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 학교에서 농구 감독으로서 성공한다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OSU의 Thad Matta가 하고 있는 그 일 말이다.
2002년 마이애미 대학과의 경기에서 팀을 National Championship에서 올려놓은,
ESPN 30 for 30 영스타운 보이스의 한 주인공이기도 한 짐 트레셀,
플로리다에서 팀 티보우와 함께 두번의 National Championship에 이어
홈스테잇인 오하이오로 돌아온 얼번 마이어.
두 풋볼 코치는 Thad Matta의 스폿라이트를 앗아가는 이들이다.
팀이 패배하고 성적이 나쁘면 진행되고 있는 농구시즌보다 풋볼 리쿠르팅, 풋볼 싸이닝 데이,
스프링 풋볼에 관심을 금방 돌릴 준비가 되어 있는 Buckeyes 팬들이기도 하다.
미대선 결과의 정확한 예측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네이트 실버의 평가로는
Buckeyes 팬들이 미전역에 가장 많다고 한다
(http://thequad.blogs.nytimes.com/2011/09/19/the-geography-of-college-football-fans-and-realignment-chaos/?_php=true&_type=blogs&_r=0).
그러나 수많은 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팬이 농구를 follow하고 있고 열정적으로 시청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마타의 resume는 인상적이다.
본인의 Alma mater인 버틀러를 NCAA 토너먼트 2라운드에 올려 놓으며
성공적으로 헤드코치를 시작한 이래
재비어에서 3년 연속 NCAA 토너먼트 진출, 마지막 해에는 NCAA 엘리트 에잇에 올려놓았고,
NCAA sanction으로 헤매던 OSU로 코치직을 옮겼다.
마타의 OSU 코치로서의 성공에 기반이되었던 시즌은 2006-07이었다.
하이스쿨 PoY 최고의 센터 유망주로 꼽히던 그렉 오든, 마이클 콘리, 데콴 쿡 등
OSU 역사상 최고의 리쿠르팅 클래스를 데려오며 팀을 NCAA 결승까지 이끌었다.
결과적으로는 2연패를 위해 뭉쳤던 플로리다에 지긴 했으나, 그 시즌 이후 OSU가
단지 풋볼 스쿨이 아니라 농구에서 5스타 선수들과 성공할 수 있다는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마타는 OSU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열어준 그렉 오든과 콘리에게 감사를 표했지만
자신이 길러낸 가장 성공한 선수는 현 필라델피아의 에반 터너라 할 수 있다.
리쿠르팅 랭킹 30-40위대 4스타였던 에반 터너는 팀에 있었던 3년동안 크게 성장하며
NCAA PoY, 네이스미스 트로피 등을 휩쓸었고 NBA 드래프트 2순위로 뽑히기에 이르렀다.
2009-10시즌 이후 2012-13시즌까지 4년 연속 Sweet Sixteen 이상으로 팀을 이끌었고,
2011-12시즌 파이널 포, 2012-13시즌 엘리트 에잇 등 팀을 토너먼트 높은 위치까지
성공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가장 아쉬운 시즌은 2010-11 시즌이었다.
AP 랭킹 1위, 자레드 설린져, 데이빗 라이티, 디블러, 애런 크래프트 등으로 마타의 가장
완벽한 로스터를 꾸렸지만 16강에서 켄터키에 일격을 당하며 분루를 삼켜야 했다.
빅텐에서의 성적은 어떠했는가?
마타가 OSU에 온 이후 5번의 레귤러 시즌 타이틀 4번의 빅텐 토너먼트 우승을 달성했다.
같은 기간 탐 이죠의 미시간 스탯이 3번의 레귤러 시즌 타이틀 1번의 빅텐 토너먼트 우승한 것과 비교한다면
이 기간 동안 빅텐의 킹은 OSU였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해 인디애나 사이트에서 투표했던
탑 3 빅텐코치에 마타가 들지 못하는 등 스폿라이트에서는 철저히 벗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코칭 트리는 더 인상적이다. 릭 피티노, 코치 케이, 탐 이죠 등에 비할 만하다.
