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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같이 허탄한 유령세계-「천년왕국」
1. 시공을 넘나드는 그리스도 영의 사역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모세는 하늘(산)에서 본 식양대로 성막을 지었고, 다윗도 성신의 지시에 따라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짓게 했다(출25:40/ 대상28:12). 성막이나 성전은 지성소, 성소, 마당이라는 3칸 구조를 가진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이다. 이는 영, 혼, 몸을 가진 사람의 구조를 형상화 시킨 상징으로서, 궁극적으로 사람의 속에 오셔서 한 영이 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거룩으로 조성하여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거룩을 날마다 유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이 거하실 ‘거룩한 전’이 되는 것이 창조목적이요, 참예배의 회복이다. 이러한 본을 보이시며 생명으로 살아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주님의 영, 혼, 몸은 성신으로 충만하신 하나님의 전이었다. 그러므로 IX는 곧 하나님이시다.
누구든지 이 IX의 영을 받아 옛사람이 죽고, 다시 살아난 자라면 부활한 자요, 영생을 소유한 자다. 다시 죽을 수도 없다. 이런 자들을 산자라 한다.
<눅20:34~38>
34.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36.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37.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38.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모두 영적인 말들이다. 본문에서 이 세상 사람은 믿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옛사람으로 사는 자들을 말하고, 저 세상은 옛사람이 죽고 장사되어 IX 안에서 새사람으로 살아난 자들을 말한다. 옛사람은 사마리아 여인처럼 갈증을 못 이겨서 계속해서 율법 남편을 바꾸는 자이지만, 새사람은 마침내 참 남편이신 주님을 만나 새살림을 차린 자요, 참 남편이신 주님과 한 영이 되었기에 만족과 기쁨으로 생명을 누리는 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 초림 이전인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도 모두 자기세대에 부활한 자였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이렇게 부활하여 산자들의 대표적 표현이다. 아니!, 무슨 말인가?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가야 죽은 자가 살아날 텐데,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 4천년 동안의 선진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영을 받을 수 있는가? 이것이 비밀이다.
우리는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려는 경향을 버려야한다. 육을 가진 사람은 시간의 한계 안에서 살지만, 하나님에게는 시간이 없다. 영원부터 영원이시다. 시간이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따른 밤과 낮을 계량화하여 정한 약속일뿐이다. 밤낮의 한 묶음은 하루요, 이를 24시간이라 했으며, 하루가 365번 모아져 태양을 한번 공전하면 일 년이라고 계수화한 것이다.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은 시공의 영역을 초월해 계신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만물의 창조주로서, 만유를 운행하시는 전능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벧전1:10~11>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미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의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은 역사 하셨다.
<벧전3:18b~20a>~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그리스도)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여기서 옥에 있는 영들이란 지옥이 아니라(지옥에 간 자들에게 다시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님), 노아 당시의 사단의 세력에게 붙잡힌 자들을 옥에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 때에도 그리스도의 영은 시공을 초월하여 선지자 노아의 속에 들어가서 복음 사역을 도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한 것이지, 시대에 따라 구원의 방법이 다를 수가 없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공로로만 구원은 가능하다.
그 분이 창세전에 설정하신 구원의 원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라는 큰 두 가지 요소이다. 빛은 어두움이 있을 때에만 빛으로서의 가치와 능력을 발휘한다. 오로지 빛만 있는 세계에서는 빛이 무엇인지, 행복과 기쁨과 희락이 무엇인지 차이를 알 수가 없다. 선, 사랑, 의, 거룩, 진실, 지혜와 지식의 충만이신 하나님의 어떠함을, 어두움을 모르는 천사들은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사는 존재들이다.
천사가 인격적 존재이기는 해도 흑암의 속성을 알지 못하기에, 불완전한 존재들인 것이다. 죽을 수가 없는 존재에게 아무리 죽음을 가르치려 해도 이해될 수는 없다. 육의 과정이 없이 처음부터 영적인 존재가 질병, 슬픔, 눈물, 고통을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천사들이 영적 존재이기는 해도 하나님의 아들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빛 분만 아니라, 흑암의 요소까지도 체휼하여 하나님 자신과 똑 같은 속성을 지닌 당신의 아들들을 창조하기로 작정 하셨던 바, 곧 사람이다.
따라서 육체를 입은 사람은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다.
