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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글판 2025년 겨울편
20251219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가을은 먼 추억이 되어 떠나갔다. 겨울이 왔음을 광화문글판의 소식을 통해 감각한다. 으흠, 겨울이 왔구나. 광화문에 나갔다. 광화문글판 2025년 겨울편이 훈훈한 마음의 사람이 그려진 그림과 함께 단장되었다. 문안은 박소란 시인의 '심야 식당'에서 가져왔다. '심야 식당', 제목을 보는 순간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그림 'Nighthawks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마도 심야(深夜)라는 말 때문에 이 그림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현대인의 고독감이 진하게 배어 있는 호퍼의 그림은 볼 때마다 사무치게 가슴을 후볐다.
박소란의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을 구입하여 '심야 식당' 전문을 음미해 보았다.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충무로 진양상가 뒤편/ 국수를 잘하는 집이 한군데 있었는데/ 우리는 약속도 없이 자주 왁자한 문 앞에 줄을 서곤 했는데/ 그곳 작다란 입간판을 떠올리자니 더운 침이 도네요 아직/ 거기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맛은 그대로인지//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가 국수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나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귀퉁이가 해진 테이블처럼 잠자코 마주한 우리/ 그만 어쩌다 엎질러버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좀처럼 닦이지 않는 얼룩 같은 것 새금하니 혀끝이 아린 순간/ 순간의 맛// 이제 더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허기란 얼마나 촌스러운 일인지//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 박소란의 '심야 식당' 전문. <한 사람의 닫힌 문> 2019년, 창비.
시를 읽고서 그림과 시의 주제는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그럼에도 시인이 이 그림에 기댄 구절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야 식당'의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이 구절이 호퍼의 그림 장면과 맞물린다. 그림의 장면은 혼자인 사람 그리고 연인인 듯한 두 사람과 음식점 주인, 네 사람이 등장한다. 등을 보이고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의 고독감이 사무친다. 다른 세 사람은 얼굴을 보이며 대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 모습은 진실을 날리고 시간을 흘려보내거나, 음식을 판매하는 습관적 행위처럼 보인다.
박소연의 '심야 식당'은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 '당신'의 소식이 궁금하여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외로움에 절절한 당신, 혼자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하다. 그 마음은 따뜻하게 마음을 녹이는 듯, 그러나 실상은 시적 화자 자신도 혼자 밥 먹으며 지내는 사람이다. 외롭다고, 배고프다고 말하는 것이 촌스러운 일이라고 넌지시 말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이 시리게 마음을 적신다.
아래에 '교보생명 공식 블로그'에 실린 광화문글판 2025년 겨울편 소식을 옮겨온다.
"이번 광화문글판 겨울편은 박소란 시인의 시 ‘심야 식당’에서 가져왔습니다. 곁에서 힘이 되어 주는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되새기며 따뜻한 안부를 전해 보자는 메시지를 담았는데요. 디자인은 여럿이 나눠 먹을 간식을 품에 안고 웃으며 걸어가는 장면으로, 따뜻한 문안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담아냈습니다. 겨울 대표 간식인 붕어빵을 모티프 삼아 가족과 이웃에게 따뜻함을 나누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죠.
이번 2025 광화문글판 겨울편 문안의 주인공인 박소란 시인은 2009년 ‘문학수첩’으로 등단한 시인인데요.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한 사람의 닫힌 문> 등이 대표작입니다. <심장에 가까운 말> 시집은 제33회 신동엽문학상을 받을 만큼 문단의 인정을 받은 시집이기도 하죠. 뿐만 아니라 ‘오늘의 시’ 외 6편으로 제70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박소란 시인은 슬픔을 다루면서도 타인을 향해 조심스레 건네는 다정한 인사와 같은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써왔는데요. <한 사람의 닫힌 문> 시집에 실린 이번 ‘심야 식당’ 시 역시 덤덤함 속에 타인을 향한 관심이 담겨 있어 연말연시 추운 우리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녹이고 있습니다.
2025년의 마지막을 마무리 짓고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바쁜 일상 속에서 소중한 사람을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요. 가족이나 친구, 지인 등 평소 만나지 못했던 이들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며 따뜻한 겨울을 맞이해 보는 건 어떨까요?"
출처: https://kyobolifeblog.co.kr/5125 [교보생명 공식 블로그:티스토리]
1.세종대로와 광화문광장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 박소란의 '심야 식당'에서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 박소란의 '심야 식당'에서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 박소란의 '심야 식당'에서
광화문광장 옆으로 세종대로가 달리고 광화문광장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북쪽에는 북악이 솟아 있다.
세종대로 동쪽의 교보생명빌딩에 광화문글판이 걸려 있다.
