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는 삼국지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용력을 지닌 장사였다. 힘만 가지고 따진다면 전위와 허저가 막상막하였을 것이다. 전위가 진류태수 장막의 휘하에 일개 병사로 있을 때 지휘관의 군영 문에 걸어두는 깃발인 아문기(牙門旗)가 쓰러졌다. 깃발이 매우 큰데다가 바람까지 세차게 몰아치니 여러 병사들이 달려들어도 기를 다시 세우지 못했다. 전위가 나타나 한 팔로 기를 들어 바로 세웠다. 전위의 팔 하나가 여러 사람을 합친 것보다 더 세었던 셈이었으니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허저도 한 손으로 소의 꼬리를 잡고 백여 보를 끌고 간 적이 있으니 그 역시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힘을 지녔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조조의 호위대장이었다. 조조가 비록 무예가 뛰어났다고는 하나 체격이 왜소한 편이었다. 조조는 천하의 장사들이 마음껏 힘을 써대는 난세를 만나 자신을 지켜줄 막강한 호위무사가 필요했다. 조조는 처음 전위를 발탁해 자신의 호위를 맡겼고 허저가 그의 뒤를 이었다. 허저는 전위가 죽은 후에 조조의 부하가 되었으므로 두 사람의 힘을 직접 비교해 볼 기회는 없었다. 다만 전장에서 발휘한 괴력을 간접 비교해 보면 전위가 더 우위에 서 있지 않을까?
전위는 복양성 싸움에서의 활약으로 조조에게 발탁되었다. 조조가 복양성 밖에서 여포에게 삼면을 포위당해 매우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포위망을 뚫을 특공대를 모집했다. 하후돈의 휘하에서 사마로 있던 전위가 일등으로 자원했다. 전위와 특공대 수십 명은 방패 없이 갑옷만 두 겹 겹쳐 입은 채 장창과 갈래창만을 들었다. 전위가 이끄는 특공대가 여포군의 남쪽 포위망을 향해 돌격해 돌파에 성공했다. 그때 바로 서쪽에서 여포의 또 다른 부대가 진격해 오면서 활과 쇠뇌를 마구 쏘아댔다. 화살이 비 오듯 날아와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위는 손에 열 개의 갈래창을 쥐고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적병이 바로 앞에 돌격해 오자 고함을 지르며 일어섰다. 전위가 갈래창을 내지르니 맞는 자마다 다 나가떨어졌다. 대단한 괴력이었다. 여포의 병사들이 겁을 먹고 물러나는 바람에 조조는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돌아올 수 있었다. 조조는 전위를 도위로 승진시키고 자신의 호위대장으로 삼았다.
조조가 완성에서 장수에게 습격당했을 때 전위는 조조의 군영 문을 지키고 있었다. 장수와 그의 장졸들은 전위의 위력을 두려워했으므로 그를 피해 뒷문으로 돌아들어가 공격했다. 조조가 황급히 달아나자 전위가 십여 명의 호위병만을 거느리고 뒤에 남아 격전을 벌이며 장수군의 진격을 막아내었다. 이 덕분에 조조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전위는 수십 번 창에 찔리고도 혼자 남을 때까지 격투를 벌이다 죽었다. 장수의 병사들은 쓰러져 죽은 전위의 시체를 구경하며 그가 얼마나 대단한 장사였는지 떠들어댔다고 한다.
전위는 엄청난 용력을 지닌 장사였으나 단순 무식했다. 여자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지 낮에는 물론 밤중에도 숙직을 하면서 집에 자러 가는 날이 드물었다. 조조는 이런 전위를 매우 장하게 여겼다. 전위는 오로지 밥 먹고 술 마시는 것을 좋아했는데 보통사람들의 두 배는 먹고 마셨다. 조조는 전위가 언제라도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게 음식과 술을 공급해 주었다.
일화: 전위의 협객행
전위는 진류군 기오현 출신으로 체격이 장대했고 생김새가 특이했다. 힘이 장사인데다가 의리를 숭상했으므로 젊은 시절 협객이 되었다.
전위와 친분이 있던 양읍의 유씨는 수양현의 세력가인 이영이란 사람에게 원한이 있었다. 전위가 그를 위해 원수를 갚아주기로 약속했다. 이영은 전에 부춘현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수양현 제일의 호강이었다. 이영이 수백 명의 무사를 거느리고 있었고 경비가 삼엄했으므로 전위는 그에게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전위는 거짓으로 이영의 부하가 되고 싶다는 뜻을 전하고, 고대의 예법에 따라 닭과 술을 예물로 마련해 수레에 싣고 이영의 집으로 찾아갔다.
이영의 부하들이 문을 열어주었으므로 전위는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슴에 비수를 품은 채였다. 전위는 이영과 면접하는 자리에서 즉시 비수를 뽑아 이영과 그의 처를 찔러 죽였다. 그러고 나서 전위는 천천히 길을 되돌아 나왔다. 칼과 쌍철극은 수레 위에 얹어 놓은 채 전위는 여유 있게 걸었다. 이영의 집은 시장 인근에 있었다. 백주에 살인이 벌어졌으므로 시장 사람들이 온통 놀라 소란스러워졌다. 뒤늦게 이영의 패거리 수백 명이 추격해 왔지만 겁이 나 아무도 감히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다. 서로 견제하는 가운데 4~5리를 갔는데 때마침 전위의 패거리들이 나타났다. 전위는 자신의 패거리와 합세해 이영의 무리들과 한바탕 전투를 치루고 현장을 탈출했다. 이로부터 전위는 이 일대에서 호걸로 명성을 얻었다.
전위는 대담무쌍한 성격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협객으로 활동했던 관우의 사례와 비교해 보면 전위가 얼마나 배짱이 두둑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관우도 젊어서 친구의 원수를 갚아주기 위해 하동군 해현의 악명 높은 호족을 살해했다. 관우가 단검 한 자루만으로 일대의 호족 우두머리를 해치웠고 그 호족이 키우던 수많은 검객들이 감히 덤벼들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전위의 행동과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 실행방법에 차이가 있었다. 관우는 한밤중에 담을 넘어 들어가 해현의 호족을 찔러 죽였다. 이에 비해 전위는 백주 대낮에 그것도 무장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다.
거짓말
삼국지연의에는 여러 장수들이 즐겨 사용한 병장기들이 등장하곤 한다. 관우의 청룡언월도, 장비의 장팔사모창, 여포의 방천화극 등이다.
다 재미를 위해 연극적 소품 삼아 지어낸 것이다. 일례로 관우가 팔십 근 무게의 청룡언월도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사료에는 그저 대도를 썼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대도는 긴 자루가 달린 기병용 칼로써 송나라 시대에 등장한 언월도의 전신이다. 무게가 팔십 근이라는 기록도 전혀 없다. 아마도 전위의 쌍철극 하나가 팔십 근이었다는 기록을 차용해 꾸며낸 이야기일 것이다.
뭐든지 굉장한 것이면 다 유비 측의 인사들의 일화로 조작하는 습성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실제로 일군의 장수가 무슨 병장기를 썼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며, 따라서 역사에 기록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