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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같은 날들, 288과 한라산과 올레에서 행복에 젓다 (졸업산행)
1. 일자: 2015. 3. 7 (토)
2. 장소: 한라산(1950m)
3. 행로 및 시간
[성판악 휴게소(08:58) -> 속밭 쉼터(10:10) -> 사라오름 갈림(10:30) -> 사라오름(10:45, 1324m) -> 진달래 대피소(11:29) -> (식사 -11:52) -> 정상(13:04) -> 병풍바위(13:55) -> 다리(14:10) -> 용진각 대피소(14:20) -> (소나무 숲, 삼각봉) -> 탐라계곡 대피소(15:11) -> 관음사 주차장(16:08)]
< 한라산 산행을 준비하여 >
제주도를 간다. 288 졸업산행으로 한라산을 오르는 게 주 목적이지만, 둘레 길과 오름을 둘러 보는 일정도 있고, 섬 밤의 여흥과 맛난 음식도 설렌다. 한 마디로 기대 만땅이다.
흡사 엎어놓은 접시 모양으로 망망대해에 떠 있는 거대한 환상의 섬, 제주도 사실 한라산은 제주와 동격이다. 섬 자체가 솟아 오른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하나의 산이니 말이다.
‘거문오름과 용암동굴, 성산일출봉’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주된 이유이지만, 제주도는 그 자체가 문화재급 자연유산이다. 다양한 식생과 화려한 풍광의 한라산은 말할 것도 없고, 360개의 오름은 하나 하나가 작은 한라산이다. 250km 가 넘는 해안 그 어디에서 바라보는 바다 또한 절경이다.
지난 산행의 사진을 들추어 본다. 2007년 12월 초 친구들과 처음 올랐던 한라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백록담은 경이로움이었다. 그리고 2011년 5월 돈내코 길을 따라 홀로 올랐던 윗세오름 길은 온통 철쭉의 향연이었다. 두 번 다 날씨가 좋아 눈이 호강을 했다. 그 좋은 날씨 운이 이번에도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 지난 한라산 산행의 추억 >
산행 길을 살펴본다. 성판악에서 진달래 대피소 2시간, 이후 정상까지는 70분, 관음사 하산은 3시간을 예상해 본다. 시간 여유가 있어 사라오름을 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산행 이외 둘레 길과 오름에 대한 정보는 없다. 미리 갈 곳을 안다 해도, 산 말고는 젬병이라 미리 준비할 게 없다. 차분히 토요일 새벽을 기다린다. ㅎㅎ
< 희망사항 >
일상에 바빠 잊고 지내다 금요일 정오 무렵 행진님의 연락을 받고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그 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금요일 저녁 6시에 밴드에 졸업여행 출정을 알리는 공지를 띄우는 사이, 참석자 만을 위한 카톡방이 개설되고 붉은 숫자가 급속히 증가한다. 모임방이 순식간에 불이 난다. 비로써 여행의 흥이 돋는다. 기대했던 바다. 여행 전 설렘이 밀려든다. 대학 졸업여행 이후 단체 여행은 정말 오랜만이다. 밥벌이나 가정행사가 아닌 나 만의 휴식을 위해 가는 여행, 그 여정 자체를 즐기고 싶다.
일기예보를 본다. 금요일 저녁 제주도에는 약하게 눈이 내리고 있다. 토요일 새벽에도 눈 예보가 있으니 운이 좋다면 눈 덮인 백록담과 관음사 하산 시 풍성한 조릿대 길을 걸으며 초록과 백설의 환상의 조화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적설량 부족으로 겨우내 야속했던 설경을 한라산에서 흠뻑 취하고 싶다.
한라산 산행 이외에 처음 접하는 올레 길 탐방과 오름 오르기도 산 못지 않게 기대가 크다. 늘 마음에만 있던 여행의 로망을 비로써 실천해 보게 되었다. 더욱이 방송전문가와 동행하여 혼자라면 접하기 힘든 유용한 여행 정보를 많이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니 이 또한 기대 만땅이다.
