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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1월 14일 (음력 10월 6일) 고수부님 선화일에 맞추어 『 고부인신정기(高夫人神政記) 보주본(補註本) 』을 출간하고자 합니다. < 보주본(補註本)은 말 그대로 원문을 바탕으로 부족한 설명과 주석을 보충한 판본> 이라는 의미입니다.
요즘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 이 번에 고부인신정기를 정리하면서 대순전경 판본에 따른 고수부님 관련 성구 변화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보주본(補註本) 서문과 대순전경 판본에 따른 성구 추가 및 변경을 올리니 참고하세요
고부인신정기(高夫人神政記) 보주본(補註本)을 출간하며
증산계열(甑山系列) 신앙을 선천(先天)의 종교와 구별 짓는 가장 특징적인 교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수부(首婦)이다. <수부(首婦)>라는 명칭과 그에 부여된 교리적 기능은 증산계열 신앙에서 매우 독특한 개념이다. 증산천사(甑山天師)께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집행하시는데 “수부(首婦)가 있어야 한다” 고 하셨다. 또한 선천의 어떤 종교 지도자도 자신의 부인(夫人)에게 예(禮)를 양보하는 의식(儀式)을 집행한 적이 없으며, 자신의 부인(夫人)에게 무당도수(巫堂度數)를 내려 부인으로 하여금 신정공사(神政公事)를 집행하게 한 적이 없다. 이렇듯 고수부(高首婦)께서는 증산계열 신앙(信仰)의 역사 및 교리(敎理)에 매우 중요한 위상을 지니신 분이다.
현재의 증산계열 교단은 고수부를 종통(宗統)의 계승자이자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는가의 여부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으면 대략적인 계통 구분이 가능하다. 고수부께서 마지막 생애를 보내신 오성산(五聖山) 교단을 비롯하여 『대순전경(大巡典經)』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하는 증산교 계열과 증산도(甑山道) 및 그 계통의 일부 교단에서는 고수부를 높은 신앙적 위상으로 받들고 있다. 반면 『전경(典經)』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 일부 계열에서는 수부도수(首婦度數) 자체는 인정하지만, 고수부를 종통의 계승자나 독립적인 신앙대상으로 받들지는 않는다. 증산계열의 대표적인 두 경전 계통인 『대순전경(大巡典經)』 계열과 『전경(典經)』 계열을 비교하면, 고수부의 종통적·신앙적 위상에 대해서는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차이를 보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증산계열에서 수부(首婦)가 가진 위상(位相)과 고수부(高首婦)께서 보여주신 희생, 도덕(道德)과 중생구제(衆生救濟) 등 많은 신앙인들에게 귀감(龜鑑)이 되는 삶이 고수부(高首婦)에 대한 경배의 이유가 아니라, 증산계열 신앙의 역사에서 “누가 종통(宗統)인가”, “누가 증산천사의 정통 계승자인가” 하는 후대 신앙인(信仰人)들의 종통관(宗統觀)에서 비롯되었다.
고수부께서 삶에서 실천하신 도덕(道德)과 희생(犧牲) 자체보다 종통론이 앞세워지면서 한쪽에서는 자기 교단의 종통적 정당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고수부의 위상을 강조하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별도의 종통 계승자를 세우면서 고수부의 종통적 위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종통관은 교단사(敎團史)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자신의 교단이 종통(宗統)이라는 시각에서 해석하게 하였고, 그 종통론과 배치되는 사실이 상대적으로 축소되거나 선택적으로 기록되는 경우도 나타났다.
심지어 고수부(高首婦)를 신앙하는 교단(敎團)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였다. 고수부께서 오성산(五聖山)에서 “삼변(三變)이 성국(成局)”이라 하시고 여러 천지공사를 행하셨지만, 『고부인신정기(高夫人神政記)』에서는 이 시기를 ‘은거(隱居)’라 기록하였다. 이러한 표현은 후대에 그대로 인용되고 확대·재생산되어, 공공 학술정보에서도 고수부께서 오성산에서 은둔생활을 하셨다고 서술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오성산 시기의 여러 기록을 살펴보면, 이 시기를 단순한 은거생활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이에 이번 보주본(補註本)에서는 관련 기록을 상호 비교하여 그 실상을 다시 살펴보고자 하였다.