광화문광장 남쪽에 사랑의온도탑이 세워져 있고, 그 오른쪽 명량분수 뒤에 이순신장군 동상이 남쪽을 향해 서 있다.
광화문광장 광장숲 옆에 조성되어 있는 사랑의온도탑 현재 나눔온도는 53.8도이다.
광화문광장 사랑의온도탑 건너편 세종대로 동쪽의 교보생명빌딩 건물에 광화문글판 2025년 겨울편이 걸려 있다.
사랑의온도탑은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주관하는 '희망나눔캠페인'의 대표 조형물입니다. 2000년 12월 처음 세워진 이후, 26년째 전국 17개 시·도에 설치되며 대한민국 나눔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모금액이 목표액의 1%에 도달할 때마다 나눔온도가 1도씩 오르며, 100도에 이르면 모금 목표액 달성을 의미합니다. '희망2026나눔캠페인' 사랑의온도탑은 '굴뚝'을 모티브로 디자인되었습니다. 시민들의 따뜻한 나눔의 온기가 굴뚝을 타고 하늘로 퍼져 나가며,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광화문광장 명량분수 뒤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고, 맨 왼쪽 뒤에 북악이 솟아 있다. 교보생명빌딩에 광화문글판이 걸려 있다.
교보생명빌딩에 걸린 광화문글판 2025년 겨울편이 광화문광장을 향해 있다.
영화 아바타를 개봉하여 아바타 조형물이 광화문광장에 조성되어 있다.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 박소란의 '심야 식당'에서
왼쪽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자리하고, 중앙 뒤에 북악산이 솟아 있다.
광화문광장 북쪽에 세종대왕 좌상이 자리하고, 그 뒤에 광화문과 청와대, 맨 뒤에 복악산이 솟아 있다.
세종대왕 좌상 앞쪽에서부터 해시계, 측우기, 혼천의가 전시되어 있다.
좌상 앞에 해시계와 측우기가 설치되어 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남쪽 계단 위에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와 체임버홀이 자리한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와 체임버홀 앞에 영화 아바타를 개봉하여 홍보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광화문광장 건너편에 KT광화문빌딩과 교보생명빌디이 솟아 있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와 체임버홀 앞에 영화 아바타 홍보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2.박소란 시인의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에서
창비시선 429, 박소란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 초판 1쇄 발행 / 2019년 1월 31일
박소란(朴笑蘭, 1981~) 시인은 서울에서 출생하여 마산에서 성장하였고,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였다. 2009년『문학수첩』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심장에 가까운 말』이 있고, 신동엽문학상과 내일의 한국작가상을 받았다.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충무로 진양상가 뒤편
국수를 잘하는 집이 한군데 있었는데
우리는 약속도 없이 자주 왁자한 문 앞에 줄을 서곤 했는데
그곳 작다란 입간판을 떠올리자니 더운 침이 도네요 아직
거기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맛은 그대로인지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가 국수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나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귀퉁이가 해진 테이블처럼 잠자코 마주한 우리
그만 어쩌다 엎질러버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좀처럼 닦이지 않는 얼룩 같은 것 새금하니 혀끝이 아린 순간
순간의 맛
이제 더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허기란 얼마나 촌스러운 일인지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저 작고 무른 것을
사람들은 어떻게 기르나 어떻게
사랑하나
저 알 수 없는 것을
자꾸만 꼬물꼬물 숨 쉬는 것을
부둥켜안고 어디로 달려가나
순백의 울음소리가 병원 복도를 번쩍이며 스칠 때
더운 가슴팍을 할퀼 때
사람들은 아프고
잇따라 울고
또 어떻게 웃을 수 있나
저 작고 무른 것을 두고
살아야겠다
살아야겠다 기도할 수 있나
불 꺼진 진료실 앞
멀거니 앉아 순서를 기다릴 때 어떤 삶은
까무룩 쓰러지듯 잠들 때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고
더욱더 선명하고
어떻게 웃을 수 있나
어떻게
