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
서영남 전수사 (인천연대 지도자문위원)
서영남 수사님이 수사직을 버렸다는 얘기를 듣고,
정원이 무척 아름다운
마치 도심 속의 공원 같은
만수동 복자수도원에서 나와
송현동 수도국산 밑 낡은 십 몇 평 짜리 아파트를 얻어
이제 재소자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앞으로 무슨 돈으로 무얼 먹고 살아가려고
전국의 재소자는 무슨 돈으로 도우려고
수사까지 내팽개치셨나.
참으로 걱정이 안 되는 게 아닌데
정작 본인은 아무런 걱정도 없으니
하기야 서영남 수사님은
밥하기와 빨래에
김치 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불 꿰매기, 이불 누비기
심지어 그는 옷도 만들 줄 알아
여러 사람에게 여러 벌의 옷을 만들어 준 적이 있는데
그는 이미 혼자 살아가기 위한 모든 일을 할 줄 아는데.
옛날에
목사보다는 신부가 좋고 신부보다는 수사가 좋다는
외로운 사람일수록 진실하다는
시를 쓴 적이 있지만
그 수사마저 팽개친 서영남 수사님 얘기를 들으니
이제 뭐라고 시를 써야하나
수사보다는 그것마저 그만둔 수사가 더 좋다고 해야하나
수사를 완전히 그만 두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해야하나
나는 아직 선생까지 그만 둘 생각은 없노라고 말해야하나
서영남 수사님이 수사직을 버렸다는 얘기를 듣고
참으로 난감하다.
(졸시 ‘서영남 수사님이 수사직을 버렸다는 얘기를 듣고’ 전문)
몇 년전 서영남수사님이 수사직을 그만두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약간 당황스러웠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늘 다 버리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집과 밥과 명예 등 모든 것이 보장된 수도원을 나온 그는 2003년 4월1일에 동구 화수동에 민들레국수집이라는 도시빈민들을 위한 무료식당을 차렸다. 한번 가봐야지 생각만하고 있다가 이번에 ‘신만사’를 핑계로 지난 2월 8일 11시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국수집을 못찾고 지나쳤다. 동네를 한바퀴 더 돈 후에야 찾을 수 있었다. 서영남수사의 의도대로였다. 원래 있던 간판에 흰색을 바탕색으로 칠하고 가장 눈에 안 띄게 노란색으로 민들레 국수집이라고 썼다. 자본주의의 간판은 남의 눈에 잘 띄게 하는 게 그것도 과장해서 띄게 하는 게 목적이지만 민들레 국수집은 일부러 눈에 안띄게 간판을 만들었다. 그게 서수사의 방식이다. 식사하러 오는 손님(?)들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식당이라지만 한 5평이나 될까? 4-5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식탁 두개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다. 그래도 여기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에 백명 이상씩 식사를 하고 간다. 지난 1월 1일은 3백명도 넘게 먹고 갔다. 돈은 받지 않는다. 뜻이 있는 사람만 식당에 놓인 돼지 저금통에 몇백원씩 넣는다. 내가 찾아간 날의 점심 메뉴는 방금 한 따뜻한 밥에 뜨끈한 미역국, 먹음직스런 김치, 생채, 마늘쫑 무침에 닭다리 튀김이었다. 후식으로 귤 몇 개. 웬만한 가정집 반찬보다 훨씬 훌륭하다. 이 모든 것들을 서수사가 직접 요리한다. 서수사는 원래도 요리를 잘하지만 국수집을 차리기 전 요리학원도 다녔다. 음식은 남는 일이 없다. 그때 그때 음식을 새로 하기 때문이다. 노숙자들이 계속 들고난다. 한번 이라도 방문한 사람의 이름은 모두 외우고 있다. 그날도 식사 하러 온 사람, 식사를 마친 사람들의 이름을 계속 불러준다. 그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거기서 비로소 확인한다. 특히 자주 오는 사람은 브이아이피(?) 명단에 올려 특별대접을 한다.