고수부(高首婦)의 사진(寫眞)도 전(傳)해지고 있으며 묘소(墓所)도 꾸준히 관리되고 있지만, 고수부를 신앙하는 교단의 신도 가운데서도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부인신정기(高夫人神政記)』는 『대순전경(大巡典經)』의 판본 변화, 특히 고수부(高首婦) 관련 기록의 확대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대순전경』의 판본 변화를 살펴보면, 1926년 『증산천사공사기(甑山天師公事記)』와 1929년 『대순전경』 초판에는 고부인(高夫人)의 안질(眼疾) 치료와 무도(巫度), 세 살림 등에 관한 기록이 일부 나타난다. 1933년 재판에서는 “내의 일은 수부(首婦)가 들어야 되는 일이니”라는 말씀과 무당도수(巫堂度數) 등 수부의 역할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1960년에 간행된 『대순전경』 5판까지의 고부인 관련 기록은 수부가 천지공사(天地公事)에 참여하고 무당도수를 받으며 세 살림을 맡는다는 내용 등을 중심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1963년에 이정립(李正立)이 『고부인신정기』를 간행하면서 고부인의 종교적 위상과 역할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많은 기록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 책에는 증산천사(甑山天師)께서 고부인에게 “이로부터 천지대업(天地大業)을 네게 맡기리라”, “장차 천하사람의 두목이 되리니”, “곧 내가 너 되고 네가 나 되는 일이니라”라고 말씀하신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고부인이 천사의 배 위에 걸터앉아 칼로 배를 겨누며 “나를 일등으로 정하여 모든 일을 맡겨 주시렵니까”라고 다짐을 받고, 천사께서 이를 허락하셨다는 내용 등 고부인의 지위와 권한을 크게 강조하는 기록들도 다수 실려 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기록들이 『고부인신정기』가 간행된 지 2년 뒤인 1965년 『대순전경』 6판에 전부 수록되었다는 사실이다.
호칭의 변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순전경』6판의 이전 판본에서도 ‘수부(首婦)’라는 명칭 자체는 이미 사용되고 있었으므로, 수부(首婦)’가 6판에서 새롭게 등장한 명칭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고부인신정기』에서는 및 『대순전경』5판까지는 ‘고부인(高夫人)’ 또는 ‘부인(夫人)’이라 기록한 데 비하여, 『대순전경』 6판에서는 ‘고수부(高首婦)’ 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고부인’이 고판례(高判禮) 개인에 대한 일반적인 존칭의 성격이 강하다면, ‘고수부(高首婦)’는 고판례(高判禮)를 천지공사에서 특별한 지위와 역할을 가진 ‘수부(首婦)’로 규정하는 교리적 성격이 더욱 뚜렷한 명칭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당시 전북 김제 지역의 증산계열 교단은 오늘날과 달리 지도자와 종통(宗統), 구원의 법방(法方) 등을 둘러싸고 여러 교단이 분립·경쟁하였으며, 교단의 통합과 분열, 신도들의 이동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시기에 『고부인신정기』와 『대순전경』 6판에서 고수부의 종통적 위상을 강조하는 기록이 집중적으로 증보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상규의 연구[1]에 따르면, 1956년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정립의 『증산대도회요령』에는 봉도식에서 고판례가 설위되지 않았으나, 1966년부터 수정·증보된 것으로 추정되는 『증산교요령』의 봉교식에서는 고판례가 증산천사의 오른쪽에 설위되어 있다. 이는 1963년 『고부인신정기』의 간행과 1965년 『대순전경』 6판에서 나타난 고수부 관련 기록의 확대와 시기적으로 궤를 같이한다.
