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입니다. 월요일이라 모처럼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데, 웬 할머니 한 분이 힘겹게 성당 앞 경사진 길을 오르고 계셨어요. 제가 가서 옆에서 도와드리느라 눈길을 줄 만 한데도 숨이 차시는지 아래만 바라보고 계시더라구요. 그래서 성당 문을 열어 드리고 좌석에 앉으시게 부축을 해 드렸더니, 그제서야 저를 바라보시더라요.
"할머니! 기도하러 오셨어요?"
"그렇다우. 댁은 누구슈?"
"저는 여기 새로 온 신부에요."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시며, "신부님이 나를 밀어 주셨슈?" "네~"
"난 요 앞 현대 4차에 사는데, 예수님한테 기도하고 싶어 왔슈. 그런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오늘은 네 번인가 쉬다 쉬다 왔어. 어휴~~~"
"할머니, 기도하고 계세요."
그리고는 사제관에 올라가서 '손에 쥐는 십자가' 하나를 들고 와서 건네드렸다.
"할머니! 이거, 손에 쥐어 보세요."
"이거? 이게 뭐유?"
"십자가에요, 예수님의 십자가! 주무실 때 손에 쥐고 기도하시라고 만든 거에요. '예수님, 나 천당가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시면 끝이에요."
"그래요? 어휴, 고마워라."
그리고는 모처럼 나를 찾아온 휘문 고등학교 동기 신자들, 조명하 요한과 강성신 요셉이 찾아왔길래 도원한우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데, 그 할머니께서 내려오고 계셨다.
"할머니, 제가 밀어 드릴께요."
"아유, 내려갈 땐 괜찮아. 내가 혼자 할 수 있어."
그리고는 말 없이 내 자동차 앞으로 할머니 유모차를 끌고 가버렸다.
"할머니, 이 차에 타세요."
"아이고, 괜찮대두. 나 갈 수 있어."
"아, 그러니까 얼른 타세요. 현대 4차에 사신댔죠?"
"그래. 삼거리 우리은행 맞은편이야."
길거리에 굳이 세워달라시는 걸 엘리베이터 앞까지 모셔다 드렸다.
"할머니, 주일 미사는 어디로 가세요?"
"못가. 허리가 아파서. 애들은 둔촌동 성당에 다니고."
"제가 모시러 올께요. 일요일 아침 9시입니다. 1분도 더 안기다려요."
"응, 뭐 9시? 1분도 더 안 기다린다고?"
"예, 9시 정각에 제 차를 이 앞에 댈테니까 내려오세요."
그렇게 해서 저에게 새 애인이 생겼습니다. 이정례 루시아 할머니. 80대.
현대 4차 둔촌 아파트 101동 407호.
자녀들은 어머니를 끔찍하게 살펴주어서 아픈 데가 한 군데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 가까운 성당에 오시는데 네 번을 쉬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게 아픈 데가 없는건가?
모실려면 허리부터 고쳐드리든지, 자동차로 모셔다 드리든지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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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효자 효부의 그늘. 정작 어머니가 무얼 원하시는지 무얼 힘들어 하시는지도 모르고 자기들 일에만 바쁜 장삼이사들. 서글픈 건 그게 나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거다.
정작 내 엄마는 요 10분 거리 강일 성모 노인요양원에 치매중증환자로 십년째 누워계시는데....
자식은 영원히 부모에게 불효자일 수 밖에 없는 가보다. 어이구, 이 병신아!
너 낳을 때 배 아파 죽을 고생 다하고, 너 기를 때 아프면 밤새며 뜨개질하다가 손에 바늘 찔리면서 너를 키워준 니 엄마나 잘 챙겨라.
첫댓글 신부님의 글을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시는 신부님 고맙습니다.
저의 힘 미약하나마 작은 힘라도 보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신부님의 새 애인을 위하여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래도록 신부님 곁에 계시도록^^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 히스테리가 이만저만. 데이트에 좀 늦게 가면, 하루종일 말도 안해, 오 마이 갓.
신부님, 존경합니다.~`
아니, 아브라함님! 요즘에 왜 그리 자주 댓글을 다십니까? 댓글 달기, 어려우시다면서요?
찬미예수님!
신부님의 새애인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언제나
신부님의 활기찬 모습 좋아요~건강도챙기십시요
그 집 잘난 아들 며느리에게 전화나 해 주쇼. 그 집 할머니 모습이 당신들 미래의 모습이라고. 현대판 최신식 고려장.
신부님의 말씀에 정감이 넘치십니다...*^^*
노오란 샤쓰입은 말없는 그 사내가 어쩐지 맘에 들어 아 야속한 마음 처음 느껴본 심정 아 그이도 나를 좋아하고 계실까~~~
부모는 언제나 자식을 혼자서 짝사랑하며 사는가봐요 저희엄마도 그랬고 오로지 딸을 짝사랑하고 있는 울 남편을 보면서 짝사랑도
받는사람보다 주는사람이 더 행복한거구나 느껴져요 왜냐하면 자기가 좋은쪽으로 행동을 취하니까요
애매신부님은 짝사랑은 아니신것 같네요
노란샤스가 멋져부러요
'애매'가 도대체 뭐냐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