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2008.겨울호)서지월 시-'오래전,내 시를 두고'외1편
오래전,내 시를 두고
서 지 월
중국 두만강 변경도시 도문의 윤청남시인이
아주 맘에 드는 시라서 오래전에
김경희시인에게 건네줬다는 내 아주
오래전의 시 <혼자 있는 봄날>이라는 시였는데,
나도 깡그리 잊고 지냈는데
지난 2007년 가을 제7차 만주기행으로
도문 갔을 때, 거기 연길에서는 석화 심예란 조민호
도문에서는 윤청남 김경희시인 함께
도문시가지 <신선로 홍초롱>식당에서
얘기 나누다 거론된 것이네
아마, 20년 정도 되어갈 거야
내 등단 초기, 돈 없고 직장 없고
딸린 처자마저 없던 때,무료한 시만
파먹고 지내던 때, 어린 시절이 떠오른 거야
그걸 시로 쓴 것인데 대구 KBS방송국 PD로 근무하던
김재진시인이 느닷없이 전화 걸어와
-'서형, 요즈음도 닭 보나?' 하며 비웃듯
수화기에 대고 한참을 껄껄껄껄 웃으면서 말하지 않는 거였지
나는 황당해 뭐 이런 자가 있나 했었지
알고 보니, 내 시를 두고 항시 빈정대던 김재진시인이
이 시만큼은 인정해 두루두루 화제가 되었던 거지
입 다물고 가만 있으면 못 참는 성미라
김재진시인이 방송국에서 전화 걸면 전화요금도 안 드는지라
마구 여기저기 시인들한테 다이얼 돌려,
서지월시인 시 <혼자 있는 봄날> 읽어 봤어?
하고 떠들어제낀 거야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 되고
198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까지 당선 되어
귀재로 불리웠던 내 친구 문형렬은 영남일보
논설위원까지 지냈는데
내 시 당시 <혼자 있는 봄날>이 매일신문에 발표되었을 때
자발적으로 전화 걸어와, 자신 보다 못한 사람에겐 절대 돈 안쓰는ㅡ
당시 동료시인들도 문형렬한테 커피 한 잔
얻어마셔 본 적 없다 할 적이었는데
동아쇼핑센터 8층 그 비싼 고급식당으로 나를 불러내더니
-'지월아, 오늘 너 먹고싶은 거 뭐든 다 먹어라 사주께'
했는데, 마음 약한 나는 전주비비밥 주문해 먹었는데
문형렬이 나 보고
-'야, 지월아 네 시 <혼자 있는 봄날> 읽어보니까 눈물 날라 카더라~'
하며 내 자전적 삶을 이 시 <혼자 있는 봄날>을 모티브로 해
소설 쓰겠다고 허락해 달라 하는 거
허락해 준 사연 있는 시였네
2003년 내가 일본 도쿄 <지구시>초청으로 참가했을 때도
일본 같이 갔으며, 지난 2007년 11월 16일
만주땅 장춘「장백산문학상」시상식에 내가 참여했을 때에도
가고싶어 했던 내 오랜 친구지. 시 잘 쓰고 소설까지 뛰어난 재능을 가진!