민들레 국수집이라는 식당이름은 처음에 국수를 대접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인데 손님(?)들이 밥을 원해서 시작한지 한 달쯤 후에 메뉴를 밥으로 바꿨다. 모든 노숙자들이 밥 굶는 일이 없는 세상, 간식으로 국수를 찾는 세상이 혹시 올지 몰라 그때를 기다리며 이름은 안고치기로 했다. 토요일부터 다음 주 수요일까지 식당 문을 연다. 일요일은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문을 연다. 대신 목요일과 금요일은 쉰다. 이날도 서수사는 집에서 그냥 쉬는 게 아니고 청송 감호소 등 아무런 연고가 없는 재소자들을 만나러 다닌다. 소위 교정사목인데 사실 국수집 일은 부업(?)이고 교정사목 일이 본업이다. 벌써 십년이 훨씬 넘었다.
서수사는 민들레국수집 말고 ‘민들레의 집’도 운영하고 있다. ‘민들레의 집’은 노숙자를 여러명 한군데에 모아 놓고 살게 하는 형태가 아니라 정착을 원하는 노숙자 개인들이 따로따로 사는 집이다. 화수동과 옥련동 등 여러 군데에 있다. 정착을 원하는 노숙인 개인들에게 집을 얻어주었다. 노숙인들이야말로 개인생활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수사가 겪고 고생한 일들을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다. 밥이 질다고 노숙자들에게 멱살을 잡히고, 술에 취한 노숙자가 식당의 유리창을 깨고 한 일이 부지기수였다.
서수사는 왜 이런 일을 하는가. 서수사는 예수님도 노숙자였다고 믿고 있다.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오는 노숙자들은 하느님이 서수사에게 보낸 분들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니 예수님들을 모시고 예수님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는 일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식당 문에도 ‘하느님의 대사들을 위한 민들레 국수집’이라고 붙여 놨다.
이 많은 봉사를 무슨 돈으로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후원자는 그의 부인과 딸이다. 수도원에서 나온 후 노숙자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다가 그의 부인의 제안으로2002년 12월, 50이 넘어서 결혼했다. 수사와 봉사자로 처음 만난 그의 부인은 원래부터 잘 알던 사이였다. 부인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래서 서수사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왔다고 자랑한다. 동인천 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하는데 수입의 대부분을 민들레 국수집 운영비로 쓴다. 그리고 전국에서 성금과 물품이 답지한다. 어떤 분들은 음식재료나 물건을 국수집 앞에 몰래 놓고 간다. 민들레국수집과 민들레집 대부분의 후원자는 익명이라고 한다. 서수사 얘기가 티브이에 방영된 후(KBS 인간극장) 후원금도 약간 늘었다. <사랑이 꽃피는 민들레 국수집>이라는 책도 썼다. 한 3만권 정도 팔렸다고 하는데 그렇더라도 재정은 늘 부족한 형편이지만 부자들의 생색내기용 후원금이나 정부 지원금은 사양한다. 앞으로도 이웃들의 작은 정성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상계동에 2호점이 생겼고, 부산에 3호점이 생겼다. 그는 생기는 게 있으면 남에게 모두 나누어준다. 내가 찾아간 날도 서수사가 직접 만든 행주를 3개씩이나 내게 줬다. 완전 거꾸로 되었다. 그의 책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함께 간 김영점남동지부장과 점심을 함께 먹고 헤어졌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지만 참으로 부자인 서수사를 만나고 오면서 내 삶은 너무 관념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가정의 가훈이자 국수집 벽에 걸려있던 글씨, “소유로 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것을 삶속에서 직접 실천하며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그의 삶을 잠시 구경하고 온 날, 나는 무엇을 그와 함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은 날이었다.
계좌번호 : 농협 147 - 02- 264772 서영남
서영남수사 미니홈피 주소 : www.cyworld.com/syepeter
첫댓글 민들레 국수집의 정신이 너무 맘에 듭니다! 좌절 속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민들레 국수집은 희망과 용기를 얻는 힘이 될 것입니다. 늘 수고하시는 수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