고수부(高首婦)님에 관한 초기 문헌으로는 『선정원경(仙政圓經)』(작성 연도 미상), 『고부인신정기(高夫人神政記)』(1963) 그리고 『고사모신정기(高師母神政記)』(1968)가 있는데 이들 문헌 모두 국립중앙도서관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 이번에 출간하는 『고부인신정기(高夫人神政記) 보주본(補註本)』은 『고부인신정기(高夫人神政記)』의 내용에 여러 설명을 덧붙이고『선정원경(仙政圓經)』그리고 『고사모신정기(高師母神政記)』의 내용 일부를 참조하여 비교·인용하였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 남주(南舟) 이정립(李正立)이 손으로 기록한 『고부인신정기(高夫人神政記)』를 영인하여 수록하였다. 부디 다른 초기 기록인 『선정원경(仙政圓經)』, 『고사모신정기(高師母神政記)』도 국립중앙도서관에 조속히 등록되기를 바란다.
부디 이 책이 증산계열의 여러 도생(道生)님들에게 신앙(信仰)에 도움이 되기를 기원하며, 이 책을 기록한 남주(南舟) 이정립(李正立) 선생에게 감사 인사를 올린다. 고수부(高首婦)의 선화일(仙化日)인 음력(陰曆) 10월 6일에 이 책을 출간하게 됨을 고수부(高首婦)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恩惠)라 여기고 깊이 감사드린다.
[1] 박상규, 「대순 신앙의 주문 변화: 고증을 중심으로」, 『대순사상논총』 제44집 , DOI 10.25050/jdaos.2023.44.0.1`
대순전경 판본에 따른 고수부 관련 기록
증산천사공사기(甑山天師公事記) (1926년 3월 5일)
정읍(井邑) 고부인(高夫人)이 안병(眼病)으로 고통(苦痛)하고 차경석(車京石)의 장남(長男) 희남(熙南)이 와병(臥病)함으로 차윤경(車輪京)이 민망하여 천사(天師)께 뵈옵고 그 사유(事由)를 품(稟)하려고 …. 대흥리(大興里)에 이르사 고부인(高夫人)과 희남(熙南)의 병(病)은 다 손으로 어루만져 낫게 하시니라. (94~96쪽)
대순전경(大巡典經) 초판(1929년 7월 30일)
(3장 94절) 대흥리에 이르시어 고부인(高夫人)의 안질(眼疾)을 낫게 하시고 인(因) 무신납월공사(戊申臘月公事)를 행(行)하시니라
(6장 34절) 음(陰)과 양(陽)을 말할 때에 음(陰)을 먼저 읽나니 이는 지천태(地天泰)니라 하시며 또 가라사대 약장(藥藏)은 곧 안장롱(安葬櫳)이며 또 신독(神櫝) 이니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종이를 뜯을 날이 속(速)히 이르러야 하리라 하시니라
(6장 60절) 또 박공우(朴公又)에게 곤봉(棍棒)을 들리사 경석(京石)을 난타(亂打)하며 마음을 변(變)치 아니 하겠느냐 하여 다짐을 받으시고 고부인(高夫人)에게 무도(巫度)를 붓치시니라.
