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曠野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梅花香氣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廣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육사 시집》(1946)
시 <광야>는 우리 민족의 이상이 무엇인가를 제시한 시로, 한국시 중 스케일이 가장 큰 작품이다. 이 시가 씌어진 일제강점기와 연관하여 이 시의 주제를 '광복의 염원'으로 본다면, 이 시의 근본적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 민족의 이상은 자주정신의 확립이고, 실지 강토失地疆土의 회복이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후 600여 년 동안 우리는 민족의 이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왔다. 한반도에는 '광야'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육사가 노래한 '광야'가 어디를 염두에 두고 썼는지를 생각하면 시인의 집필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해질 것이다. 이육사를 '예언자적 시인'이라 한다. '예언자적 시인'이란 작품을 통해 일제 말엽 가혹한 정책에 저항하면서 조국의 미래상을 제시한 시인을 말한다. 한국 시사에서 이육사, 윤동주, 심훈 등을 '예언자적 시인'으로 보는 것은, 그들의 작품이 현실에 대한 저항과 함께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 <광야>의 제5연에서 미래상의 제시와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다시 읽는 한국의 명시」 김원호 지음
맹태영 옮겨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