토요일 288과 함께하는 제주에서의 환상적인 밤 바다와 추억을 기대하며….
(여기까지는 길 떠나기 전 준비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 제주 가는 길에 >
판교에 사는 채왕님이 고맙게도 차를 몰고 집 근처로 왔다. 그 차를 타고 김포로 향한다. 사위는 아직 어둡다. 약속시간에 대한 불안감에 잠시 긴장이 되었으나 이내 차는 주차장에 들어선다. 5시 30분 무렵이다. 약속장소인 아시아나 티켓팅장 앞에는 대장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이 모여 있다. 역시 부지런한 분들이다. 인사를 하고 이내 비행기에 오른다. 이 새벽, 첫 비행기는 거의 만원이다. 승객의 상당수가 등산 복장이다. 놀랍다. 이 나라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산꾼들이 있나 보다.
잠시 신문 보고 커피 한 잔 마시는 사이 어느덧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 오는 날의 산행은 늘 마음의 갈등을 유발시킨다. 그러나, 오늘은 빼도 막도 못한다. 무조건 전진만 있을 뿐이다. 비가 곧 그치겠지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일행을 태운 25인승 마이크로 버스에 탑승하여 낯선 도로에 들어선다. 비로써 이곳이 제주도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버스 기사가 간단한 제주 소개를 한다. 제주 인구는 62만 명, 땅 넓이는 서울의 3배란다. 예전 어느 자료를 읽다가, ‘제주도에서 도로가 정체되는 일은 시내 일부를 제외하고는 드문데. 그 이유는 서울에 3배쯤 되는 면적(6억평)에 대략 1/20 인구(60만명)가 살고 있으니 길이 막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라는 재미난 글을 본 적이 있다. 토요일 아침 제주의 도로는 역시 한산하다.
‘모이세’ 라는 음식점에서 배추와 소고기로 끓인 맛난 해장국을 먹고 성판악으로 향한다. 잠결에 본 이국적 풍광의 도로에는 여전히 겨울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성판악에 도착할 무렵이면 그칠 거야 하며 날씨가 개기를 기대해 본다.
얼떨결에 코스 안내를 하게 되었다. 옛 기억을 살려 ‘3시간 조금 넘으면 정상까지 갈 수 있으니 사라오름을 들렸다 가도 11시 40분경에 진달래에 도착할 수 있고, 상황을 봐서 식사여부를 결정하고, 정상을 거쳐 관음사로 하산하면 4시 30분 정도가 될 것’이라는 스스로도 확신 못하면서 말은 그렇게 나와 버렸다. 어차피 자고 갈 건데 뭐, 좀 늦으면 어때~~
< 성판악에서 백록담 >
9시가 조금 안되어 성판악에 도착했다. 행장을 갖추는 사이 대장님은 벌써 준비를 마치고 어서 가자고 하신다. 완전 대간 모드다. 정신이 번쩍 든다. 비는 부슬부슬 여전히 내린다.
< 성판악 초입 길에서 >
널찍이 난 등로를 따라 걷는다. 나목들이 길 옆에서 호위한다. 선두는 훌쩍 앞으로 가 버렸고 후미에 선다. 배낭 커버를 해야 하나 망설이다 그냥 간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숲이 이어진다. 일행을 세워 후미 단체사진을 찍는다. 평소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 않는 다정이님과 돈도니님도 함께 한다. 해운님과 아카님의 붉은색 옷이 눈에 확 띈다. 평탄한 숲이 이어진다. 트랭글의 거리 알림이 1km를 알린다. 꽤 빠른 속도다. 선두는 저 만큼 앞서 가고 있을 게다.
흐린 겨울날의 한라산은 한 폭의 정갈한 수묵담채화다. 겨울 비는 설경 속으로 몸을 섞으며 길에 내려 앉는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눈 속세도 때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천천히 고도를 높일수록 흐린 날은 모든 것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키 큰 나무 숲에 잠시 멈추어 풍경과 사람의 담는다.