(12장 1절) 무신(戊申)에 선생(先生)이 고부인(高夫人)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을 변개(變改)함이 없겠느냐" 대(對)하여 가로되 "어찌 변개(變改)할 리가 있사오리이까." 선생(先生)이 다시 글 한수를 외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무어별시정약월(無語別時情若月) 유기래처신통조(有期來處信通潮)」(12장 1절)
(12장 2절) 또 고부인(高夫人)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없으면 여덟가지 병(病)으로 어떻게 고통(苦痛)하리오. 그중에 단독(丹毒)이 크리니 이제 그 독(毒)기를 제거(除去)하리라" 하시고 그 손등에 침을 바르시니라. (12장 2절)
(12장 3절) 또 일러 가라사대 "내가 없으면 그 크나큰 세 살림을 어떻게 홀로 맡아서 처리(處理)하리오" 하시니 고부인(高夫人)은 어느 외처(外處)에 출행(出行)하실 말씀으로 알았더라. (12장 3절)
대순전경(大巡典經) 재판(1933년 7월 15일)
(3장 94절) 대흥리에 이르사 고부인의 안질을 낫게 하시고 당신이 그 안질을 하롯밤 대신하야 앓으신 뒤에 인하야 무신납월 공사를 행하시니라
(4장 21절) 또 가라사대 내의 일은 수부가 들어야 되는 일이니 네가 일을 하랴거든 수부를 들여세우라 하시니라 경석이 당신을 뫼시고 대흥리에 도라와 그 이종매 고씨를 천거하니 이날이 동짓달 초사흔날이러라
(4장 51절) 하루는 당신이 경석을 명하야 세숫물을 가저오라 하시니 경석이 물을 가저다 올니고 밖으로 냐가거늘 당신이 고부인을 돌아보시며 경석의 뒤를 가라처 가라사대 “저 살기를 보라 자칫하면 일이 낭패니 조심하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그대 세 식구 먹은 밥값을 후히 갚아야 하리라” 하시니라
(4장 55절) 당신이 고부인을 보시고 가라사대 “저기 앚은 저 양반은 사람 없어 어찌하랴” 하시니 경석이 여쭈기를 “제가 도와 한 가지 하려 하나이다” 가라사대 “혼자 하는 일은 못 되나니라”
(6장 34절) 음과 양을 말할 때에 음ㅅ 자를 먼저 읽나니 이는 지천태니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약장은 곳 안장농이며 또 신주독이니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종이를 띁을 날이 속히 이르러야 하리라 하시니라 그 뒤에 대흥리에 가사 고부인다려 이르사대 약장은 곳 네의 농바리가 되리라 하시니라
(6장 63절) 당신이 고부인으로 하여금 춤추게 하시고 친히 장고를 치시 가라사대 이것이 천지굿이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네가 일등 무당이니 이 당 저 당 다 버리고 무당의 집에서 빌어야 살리라 하시고 인하야 무당 도수를 붙이시니라
(6장 70절) 이날 모든 일을 마치시고시고 사흔날 고사를 지내려 하실새 차문경이 술을 취하야 역모한다는 소리를 크게 외치니 이 말이 쳔원 병참에 들니어 군대가 출동하려 하는지라 당신이 알으시고 고부인과 경석다려 일너 가라사대 너희는 집을 지키고 나를 가름하야 내일 자정에 문틈을 봉하고 모든 제사 반찬을 화로에 구으며 술병은 막개만 빼고 지성으로 심고하라 이것이 곳 고사니라 하시고 떠나시니라 사흔날 새벽에 고부인과 경석이 명하신 대로 행한 뒤에 날이 밝으니 무장한 군대 수십 명이 몰려와서 당신을 찾다가 엇지 못하고 돌아가니라
대순전경(大巡典經) 삼판(1947년 12월 22일)
하루는 고부인(高夫人)으로 하여금 춤추게 하시고 친(親)히 장고(長皷)를 치사 가라사대 이것이 천지(天地)굿이니 너는 천하일등(天下一等) 무당이요 나는 천하일등재인(天下一等才人)이라 이당(黨) 저당(黨) 다 버리고 무당(巫堂)의 집에서 빌어야 살리라 하시고 인(因)하여 무당도수(巫堂度數)를 붙이시니라(4장 103절)
대순전경(大巡典經) 4판(1949년 2월 16일)
대순전경(大巡典經) 5판(1960년 5월 20일)
대순전경 3판과 내용이 동일함
고부인신정기(高夫人神政記)에 기록된 후 대순전경(大巡典經) 6판(1965년 12월 22일)에 기록된 성구
* 고부인신정기에는 “고부인(高夫人)”이란 존칭이 사용되었는데 대순전경(大巡典經) 6판에서는 “고수부(高首婦)”란 존칭을 사용하였다.
