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kofiev Flute Sonata D major Op.94 Allegro con brio 1
프로코피예프(SERGE PROKOFIEV)-러시아 1891~1953
"프로코피이프는 서양의 음악가와 동양의 음악가를 이어주는 유일한 고삐였다." 거물 프로코피예프는 20세기의 음악적 바벨탑 속에 격리되어 서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고립된 음악성을 결합시키고자 힘쓴 위대한 모더니스트였다.
그의 음악을 정의한다거나 분류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나, 생애를 더듬는 가운데 용해되는 괴작가의 예술 세계를 생생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생애
1891년 4월 23일, 손초프가에서 영지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난 프로코피예프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피아노의 기초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5세 때 이미 <인도풍의 갈롭>이라는 피아노곡을 작곡, 천재적인 재능을 과시했으며, 8세 때 오페라 <거인>과 <무인도>를 만들었다.
1902년 모스크바에서 글리에르로부터 작곡을 배웠고, 오페라 <페스트 유행기의 주연>로 글라주노프에게 인정받아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 후예도 오페라 <물의 요정>을 작곡하는 등 창작 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1908년 (현대 음악의 저녁)이라는 서클에 가입하여 악식론·지휘법 및 피아노 연주를 배우는 한편, 작품 발표의 기회도 잦았다.
1909년 유명한 <악마적 암시> 및<피아노를 위한 4개의 소곡>을 작곡, 이듬해 처음 유르겐손 회사에서 출판되었다. 1914년에는 음악원의 피아노과와 지휘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외국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 중 라벨과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을 직접 체험한 한편, 발레 음악에 대한 공부도 할 수 있었다.
귀국 후 디아길레프 발레단을 위한 <알라와 롤리>와 <신포니에타>를 만들어 디아길레프에게 갔으며, <알라와 롤리>는 디아길레프의 권유로 <스키타이 모음곡>으로 개작하였다.
또, 디아길레프와 함께 발레곡 <어릿 광대>를 만들었으며, 이어 오페라 <도박자> 및 <고전 교향곡> <그들은 7명> 등을 작곡하였다.
'10월 혁명' 후 한때 어머니가 있는 카프카스에서 소요하다가, 1718년 새정권의 허가를 받아 일본에 도착, 도쿄 데이코쿠 제국 극장에서 연주회를 마친 후 즉시 미국으로 망명했다.
망명 후 프로코피예프는 주로 시카고 등지를 무대로 연주 활동에 전념하다가 1919년 오페라 <3개의 오렌지에의 사랑>에 이어 <헤브라이의 주제에 의한 서곡>을 작곡하였다. 이듬해부터 캐나다·파리·런던 등지에서 순연 활동을 하다가 오페라 <불꽃의 천사>를 작곡하였고, 1923년 파리로 이주하였다.
파리 이주 후에도 프로코피예프는 세계 각지로부터의 순연 요청이 잇달아 창작 활동을 기차 안에서까지 할 정도였다. 1927년에는 레닌그라드를 방문, 14년 만에 고국에서 감격적인 연주 활동을 가졌다.
이 무렵 <교향곡 제3번> <방탕한 아들>에 이어 <교항곡 제4번>을 작곡,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50주년 기념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프로코피예프는 변함없는 세계 각지에서의 인기와 순연 요청으로 모스크바, 뉴욕, 파리 등지를 돌았고, 틈틈이 펜을 들어 소련 영화 <키제 중위>의 음악, <2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이집트의 밤> 등을 작곡하였다.
1935년에는 마드리드를 거쳐 포르투칼·모로코 ·알제리 ·튀니스 등지까지 연주여행을 떠났으며, 같은해 유명한 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에트>를 작곡한데 이어 <피터와 늑대> <에프게니 오네긴> <보리스 고두노프> <스페이드의 여왕>등 많은 걸작을 써냈다.
1937년에는 <10월 혁명 20주년 기념 칸타타>를 만들었고, 이듬해 오페라 <세미욘 코트코> <수도원에서의 약혼>외에도 유명한 부수 음악 <햄릿> 등을 썼다. 또, 1941년에는 레닌그라드의 키로프 극장의 위탁으로 발레곡 <신데렐라>를 썼고, 독일군의 침공 때에는 카프카스로 피난, 오페라 <전쟁과 평화> <현악 4중주 제2번>을 만들기도 했다.
1949년 <첼로와 피아노의 소나타>에 이어 <겨울의 화톳불> <평화의 수호>등의 작곡 및 <진실한 인간의 이야기><전쟁과 툉화>의 개작 등에 힘쓰다가 1953년 3월 4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하였다.
작품 세계
프로코피예프는 본능적인 직감과 자발적인 창의성으로 곡을 만드는 타입의 작가로서, 현대 작곡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정한 시스템의 구축이나 이론적 탐구, 어떤 악파의 창립 등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간단 명료하고 만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서정성을 의도한 만년의 노력은 바로 음악이 만인의 가슴속의 보편적 언어임을 확인하려는 그의 작가적 지향점이었다. 또한, 한편으로는 초기 스타일의 실험적인 시도도 때때로 혼용시킴으로써 단순히 숫적으로만 많음을 추구하지 않은 대가적인 면모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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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2.0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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