속밭 대피소를 지난다. 70분이 소요되었다. 조금 늦다. 이 속도로 가다간 사라오름을 오를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홀로 속도를 내어본다. 후미가 내 속도를 따라 올 게다. 경상도에서 온 단체 일행을 제치고 앞을 보니 해운님이 홀로 가고 있다. 동행이 된다. 머지 않아 사라오름 갈림이 나타난다. 물어 볼 것도 없이 좌측으로 길을 튼다. 주 등산로와 달리 인적이 드문 미답의 눈 길이 환상적으로 이어진다. 해운님이 지인들에게 보여줄 설산에서의 증거 사진을 요청한다. 기꺼이 카메라를 누른다.
< 속밭 대피소 부근에서 / 연무에 젓은 사라오름 >
한참을 올라 가는데 고문님이 내려온다. 다행이다. 선두와의 거리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 후미도 따라 오고 있다 말하며 고문님을 안심시키고 (혹, 시간 부족을 이유로 가지 말자 할까 해서 ㅎㅎ) 사라를 향해 오른다. 고도를 높일수록 나무에 붙은 눈의 양이 많아진다. 곧 호수에 도착한다. 물은 얼어 붙었고 흰 눈 속에 현무암의 검은 색이 인상적이다. 주위는 온통 흐릿한 연무에 덮여있다.
가히 비교를 거부할 만큼 멋지고 몽환적인 풍경이 이어진다. 가지가 휘도록 눈을 인 나무들 사이로 조릿대의 흔적도 보인다. 선두와 만난다. 오름의 전망대가 바로 위란다. 해운님과 함께 오른다. 곧 청한님을 만났다. 오름 정상 표지판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고는 아쉬운 발 길을 돌린다. 한라산까지 와서 시간에 쫓기긴 싫지만 어느 정도 보조는 맞추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 사라오름에서 >
호수에서 후미와 만났다. 꽤 처졌다 생각했는데 빠른 속도로 따라 붙었다. 역시 288이다. 마음만 먹으면 속도내기란 식은죽 먹기다. ㅋㅋ 후미도 만났으니 여유를 부려본다. 아이넷님의 라이카가 위력을 발휘한다. 산행을 시작하며, 오늘은 여러 사람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다 하더니 행동으로 옮긴다. 멋지다. 서로의 모습과 황홀한 풍경 사진 찍기에 분주하다. 모두의 얼굴에서 감동의 표정이 역력하다. 사라오름을 고집한 일은 잘한 짓이다. ㅎㅎ
사라오름 갈림에서 진달래 대피소 길은 상대적으로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선두와 어서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11시 30분 무렵 진달래 대피소에 닿았다. 선두와 만났고 후미 일행들도 삼삼오오 도착한다. 공터에서 식당이 차려졌다. 행진님이 준비한 도시락, 반찬이 여러 가지인 맛난 음식이건만 덩그러니 식은 밥을 보고 있자니 펄펄 끓는 라면 생각이 간절하다. 바람님이 주시는 막걸리 한 잔에 아쉬움을 달랜다. 우적우적 맛도 못 느끼며 남은 산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한다.
다정이님과 돈도니님은 일찍 와서 대피소 안에서 식사를 했다 한다. 부러웠다. 먹는 동안 추위가 느껴진다. 손도 곱아온다. 식사시간을 평소보다 일찍 끝마친다. 먼저 출발한 몇 몇을 제외하고 진달래 대피소에서 단체사진을 찍는다. 그리고는 누구라도 할 것 없이 배낭을 메고는 길을 재촉한다. 얼른 몸을 덥혀야 하기 때문이다.