(고부인신정기) 동짓달 초(初) 사흗날 천사께서 고부인(高夫人)을 맞아 결혼(結婚)하실새 부인(夫人)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만나려고 십오년(十五年) 동안 정력(精力)을 들였나니 이로부터 천지대업(天地大業)을 내게 맡기리라」하시고 인하여 부인(夫人)`을 옆에 끼시고 붉은 책과 누른 책 각 한 권씩을 앞으로부터 번갈아 깔며 그 책을 밟으며 방에서 마당에까지 나가사 남쪽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네 번 절하라 하시고 다시 그 책을 번갈아 깔며 밟아서 방으로 들어오시니라
(3장 31절) 동짓달 초(初) 사흗날 천사께서 고판례(高判禮)를 맞아 결혼(結婚)하실 새 새 수부(首婦)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만나려고 십오년(十五年) 동안 정력(精力)을 들였나니 이로부터 천지대업(天地大業)을 내게 맡기리라」하시고 인하여 수부(首婦)를 --- 이하 동일
(3장 32절) 인(因)하여 수부(首婦)에게 모든 일을 가르치시며 문명(文命)을 쓰실 때에도 반드시 수부(首婦)의 손에 붓을 쥐게 하시고 천사(天師)께서 등 뒤에 겹쳐 앉으사 수부(首婦)의 손목을 붙들어 쓰이시니라
(3장 127) 천사(天師)께서 매양 고수부(高首婦)의 등을 어루만지시며 가라사대 「너는 복동(福童)이라 장차 천하사람의 두목이 되리니 속히 도통(道通)을 하리라」 하시니라
(3장 128)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차경석(車京石)에게 명하사 세수물을 가져오라 하시니 경석(京石)이 세수물을 가져다 올리고 나가거늘 천사(天師) 경석(京石)을 손가락질하며 고수부(高首婦)에게 일러 가라사대 「저 살기(殺氣)를 보라 경석(京石)은 만고대적(萬古大賊)이라 자칫하면 내 일이 낭패(狼狽)되리니 극히 조심(操心)하라」 하시니라
(4장 13절) 구릿골에 계실 새 하루는 황응종(黃應鐘)이 와서 뵈옵고 정부인(鄭夫人)에 관한 친명(親命)을 전하거늘 천사(天師)께서 형렬(亨烈), 자현(自賢), 보경(甫京), 공숙(公淑)등 여러 종도(從徒)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가정사(家庭事)는 친명(親命)대로 처리하노니 너희들이 증인(證人)을 설지니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공사(公事)에는 수부(首婦)가 있어야 하나니 수부(首婦)를 천거하라 하시니 형렬(亨烈)이 둘째딸로 하여금 수종(隨從)들게 하니라
(4장 37절) 십이월(十二月) 초 하룻날 대흥리(大興里)에서 백미(白米) 한섬을 방에 두시고 백지로 만든 고깔 이십여개(二十餘個)를 쌀 위에 놓고 고수부(高首婦)으로 하여금 종이에 글을 쓰이사 불사르시고 가라사대 「불과 물만 가지면 비록 석산(石山)바위 위에 있을지라도 먹고 사느니라」하시며 그 백미로 밥을 지어 이날 모인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니라
