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오동회(5급양대전우회)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탑골공원과 노인들^^
경복궁신사 추천 0 조회 308 09.08.10 16: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패티김 - 가시나무새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대한독립 만세~ 만세~ 만세~ 

 

  일제 치하(36년)에서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1919년 3월 1일 우리 선조들이 목이 터져라고 외쳤던 그 곳 '탑골공원(구.파고다공원)'은 서울시내 한 복판 종로2가 38-1번지에 있다.

 

백과사전에는,

탑골공원(塔一公園) 으로 명칭되었고 한국 최초의 공원이라 소개된다.

   -사 적: 제354호.         -지정년도: 1991.10.25.   -소재지: 서울 종로구 종로2가 38-1  

   -시 대: 대한제국시대.  -면     적: 1만 5,720㎡    -분   류: 독립유적지

 

본문에는, 

탑공원.탑동공원.파고다공원이라고도 하며, 1991년 10월 25일 사적 제354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1만 5,720㎡이다. 고려시대에는 흥복사(興福寺)가, 조선시대 전기(1464)에는 원각사(圓覺寺)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연산군이 원각사를 폐사하고 중종 때 건물이 모두 철거되면서 빈터만 남아 있다가, 1897년(광무1년) 영국인 고문 J.브라운이 설계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공원으로 꾸며졌다. 1919년 3.1운동의 발상지로 더욱 유서깊은 탑골공원은 현재 시민의 휴식광장으로 공개되어 있다.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팔각정을 중심으로 '원각사지 10층 석탑(국보2호)' 원각사비(보물3호). 앙부일구(仰釜日具:해시계) 받침돌 등의 문화재와, 1980년에 제작.건립한 3.1운동기념탑. 3.1운동벽화. 의암 손병희 동상(1966년 건립). 한용운 기념비(1967년 건립) 등이 있다.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 독립만세 사건의 현장 모습^^

 

 

 

 

 

 

 

   대한민국 대다수의 국민들은 '탑골공원'에서 '민족대표 33인''만세삼창'을 하며 독립만세를 부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민족대표 33인은 유혈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탑골공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태화관"에(泰和館: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소재) 모여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하고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였다.

 

 

 서울시에서는 그 동안 공원의 북서쪽 둘레에 있던 파고다아케이트가 임대기간 만료로 철거됨에 따라 1983년 그 자리에 투시형 담장을 설치하고, 서문과 북문등 사주문을 복원하였으며, 공원 부지도 확장.정비하여 조상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사적공원(史蹟公園) 으로 면모를 일신시켰다. 1992년 이곳의 옛 지명을 따라 파고다공원에서 '탑골공원'으로 개칭하였다.

 

 

 

                                                                    탑골공원 삼일문 전경^^

 

 

   나는 종로2가동 인근에 업무차 갔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탑골공원에 들렸다. 그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나이 많으신 노인분들이 삼삼오오 둘러 앉아 소일하시는 모습이 보였고 고작 삼일문만 지칠수 밖에 없었다. 그 삼일문 앞에는 자전거에 많은 풍선과 태극기를 꽂아 놓고 태극기 파시는 할아버지 모습이 탑골공원의 트래이드 마크처럼 항상 같은 자리에 계셨다. 그리고 우리 조상님들의 혼이 담겨진 역사적인 이 곳은 전국의 초등학생들이 서울에 수학여행을 올라오면 꼬~옥 들리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기도하다. 

 

 

 

          삼일문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약속장소 이기도 하다.

 

 

        가운데 제일 큰 깃발이 태극기다. 할아버지는 부재중^^

 

 

 

    탁상용 태극기와 성조기를 사서 사무실에 놓아 보았다^^ 

 

 

 

대한민국 훈장, 대통령 하사품용 넥타이핀, 해병대뺏지, 각종 국기들을 판다^^

 

 

 

    의암 손병희선생 동상과 독립만세를 부른 팔각정이 공원 중심에 위치한다^^

 

 

 

 

                                   의암 손병희선생 동상^^

 

 

 

 

                                          의암 손병희선생 안내표지판^^

 

 