< 진달래 대피소에서 / 화려해지는 눈꽃잔치 >
진달래 대피소를 벗어나자 숲은 점차 화려해진다. 식생이 바뀌는지 평소 못 보던 나무들이 여럿 눈에 들어온다. 구상나무, 자작나무 등 등. 주목의 고사목도 보이는 것 같고 갖가지 고산 나무에 화려한 상고대 잔치가 펼쳐진다. 고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이는 곧 풍광의 변화를 예측하는 일이다. 한바탕 비탈을 치고 오르자 주위가 확 트인 공터가 나타난다. 설산의 화려함은 고도에 비례한다. 구상나무에 쌓인 눈이 인상적이다. 그 모습을 담고자 잠시 섰다 가면 더 화려한 눈꽃잔치가 곧 이어진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화려한 풍경이 끝 없이 이어진다.
< 정상으로 향하는 길 >
나무 데크 길이 나타난다. 고도가 180미터를 넘으니 호흡이 달라진다. 발걸음도 묵직해진다. 참깨님, 채왕님, 팔팔님, 옥혜님, 행진님, 아카님 등이 후미다. 데크 옆 가이드 쇠말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이 두텁게 쌓인 길을 오른다. 둥그렇게 뚫린 구멍을 통해 눈의 깊이가 가늠된다. 1900미터 표지석을 지난다. 고지가 머지 않았다. 선두는 얼마나 앞서 가고 있을까?
< 한라산 정상에서 >
13시 4분 한라산 정상에 섰다. 기대했던 백록담은 그 흔적을 알아 볼 수 조차 없다. 연무와 바람 그리고 인파로 정상 인근은 어수선하다. 선두를 찾았으니 감감이다. (사실 진달래 대피소에서 정상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어야 했다. 이왕 길 안내를 했으면 정상까지는 책임졌어야 하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ㅎㅎ) 길게 선 줄 뒤로 간다.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 인증 샷은 해야 하지 않는가! 5분여 기다린 끝에 '한라산 정상' 목판 앞에서 후미 단체사진을 찍었다. 인증 샷을 찍고 나니 주위를 둘러 볼 여유가 생긴다. 또 하나의 줄이 길게 이어진다. 무엇일까 하고 살피니 돌로 된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다. 나무 정상석보다 돌 정상석이 더 인기가 있다. 백록담의 '鹿’자는 반쯤 눈에 잠긴 상태인데도 말이다. 혹시나 일행이 있나 해서 주위를 둘러 보다 바람님을 발견한다. 선두의 위치를 물으니 기다리다 방금 전 하산했다 한다. 아쉽다 조금만 서둘렀다면 근사한 단체사진도 찍고 하산 길을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정상에서의 감동의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밀리는 인파를 피해 방향을 튼다. 몇 발짝 걷지 않았는데 주위는 한산하다. 한라산의 진수는 지금부터인데 말이다. ㅋㅋ
< 백록담에서 용진각 대피소 >
경험에 의하면 한라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백록담에서 병풍바위 지나 용진각 대피소 가는 길의 풍경이다. 비는 그쳤으나 여전히 흐리며 눈의 양이 많아져 몽환적 분위기는 더해간다.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진다. 겨우내 아쉬웠던 설산 풍경에 흠뻑 빠져든다. 지난 몇 년 간 경험한 설경 중 최고다.
< 백록담 하산 길 초입 풍경 1 >
나무 테크 옆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원래는 풍경이 멋진 곳인가 본데 오늘은 반대편 절벽의 설경이 포인트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눈이 자연스럽게 누가 보아도 훌륭한 포토존을 만들어 준다. 단체로, 홀로 꽤 많은 사진을 찍으며 한라산의 감동을 나누었다. 관음사 하산 길을 가파른 곳으로 기억되는데 쌓인 눈이 험로를 평범한 등로로 만들어 버렸다. 덕분에 발 밑 부담 없이 걷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푸드득 하는 소리가 들린다. 까마귀 한 마리가 눈에 덮인 구상나무 가지에 붙어 주위를 살핀다. 틈을 놓칠라 얼른 셔터를 누른다. 두 장 중 한 장에 그 모습이 잡힌다. ㅎㅎ 한 장 건졌다.