(4장 64절)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종도(從徒) 십여인(十餘人)을 뜰 아래 늘여 세우신 뒤에 고수부(高首婦)와 더불어 마루에 앉으사 차경석(車京石)을 명(命)하여 망치를 들리고 천사(天師)와 수부(首婦)를 치며 동상례(同床禮)를 받게 하지니 수부(首婦)가 방으로 뛰어 들어가며 가로대 죽으면 한번 죽을 것이요 두 번 죽지는 못하니라 하시니 천사(天師)께서 크게 칭찬(稱讚)하시고 다시 안내성(安乃成)에게 망치를 들리사 경석(京石)을 치며 무엇을 하려느냐고 물으시니 경석(京石)이 역모(逆謀)를 하겠다고 대답(對答)하는지라 이에 수부(首婦)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 나이는 스물아홉이요 내 나이는 서른여덟이라 내 나이에서 아홉 살을 감하면 내가 너 될 것이요 네 나이에 아홉 살을 더하면 네가 나 될지니 곧 내가 너 되고 네가 나 되는 일이니라」하시니라
(4장 66절)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반드시 누우신 뒤에 수부(首婦)로 하여금 배 위에 걸터앉아 칼로 배를 겨누며 「나를 일등으로 정하여 모든 일을 맡겨 주시렵니까」라고 다짐을 받게 하시고 천사(天師)께서 허락(許諾)하여 가라사대 「대인(代人)의 말에는 천지(天地)가 쩡쩡 울려 나가나니 오늘의 이 다짐은 털끝만치도 어김이 없으리라」하시고 이도삼(李道三), 임정준(林正俊), 차경석(車京石) 세 사람으로 증인(證人)을 세우시니라
(4장 67절)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이경문(李京文)을 명하사 천원(川原)에서 일등교자(一等轎子)와 일등하인(一等下人)을 구하여오라 하사 교자(轎子)를 마당에 꾸며놓고 천사(天師)께서 수부(首婦)와 더불어 나란히 앉으사 구릿골로 가자 하시며 길을 재촉하시다가 정지하시니라
(4장 69절)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태인(泰仁) 새올에 계시면서 박공우(朴公又)를 보내어 경석(京石)을 부르시거늘 경석(京石)이 가 뵈이니 천사(天師)께서 돈을 주시며 돌아가서 쌀을 팔아 놓으라 하셨더니 경석(京石)이 그 돈을 사사(私事)로 써버린지라 그 뒤에 천사(天師)께서 오사 수부(首婦)에게 물어 가라사대 「쌀을 많이 팔았느냐」수부(首婦)가 가로대「알지 못하나이다」천사(天師) 경석(京石)을 불러 물어 가라사대 「일전(日前)에 새올서 네게 돈을 주며 쌀을 팔라하였더니 매씨(妹氏)에게 그 말을 고(告)하지 아니하였느냐」경석이 대하여 가로대 「고(告)하지 아니하였나이다」하거늘 이 뒤로는 천사(天師)께서 모든 일을 경석(京石)에게 부탁하지 아니하시고 바로 수부(首婦)와 의논(議論)하여 조처(措處)하니라
(4장 97절) 팔월(八月) 열 여드렛날 저녁에 천사(天師)께서 말을 타고 대흥리(大興里)에 오사 곧 안중선, 차윤경을 불러 명하여 가라사대 「이 길로 구릿골로 가서 일등교자(一等轎子)와 일등하인(一等下人)을 구하야 날 밝기 전에 당하여 오라 내일 수부(首婦)를 데리고 구릿골로 이사(移徙)하리라」하시니 두 사람이 명을 받고 곧 떠나니라 이튿날 아침에 천사(天師)께서 수부(首婦)에게 일러 가라사대「네가 구릿골로 가면 네 몸이 부서질 것이요 이곳에 있으면 네 몸이 크리니 이곳에 있는 것이 옳으니라」하시고 홀로 떠나사 살포정에 이르러 교자(轎子)를 만나매 드디어 말을 버리고 교자(轎子)에 바꾸어 타시고 구릿골로 가시니라