 의암 손병희선생 소개글(동판)^^ 

 여기 서계신 이 어른은 민족의 스승이요 천도교 제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 선생이시다. 비록 일생을 풍운속에서 지났으되 산 같은 대의는 흔들리지 않았고 큰 뜻으로 역사를 움직여 이름을 천추에 드리운이다. 선생은 1861년 4월 초8일 청주에서 탄생하여 22세에 동학에 들어 창생을 제도하려고 포부를 기르더니 34세에는 썩은 정치를 맑히려 혁의 깃발을 들었고 37세에는 교조의 법통을 이어 받았다. 그리다 국치의 날을 만나서는 10년동안 투사를 기르며 때를 기다리더니 1919년 3월 1일 각계대표 33인을 결속하여 국민전체의 피묻은 만세운동을 일으킴으로써 역시민족의 의기를 세계 만방에 널리 떨치고 그로 인하여 철창의 몸이 되어 신고하다가 병으로 보석되어 1922년 5월 19일에 62세로써 환원하시었다. 우리는 정성껏 여기 이마 숙여 절하고 노래를 바친다.

                            정의의 채찍을 쥐고 가시밭 헤치신 이여

                        자유의 햇불을 들고 길을 이끄신 이여

                        겨례의 역사와 함께 길이 사시오리다

 

 

 

                                       의암 손병희 선생을 소개하는 동판^^

 

 

 

 

               3.1운동 기념탑(1980년 제작.건립)

 

 

 

 

 

                        3.1운동 기념탑의 좌측에 세워진 동상^^ 

 

 

 

 

 

                            3.1운동 기념탑 우측에 세운 동상^^ 

 

 

 

 

 

          독립선언서 전문과 민족대표 33인 이름이 새겨져 있다^^ 

 

 

 

 

 

          3.1 운 의의와 배경. 준비. 전개과정^^ 

 

  3.1 운동

  3.1 운동(三一運動)은 일제강점기에 있던 한국인들이 1919년 3원 1일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기미독립운동이라고도 한다. 대한제국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고종 독살설이 소문으로 퍼진 것이 직접적 게기가 되었으며,고종의 장례식날인 1919년 3월 3일에 맞추어 전국적으로 봉기한 독립운동이다. 2개월 가량 전국적으로 폭력시위가 발생하였으며, 일제는 대대적인 학살과 만행으로 탄압했다. 3월 3일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모여들었다.  

 

 배 경

 데라우치 마사타게에서 육군대장 하세가와 요시미치 총독으로 계승된 무단통치는 "3.1독립운동"이라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발생케 했다. 만주 자린에서 망명 독립운동가들이 1918년 말 무오 독립선언을 통하여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였고, 조선 재일 유학생을 중심으로한 2.8 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은 삼일운동은 고종의 독살설로 인하여 일본의 부당한 조선 점령과 폭력에 의한 통치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반감을 갖게 되어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시위는 순수한 평화적 시위였으나 일본군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써 폭력하되었다.

 

  준 비

 민족종교인 천도교의 대표인 손병희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천도교인, 기독교인, 불교도인이 모두 함께 대표로 참여하였다.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기초하였으나, 만해 한용운이 보고는 너무 어려운 한문투인 데다가 내용이 온건하다 하여 다시 쓰기를 자청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최남선의 초안에 춘원 이광수가 교정을 보고 '공약 3장'을 덧붙였다.

 준비 과정에서 일어난 신철에 관한 일화가 있다. 1919년 2월 하순 천도교에서 운영하는 인쇄소 보성사를 급습한 종로경찰서 신철(일명 신승희)은 보성사 사장 이종일이 보는 앞에서 윤전기를 멈추고 <독립선언서>를 빼내어 보았으나 그냥 돌아갔다. 이종일이 최린에게 보고하자 최린이 신철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여 돈을 주며 만주로 떠나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일본 측 기록에는 신철이 그 돈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고, 한국 측 기록에는 그가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3월 3일로 예정된 거사를 3월 1일로 앞당겼다. 2월 28일경 손병희의 집에 모여 '유혈충돌을 피하기 위해' 약속 장소인 탑골 공원에 나가지 않기로 결정하였고, "민족대표 33인이 모일 장소는 태화관(泰和館)"으로 바뀐다. 

 

   기미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성언서는 1919년 3월 1일 3.1운동에 맞추어 민족대표 33인이 당시 일제 강점 하에 있던 조선의 독립을 국내

 외에 선언한 글이다.