나는 태어날 수 있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걷고 있다 힘차게 팔을 흔들며
오고 가는 풍경
이 속에 나는 있다
지금은 안심할 수 있다
나는 걷고 있고 그러므로 살고 있다
자전거에 오른 연인이 둥글게 둥글게 달려간다
물 위로 사뭇 흩뿌려진 웃음의 경적, 몸을 씻던 해오라기 몇 푸드덕거리며 새를 흉내 내고
살아 있는 것, 억새처럼
흰 것 가느다란 것
자꾸만 동작하는 것
지금은 알 수 있다
나는 걷고 있고 그러므로 살고 있다 힘차게 팔을 흔들며
개천은 흐른다
나는 계속 걸어갈 것이다 모퉁이를 돌아 다시 걸어올 것이다
살아 있는 것 우측보행을 하는 것, 무심코
바닥에 말라비틀어진 지렁이를 밟는다
이 어줍은 것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해도 가벼운 목례로써 앞질러 종종종 멀어진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는다
건강하므로 지금은 건강할 것이므로
죽은 엄마를 생각했어요
또다시 저는 울었어요 죄송해요
고작 감기일 뿐인데
어디야? 꿈속에서
응, 집이야, 수화기 저편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데
내가 모르는 거기 어딘가 엄마의 집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엄마의 집은 아프지 않겠구나
병원에는 가지 않았어요
고작 감기일 뿐인데
식후 삼십분 같은 말을 생각했어요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는 사람을
마스크를 쓰기 위해 얼굴이 돋아난 사람을
오, 이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일어나주지 않았어요
고작 감기일 뿐인데 죄송해요
울먹이면서
멀쩡히 잘 살아갑니다, 실없는 꿈속에서
어디야? 전화를 받지 않는 엄마
거기 먼 집
닫지 못한 문이 있고 여태
늦된 겨울을 건너다보고 있을 엄마, 감기 조심해
어떤 나무의 시체일까
우리는
지금 여기 앉아 밥을 먹는다
그만 먹어 그러다 체하겠다
그렇지만 멈출 수 없다 무서워
무서워서
밥을 먹는다
지긋지긋해 이까짓 먹는 얘기 먹고사는 얘기
사귀자 우리, 별안간 고백을 하면
체하겠다 그렇지만
멈출 수 없다 무서워
무서워서
너는 덥석 손을 잡겠지 다른 한 손에 숟가락을 꼭 쥔 채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개라면, 겁에 질려 맹렬히 짖어대는 창밖 저것이
사랑이라면
참 재밌다
우리는
지금 여기 앉아 웃는다 앙상한 꼬리를 흔들며
그만 웃어 그러다 울겠다
그렇지만 멈출 수 없다 어디선가 자꾸만 썩는 냄새가 나
어떤 나무의 시체일까,
우리는
지금 여기 앉아 밥을 먹는다
식탁은 깨끗하고 식탁 위 그릇은 허연 김을 피워 올리고
우리는 밥을 먹는다 죽기 전에 어서
울면서 먹는다
달아나는 저 개를 붙잡을 수 없다
자기 자신과의 직면 : 『심장에 가까운 말』(창비 2015)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벌써 두번째 시집이라니 박소란의 성실함에 놀랐다. '벌써'라는 말에 어폐가 있다면 첫 시집의 여운이 아직도 어제처럼 이어지고 있다고 고쳐 말하고 싶다.
박소란은 어딘지 과묵하고 심지가 굳어 보인다. 시류에 휩쓸려 시 이외의 것에 기웃거리는 일 없이 자기만의 세계를 잘 지켜왔다. '아현동 블루스'의 저 '90년대식' 정서나 '경'('경에게') 혹은 '미자'('미자', 이상 『심장에 가까운 말』) 등 훼손된 채 잊힌 존재를 향한 노스탤지어는 내게도 친숙한 것이어서 이 시인을 나는 더 가깝고 정겹게 여겼다. 도시의 후미진 변두리의 감각이나 가난하고 추레한 일상을 그리기로는
그리기로는 그녀만 한 시인이 많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전자파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기장판에 누우면 "어떤 슬픔에도 끄떡하지 않는다"고 노래한 '전기장판'이나, 반지하방으로 이사하는 날의 르쌍티망을 이삿짐의 너절함이라든지 용달 아저씨의 짜증 같은 것으로 잘 버무려낸 '엄마와 용달과 나는'과 같은 시 몇 편만 훑어보아도 이 평가가 과분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첫 시집에서 "노래는 구원이 아니어라/ 영원이 아니어라/ 노래는 노래가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어라"('노래는 아무 것도')라고 절규한 것을 잊기라도 한 것처럼 시인은 참 부지런히도 노래만 불러왔다. 청승맞다면 청승맞은 일이다.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는 그 노랫가락이 어떤 낭만성이나 비극적인 운명성과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가령 "무서워요 아버지, 아름다운 것은"('파')이라는 구절도 그렇지만, 시적 화자가 자신의 불행에서 '아름다움'을 볼 때, 그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직면하는 순간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문득 드는 것이다. 그런 본질적인 장면에 대해 설명해보려 한다.