< 하산 길 후미 단체사진 / 설경과 까마귀 >
옥혜님, 행진님까지 더해진 카메라가 잠시도 쉬지 않는다. 멋진 풍경이 있어 사진을 찍고 나면 바로 앞에 더 좋은 곳이 나타난다. 산행 내내 반복되는 현상이다. 고사목 앙상한 기둥에도 풍성한 눈이 붙어 있다, 바람을 이겨내느라 힘겨운 투쟁을 한 흔적이 역력하다. 바람이 부는 반대 방향으로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쉽지 잊지 못할 풍경이다. 걷기에도 바쁜 마당에 카메라가 손을 떠나지 않는다. 경이로운 산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은 이 짧은 기억으로는 담지 못할 그 아름답고 벅찬 감동의 순간들을 사진을 통해서라도 가슴에 떠오르기 위함이다.
< 백록담 하산 길 초입 풍경 2 >
잠시 날씨가 갠다. 진행 방향으로 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무테크가 있는 공터를 지난다. 앞서 가는 이들의 모습이 색색의 점으로 다가온다. 앞 산의 모습이 선명해진다. 눈에 덮여 머리만 내민 숲이 마치 현무암 마냥 검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 뒤로는 암봉이 보인다. 흐린 날씨에도 이리 멋진데 맑은 날씨였다면 감동의 깊이는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잠시 후 병풍바위도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일렬로 길게 늘어선 암괴가 도도한 모습으로 288을 내려다 보고 있다.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곤 한다. 또 이곳 저곳에서 탄성이 쏟아진다. 조릿대의 푸르름마저 더해졌다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지만, 어쩌면 날이 흐려 풍경은 더 멋진지도 모르겠다. 바람에 따라 암괴가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한다. 산의 변화무쌍함에 절로 고개가 죽여진다.
< 병풍바위 주변 풍경 >
병풍바위 밑 공터에 일행들이 모인다. 아이넷님과 청한님 등의 중간 그룹과 만난다. 후미가 10여 명으로 불어났다. 병풍바위를 배경으로 288이 이곳을 다녀갔음을 남긴다.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 병풍바위 부근에서 단체사진 >
커다란 다리를 지난다. 오래 전 큰 태풍으로 무너진 다리가 아주 튼튼한 놈으로 교체되었다. 다리 중간에 들어설 무렵 PD님의 지령이 떨어진다. 다리 위에서 자연스럽게 흩어지란다. 큐 싸인이 떨어지고 멀리서 카메라 앵글이 돌아간다. 뒤에 확인하지 않아도 멋진 모습이 담겼으리라...
다리가 섰다는 건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는 게고, 반대편으로 산이 있다는 증거다. 산 허리 길을 따라 등로가 이어진다. 돌과 토사 방지를 위해 설치된 펜스는 반쯤 눈에 잠겨 휘어져 있다. 눈의 무게가 감지된다. 펜스 길을 따라 가니 멀리 인공 구조물이 신기루마냥 보인다. 새로 건설된 용진각 대피소다.
< 다리를 지나며 >
용진각 대피소를 지나자 고도가 낮아져서 그런지 대표 풍경이 바뀐다. 풍성한 눈 잔치는 옅어지고 대신 키 큰 전나무 숲이 이어진다. 카메라를 세워 기럭지를 늘려 숲의 풍경을 담는다. 경험상 이럴 땐 인물을 작게 하고 배경 중심으로 사진을 찍으면 멋지게 나온다. 실행에 옮긴다.
< 키 큰 나무 숲을 지나며 >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담소하며 하산한다. 탐라계곡 본류가 모습을 드러낸다. 얼마나 물살이 세면 계곡의 돌들은 하나 같이 둥글둥글하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무인대피소인 탐라계곡 도착했다. 평상에 앉아 잠시 정열을 정비한다.