 

  독립선언서 낭독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에 모이기로 했던 조선의 민족대표 33인은 늦게 온 사람이 있어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길선

 주.유여대.김병조.정춘수를 제외한 29인이 모였다. 그들은 '태화관'(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소재)에서 '조선이 독립

 국임을 선언'하였고, 모든 행사가 끝난 때가 오후 4시 무렵이었다. 

 

 

                                        독    립    선    언    서  

 1. 우리는 이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 선언을 세계 온 나라에알리어 인류 평등의 크고

     바른 도리를 분명히 하며, 이것을 후손들에게 깨우쳐 우리 민족이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정당한 권리를 길이

     지녀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2. 반만 년이나 이어 온 우리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된 마음을 모아서

     이 선언을 널리펴서 밝히는 바이며, 민족의 한결 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것을 주장하는 것이며, 누구나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인류적 양심이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온 세게가 올바르게 바뀌는 커다란 기회와 운수에 발맞

     추어 나아가기 위하여 이를 내세워 보이는 것이니 이독립선언은 하늘의 밝은 명령이며 민족 자결주의에로 옮아 가

     는 시대의 큰 형세이며, 온 인류가 함께 살아갈 권라를 실현하려는 정당한 움직임이므로, 천하의 무엇이든지 우리

     의 이 독립 선언을 가로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참고문헌: 워키백과(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옛 그대로 옮겼습니다) 

 

 

 

 

 

 

 

 

 

 

 

 조금 안쪽으로 걸어가니 오른쪽에 조그만 연못이 있다. 이 곳에 수련이 수줍은 듯 조그맣게 피어 있었는데 어찌나 이쁘던지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다. 어쩔수 없이 한 컷 찍는다. 물 위에  비친 백일홍 나무가 꽃을 피워서 분홍빛으로 물들인다.  물 속에 비친 백일홍 꽃이여~ 그대는 수련꽃에 질투하고 있는가?

 

 

 

 

 

 

 

    100일동안 피는 꽃이라 '백일홍'이라 이름 지어졌다어르신이 소개한다^^ 

 

 

 

 

 이 곳에서 조금 안으로 들어가 우측으로 '보물3호 대원각사비'가 아담한 기와집에 안치되어 있었었다. 오랜 세월의 풍파에 시달린 탓에 글씨는 보이지 않고 비석 머리부분이 용이 꿈틀대는 듯 용솟음 치는 형태로 조각되어 있다. 받침대는 거북이를 형상화하여 그 위에 받침돌을 하고 碑(비)를 세웠다. 

 

 

                                   보물3호 대원각사비 전경^^

 

 

 

 

 

 동문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이 곳에는 해시계인 '앙부일구' 받침대가 놓여져 있었다. 안내 표시판이 있기에 그런가 싶지 산 위에서 보았다면 아마도 석공이 돌을 자르다 만 듯한 형상이다. 이 것이 그 시대에는 엄청난 화재의 작품이었으리라~ 

 

 

 

          조선시대의 해시계인 '앙부일구' 받침돌이다^^

 

 

 

 

 탑골공원에는 유난히 가문비 나무가 많다. 얼마전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500년 숨결'이 보존된 "조선왕릉 40기" 모두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었다는 보도를 접했었다. 그 왕릉의 주변에는 오래 된 가문비나무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이 나무는 장수하는 나무로 칩엽과에 속한다. 가문비나무 수령으로 보아서는  이 곳에 처음으로 정원을 계획 할 당시부터 영국인 고문 J.M 브라운씨가 조경수로 선정 했었던 듯 싶다. 나는 이 나무를 좋아한다. 가지와 잎들이 운치있게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힘찬 기상을 보이는 듯 하기 때문이다.

 

 

 

               가문비나무의 신록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개량종 구엽초 꽃이 한가롭게 피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 곳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모여 휴식공간으로 활용하는 공원이 되었다. 남루한 옷 차림이 대부분이며 때론 서울역이나 종로3가 지하철역 인근에서 보았던 노숙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또한 깨끗한 옷 차림으로 친구들을 만나서 담소하는 60대 어르신의 모습도 눈에 띤다.

