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거리 13㎞ 등정시간 5시간 20분 / 하산시간 3시간 40분
신흥-칠불사-1293고지-토끼봉
토끼봉에서 하산 지름길로 가끔 찾는 소외된 능선길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칠불사(七佛寺)에서 토끼봉까지 8㎞의 능선 코스이지만 교통문제 때문에 신흥(新興)에서 출발하므로 실제로는 13㎞ 정도이다. 일반적으로 이 코스는 토끼봉에서 최단 하산 코스로 가끔 이용될 뿐 굳이 식수도 부족한 짜증스런 능선 오르막길을 택해 오르려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 하다.
신흥의 삼거리에서 좌측의 비포장 2차선 도로를 따라 한참 오르면 범왕리 오송 마을에 도착한다. 수각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우측 다리를 하나 건너면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원 범왕리를 거쳐 칠불사로 오르는 지름길이 각각 있다.
산에 오르는 이치를 새삼 확인하며 고되게 올라
한편 목통마을에서는 계곡을 따라 화개재로 오르는 길이 있다. 이 길은 뱀사골 산장의 물품을 운반하는 길로도 이용된다. 우선 이 칠불사 코스를 오르려면 칠불사 우측 샘터에서 식수를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토끼봉까지는 완전한 능선길이라 식수도 없고 또 토끼봉에서 뱀사골산장, 총각샘 혹은 연하천까지 연계코스까지도 감안하여 식수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칠불사 우측 샘터 위로 산죽숲길을 오르면 소나무가 우거진 산등성이에 올라선다. 여기서부터 완만하던 오름길은 차츰 경사 급한 미끄런 흙길로 변하고 갖가지 잡목들로 빽빽한 능선길이 계속된다. 등반로도 뚜렷하고 리본도 많이 매달려 있다. 서쪽 산비탈을 가로지르는 듯하던 길이 다시 경사 급한 길로 접어들쯤 해서 야영한 흔적도 곳곳에 보인다. 북동방향의 이 오르막길은 범왕리에서 올라오는 희미한 길과 능선 평지에서 만나고 이후로는 참나무가 빽빽히 들어찬 길이 펼쳐있고 대성골, 삼정골이 아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장중한 산울림으로 들리는 길이다.
평지길과 오르막길이 번갈아 교체되면서 바위 위로 올라서면 토끼봉이다.
이 코스의 등반 기점인 해발 700m의 산등성이에 자리잡은 칠불사(七佛寺)는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의 관심을 모은다.
전설에 의하면 가락국(駕洛國)시조 김수로왕의 7왕자가 인도에서 온 외삼촌 보옥선사(寶玉禪師, 長遊和尙)를 따라 지리산 이곳에 입산수도하여 모두 성불하였다고 한다. 그때가 수로왕 62년, 서기 103년이었다고 하는데 이 자체로 보면 흔히 우리나라에 처음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말하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보다 무려 270년이 앞선 시기이다. 그리고 종래의 불교 북래설(北來設)과는 달리 이 땅에 인도로부터 불교가 직수입됐다느는 남래설(南來設)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논거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아직껏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된 것은 아니고 다만 전설로 전해올 뿐이다.
칠불사는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요람
지금도 칠불사 입구에는 허왕후가 성불한 일곱 아들들의 모습을 보았다는 영지(影池)가 남아 있고 또한 수로왕이 머물며 범왕사(梵王寺)를 세웠던 범왕리(凡王里), 허왕후가 머물며 천비사(天妃寺)를 세웠던 대비리(大比里)의 지명이 지금도 전한다.
[다큐멘타리 지리산]의 저자 김경렬(金敬烈) 씨는 보옥선사의 불교 전래는,그가 지리산에 들어와 수로왕의 일곱 왕자를 깨우쳐 불법을 전수하고 한때 꽃을 피웠다 할지라도 뿌리깊은 토속신앙, 산천제신(山川諸神) 숭배사상과의 심한 갈등으로 그 전개가 어려웠을 것으로 보면서도 그러나 불교의 전래와 함께 들어온 악기와 음곡은 토속음악에 수용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삼국사기] {잡지 악조}(雜志 樂條)에는 옥보고(玉寶高)가 지리산 운상원(雲上院)에 들어와 거문고를 배워 속명득(續命得)→귀금(貴今) 선생→안장(安長)과 청장(淸長)→극상(克相)과 극종(克宗)으로 이어지는 전수체계를 통해 옥보고 스스로가 지은 30곡이 전해 내려온다고 적혀 있다. 물론 여기서도 쟁점은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이 음악의 전수자들이 어느 연대 사람이고 또 운상원이 어디였는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운상원이 과연 7왕자와 보옥선사가 들어와 수도한 칠불암 전대(前代)의 운상원인지 아니면 운봉지방 근처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또한 옥보고가 보옥선사라는 얘기도 있어 어리둥절할 뿐이다.
한편 칠불사에는 불가사의한 온돌방 아자방(亞字房)이 지금도 전해 내려온다. 지금은 지방문화재 144호로 지정되어 있지만 그 독특한 온돌구조 때문에 1979년 세계건축협회에서 펴낸 [세계 건축사전]에가지 올라 있는 가히 국보급의 문화재이다. 1949년 음력 정월경에 불에 타버려 구들만 보호되다가 1982년경 복원되어 지금은 스님들의 선방으로 쓰이고 있다. 아자방은 중앙에 십자형 통로가 있고 둘레에 높은 좌선방(坐禪房)이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이 이중식 온돌은 통로나 높은 방이 모두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보통 한 번에 일곱 짐 정도의 장작을 세 개의 아궁이에 지피면 두 달 정도는 온기가 유지된다고 한다. 아자방 축조연대에 관해서는 신라 지마왕(祗摩王) 8년(서기 119년)과 신라 효공왕(孝恭王, 897~911년) 때라는 두 가지 얘기가 있는데 아자방을 축조한 사람은 두 시기 모두 담공선사(曇空禪師)로 전해지고 있다.
칠불암은 통일신라 이후로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으로 내려오면서 고려시대 때 정명, 조선시대 때는 벽송, 부휴, 추월, 서산대사, 인허, 월송, 무가, 백암, 금담, 대은, 초의 등 고승들이 거쳐간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때에 중건하였는데 순조 20년(1830년)에 아자방 건물인 벽안당(碧眼堂)이 역시 실화로 소실되었다가 금담 대운 두 스님이 복구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대웅전인 보광전을 비롯 아자방 건물인 벽안당 등 옛 시설들은 거의 다 갖추었지만 규모는 예전에 못 미친다고 한다. 1980년초 당시 고위 권력층인 허(許)모 씨가 복구사업과 도로공사를 지원했다는 풍문도 들린다.
교통과 숙박
구례읍에서 07:00~18:00까지 하루 8차례 화개를 거쳐 신흥까지 오는 완행버스가 있고 또 의신마을로 들어가는 4차례의 버스편을 화개에서 타고 역시 신흥에서 내리면 된다. 범왕리까지 들어가는 버스편은 단 한 차례 있는데 대개 저녁에 들어갔다가 다음날 아침에 나온다. 민박할 수 있는 곳과 야영할 수 있는 곳이 범왕리와 칠불사 주위에는 거의 없는 편이다. 신흥마을에 민박집이 몇 곳 있는 편이고 쌍계사 쪽 집단시설지 구내에 다수의 민박집이 있으므로 이곳을 이용하는게 좋을 듯하다. 보통 ****원 하며 때에 따라서는 가감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