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선생 2주기 추모 미사
ㅡ김종철과 프란치스코 교황
민족과 나라, 집단과 단체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12제자를 뽑아 특수훈련을 시키고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주고 천국의 열쇠를 맡겼습니다. 교황님들은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교회와 신자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수행합니다.
2014년 교황님 한국방문 때 저와 함께 교황청 대사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알현한 지원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아우 신부는 행복한 신부야. 교황님은 우리 시대에 큰 빛이야. 인류 역사상 이렇게 큰 영적스승이 있었을까. 내가 영적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분이야. 그런 큰 스승을 모시고 현직에서 사목한다는 것은 큰 영광이고 보람이지 않을까.”
그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행복 십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1.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 되 타인의 인생을 존중하라. 2. 타인에게 마음을 열라. 3. 고요히 전진하라. 4. 건강하게 쉬어라. 5.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라. 6. 젊은 세대에 품위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줄 혁신적인 방법을 찾으라. 7. 자연을 존중하고 돌보라. 8.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라 9. 타인을 개종하려 하지 말고 다른 이의 신앙을 존중하라. 10. 평화를 위해 일하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신의 주보성인인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교황님의 <찬미받으소서> 회칙은 생태주보성인이신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을 그대로 반영한 회칙입니다. 회칙 2항에서 “누이이며 어머니 같은 지구 생태계가 울부짖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 생태계는 이미 심각한 오염과 질병과 기후 위기에 봉착하여 울부짖고 있다는 것입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기후변화는 심각합니다. 무주에 10년 전 귀농한 농민이 겨울이면 눈이 많이 와서 버스가 다니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고, 강둑에서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 왔는데, 요즘엔 세찬 바람이 불거나 종종 돌풍이 부는 날도 있다고 합니다. 3년 전만 해도 한여름에 오전 11시나 12시까지 일을 했는데, 지금은 오전 10시 정도면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덥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기후가 변했을까요. 우리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성장이 부른 자업자득입니다. 지금 보다 온도가 1.5도 상승하면 인간의 통제선을 넘어선 온난화로 지구에서 멸종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개발과 성장의 현대문명이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종을 멸종시키려고 합니다.
코로나가 그 위기의 시작입니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으로 1억 명 사망했습니다. 지금 코로나가 의료기술이 형편없었던 100년 전에 발생했다면 아마도 10억 명은 죽었을 것입니다. 100전 스페인 독감 때부터 독감치료제를 개발했는데 그 치료약이 최근에 개발된 타미플루입니다. 코로나 치료제가 개발되지만 언제 더 강력한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할지 알 수 없습니다.
방역, 마스크, 거리두기, 치료제 모두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자연을 보존하고 인간과 동물, 심지어 미생물까지도 함께 살아야 합니다. 코로나는 미생물입니다. 새만금호에서 썩어가는 갯벌의 유익한 미생물을 살려야 합니다.
코로나가 왜 왔을까요. 우리가 미사를 드리지 않아서 왔을까요. 오히려 코로나 때문에 미사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영성적인 강론을 듣지 않아서, 아니면 성서 말씀이나 성서 강의를 듣지 않아서 코로나가 왔을까요. 신부님들이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했을까요. 실천이 따르는 적극적인 기도의 삶, 성서를 올바로 이해하고 삶에서 실천하는 신앙인, 교황님의 권고를 듣고 행동으로 옮기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이 부족했기 때문에 코로나가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 15)" 이 복음 선포의 사명은 빈첸시오회 활동목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시대가 올 것을 이천년 전에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말씀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셨던 분이 프란치스코 성인이셨고,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과 회칙의 정신을 글로 쓰고 강의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하시고 삶에서 철저히 실천한 분이 계십니다. 제 소견이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 백낙청 선생님보다 다 방면에서 폭넓은 지식과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시는 분이십니다. 한국의 간디라고 불릴 만큼 세계적인 생태운동가이자 평화와 대안사회를 제시하는 생명평화대안운동가 김종철 선생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제 십자가를 진 사람,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 예언자를 받아들이는 사람, 의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상을 받을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의인이며 예언자셨고 목숨을 걸고 지구라는 십자가를 지고 간 사람이 김종철 선생님이셨습니다.
사재를 털어 격월간 <녹색평론>을 창간하신 김종철 선생님이십니다.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일들을 공론화하는 현실적인 대안 잡지입니다. ‘급진적’ 잡지가 29년 동안 지속될 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반역, 변혁’을 꿈꾼 이 잡지는 살아남았고, 지구생태계와 건강한 사회를 꿈꾸는 많은 지식인들에게 등불이 되었습니다.
2010년대 초중반부터 "경제성장이 멈춘 세상에서 인간이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는 긴요한 방책"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했습니다. 지구 온난화가 야기하는 기후변화, 광우병·조류독감(AI·Avian Influenza)처럼 먹을거리 산업화가 촉발한 전 지구적 전염병 사태, 코로나를 예언했습니다. 황우석 사태로 확인된 현대 과학기술의 위기, 한미 FTA로 대표되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등은 지금 모든 매체가 주목해야 하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들”이라고 강하게 제기하고, 이에 침묵하거나 방관하고 있는 지식인 사회의 나태함을 꼬집었습니다.