고도 1100미터 지점에서 흙 길이 나타난다. 누군가 아이젠을 벗길래 따라 했다. 이내 후회가 들었다. 주춤거리며 걷다가 안되겠다 싶어 다시 찬다. 산에서 사고는 흔히 하산 길 날머리가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생기기 마련이다. 숲에 조릿대의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녹색의 푸르름이 색의 조화를 부린다.
< 관음사 인근 하산 길 풍경 >
4시가 가까워진다. 지나온 여정을 기억해 본다. 초반 잠시 허둥거렸지만 결국 예정된 시간에 진달래 대피소와 정상에 올랐고, 처녀 길인 사라오름도 다녀왔다. 그리고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날머리 관음사 주치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한라산 등산 임수 완수!!
< 에필로그 >
겨울 한라산의 정취를 흠뻑 느낀 산행이었다. 큰 산의 매력은 다이나믹이다. 진달래 대피소까지의 등로가 평온한 산책이었다면, 사라오름은 흐린 날의 그린 한 폭의 수묵화였고, 한라산 정상 등정 길은 잠시나마 고도가 주는 호흡의 부담감을 느끼게 했다. 백록담 하산 길 중 초반 병풍바위까지가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다. 변화무쌍한 길과 화려한 풍경에 흠뻑 빠져 보았다.
설산의 매력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다. 그리고 여유롭게 담소하며 걷던 구상나무와 전나무 숲 길. 모든 즐거운 추억이 한 장의 파노라마 마냥 뇌리를 스친다. 이 모든 여정에 288이 함께 했다. 비록 인파에 밀려, 속도의 차이로, 미리 약속하지 않아, 정상에서 다 함께 모이지는 못했지만 날머리에서 다시 웃음 띤 얼굴로 만났다. 이 아니 행복한 일이겠는가? 산이 있어, 그리고 마음에 맞는 산 멋이 있어 행복한 하루였다. ㅎㅎ
< 한라산 산행 궤적 >
(평상 시의 산행기는 궤적을 되집어 보는 것으로 마치지만, 오늘은 아니라 산행보다 더 즐거운 추억이 많아서이다. ^.^)
< 1일차 뒤풀이 >
4시 30분, 버스가 관음사를 출발한다.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기는 애매한 시간이다. 숙소에 들려 목욕을 하고 다시 나오면 산행 뒤풀이의 흥이 떨어질 것 같고, 바로 식사 장소로 가자니 이르고, 망설이다 행진님, 청한님과 상의하여 후자를 택하기로 한다. 환하게 날이 갠 도로의 풍경이 멋지다. 길과 내 마음에 토요일 오후의 여유가 뚝뚝 떨어진다.
제주 흑돼지를 전문으로 하는 큰 음식점에 도착했다. 대장님, 참깨님, 다정이님, 돈도니님, 아카님 등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술이 한 순배 돌아가니 흥이 난다. 송앙님의 건배사가 있은 후 누구라 할 것 없이 술 잔이 돌아 가는 속도가 빨라진다. 일어나 소감 한마디씩 한다. 그간의 정과 즐거움이 묻어나는 공감되는 말들이 이어진다. 내 순서가 된다. 어차피 이번 여행의 내 역할은 '바람잡이'였다. 내친김에 이번 여행을 수학여행으로 규정하고 5월에 이번에 참석하지 못한 288회원들과 진정한 졸업여행을 준비하겠다 말했다. 술 기운이 한 몫 했다. 반응이 좋다. 술도 한 잔 했겠다. 호기 있게 나름 계획을 읊었다. 경험상 뱉어 놓으면 하게 되어 있다. 천천히 그리고 함께 준비하자!!