 

 수도권에서도 어르신들이 많이 오신다고 한다. 수원.화성.광주.용인.일산.파주.남양주.의정부.동두천. 더 멀리 전곡에서도 오신다고 한다. 하루 5,000원으로 보내는데는 이 곳이 더할나위 없이 좋다고 하신다. 친구들과 만나 옛날 얘기도하고 경제적 부담없이 가볍게 점심을 먹고 단성사에서 영화를 보던가 기원에서 바둑 몇 판 두면 하루가 잘 지나 간다고 말씀하셨다. 나이가 많으신(70대후반~80대초반) 어르신들은 봄.여름.가을철에 많고 겨울철은 거동이 불편하고 추워서 나오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나이드신 어른과(양동환회장 친구분들(대전고32회: 71세) 북한산을 등산하면서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나이들면서 집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드시단다.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내로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 소일하고 귀가하면 좋단다. 등산도 일주일에 한 두번이면 족하고 이제는 다리와 무릎에 무리가 오는듯 해서 걷는것도 여의치 않다고 말씀하셨다. 때로는 자신이 왜 살고 있는지 반문하면서 너무도 무의미한(비생산적인 삶을 의미) 삶을 한탄하시던 모습이 떠올려 진다. 그 때 내가 생각했던 것은 젊은시절 다양한 취미 활동을 익혀 놓으면 나이들어 시간 보내기가 수월하지 않을까였다. 그리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나의 자화상"을 상상해 보았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담소하시는 노인 모습^^

 

 

 주위 환경을 둘러보니 좋은 풍경보다는 시선을 피하고 싶은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국가를 위해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셨다가 파편을 맞아 절룩거리시는 '상이용사' 할아버지도 계셨고 월남 파평으로 참전하셨다가 '고엽제병'으로 고생하시는 70대 초반의 어르신도 게셨다.

 

 언젠가 부산에서 사업차 올라오신 '월남파병전우회 부산지부장'님의 고엽제병의 투병기가 생각난다. 점심식사 자리에서 들려주신 얘기다. 몸이 아파서(사지가 뒤틀리는 고통) 치료비로 돈을 쓰다보니 살고 있던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게 됐고 그도 안되어 전세로 물러안고 결국은 삭월세방으로 이사하게 되었단다. 결국은 가족들의 안녕을 위해 비장한 각오로 병아리 50수와 약간의 쌀을 메고 산으로 들어가 가마니 거죽으로 움막을 짓고 구들방에 불을 때어 매일 찜질하고 땀을 빼면서 6개월을 보내니 뒤틀리던 사지가 멈추고 효과를 보았다는 눈물겨운 '고엽제병 투병기'를 누가 알아주랴???

 

 서북쪽 낙원상가에 이르는 도로가에는 많은 분들이 신문지를 깔고 앉아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 아마도 점심때가 되면 인근의 '노인무료급식소'에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하는 어르신들 같았다. 그 곳은 이곳에서 10여미터 거리에 있는데 2층에 서투른 글씨로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라는 3개의 널판지에 붓으로 쓴 간판을 창문에 달아 놓았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는 "당신은 우리의 희망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이 분들의 모습을 찍기가 미안스러워 고민하다가 인근 건물을 찍으며 도둑처럼 슬적 한 컷 했다. 어르신들! 사진찍어 죄송합니다^^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 간판^^

 

 

 

                        노인 무료급식소 2층계단 입구의 팻말^^

 

 

 

           노인들의 행렬은 서쪽문에서  낙원상가 입구까지 이다^^ 

 

 

 이 곳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몇번을 뒤돌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 어르신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삶을 엮어 오신분들이기에 자신의 살아온 세월을 읽고 계시는데 모두가 어려운 인생 말년의 삶을 엮어 가시는 모습으로 비쳐졌고, 10년 20년후에 우리들의 모습이 저 모습은 아닐까? 자문해 보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곳 울타리 동쪽 골목길로 접어 들면 노인들을 상대로 하는 이발소와 음식점들이 낡은 건물에 들어 있는데 이발 요금이 3,500원이라 쓰여있다. 보통 사우나에서 남자머리 컷트하는데 8,000원이니 1/2 의 금액이면 이발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음식점들도 마찬가지다. 우거지국에 밥 한공기와 약간의 반찬을 내 놓고 2,500원을 받는다. 물냉면이

2,000원이고 콩국수가 1,000원이다. 내가 지나칠때는 점심시간이 아니라서 맛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돋군다. 이처럼 노인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여 봉사하는 마음으로 장사 하시는 분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아주 영세하고 가장 서민적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모습과 풍경이 왠지 모르게 좋은 감정으로 다가온다. 이것이 '사람 사는 냄새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KBS 다큐멘터리3일'에 방영되었다는 이발소 광고^^

 

 

물냉면2,000원.콩국수1,000원.비빔냉면2,500원.음식값 맞수? 

