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학자 프리드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가 1888년에 펴낸 저서 《우상들의 황혼: 혹은, 쇠망치로써 철학하는 방법(Götzen-Dämmerung: oder Wie man mit dem Hammer philosophiert)》(《우상의 황혼)》의 원제는 《심리학자의 망중한(Müssiggang eines Psychologen)》이었다. 아랫글은 이 저서에 니체가 붙인 서문의 전문(全文)이다.
암담하고 막중한 과업들을 수행하면서도 명랑성(明朗性)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사소한 재능이 결코 아니다. 그렇거늘 명랑성보다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랴? 과감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오직 힘의 과잉(過剩)만이 힘을 증명할 수 있다. — 모든 가치를 재평가하는 작업, 그런 작업의 제안자에게마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토록 암담하고 엄청난 의문부호, — 운명처럼 막중한 이 과업은 ‘무거워지는 너무나 무거워지는 진지함을 떨쳐내버리도록 태양 아래로 뛰어나가라’고 매순간 작업자를 다그친다. 그러면 모든 수단은 정당화되고, 모든 “경우”는 횡재수(橫財數)가 된다. 무엇보다도 “전쟁”이 그렇다. 전쟁은 여태껏 언제나 지나치게 내면화되고 지나치게 심오해지는 정신들의 가장 현명한 치유법이었다. 왜냐면 상처에도 치유력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식자들의 호기심을 배려하느라 출처를 밝히지 않고 아래에 인용한 문구는 나의 오래된 좌우명이다.
상처는 정신을 키우고 강하게 단련한다.
나에게 더 바람직할 수 있을 또 다른 치유법은 우상들을 청진(聽診)하는 것이다 … 세계에는 실상(實像)들보다 더 많은 우상들이 있다. 이것이 바로 나의 “불길한 눈[目]”이 진찰하고 나의 “불길한 귀[耳]”가 청진하는 세계이다 … 여기서 일단 “쇠망치”로 두들기듯이 질문들을 던져보면, 아마도, 부어올랐을 창자들이 그 질문들에 반응하느라 낼 저 유명한 속 빈 울림소리 — 자신의 두 귀 뒤에 붙은 또 다른 두 귀를 겸비한 사람에게는 참으로 유쾌하게 들릴 소리 — 나처럼 노련한 심리학자 겸 ‘하멜른의 피리 부는 쥐사냥꾼(Rattenfänger)’ 앞에서는 아무리 묵묵부답하려고 애쓰는 창자도 부득이하게 낼 수밖에 없을 유쾌한 소리를 내리라 … 이 논저는 — 제목으로써 암시하듯이 — 무엇보다도 휴식이자 태양흑점이요 심리학자의 망중한(忙中閑)이다. 어쩌면 새로운 전쟁일까? 그러면 새로운 우상들이 청진될까? … 이 단출한 논저는 “장엄한 선전포고”라서 일시적 우상들을 청진하기보다는 오히려 영구적인 우상들을 청진하되 청진기를 대신하는 쇠망치로써 그것들을 두들기듯이 청진할 것이다. — 여태껏 그런 영구적인 우상들보다 더 오래되고 더 고집스럽게 믿겨왔으며 더 과대시되어온 우상들은 없었고 … 그것들보다 더 공허한 우상들도 없었거늘 … 그것들은 여전히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최대규모로 신봉될 뿐더러 특히 가장 확실한 우상들조차도 ‘우상들’로 호명되지 않는다 …
토리노에서, 1888년 9월 30일 《모든 가치를 재평가하려는 시도(Umwerthung aller Werthe)》 제1권을 완성한 날 프리드리히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