애리조나 코치로 있는 션밀러 (재비어에서 함께 어시스턴트), 일리노이의 존 그로스 (OSU에서 함께 어시스턴트).
둘은 마타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매주 연락하는 사이이다.
보스턴 셀틱스의 브랫 스티븐스는 마타 밑에서 처음 코칭을 시작했다. 션 밀러의 동생인 현 데이튼 코치인
아치 밀러, 현 버틀러 코치 브랜든 밀러, 샬롯의 앨런 메이저 모두 마타와 함께 일했던 어시스턴트였다.
Xavier시절 마타의 코치진. 현재는 모두 헤드코치가 되어 있다...
마타의 코칭은 디펜스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디펜스가 오펜스를 창조한다는 것은 마타 팀 오랫동안의
아이덴터티였다. 마타의 그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선수가 현 OSU의 애런 크래프트이다.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 플레이, 포기하지 않고 풋워크로 따라가는 수비, Lazy한 패스를 놓치지 않는 스틸,
부주의한 페네트레이션에 헛점을 놓치지 않고 볼을 strip하는 플레이. 이 모든 것과 함께 투지 넘치는
플레이는 마타가 팀으로 부터 요구하는 것이다. 마타가 하나 더 요구하는 것은 성실함이다.
에반 터너 왈 "Coach Matta always said the nicest cars are always on the road early
because the successful people in the world are up early to work hard.".
마타가 감독하는 순간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마타의 생일날 예전 선수들이 모여서 예고없이 찾아와 집에서 파티를 한 순간이라고 한다.
선수들은 알고 있다. 마타가 2007년 척추 수술 이후 오른쪽 발의 신경을 많이 잃고
자유스럽게 걷지 못하는 장애인 상태지만 팀과 선수들을 위해 리쿠르팅 트립을 다니고 코칭에 누구보다
부지런하다는 것을 (http://www.cbssports.com/collegebasketball/story/17954267/despite-handicap-buckeyes-coach-matta-presses-on-stays-active).
마타의 집에서 Thad's Boys 티셔츠를 입고 모인 예전 선수들.
2014년 1월초 미디어 인터뷰에 몇몇 기자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왜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오렌지볼에 가 있지 않고 여기 있냐고 조크를 했다.
어떤 이들은 풋볼 학교에 있기 때문에 농구 코치로서 설움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하고 UCLA 코치자리가 비었을 때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마타는 매일 OSU에 대한 사랑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고
자신은 National Championship을 학교에 빚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는 칼리파리, 코치 케이, 빌 셀프에 대해 얘기하기 여념없지만
빗겨간 관심 아래서 1960년 이후 달성하지 못한 두번째 National Championship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P.S. 마타의 노력 덕택으로 Buckeyes 팬들의 관심이 늘어난 편이다.
tv 시청률, 라디오 청취율 등으로 조사한 Top 5 Local Fan base (농구)의 순위
1위: 켄터키 (67%), 2위: 루이빌 (58%), 3위: 시라큐스 49%, 4위: OSU (46%), 5위: 멤피스 (41%).
풋볼의 경우는 1위 OSU로 꼽히며 대학 팀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가와 콜럼부스가 얼마나 할것 없는 도시임을 함께 보여준다.
농구 스태디움인 쇼텐스타인 센터에 $13.7 밀리언에 달하는 농구훈련시설, 락커룸 등에 대한 많은 투자를 이끌어 냈다.
물론 마타의 연봉은 $3.2밀리언으로 크게 상승했다. 얼번 마이어의 연봉이 $4밀리언+알파이기 때문에 큰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
첫댓글 NCAA 농구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는 글이 아닌가 싶어 이렇게 스크랩 릴레이로 가져와봤습니다.
훈훈한 내용감사합니다~
생생한 정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