(4장 100절) 시월(十月)에 천사(天師)께서 구릿골로부터 대흥리(大興里)에 오시어 종도(從徒)들과 함께 밖에 나가사 무를 뽑아 나누어 먹으시며 내일(來日) 고수부(高首婦)를 구릿골로 데려가실 의논(議論)을 하시고 들어오사 수부(首婦)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 털토수와 남바우를 네게 쓰고 우리 둘이 걸어갈지라 우리가 그렇게 걸어서 곳곳을 구경(求景)하며 가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부러워하여 말하기를 저 양주(兩主)는 둘이 똑같아서 천정연분(天定緣分)이로다 하리니 세상(世上) 사람들은 우리를 구경(求景)하고 우리는 세상사람을 구경하며 슬슬 걸어가는 것이 좋으리라」하시더니 그 이튿날 말씀치 아니하시니라
(4장 116절)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마당에 말(斗)을 엎어놓고 그 위에 요를 깔고 왼손에 칼과 오른손에 망치를 들고 앉으사 수부(首婦)로 하여금 땅에 앉게 하신 뒤에 말을 가리키시고 다시 수부(首婦)으로 하여금 칼과 망치를 들고 말(斗) 위에 앉게 하시고 천사(天師)께서 땅에 앉으사 수부(首婦)에게 말(斗)을 가리키시니라
(4장 117절)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남(南)을 등지고 북(北)을 향하여 서시고 수부(首婦)로 하여금 북을 등지고 남을 향하여 서게 하신 뒤에 그 가운데 술상(床)을 차려놓게 하시고 무수(無數)히 글을 써서 술상(床) 위에 놓으시고 수부(首婦)와 함께 서로 절하시니라
(8장 55절) 동짓달에 고수부(高首婦)께서 안질(眼疾)을 앓으시거늘 윤경(輪京)이 구릿골에 가서 천사(天師)께 고하였더니 스무이렛날 밤에 천사(天師)께서 종도(從徒)들을 데리고 오사 저녁밥을 수저를 돌려 함께 먹으시며 종도들을 명하사 「경주용담(慶州龍潭) 대도덕(大道德) 봉천명(奉天命) 봉신교(奉神敎) 대선생전(大先生前) 여율령(如律令) 심행(審行) 선지후각(先知後覺) 원형이정(元亨利貞) 포교(布敎) 오십년공부(五十年工夫)」를 읽게 하시고 천사(天師)께서 수부(首婦)를 팔에 안아 재우시더니 날이 장차 밝으려 할 때에 수부(首婦)께서 잠을 깨어 눈을 뜨니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많이 흘러내리고 인하여 안질(眼疾)이 낫는지라. 수일동안 수부(首婦)의 안력(眼力)을 검사(檢査)하실 새 기(旗) 수십개(數十個)를 세우고 그 아래 한사람씩 세우신 뒤에 사람이 이름을 낱낱이 물어 알게 하시고 또 깃발에 글자를 써놓고 낱낱이 물어 알게 하시고 밤에는 등불을 향하여 불 모양을 물어 분명히 알게 하시더니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입으신 색(色) 저고리를 수부(首婦)에게 입히시고 밖으로 나가서 집을 돌아 뒷문으로 들어오라 하시고 막 들어올 때에 미리 엎어두었던 양푼을 들라 하시거늘 수부(首婦)께서 들어보니 그 밑에 머리털 한 개가 있는지라 그 털을 들고 아뢰니 천사(天師) 가라사대 이제는 염려(念慮) 없다 하시니라
(8장56절) 하루는 고수부(高首婦)의 모친(母親)이 단독(丹毒)을 앓는다는 기별(奇別)을 듣고 근친(覲親)하려 하다가 천사(天師)께서 좀 기다려서 함께 가자 하시므로 마음으로 기뻐하여 기다리시더니 얼마 아니되어서 모친(母親)이 들어와서 아랫방에 앉거늘 천사(天師) 가라사대 「왕대 뿌리에 왕대나고 시누대 뿌리에 시누대 나나니 딸이 잘되도록 축수(祝手)하시라」고 부탁(付託)하시더니 이로부터 단독(丹毒)이 곧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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