 

 

 

       'KBS 다큐멘터리3일' 재 방송분을 저도 봤습니다^^

 

 

 

 

 이 곳 탑골공원에는 외국에서 관광차 한국에 입국한 관광객이 자주 들리기도 한다. 여행사 가이드들이 많은 관광객들을 모시며 열심히 3.1운동의 역사를 설명한다.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들이 일본인들의 침략행위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 걸까? 자문해 본다. 그 네들이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우리 민족만큼 느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 선조님들의 독립에 대한 의지와 결의를 십분이해하고 한국을 출국하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

 

  인사동 골목에서 나와 서문을 통과하여 탑골공원 안으로 들어서니 눈 앞에 못 보던 유리 건물이 한 채가 있었다. 무슨 건물인가 가까이 가보니 마치 주차 타워처럼 만들어 졌고 그 안에 '원각사지 10층석탑'이 있었다. 아니 이건

언제 만들어 놓은거야?  아~ 우리나라 국보2호를 보존하려는 정부(문화재관리청)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과거 내가 본 국보 2호 '원각사지 10층석탑'은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10층 석탑에는 비둘기들이 앉아 산성 성분의 배설물을 쏟아내어 석탑이 지저분하게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원각사지 10층석탑을 자세히 관찰 해 보면 섬세하고 아름답게 다듬어진 예술적인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에 가면 로마시대의 걸작인 '산 프란체스코 아 리파 성당'의 <지복자(至福者)알베르티나: 1675년>를 연상케 하는 탁월한 기교와 아름다운 부처님상을 석탑 중앙에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탑골공원 국보 제2호 '원각사지10층석탑' 표지석^^ 

 

 

 

 

                      국보2호 '원각사지10층석탑 전경^^

 

 

 

                                                    원각사지10층석탑 전면^^

 

 

 

                                               원각사지10층석탑 측면(동쪽)^^ 

 

 

 

          기와집을 연상케 하는 처마와 부처님 상은 우아하고 세밀하게 조각했으며 아래쪽의

          받침대 부분의 조각이 인상적이다.

 

 

 

                                      원각사지 10층석탑 하단부분^^

 

 

 

 

 

       대한민국 만세~ 만세~ 독립만세를 부른 팔각정 전경^^

 

 

 

 

 

                                         일본 경찰과 만세 부르는 여인상^^

 

 

                                     일본경찰 군마대에 끌려가는 여인상^^

 

 

 

                                     만세 부르는 학생들과 일본 경찰^^

 

 

 

  조영신 어린이의 입을 찢는 일본경찰 모습^^ 

 

 

 

 

 

 

 시민이 목이 터지토록 만세를 부르는 모습과 일본경찰^^ 

 

 

 

                                       탑골공원 사적비(글: 이은상)^^

 

 

 

                          종묘앞 공원에서 소일하는 어르신 모습^^ 

 

 

 

 

 나는 탑골공원을 방문하고,

노인에 대하여 많은 생각에 젖어 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어가는 것이고 나이 먹다보면 늙어지고 노인이 되는 것인데 우리 젊은 세대들이 너무도 노인들을 풋 대접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직장에서 모셨던 분도 사업에 실패하고 이제 나이들어 이 곳에 와 계실 수 있는데... 정부에서는 자꾸만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대한 '노인복지정책'을 중.장기적으로 제대로 세워서 시행하고 있는지? 젊은이들이 결혼하여 아기를 낳지 않아 노인들의 나라로 전락한다고 인구문제 전문가는 경고를 하는데 획기적인 '출산장려정책'을 내놓을 수  없는 것인지... 노인들이 많아지면 노인대우 받기도 어려워 질테고 젊은이들에게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지나 않을까? 

 

   분명한 답은

  "젊은 세대들이 경노사상(敬老思想)을 존중하고 나눔사랑을 실천 하는 것이다"는 결론을

   내 나름으로 내어본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