰 공방으로 옮겨 일을 하게 되었다.(1855~70).
창의력이 풍부했던 브와랭은 이 기간동안 이전의 건장하고 대담한 스타일을 버리고 새로운 스타일(사진5)을 만들어냈다. 브와랭 모델의 특색은 스틱,헤드,프로그 등이 비교적 섬세하고 우아하다는 점이다. 라운드스틱의 삼각형태는 보다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대체되었다. 전체적으로 스틱은 약간 얇은 편인데 브와랭은 이를 보충하기 위해 캠버를 주었으며 이 형태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있다.
그는 스틱의 길이를 약간(밀리미터 단위) 늘렸는데 이 또한 지금까지 이어내려온 표준이 되었다. 브와랭 활 헤드의 옆면은 전체적으로 우아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이전에 만들어진 것보다 매우좁다. 프로그 역시 이와 상응이라도 하듯 이전 제작자들의 작품에서 볼 수 없는 호리호리한 맛을 느끼게 한다.
브와랭의 영향력은 지속적인 것이어서 1860년경부터 1975년경까지 활동했던 프랑스의 활 제작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대부분 브와랭 스타일을 따랐다.
라미,세르토리(사진6)같은 최고의 제작자들 뿐 아니라 대량생산을 주로 한 바쟁(bAZINS)과 모리조(morizots)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위)노엘버크 1998년산, (아래)에드윈 클레멘트 1998년산
-오늘날의 활 제작.
프랑스의 활 제작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체기에 접어드는데 이는 베르나르 오샤르가 1971년 미레꾸르에 활 제작 학교 "에꼴 다르셰떼리"(Ecole d Archeterie)를 설립할 때까지 계속 된다. 이후 프랑스는 활 제작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으며 현재 높은 품질의 활 생산이 제개되고 있다.
이점에 대해 극히 오샤르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가 재능있는 젊은이들에게 높은 수준의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다음 세대의 제작자들에게 활에 대한 영감과 헌신적인 자세등을 주입시킨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서 훈련받은 많은 학색들은 이어 그들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이 중 현재 뛰어난 활 제작가가 된 이들은 다시 세계에서 모여든 차세대 활 제작자들을 교육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많은 학생들이 최근 각종 콩쿠르에서 속속 입상하고 있다.
특히 파리의 스테판 토마쇼 (Stephane Thomachot)는 영향력 있는 대가들을 키워내기 위해 그만의 혹독한 훈련을 실시하고 있는데 그는 제자 중 노엘 버크 (아링랜드,사진 7). 데이비드 사무엘스(미국). 에드윈 클레멘트(벨기에.사진 8). 프랑스와 말로(캐나다). 그레고어 발브로드(독일). 미추아키 사사노(일본)등이 콩쿠르에서 메달을 수상했다.
오늘날의 활 제작자들이 계속되는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영감을 얻기위해 2백년 전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흥미롭다(사진 9,10). 많은 제작자들은 오랫동안 대중적이었던 브와랭의 모델을 더 이상 따르지 않는다. 대신 19세기의 프랑스 대가들이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작품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재능과 열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