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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합니다(1)(마 5:1-5)
할렐루야! 오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온 여러분에게 하늘 문이 활짝 열리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우리는 행복합니다.”입니다. 다같이 따라합시다. “우리는 행복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로 행복하십니까? 늘 만족하며 사십니까? 늘 웃으며 사십니까? 오늘부터 세 주일에 걸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여덟 가지 복, 즉 팔복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대림절 첫주일입니다. 성탄절을 준비하는 첫 번째 주일이라는 뜻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갈 때에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은 주님만으로 만족하고, 주님만으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두 장의 그림을 그려서 상자 속에 넣었습니다. 한 장은 웃는 얼굴, 밝은 얼굴을 그린 것이었고 또 다른 한 장은 우는 얼굴, 슬픈 얼굴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그는 상자에, 두 개의 눈구멍을 뚫어 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동시에 상자 속에 있는 두 장의 그림을 들여다보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의 눈에는, 웃는 얼굴이 들어왔고, 어떤 사람의 눈에는, 우는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 결과를 가지고 분석했더니, 이런 결론이 나왔습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생각과 마음가짐에 따라서, 보는 시각도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을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 긍정적인 마음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영락없이 웃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어둡게 살아가는 사람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는 얼굴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마땅히 밝게 살아가야 합니다.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그 자녀된 우리들이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가 진정 복 있는 사람들,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아멘.
“예수께서” 설교자는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세상에 그 어떠한 선지자보다도, 모세보다도 더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시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설교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무리를 보시고.”
예수님의 소문이 널리 퍼져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에게로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그들의 필요가 무엇이든지 간에, 언제나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 6, 7장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8, 9장은, 예수님이 그들의 병을 고쳐주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사랑이 넘치는 분이십니다. 긍휼이 넘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설교를 어디서 하셨습니까? 설교의 장소는 “산에 올라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태복음 5, 6, 7장의 세 장을 가리켜서, 예수님의 산상설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설교하실 때, 어떤 자세를 취하셨습니까? “앉으시니”입니다. 스승이 제자들에게, 중요하고, 공식적인 가르침을 베풀 때, 취하는 자세입니다. 산상설교의 직접적인 대상은 누구입니까? “제자들이 나아온지라”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그 제자된 우리들에게, 오늘 이 말씀을 주고 계신 것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아멘.
예수님은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 종종 이러한 표현을 쓰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마찬가지입니다. “입을 열어”라는 표현도 중요하고, 엄숙한 내용을 가르칠 때,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바야흐로 가장 위대한 설교자의 입에서 나온 지상 최대의 설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설교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마태복음 7:28-29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그들은 예수님의 설교에, 깜짝 놀랄 정도로 크나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세 있는 가르치심에, 완전히 압도를 당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도, 크나큰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의 첫머리에서, 여덟 가지 복, 이른바 팔복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덟 가지 복이라고 해서, 각자가 누리는 복이 다르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따로 있고, 애통하는 사람이 따로 있으며, 온유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두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누리는 복을, 여덟 가지 다른 각도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은 팔복 가운데서, 처음 나오는 세 가지 복을 함께 생각해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첫째, 우리는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다같이 따라합시다. “나는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아멘.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실 때, 미래형으로 말씀을 하시지 않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미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될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현재,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찬 438장)
우리는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이기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심령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8:9-14절을 보면,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의를 내세우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한 마디로 바리새인은 심령이 부요한 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의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자연히 그는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나라인 천국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리는 달랐습니다. 세리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자기의 가슴을 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세리처럼,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주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찬송가 292장입니다.(1-2절)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그 귀한 보배피로 날 구속하소서 구주의 사랑으로 흘리신 보혈이 내 소망 나의 위로 내 영광됩니다. 주 없이 살 수 없네 나 혼자 못서리 힘없고 부족하며 지혜도 없도다 내 주는 나의 생명 또 나의 힘이라 주님을 의지하여 지혜를 얻으리”
그렇습니다. 우리의 심령은 너무나도 가난하기에,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생명이요, 나의 힘이시기에, 나 혼자는, 도저히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혼자 설 수 없습니다. 주님 없이는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우리들이기에, 예수님의 나라인 영원한 천국이,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줄로 믿습니다.