<히2: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히2: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만일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고 에덴에서 영원히 살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름대로 행복하게는 살았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아들과 종의 차이는 본질적 차등이요, 신분적 차등이다. 인격과 누림에 있어서 천양지차가 난다.
그러나 금단의 열매를 먹은 인간을 어떻게 구원해서 아들로 승화시킬 것인가? 불순종의 죄인을 그냥 용서한다면, 하나님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린다. 공의는 무너지고 무법천지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죄인을 그냥 처단하여 끝장내면 사랑이 없는 비정한 하나님이 될 것이다. 공의와 사랑을 둘 다 충족시키면서 사람을 구원하는 비책이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죄를 범한 모든 인간이 죽어야할 형장을 대신하여 하나님 자신이 짊어지신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의를 당신 스스로에게 집행시킴으로 하나님의 공의는 지켜졌고, 동시에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증거’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다. 십자가 없이는 그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창조 계획의 핵심 사상이다. 십자가를 실행하기 위해서 영이시며 신이신 하나님 자신이 육을 입고 세상에 출현해야하는 우주적인 사건을 도입하셨다. 신이 육을 입으면 ‘아들’이 된다. 즉, 신이신 ‘말씀의 씨’가 육신 속에서 잉태되어서 탄생하면 육을 가진 신이 되는 존재를 ‘아들’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창조 전부터 아버지와 아들은 인간 창조의 예정 속에서 함께 계시었다. 존재가 두 분이 아니라 아버지의 계획 속에 아들의 사역이 있었다는 말이다. 아들은 장차 육을 입은 아들로 나타나서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다. 그리므로 창세전에 이미 십자가는 존재했고, 창세와 동시에 어린양이 흘린 대속의 피의 효력은 발휘되어야 하는 것이다.
<요17:5>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계13:8> 창세로부터 죽임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니라...(원어 직역)
<창3:15b>~여자의 후손은 네(뱀)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뱀)는 그(IX)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부연컨대,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시는 분이시기에 그 분의 의중에 있는 것은 곧 존재하는 것이다. 눈에 보여야 존재로 보는 육의 개념을 버려야 하나님의 영적 세계를 이해할 수가 있다. 무릇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서 비롯되었듯이 말이다. 예를 들면,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자마자 다음날 아침 일찍이 사흘 길을 떠나는 아브라함에게는, 이미 이삭을 마음에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졌다는 말이다. 그 확고한 믿음을 사흘 길로 표현한 것이다. 영의 일들은 시공에 구애받지 않는다.
<히11:19> 저(아브라함)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신이 육을 입으면 ‘아들’이 되는 원리는 구원 사역에서 계속된다. 십자가를 통해 공의를 실현하시고 부활생명이 되신 ‘맏아들’의 영은 구원을 위한 또 다른 보혜사가 되시었다. 그를 ‘그리스도의 영’이라 한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메시야(구원자)의 신약적 표현이다. 즉 구원자라는 말이다. 왜 구원자인가? 살리는 영이 되셨기 때문이다.
진짜 구원, 실질적 구원은 내 외부에서 일으킬 수가 없다. 구원이라는 것은 내면세계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분은 십자가를 통과 하면서, 내 죄와 허물을 대속하시므로 처음 아담의 무죄 상태로의 환원을 이루셨고, 동시에 살리는 영(생명과)이 되셔서 육을 입은 자들에게 들어가, 또 다른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는 창조사역을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십자가는 공의와 사랑을 만족시키는 무궁한 하나님의 지혜이면서 능력이다.
십자가에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그 분의 생명을 ‘성령’, ‘진리의 영’, ‘맏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 혹은 ‘살려주는 영’이라고 한다. 그렇다, 복음을 듣고 회개한 자들의 심령의 내면에 파고 들어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성령이 임하시게 되면, 옛사람의 성분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가시와 엉겅퀴, 질려와 형극의 속성을 불사르신다.
그리스도의 영은 세상과 죄를 이긴 능력의 DNA를 함유하고 있기에 사단의 형상을 능히 불태울 수 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어 인생을 체휼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영이 되심은 인간의 역사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영적 세계에서는 이루어진 일이다.
구약과 신약,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의 역사는 그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표현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은혜시대만 교회시대라고 말하지 않고, 모세의 인도를 받던 광야 40년 세월도 광야교회라고 한다(행7:38).