뿐만 아니었지, 역시 돈 없고 직장 없고
딸린 처자마저 없던 그때
썰렁한 웃칸 방 고독의 산실에서
시만 쓰며 지내던 때, 밤 10시도 훨씬 넘었을까
효성여대 교수인 엄붕훈(지금은 엄원태)
송재학 장옥관시인이 우루루 몰려왔었는데
왜 왔느냐고 물으니까, 내 시 중에
<겨울새>라는 아주 잘 쓴 시 있다기에
보러 왔다는 거지, 엄붕훈시인이 그 말 전해 왔었는데
나더러, 한국 역대 어느 신춘문예 당선시 보다
뛰어난 시라는 거였지
그 시가 과거 어느 때 어느 시간
KBS-FM「김자옥의 사랑이 있는 풍경」에서도
탈랜트 김자옥씨가 직접 낭독하며 소개되기도 했었는데
물론 내가 등단하기 전 신춘문예 응모해
빛도 못 본 시가 <겨울새>와 <조선의 눈발>이라는 시였네
작금, 문경 새재에 시비로 세워져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으며, <조선의 눈발> 시비가 문경 새재에 세워지면
MBC방송국에서도 후원 아끼지 않겠다 하네
이밖에도 엄붕훈은 한때 <낭만시> 동인 같이 했는데
시를 편향적으로 보지 않아 <낭만시> 동인시집에 실려있는
내 시 <가난한 꽃> 을 두고도 감탄한 거야
이런 시는 쓰기 쉬운 것 같으나
아무나 쓸 수 있는 시가 아니라는 것
-'서형에게 이런 좋은 시 있는 줄 몰랐다'고
찬탄을 거듭한 거지
나는 솔직히 그 시를 떠오른 대로 썼지
아주 맘에 들거나 써놓고 나서도 무관해 온 거였지
문장표현을 멋드러지게 하는 남다른
기술을 가졌던 송재학시인은
우리가 다 아무도 안 알아준 암흑기 시절이었는데
강문숙 시인더러 그리고 김호진 시인더러
'두고 보라고!' 하면서
자신의 시는 시대적 감각에 맞아 좀 더 조명받지만
나중에 가면 서지월의 시가 영원히 남는다고
두 신진시인에게 그것도 지금이 아니고
15,6년 전쯤에 말했던 것
송재학은 아주 잘 나갔는데 이제는 좀 주춤한듯 하고
지금은 엄원태 장옥관시인이 잘 나가고 있어,
걱정 되는 건 그 말들 지금에 와서
상 하나씩 거머쥔 그들이 말 한 적 없다 하면
나만 난처한 꼴 된다는 것이네
**답시 <서형, 요즈음도 닭 보나?'> 를 써서 낭만시 동인시집에 발표한 적 있음.
백담사 만해마을 오현스님께서는
서 지 월
백담사 만해마을 가면
「만해축전」총감독인 오현스님 뵐 수 있는데
워낙 저명한 인사들이 찾아오는지라 발 디딜 틈마저 없는데
지난해 여름엔 만해마을 가봐도 할 일 없다 싶어
「만해축전」참석 못하고 가을엔가
<목마와 숙녀>의 시인 고 박인환문학제가 거기서 열려
마침 초청이 와 들렀더니,
서선생, 여름에 안 왔지? 스님께서 서지월이가 안 보인다
하시더라고 선배시인이 내게 전해주는 말에 가슴 뜨끔했었지
나 말고도 얼마나 많은 문인들 찾아와
머리 조아리는데 미물같은 나를 기억해 주시다니!
감사는 이런 경우 하는 거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서
잊지 않고 올여름엔 「만해축전」갔더니 이튿날
역시 그 선배시인께서
오현스님께서 서지월이 어제 본 듯하다 하시더라구
아니요, 아직 인사 안 드려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걸요
지금은 쉬고 계시니 한참 있어야 할 걸
그래서 한참을 새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되신
이근배선생님과 이런 저런 얘기 나누고 있었지
그러고는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스님 계시는 3층으로 올라갔지
젊은 스님 두 분이 오줌도 안 누는지
스님 방문 앞 양 옆에서 꼼짝 않고 경비서고 있었는데
큰스님 뵈러 왔소이다 하니
아니 됩니다 곤란합니다 1층 주지스님께 말해 보십시요
나는 주지스님 뉘신지도 모르는데요
하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퇴자 맞고 다시 <문인의 집> 1층으로
내려왔었지 또 한참이 지난 후, 이제는 안되겠다 싶어
다시 3층으로 올라갔었지 역시 오줌도 안 누고 계속 경비를 서는지
젊은 스님 두 분이 양옆에 버티어 서서 가로막는 시늉이었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오현스님께서 누구도 들여보내지 마라고
금지령을 내려 그 젊은 스님 두 분이
오줌 누러도 안 가고 철통같은 경계 늦추지 않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나는 (주로 비서들이 보면 회장님은 가만 있는데
저들이 폼재며 너무 충성한다고 가로막는 경우 허다하지)
내가 누군 줄 아시오? 나 대구에서 온 서지월시인이오
그러시면 명함이라도 있으면 주십시요
아, 예 이 명함 보이면 큰스님께서 아실 겁니다
내 말 떨어지자마자 들어가시지요 젊은 비서스님
말 떨어지자마자 꽃잎 벙그듯 큰스님 방문이
스르르 열리고 있었는데 이는 환한 연꽃송이 벙그는 것 같았지
오현스님께선 눈 껌뻑이시며 좌정해 계셨는데
손 내밀어 악수 청하시기에 얼른 큰스님 손 잡아 드리고
절 한번 하고 스님 곁에 상좌처럼 앉아버렸지
나 따라 들어온 강아지가 아니라 큰 개 같은 제자도 따라 들어와
함께 예를 갖추었지 그런데 이 다음부턴 2시간 가까이
큰스님 혼자 말씀하시는 거였지 물론 설법 다름 아니었지 좀처럼
들을 수 없고 잘 뵐 수 없는 오현큰스님 특유의 제스츄어와 억양이었지
미당 서정주선생님 생전에 자주 찾아뵈올 적엔
알아들어? 알아들어? 가 특유의 반복 어투였었는데
오현스님께서는 알았지? 알았지? 가 반복어투였지
큰스님 말씀 중에는 멀찌감치 앉은 내 제자시인에게
돈 벌면 10%를 서지월(당신 선생)이 한테 갖다바쳐!
