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生沒年代未祥
2) 高麗 進士 追封 銀靑光祿大夫 樞密院副使 고려 진사 추봉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
3) 墓 전북 익산시 여산면 壺山里(유점마을)73 (여산면 천호산길 63-23)
✼ 선조 14년(1586년 병술) 15대손 순무어사 言愼 立表石(언신 입표석)
✼ 영조 19년(1743년 계해) 18대손 통제사 徵來 立表石(징래 입표석)
19대손 좌의정 寅明 撰銘書(인명 찬명서)
✼ 純祖 庚戌(?) 又 立墓 碑碣 於 山下 傍裔 恩津 宋秉珣 撰銘
순조 경술(?) 우 입묘 비갈 어 산하 방예 은진 송병순 찬명【1989년 대동보 1권 59쪽】
✫ 경술(철종1년 1850). 경술(정조 14. 1790)
순조 재위 1800(순조 즉위년. 庚申)∼1834(순조 34. 甲午).
✫ 송병순 : 1839(헌종 5)~1912. 1888년(고종 25. 무자) 의금부도사(o)
4) 配 : 未詳
5) 時享 : 冬至
✍ 원래 동지사(冬至祀)란 왕실에서만 지내는 궁중의 제사로 일반 사대부, 평민은 지낼 수 없는 예제(禮祭)이나 정렬공의 충정에 원종이 감탄해 정렬공(宋松禮)의 시조묘는 동지사를 모시게 조정에서 교지를 하사했고, 더욱이 평민이나 사대부의 묘는 능(陵)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 오직 정렬공의 묘만이 공의 빛나는 위업을 기려 고려 충렬왕의 교지로서 홍능(洪陵)이라는 능칭(陵稱)을 하사(下賜) 받음은 송문(宋門)의 자랑이다.【宗報 天壺山의 脈 (2015년 동지 6호). (礪山宋氏 先賢錄 1999년)】
6) 世宗 17년(1435. 을묘)에 元敬王后 閔氏 外鄕으로 縣陞爲郡(현승위군)하고 肅宗 24년(1698. 무인)에 追復 端宗位하야 以 定順王后 姓鄕으로 陞郡爲府하고 下批 曰(왈) 朝家莫非(조가막비) 山所外裔(산소외예) 賜 環七里(사 환칠리)하시다.
〖1435년(세종 17) 태종비(太宗妃) 원경왕후 민씨(閔氏)의 외선조(外先祖 : 송선(宋璿 : 7世. 여량군파의 파조))가 됨으로써 공의 묘소가 있는 고을을 현(縣)에서 올려 군(郡)으로 삼았으며, 1698년(숙종 24)에는 단종을 복위하고 端宗妃 定順王后의 姓鄕(시조가 난 곳)이 됨으로써 군(郡)을 올리어 부(府)로 하고 선산으로 환7리(環七里)를 하사하였다.〗
☼ 세종 17년(1435년 을묘) 1월 21일(계사)
충청도 여산현(礪山縣)을 郡으로 승격시키었다. 이는 元敬王后의 외향(外鄕)이기 때문이었다.【조선왕조실록】
✫ 1444년(세종 26)에 전라도로 복귀시켰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숙종 24년(1698년 무인) 12월 28일(무진) 예조에서 아뢰기를,
"왕후의 부모는 작위에 봉하는 것이 법식인데, 정순 왕후의 고(考) 宋玹壽는 당초에 죄를 입고 다시 용서하라는 명이 없었으니, 법식에 따라 거행할 수가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복관(復官)하도록 특명(特命)하고, 성향(姓鄕)인 여산군(礪山郡)을 부(府)로 승격시켰다. 【조선왕조실록】
✫ 1699년(숙종 25) 단종 왕후 송씨의 본관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7) 子 一男 宋 淑文
8) 시조의 묘를 지킨 자손 【익산시 공식 블로그 익산늬우스 2011.8.25】
호남고속도로를 건설할 때의 일이다. 1971년 고속도로 노선 지정 고시 계획에는 여산의 천호산 자락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산휴게소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하늘을 날아갈 듯한 형상의 묘택이 있는데, 원래 이곳으로 고속도로가 뚫릴 예정이었다. 이 묘택은 여산 송씨의 시조인 宋惟翊과 그의 아들 宋淑文의 묘지다. 예정대로 고속도로 공사가 시작되면 여산 송씨 시조 묘는 다른 곳으로 이장해야만 했다.
당시 고속도로 노선 확정을 담당하던 주무국장이던 송영권국장은 장관과 대통령에게 자신이 속한 문중의 시조 묘가 포함된 호남고속도로 노선계획안을 보고하고 사표를 제출했다. 국책사업을 진행하면서 사사로운 감정을 개입할 수 없었기에 원칙대로 고속도로 노선계획을 만들고, 자손으로서 조상의 묘소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사표를 쓴 것이다. 이를 이상히 여긴 박 정희 대통령이 송국장을 불러서 사표 제출사유를 물었다.
“호남고속도로 노선 상에 여산 송씨의 시조인 제 조상의 무덤이 들어갑니다.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지만, 조상의 핏줄을 받고 태어난 제가 조상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으니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박대통령은 직접 헬기를 타고 예정노선을 답사한 후, 여산 송씨 시조 묘를 살짝 비켜서 노선을 긋도록 지시해서 현재의 노선이 확정되었다.
여산 송씨 시조 묘는 한국전쟁 직후에도 이장의 위기를 겪었다. 논산훈련소를 만들면서 사격장부지가 들어설 예정지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는 宋堯讚 장군(전 육군참모총장. 정가공파 26대)이 나서서 사격장이 다른 곳으로 배치될 수 있도록 하소연하여 이장의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