흥겨운 1차 뒤풀이가 끝나고 2차 바람을 잡는다. 다정이님이 산에 오르며 '회' 애기를 하길래 2차는 회집으로 가기로 한다. 물론 다정이님이 한 턱 쏘기로 했다. 짐만 두고 바로 로비로 집결한다. 숙소 부근 작은 회집으로 향하는 길, 적당한 술에 흥에 겨워 발걸음은 가벼웠고, 마음에는 벌써 풍선이 달려진다. 기대했던 섬 밤의 여흥이 무르익어 간다.
먹음직스러운 배방어가 주 메뉴인 2차 잔치가 벌어졌다. 평소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돈도니님 옆 자리를 청한님에게서 빼앗아 앉는다. 대간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나중에 알았지만 '주당'인 돈도니님과 대작을 하다 보니 금새 술이 오른다. 이후는 기억이 흐릿하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룸메이트인 청한님은 없고 홀로 호텔 방 바닥에서 자고 있다. 모처럼 만취했다. 실수나 하지 않았나 모르겠다. ㅋㅋ 나중에 안 사실은 나와 몇 몇을 제외한 2차 멤버 전원이 3차로 노래방에 가서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한다. 일단은 내 빈약한 노래실력이 탈로 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참깨님의 흥겨운 메들리, 명가수 돈도니님의 열창, 아이넷님의 분위기 있는 노래를 듣지 못해 아쉬웠다.
< 2일차 올레 길 걷기 >
10시 부렵 서귀포 부근 외돌괴 해변에 도착했다. 이동중의 1시간의 잠이 숙취해소에 보약이 되어 주었다. 어제와 달리 햇살이 쏟아진다. 볕이 환상이다. 팔팔님의 전매특허 288체조로 몸을 풀고 올레 길 걷기에 나선다. 산은 많이 다녀 보았지만 평지 길에는 익숙지 않다. 올레란 바다와 집 돌담 사이에 나 있는 동네 길이란 것 외에는 아는 게 없다.
< 외돌괴에서 단체사진 >
산책하는 기분으로 해변으로 향하다 깜짝 놀란다. 바닷가 풍경이 환상적이다. 해변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 커다란 바위 기둥이 서 있다. 동해 까막바위 보다는 훌쭉하고 키는 더 크다. 온 몸이 흰 색이다. 까막바위와 혼인시켰으면 좋겠다. 주변 풍경과 어우러진 모습이 최고 수준이다. 바다 멀리 섬이 보이고 해안을 따라 난 데크 길은 평온하기 그지 없다. 유채꽃도 보이고 야자수도 눈에 들어온다. 몸을 움직이고 길을 걷자 술독이 급격히 빠지고 생기를 되찾는다. 올레 길에 매력에 푹 빠진다. 오늘도 아이넷님과 옥혜님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난 휴대폰 카메라로 풍경사진 몇 장만 찍었다.
<외돌괴와 주변 풍경 >
바닷가 길이 끝나고 마을 길로 들어선다. 길가에 늘어선 카페와 펜션들은 하나같이 개성 만점이다. 천편일률적인 수도권 건축물과는 차원이 다르다. 제주도가 주는 여유가 건축물에도 묻어난다. 제주의 키 워드는 역시 여유와 휴식이어야 한다. 밥벌이와 일상사에 지친 이들에 잠시 쉬어 가는 여유를 주는 쉼터가 더 많아져야 한다.
올레 7구간은 한라산 마냥 다이나믹하다. 돔배낭길에서 잠시 멈춘다. 검은 돌 해변과 야자수 군락이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길이 서귀포 시내 방향으로 이어진다. 월드컵경기장 뒤편으로 눈에 덮인 한라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잘 찍은 풍경 사진을 보는 듯하다. 그 앞으로는 유채꽃이 피어 있다, 이 아니 환상적인가?