“지금 자원 고갈, 생태계 오염 등 심각한 문제들이 우리 앞에 산적해 있다. 이런 생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인류 문명의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 특히 '지구 온난화'는 파국의 징후이다. 이 문제들이 21세기 전반에 해결되지 않으면 인류 문명은 파멸한다"며 “우리의 생활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없이 평화만 얘기하는 것은 허망한 얘기다. 21세기는 '환경과 평화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
그런 선생님이 갑작스런 실족사고로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사실 김종철 선생님은 제 영혼의 큰별이셨습니다. 종종 전화로 안부를 물었던 선생님, 아니 제 인생의 아버지 같은 분이셨습니다. 1999년, 녹색평론 대구사무실을 찾아가 처음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후로 선생님은 제 삶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2008년 진안 산골짜기로 들어가 만나 생태마을 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생태마을공동체의 사상적인 뿌리, 제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셨습니다. 교구 도움 없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하는 막막한 시기였습니다. 함께 농사지을 땅을 매입하고 함께 살 목조주택과 황토집을 짓고 똥돼지 생태화장실을 만들고 자급자족 농사를 위해 비닐하우스 등을 설치해야 했습니다.
자금이 여의치 않아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해야 했습니다. 집짓기도 처음이고 농사도 처음이었습니다. 밤이면 함께 사는 형제가 부항을 해줘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새벽에 눈을 떠도 몸을 일으킬 수 없어 옆방 형제가 부항을 떠주어야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육체적인 피로는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면 회복이 되었지만 공동체 식구와의 소소한 갈등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실과 다른, 소설을 쓰는 것 같은 외부의 뜬소문은 생태마을공동체를 포기하고 싶은 절망으로 증폭되었습니다. 너무 힘들고 지쳤을 때, 하소연이라도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을 때 떠오르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신 분이 김종철 선생님이셨습니다.
10년, 생태마을 자급자족 공동체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는 프란치스코 교종님 알현이었고, 다른 하나는 김종철 선생님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송금해 주신 후원금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저의 버팀목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2~3년 만에 생태마을공동체를 포기하고 본당 신부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힘과 용기를 주신 선생님이 계셨기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알현할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 힘드시죠. 우리 신부님이 큰일을 하고 있어요. 농촌이 희망입니다. 생태적인 삶, 자급자족 생태공동체가 대안입니다. 흙과 함께 단순소박하게 사는 것이죠. 내가 도울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통장 번호 문자로 주이소."
며칠 뒤 핸드폰에 송금 문자가 떴습니다. 블루베리 모종을 손질하고 새참을 먹을 때였습니다. 문자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금액이 너무 많았습니다. 처음 두 눈을 믿을 수 없어 손가락으로 숫자를 하나씩 짚어가며 확인했습니다.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 이렇게나 많이, 100만원을 잘못 보았나.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 다시" 이렇게 세 번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연금으로 생활하시면서 왜 그렇게 많은 후원을 하셨어요. 녹색평론 발행도 쉽지 않는데요. 너무 큰 금액이라 손가락을 짚어가며 세 번이나 확인했어요. 아버님 큰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아버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아이고 그리 많지 않아요. 생태마을 초창기에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하겠나. 밑 빠진 독에 물 붇기 아닌가요. 종자돈 알지요. 힘내고 용기 내라고 보낸 겁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바치시는 부모님, 그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을 아는 자식이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그 어떤 어려움도 고난도 이겨냅니다. 김종철 선생님은 저에게 그런 아버지이셨습니다.
촛불정국 때 전북지역 4대 종단 성직자들이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며칠 전 선생님께 안부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버님, 건강은 어떠세요. 이번 토요일 광화문 집회에 갑니다. 근데 아버님, 4대 종단 성직자들이 연단에 올라 남행열차 개사곡인 박근혜 호송열차를 노래하기로 했어요. 아버지, 저희들 저녁밥 맛난 것 사주세요. 막걸리도 한 잔 사주시고요."
프레스 센터 뒷골목에서 김치찌개에 막걸리까지 마시게 되었습니다. 식사 후 연단에 올라 남행열차 개사곡 호송열차를 신명나게 불렀습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광화문 집회현장에서 만났습니다. 초겨울 쌀쌀한 날씨에 선생님과 팔짱을 끼고 청와대 쪽으로 거리행진을 했습니다. 20년 가까이 소통한 정이 만든 아름다운 동행이었습니다.
간디가 비폭력 평화주의자라면, 선생님은 생태평화주의자 간디였습니다. 제 삶의 진로를 결정해야 할 때,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 이정표가 보이지 않고 시대의 빛을 읽을 수 없을 때, 하소연이라도 해야 할 때, 선생님은 제 인생의 스승이자 아버지이셨습니다. 그런 아버님이 황망이 가셨습니다. 하소연하고 의지할, 비빌 언덕이 사라져 너무도 황망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코로나 사태를 진단하신 말씀이 유언으로 제 삶을 지탱할 것입니다. “생태계 훼손을 막고, 맑은 대기와 물,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한 토양의 보존과 생태적 농법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소박한 삶을 적극 껴안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이다.”
보시니 좋았던 창조주 하느님, 지구라는 인류 공동의 집을 잘 보존하길 원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영육간 건강을 주시고, 인류가 교황님의 가르침대로 개발과 성장을 멈추고 지구생태계를 잘 보존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