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매(蘇小妹) 이야기
소순(蘇洵)과 동생 소철(蘇轍), 소식(蘇軾)으로 대변되는 소동파네 집안에 고명양념처럼 누이동생 소소매(蘇小妹)가 등장한다. 더불어 소소매의 선시(禪詩) 실력을 엿볼 수 있는 일화(逸話)가 있다.
소동파(蘇東坡 1036~1101)와 황산곡(黃山谷 1045~1105)이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놀고 있었다. 산곡 황정견(黃庭堅)은 황룡조심(黃龍祖心 1025~1100)선사의 법을 이은 시인거사인지라 법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소소매가 등장했다. 둘 다 아연 긴장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심심하면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서 사람 떠보기를 좋아한 까닭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밝은 달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윽고 시를 읊기 시작했다.
산들바람에 가녀린 버들(輕風□細柳)
으스름 달빛에 매화 (淡月□梅花).
그러고나서 두 사람을 보고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으며 한 수 가르침을 청했다. 네모 안에 어울리는 글자를 넣어달라는 거였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실력테스터용 시험문제에 가깝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남의 집에 놀러온 죄로 먼저 황정견(黃庭堅)이 ‘무(舞)’와 ‘은(隱)’을 이용하여 답안을 작성했다.
輕風舞細柳 경풍무세류
淡月隱梅花 담월은매화
산들바람에 가녀린 버들이 춤추고(舞)
어스름 달빛에 매화가 숨었네(隱)
하지만 돌아온 소소매의 평은 “너무 통속적이다”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서 오빠인 소동파(蘇東坡 1036~1101)가 몇 번 생각 끝에
‘요(搖)’와 ‘영(映)’을 넣었다.
輕風搖細柳 경풍요세류
淡月映梅花 담월영매화
산들바람에 흔들리는(搖) 가녀린 버들
으스름 달빛에 비치는(映) 매화
그런데 누이동생은 이를 보고는 더 혹평을 했다.
“매우 실질적이군요. 이전 사람들이 상투적으로 많이 쓴 글자라 새로운 맛도 없고...”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입맛을 다실뿐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부(扶)’와 ‘실(失)’을 넣었다
輕風扶細柳 경풍부세류
淡月失梅花 담월실매화
산들바람은 가녀린 버들가지를 붙들고(扶)
으스름 달빛은 매화를 사라지게 하네(失)
두 사람 모두 “절묘하다” 면서 찬탄을 금치 못했다. 소소매가 보탠 두 글자는
소동파와 황정견의 안목보다도 문학적으로, 선적(禪的)으로 수승(殊勝)했다.
‘부(扶)’자를 사용한 것은 형체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바람의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었고
‘실(失)’자를 이용하여 담담한 달빛과 매화를 하나로 만들어 버린 솜씨를 보였다.
영락없이 드러내면서 숨기는 현은(現隱)의 중도법문(中道法門)이 된 것이다.
첫댓글 공부는 끝이 없고...자주 들리겠소
글자 하나 의미가 크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