< 올레길을 걸으며 >
당초 2시간을 예상한 법환포구까지의 길을 1시간 20분 만에 왔다. 누가 대간꾼 아니랄까 바, 그렇다고 빨리 걸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름다운 길도 더 걷고 싶고, 점심시간 예약 시간도 있고 해서 더 걷기로 한다. 우린 이미 걷기에 최적화된 인간들 아니겠는가! 마냥 걸어도 누구 하나 불편하지 않을 길이 한 없이 이어진다. 왜 7구간을 올레 길 중 최고로 치는지 그 이유는 걸어보면 알지어다.
< 제주의 이국적 풍경 1 >
제주 해변가 속살을 보는 기분이 설렌다,. 모퉁이를 돌면 또 어떤 새로운 풍경을 맞을까 하는 생각에 설렌다. 꿈 같은 시간이다. 어제 한라산 등산도 좋았지만 오늘 올레 길 걷기는 그에 못지 않다. 새로운 경험이기에 더 즐겁다.
< 제주의 이국적 풍경 2 >
12시 무렵 작은 포구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식사 장소로 이동한다. 깨끗하고 인테리어가 정갈한 회집에 들어선다. 행진님의 지인이 추천한 집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간단한 전채 요리와 갈치회가 나오더니, 광어회가 차려진다. 첫 젓가락 맛에 반한다. 아니 이럴 수가 내가 늘 먹는 그저 그런 광어가 아니다. 현지에서 먹는 자연산이란 이런 것이구나. 혀 끝으로 전해오는 풍미가 나 같은 맛치도 감동할 만큼 다르다. 이어서 나오는 전복, 해삼, 멍게 등 각종 해산물도 싱싱하기 이를 데 없다. 모두의 입에서 음식에 대한 찬사가 쏟아진다. 간장이나 고추장을 굳이 찍지 않아도 그 자체에 간이 베어 있다. 음식의 질이 서울에서 먹었다면 10만원을 훌쩍 넘겠다. 속이 확 풀리는 광어 매운탕까지 잘 먹고 자리를 뜬다. 어제와 오늘 아침까지 눈이 즐거웠다면 지금은 입은 호강한다. ㅎㅎ
행진님의 머리에는 제주의 명소가 꽉 차 있나 보다. 시간상 2차 올례길은 포기하고 산방산 길을 따라 송악산으로 가자고 한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산방산의 풍경이 눈에 익다. 사당역 삼다수 광고판에 나오는 바로 그 풍경이다. 멋지다. 행진님이 말한다. “산방산의 둘레 면적은 백록담과 같다”고. 버스 차장을 보면 산방산을 엎어 백록담에 넣는 상상을 해 본다.
< 산방산 원경 / 송악산 올레길 >
송악산 어귀에 선다. 40여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해변을 따라 풍경을 감상하며 송악산 올레길을 걷는다. 해안 풍경과 산방산 원경이 근사하다. 마라도와 가파도가 보이는 해변 끝까지 갔다 돌아 나온다. 그 사이 대장님과 팔팔님은 송악산 정상을 찍고 우리보다 먼저 내려와 있다. 헐~~
송악산을 끝으로 ‘제주 졸업 전 여행’은 끝이 났다.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 눈을 감는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이렇게 즐거운 여행이 또 있었을까? 몇 명 장면이 떠오른다. 분명 훗날 같이 생각을 하면 어제와 오늘의 여정이 떠오를 것이다. 산과 길과 벗 그리고 이 모든 이를 연결시켜 준 백두대간에 감사할 따름이다.
언젠가 오늘을 아련한 추억으로 돌이킬 날이 있을 게다. 그때는 등 뒤로 사라진 모든 시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리라. 아둔한 내 눈이 보지 못한 사이에 지나간 바다 풍경, 이르게 핀 꽃들, 촘촘한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로운 바람, 산에서 맞았던 낯선 나무와 빛깔과 기억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함께 해 주신 288 동지들, 흐뭇한 미소로 함께 해 주신 대장님, 제주 사람보다 제주를 더 많이
알고 있는 듯한 행진님, 그리고 모두를 위해 큰 마음을 베풀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행복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