영국 황제였던 루이스가, 황궁생활에 너무나 염증이 났습니다. 황금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괴롭고, 너무나 문제에 쌓여서, 마음에 번뇌하고, 고통에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관을 불러서, “우리 평복으로 차려 입고 좀 시골로 나가보자”고 했습니다. 대영제국의 황제 루이스가, 좀 마음에 휴식을 얻기 위하여, 보좌관을 데리고, 평복을 갈아입고, 런던 밖 교외로 나갔습니다. 어느 시골길을 걸어가는데,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황제는 그 노랫소리에 이끌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물레 방앗간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 안에는 어떤 할머니 한 분이, 혼자 일하면서, 지극히 평온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황제를 보고서,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할머니에게, 황제는 정중한 태도로 부탁했습니다.
“할머니, 할머니의 노래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그 노래를 가까이에서 들으려고 이렇게 불쑥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부디 나를 위해서 그 노래를 다시 한 번 불러주실 수 없겠습니까?”
할머니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면서, 그 노래를 다시 불렀습니다. 그 노래는 이러한 내용이었습니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절로 나네.”
1절을 다 듣고 난 뒤에, 황제는 그 노래가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여보세요. 보자 하니 옷도 남루하게 입고 얼굴도 거칠고 생활이 풍요롭지 못하고 별로 좋은 일이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무엇이 그렇게 좋아서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또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라고 노래합니까?”
그러자 할머니가 “생각해 보세요. 나는 예수님이 마음 속에 계시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과 소망이 있지요. 내가 이 세상에 가진 것 없더라도 하늘나라에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요. 내가 이 세상 떠나면 하늘나라가 나의 고향이 되고, 예수님이 나의 신랑이 되고, 그 영광스러운 곳에 들어가 살 것이니, 나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나는 걱정 없이 잠자고, 걱정 없이 깨어나고, 내일을 큰 희망으로 기대하고 사니, 이 노래가 저절로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2절도 계속해서 불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노래는 제가 만든 것이라서 1절 밖에는 짓지를 못했습니다”
황제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할머니, 제가 할머니를 위해서 2절을 지어드릴 테니까, 앞으로는 2절도 같이 부르십시오”
그러면서 황제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의 황제가 날 부러워하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절로 나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황제가 가지고 있는 부귀, 영화, 권세가 없을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황제가 부럽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황제가 우리를 부러워할 만큼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우리 주님께서 허락하신 그의 나라, 영원한 천국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진정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 천국을 소유하는 기쁨과 감격을 맛보는 행복한 주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습니다.
다같이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아멘.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인해서, 애통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 아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중년의 신사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불안과 초조에 가득 찬 모습으로, 이렇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저는 지금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습니다. 게다가 밤이 되어도 잠이 오질 않아 불면증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 저를 좀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정신과 의사는 그를 진단하면서, 그에게 도움이 되는 말들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때마침 우리 마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희극배우가 와서 공연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가셔서 세상사 다 잊어버리고 좀 마음껏 웃어보세요. 그러면 당신의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그 중년의 신사는, 뜻밖에도 한 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그 희극 배우가 바로 저랍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것들로는, 우리가 진정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위로를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로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 어떠한 일로 애통해 하는지, 하나님은 진정 위로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환난에서, 우리 모두를 구원해 주십니다. 참된 위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 옛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 남편 엘가나는 한나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한나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첩을 들였습니다. 엘가나의 첩 브닌나에게는 여러 명의 자식이 생겼습니다.
브닌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를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나는 그것 때문에,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나는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이 괴로워서 기도하면서 통곡했습니다.
“주여,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옵소서. 그러면 제가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애통함을 보시고 그를 위로하셨습니다. 그에게 귀한 아들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한나가 자신의 서원대로 자신의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은 한나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허락해 주셨습니다. 마음의 아픔으로 인해서 애통해 하던 한나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게 된 것입니다.