그래야 서지월이도 잘 되고 제자도 잘 돼!
거기다가, 교회에 가면 월급의 10%를 헌금으로 내듯
10%가 안 되면 그 반이라도 갖다바쳐!
이 말의 뜻이 진정 무엇인관데 이러시나 싶기도 했지
나(오현스님 자신)를 만난 건 서지월(당신 선생)이 덕이다
하시며 이런 것도 알아라고 교육시키는 것 같았지
게다가, 사람이 행하는 일은 그림자가 남아!
그래서 나중 세상이 다 아는 거야, 라는 말씀도 하셨지
서지월이 말이야 전세계가 알아주는 시인이다!
중국은 말 할 것도 없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도
서지월이를 다 알아! 고은은 몰라도 서지월이를 다 알아!
노벨문학상감이다 서지월은 살아서 보다 사후에 더
인정 받는 시인이 된다 라하셨을 때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지
왜냐하면 죽으면 존재가 없어 아무것도 모르리라는게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으니까 이거 큰일 아닌가,
먹고 살아야 하는데 살아있을 때 좀이라도 더 대접 받고
인정 받고 해야 수입이 좀더 있을 거 아닌가 말이다
거기다가 스님께서는 한 술 더 떠서 시인은 배가 고프고
채워지지 않는 부분 있어야 생각이 늘 신선해 좋은 시 쓴다!
이렇게 내겐 절벽을 가라는 듯 말씀 하시는 거였지
두 시간 가까이 되었을까 노크소리 들리더니 문밖에
큰스님 뵈러 젊은 평론가 두 사람이 버티고 있었지
우리 이제 나가자 바람이라도 쐬자 하시며 나오는데
저녁공양 시간입니다 라고 젊은 비서스님이 알려주어
2층 VIP 식당으로 갔었지
나보담 연배가 위인 평론가 대학교수 시인들들도
막 만해사상국제세미나 마치고 스님과 동석하게 되었지
이런 좌중에 다시 큰스님께서는 설법을 하시는데
다름 아닌, 서지월이 말이다 굉장한 시인이다
중국은 말 할 것도 없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도
서지월이를 다 안다! 고은은 몰라도 서지월을 다 안다!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한국시인은 서지월과 류시화다
스님 말씀 떨어지자마자 김재홍교수께서는
스님, 알지요 서시인은 중앙일보 이경철과 함께
미당 서정주선생을 보필한 수제중의 수제지요
이런 흐름 있고난 후 1층 내려와 밖으로 나와
스님께서는 벤치에 앉으셨는데 나더러
가거라 ! 하시기에 나는 스님 가라 하셔도 안 갑니다
더 있다 갈 겁니다 하니, 그럼 그래라 하셨는데
대구까지 먼길이고 2층 식당에서 1층으로 계단 내려오면서
아무도 몰래 내게 봉투에서 꺼낸 노자돈 주셨으니
가도 된다는 말씀 같았지 2층 식당에서 1층으로 내려 올때
나도 아무도 몰래 스님께 드린 말이 있었는데
그 말 받고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
서지월이는 그 시인 보다 위다
서지월이는 한참 위의 시인이다 알았제? 하시는 거였지
그럼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되는 건지 통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았으니, 꼭 숨바꼭질 하는 거 같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