닫힌 문을 두드린다는 것
언젠가는 반드시 자기 자신과 직면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어떤 철학자는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라고까지 역설하지 않았던가. 이번 시집에서 박소란은 '문'을 중요한 장치로 거듭 사용하면서 그 직면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박소란의 시에서 '문'은 "그럴듯한 삶"으로 열려 있는가 하면('손잡이'), 망자의 세계로도 이어져 있다('외삼촌'). 누군가는 '문'이 열리면 '나'를 떠나고(모르는 사이), '나'는 슬픈 얼굴로 "한 사람의 닫힌 문을 쾅쾅 두드린다('감상'). '문'은 일관성을 띤 상징은 아니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문'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오, 이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일어나주지 않았어요
고작 감기일 뿐인데 죄송해요
울먹이면서
멀쩡히 잘 살아갑니다, 실없는 꿈속에서
어디야? 전화를 받지 않는 엄마
거기 먼 집
닫지 못한 문이 있고 여태
늦된 겨울을 건너다보고 있을 엄마, 감기 조심해
- '독감' 부분
죽음의 세계에서 '엄마'는 딸을 걱정하면서 '문'을 닫지 못한다. "실없는 꿈속"에서의 일이다. 하지만 딸은 그런 꿈을 통해서라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향한 하나의 통로로서 '문'을 닫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늦된 겨울"이라는 표현에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 시적 화자는 이 '슬픔의 겨울'이 더디게 지나간다고 생각한다. 또 '엄마'와의 대화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자신을 비난하는 마음도 섞여 있다. 이 두 감정이 "늦된 겨울"이라는 표현에 혼재하는 것 은 아닐까. 늦게까지 닫히지 않던 '엄마'의 집 대문을 떠올리며 딸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음에 가닿는 장면은 슬프고 아름답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을 딸이 조금이라도 안다면, 딸은 비록 어머니와 함께 누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행복해져야 할 것이다. 행복해지고자 하는 욕망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 시집에 그려진 '문'들은 여전히 '벽'에 달린 것이고, 게다가 미지의 세계로 이어진 것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문'을 열면 우리가 한번은 부정한 우리 자신의 어둠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어둠과 만나지 않는 한
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이번 시집에서 박소란의 시가 궁극적으로 이르고 있는 지점은 이 언저리가 아닌가 싶다. '내'가 온전한 '나'로 되는 이 숭고한 순간을 "닫힌 문"을 두드리는 평범한 순간으로 전치함으로써 시인은 자신이 이른 경지를 입증했다. 그녀가 "닫힌 문을 쾅 쾅 두드"릴 때, 그 묵직한 울림에 우리는 경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張怡志 시인
'아름답다'를 대신할 말이 없었다.
'울음'이나 '웃음'과 같이,
'나'는 지우려 해도 자꾸만 되살아났다.
스스로도 감지하지 못한 사이 거듭 '문'을 열었고
그 사실을 끝내 들키고 싶었다.
문을 열면, 닫힌 문을 열면
거기 누군가 '있다'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을 더 깊이 '사랑'한다.
2019년 1월 박소란
시집 표지 뒷면에 이영광 시인의 박소란 시인의 시집 <한사람의 닫힌 문>에 대한 감상문이 적혀 있다.
가난과 마음 가난이 자아내는 허기는 이 시인의 인생 표정인데 여기에 궁기와 한탄이 없다는 것이 전부터 놀라웠다. 허기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는 배고픔이다. 이 시집은 그 절실한 배고픔과 고독을 전보다 더 따뜻한 어둠에서 더 막막히 신문해 얻은 진술서이다. 따뜻하다는 건 함께한다는 것이고 막막하다는 건 맞선다는 뜻이다. 그는 여전히 길과 집과 꿈속에서 밥과 사랑과 공포를 마주한다. 무대는 더 외로워졌고 시인은 더 강해졌다. 그의 상대들이 세졌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가 잃은 것들이 떠날 줄 모르고 쉼 없이 되돌아오는 내면의 사태와 관계가 깊다. 방법적 착란의 기미가 비치는 여러 시편들에서 그는 이별 없는 이별의 고통에 기꺼이 시달린다. 죽음을 보내면서 또 불러들이고, 죽은 이에게 사로잡히거나 죽은 이가 되어 말하는 장면들. 말을 침처럼 흘리며 걸어야 하는 이 증세가 힘에 부쳐 그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도 살 수도 없는 사람이라 여기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이"인 누군가에게도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방심의 순간이 있어 "닫힌 문" 안에 불현듯 온기가 돈다. 사랑의 '불을 끄려면 불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는 애틋한 역설, 슬픔이 "어떤 슬픔에도 끄떡하지 않는다"는 힘차고 서글픈 반어는 다 사랑하는 싸움의 고된 결실이 아닐지. 시가 죽음에 손을 내미는 건 체념의 힘을 빌려 바로 생을 돌보기 위해서다. 그 무대에 그가 그릴 다른 윤리의 얼굴을 기대하게 된다. 곤한 인생파 시인이 더 곤한 투시파 시인이 되어가나보다. 이영광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