그 옛날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낯을 벽으로 향하여 성전 쪽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주의 종이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생명을, 15년이나 더 연장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사는 날 동안 태평하게 해 주셨습니다. 육신의 아픔으로 인해, 애통해 하던 히스기야 왕에게, 변함없이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넘쳤던 것입니다.
그 옛날 다윗 왕이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우리아를 최전선에 내보내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서,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그는 영혼의 아픔 때문에, 애통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시편 6:6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자신의 아픈 영혼을 부여잡고 애통해 하며, 너무나 괴로워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시고, 요를 적시며, 회개하는 다윗 왕의 죄를 하나님은 용서해 주셨습니다.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깨끗하게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 왕의 엄청난 죄에도 불구하고,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말씀하시면서 다윗 왕을 사랑하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메시야가 오셨습니다. 영혼의 아픔으로 인해, 애통해 하던 다윗 왕에게, 진정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넘쳐 흘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다 보면 우리는 한나처럼, 마음이 아파서, 애통해 할 때가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처럼, 육신이 아파서, 애통해 할 때도 있습니다. 다윗 왕처럼, 죄로 인한 영혼의 아픔 때문에, 애통해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완전히 닦아주실 줄로 믿습니다. 위로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진정 우리의 곤고함을 돌아보사, 우리를 위로해 주시며,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실 줄 믿고서, 주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 우리에게는 최후의 승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다같이 따라합시다. “최후의 승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찬송가 620장 2절을 보면, “때로는 넘어져도 최후 승리를 믿노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 놓여있는 장애물 때문에, 때로는 넘어질 때도 쓰러질 때도 있지만, 우리에게 있어 최후의 승리가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너무나도 마음이 든든합니다. 너무나도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아멘.
예수님 당시에, 열심당에 소속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이 무력으로 자기들의 땅을 빼앗은 것처럼, 그들 또한 무력으로라도, 빼앗긴 땅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 정부에 대해서 반란을 꾀하며, 끊임없는 투쟁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 자기 힘으로 땅을 차지하려는 자에게, 땅을 주시지 않고, 온유한 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땅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온유하고 따뜻한 태양입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에게, 최후의 승리를 안겨주십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조카 롯에게 말했습니다.
“이방인들 앞에서 나와 너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니 나의 마음이 몹시도 아프구나. 서로 다투지 말고 따로 따로 떨어져 살자꾸나.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그러니 네가 먼저 좋은 곳을 택하도록 해라”
여러분!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땅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롯의 삼촌이요, 그를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온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그의 조카 롯에게 모든 것을 양보했던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좋은 땅을 차지했다고 믿었던 롯은, 그만 전쟁에 휘말려 포로가 되어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에, 그의 모든 재물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마저, 소금 기둥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자기 힘으로 땅을 차지하려 했던 롯은, 그 땅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심령으로 모든 것을 롯에게 양보했던 아브라함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롯이 자기 가족을 다 데리고 떠난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네 후손은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땅의 티끌처럼 창대하리라” 아멘.
온유한 심령으로, 모든 것을 롯에게 양보했던 아브라함이, 그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진정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는 나폴레옹이 남긴 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칼과 대포로 세계를 정복하려 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는 사랑으로 이 세계를 정복하였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나도 약해 보일런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누가 오른편 뺨을 치면, 말없이 왼편 뺨을 돌려대는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할 때, 십리까지 가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우리들에게 최후의 승리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만에 하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땅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성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너무나도 감사하고,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족과 허물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눈물 흘리면서, 애통해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과 의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임을 알기에, 그저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로 이러한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렇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천국이 너희의 것이며, 너희가 참된 위로를 받을 것이다. 너희는 진정 내가 주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복이 있는 자요, 행복한 사람들이란다”
여러분! 그 옛날 하박국 선지자의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진정 주 안에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모두 다,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기뻐하십시다.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십시다.
하나님은 그 자녀된 우리들이 하늘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그 주님과 함께 감사한 마음, 평안한 마음으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참된 행복과 기쁨을 맛보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주의 복된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기에 행복합니다.
주님 때문에 천국을 소유할 수 있음에 행복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로해 주심에 행복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해 주시니 행복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