옛 언약(구약)과 새 언약(신약)은 사람의 구원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 속에 진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일 뿐이지, 하나님은 여기에 제한 받지 않는다. 처음 하나님을 접하는 때는 혼적인 신앙이요, 여기서 탈바꿈 되어야 영적인 새 언약의 수혜자가 된다. 종의 신분에서 아들의 신분으로 거듭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두 과정을 역사(시공을 접목)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역사가 아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구속사이다. 구원의 원리를 보여주는 비밀한 책이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무리 화려하고 승리로 가득 찼을 지라도(출애굽 사건, 요단강 도하, 가나안족 진멸...), 주님의 십자가가 아무리 위대하다 할지라도 내 안에서 나에게 적용되지 못한다면, 구원과는 무관한 일이다. 주님의 십자가를 쳐다보고 감격하며 눈물을 흘려보았더니 죄를 안 짓던가? 세상을 이기게 되던가? 모두 이론일 뿐이다.
오직 주님이 주시는 성령세례와 불세례를 통해서만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게 된다. 즉, 내 안에 오신 그리스도의 영인 이기는 영을 받고, 내 삶의 사건과 환경 속에서 오랜 고난을 통과 할 때에만 육은 모든 욕망과 자기주장을 멈추게 되어있다.
<벧전4:1~2>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주님의 발자취를 쫓아서, 옛 자아가 끝난 자만이 비로소 IX를 ‘주’라 부른다. 주란 자기 삶의 주인이요, 남편이요, 주체라는 말이다. 여태껏 주되심은 인정하지 않고, 그리스도(구원자)로만 알아온 것은 나의 이기심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과한 자는 주님을 주(주인)라고 부를 수 있다.
<계11:15> ~세상 나라(나의 옛사람)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나의 새사람)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그러므로 ‘주’라는 말은 자신은 죽고 오직 자신 안에 그리스도만 산 자가 부를 수 있는 말이다.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를 때에 한 번씩 심호흡을 가다듬고 나는 지금 과연 부를 수 있는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지금 이토록 엄중한 주-가 너무 싸구려가 되어있음이야말로 사탄의 궤계다.)
2. 구약의 선진들이 음부에 갔다는 주장
예수의 초림 전,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이 육이 죽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아직 부활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잠시 대기하느라고 음부에 갔다는 주장이 있어 혼돈을 야기하고 있다. 그 음부는 열조의 무덤이며, 열조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눅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도, 아직 주님의 부활 전이므로 나사로가 간 곳인 아브라함의 품은 곧 음부라는 주장이 있다
(주님의 비유가 겨우 사랑스런 나사로는 지금 음부에 있음을 설명코자 함일까? 새생명의 영생이신 주님이 구약적 개념을 나열하겠는가? 음부란 무덤, 지옥, 구덩이의 의미를 가지는 사단의 속성과 처소를 말한다. 나사로가 죽어 사단의 처소에 갔는가? 음부란 구원 받지 못한 자에게 처해지는 심판의 처소이다. 신약에서는 이를 지옥이라고도 표현한다.)
그 주장에 따르면, 구약의 음부는 두 곳으로서 구원받은 자들이 가는 아브라함의 품이 있고,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이 가는 불붙는 음부가 있단다. 이 이론의 유발은 그리스도의 영의 초월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워진 아브라함 이전의 에녹과 IX 부활 전의 엘리야는 어떻게 된 일인가? 또한 변화산의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음부에 갇혀 있다가 필요해서 잠시 데리고 왔는가?
눅16장의 아브라함은 분명 하나님의 예표이거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신적인 위치에 있는 자인가? 다시 질문을 하거니와 아브라함 전의 에녹이 올라간 하늘은 어디인가? 아니면 아브라함이 올 때까지 공중 어디에서 떠돌았단 말인가? 그리고 구약의 선진들은 왜 하나님 품에 가지 않고, 음부라는 대기 장소에 머물러야 했는가? 아직 예수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지 않아서였는가?
<고전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갈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마27:52`53>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주님이 첫 열매로 부활하시는 것과, 율법 아래서 그리고 여자에게서 난다는 의미는 역사가 아니라, 구원 받는 사람 각자의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은 절대 역사가 아니라 개인의 구원에 대한 방도를 역사라는 시간과 사건을 빌려 시청각적 설명을 한 것이다. 주님의 탄생과 십자가와 부활이 2천 년 전에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것이 지금의 나와 무슨 연관이 있어서 구원이 가능한가? 모두 사람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 과정을 말하고자 함이다. ( 이것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부활특강에 차례대로 강해되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람)
천년왕국(전 천년설)을 주장하는 세대주의 자들은 매 시대마다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다르다는 말을 하고 있다. 율법시대 전에는 양심의 법으로, 율법시대는 율법을 지킴으로, 은혜시대는 주님의 은혜로, 천년왕국 시대는 공의(=율법)로... 그렇다면 참 무능한 하나님이시다. 시대에 따라 이 방법 저 방법 써보면서 점차 완전을 꾀한단 말인가?
또한 전 천년설을 주장하는 자마다 천차만별이다. 각자가 제 멋대로 이리저리 바꾸고 첨가해서 주장을 펼치고 있으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내용을 이해하기도 힘들다. 그들은 나름대로 성경을 여기저기서 꿰어 맞추다보니 그런 현상이 발생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전혀 일관성이 없다. 그 밑에서 듣는 자들이 조금만 의아심을 갖고 듣는다면 금 새 알아차릴 일이지만, 대부분은 세뇌되어 감각을 잃어버렸기에 이것도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지금 금기름 집의 나형제는 다른 세대주의 보다도 더 복잡한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 바람에 지금까지 자신이 가르쳐온 영적이론들(삼위일체, 재림, 부활, 창조목적...)마저 부정해야하는 입장에 놓여있는 처지가 된 것 같다. 앞서서 가르쳐온 소위 진리적 논리와 충돌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잘못된 천년왕국을 옹호하기 위해 성경 전체를 꽈배기로 만드니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바라건대, 과연 천년왕국이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시고, 주님께 건전한 정신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은 얼마든지 실수가 있을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의 실수는 누구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한 순간의 악몽으로 치부하고 다시 진리로 회귀하시기를 정말 마음 깊이 바란다.
왜냐하면, 천년왕국설은 심각한 이단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핵심을 어지럽히고, 성도로 하여금 이기는 자의 반열에서 벗어나게 한다. 거기에 있는 분들이 비록 거듭났을지라도 생명의 말씀을 계속 공급받지 못한다면, 구원의 목적인 영생을 잃어버릴 수가 있다는 말이다. 천년왕국은 하늘의 식양대로 건축된 하나님의 집이 아니요, 아들의 집도 아니다. 사람 냄새가 너무도 풀풀나는 유령도시일 뿐이다. 공중누각이요, 신기루일 뿐이다.
<약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가르치는 교훈)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 ... ...
* 작은 모임의 선생된 저도 두렵고 떨립니다. 천년왕국이 없다는 것은 확실히 증거할 수 있지만, 다른 증거는 주님 앞에서 날마다 조심스럽습니다. (사실 말씀 증거를 멈추고, 사역을 내려놓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첫댓글 형제님께서 다른 영혼에대해 깊은 사랑의 마음이 눈물겹도록 가슴 아파하시는 것이 보여집니다.
거짓 진리에 미혹되어 영벌이냐 영생이냐의 기로에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가슴저며 오기 때문이겠지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앞에 묻고 가야하지 않을까요
마음으로 믿어 의에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묵상하면 어떨까요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합께 할 수 없고 빛과 어둠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옛사람이 끝나야 곧 그안에 주님의 처소가 되어집니다. 현재적 실존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들어져 알곡이 되어야하는 신앙의 여정입니다
그렇습니다...
장자교회, 단체구원 운운..하는 것은,
평안하다, 안전하다, 가르쳐온 모든 거짓 선지자들의 속임수였지요.
미숙아들을 꼬여서 더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궤계랍니다.
...
듣기는 좋으나, 구원을 놓치게하는 무서운 함정이지요.
지금 구원의 증거를 가지지 못한 것은 모두 허상입니다.
부활생명을 얻지 못하면 진리에대해 여전히 혼미하고 도무지 이해 되지 못하지요
5째 사람들은 종교율법으로 충만해있기에... 사람의 사정은 사람속에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과연 우리는 누구의 영으로 분멸하고 있는지요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으로 가득채워진 말씀의 대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보고 주님을 만질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참 생명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영께서 자기땅 자기 백성안으로 오셨으니 은혜와진리로 충만합니다
헐렐루야 임마누엘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