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존스가 좋아한 책

 

 

1. 신학서입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의 부친은 신학서를 애독하였습니다. "설교자는 죽을 때까지 신학서를 읽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신학이어야 한다." 그는 무미건조한 신학서 읽기와 교리 하나를 가지고 서로 돌려가며 토론하는 것을 싫어하였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신학이었습니다. 이것이 그에게는 최대의 신학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신학서를 읽을 때에 그 저자가 논급하지 않은 것까지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부친이 병원에서 1시간 동안 매우 힘든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치료가 끝난 후 우리들에게 당시 미국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던 한 복음주의 신학자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 사람의 글을 조심해야 해, 그의 신학은 옳지 않아. 부친의 신학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신학은 그의 일부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신학자들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을 거의 느낌으로 가려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2. 헌신용 서적입니다 저는 이 '헌신'이라는 말을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합니다. 부친이 이렇게 말씀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헌신용 주석이라는 말을 혐오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 헌신을 대신 해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는 감상적인 헌신주의를 싫어하였습니다.

그가 의미하는 헌신용 독서는 성경을 이해하고 즐기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청교도들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대체로 청교도들은 이 점에서 아주 도움이 된단다."그는 자신이 한때 침체된 적이 있었는데, 이때 리차드 십스(Sibbes)박사가 쓴 '상한 갈대와 영혼의 갈등'이란 책을 통해 큰 도움을 받았다고 실토했었습니다.

그는 십스 목사를 '천상적인 십스 박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가리켜 "나는 18세기 사람이다"라고 자주 말했었습니다. 특히 부친께서는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의 특별한 애독자였습니다.

그는 저와 남편에게는 늘 조나단 에드워드를 추천했었습니다. "자네는 조나단 에드워드를 읽어야 해. 자네의 정치 활동 속에서, 그리고 세계를 여행하고 다닐 때에 조나단 에드워드를 읽게, 그는 자네의 발을 바위 위에 단단히 세워줄 수 있는 자니까. 에드워드를 읽고 그에게서 배우도록 하게나."

부친의 장례식 이후에 있었던 감사 예배에서는 가이우스 데이비스(Gaius Davies)박사와 옴리(Omri Jenkins)목사님 사이에 저의 부친에 대한 일종의 토론이 벌어졌었습니다. 그 내용은, 저의 부친이 인간으로서 본질적으로 의사였느냐 아니면 설교자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부친의 개성이나 성격으로 본다면 양편 주장이 다 맞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부가시킬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친이 웨일스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친이 웨일스에 묻힌 것을이상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어떤 곳에도 묻힐 수 없었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웨일스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나라들도 사랑했지만, 어디까지나 웨일스인이었습니다. 그가 임종 때까지 항상 읽었던 두 개의 책 중에서 하나는 그의 웨일스 찬송가였습니다.

저는 이 천성적인 시인들이 작시한 찬송가를 웨일스어로 여러분께 읽어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웨일스어를 모를실 테니까)> 웨일스 찬송가들은 뛰어난 상상력을 가졌고, 교리를 깊이 파악했으며, 하나님은 지극히 사랑하면서 복음 메시지를 영혼들에게 부드럽게 적용시켰습니다. 저의 부친은 그것들을 사랑하였습니다. 부친이 별세했을 때 그의 곁에 놓였던 책의 하나가 이 웨일스 찬송가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웨일스인이었습니다.

 

3. 교회사와 전기였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기에 제가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집회 때를 비롯해서 우리들에게 늘 권유하던 말슴이 교회사와 전기를 읽으라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는 정말 이 분야의 책들을 사랑했는데 얄팍한 내용의 책이 아닌 세밀하고 무게 있는 책들을 선호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휫필드(Whitefield)에 대해서는 아놀드 달리모어(Arnold Dalimore)의 책을 즐겼습니다. 그는 전기가 독서의 균형을 잡아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교만하려는 성향을 제지하는 최선은 방책은, 그것이 설교를 잘해서 오는 것이든 혹은 그 어떤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든 간에 주일날 저녁에 위대한 성도들의전기를 읽는 것이다." 다음 두 개의 짧은 이야기들을 통해 이 점을 예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주일 밤 책 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부친은 1964년 초부터 D.E. 젠킨(Jenkins)이 쓴 세 권으로 된 토마스 찰스(Thomas Charles)의 전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아마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책들 역시 두꺼운 것들입니다! 부친은 1월과 2월의 주일날 저녁마다 우리들 앞에서 이 전기를 조금씩 큰소리로 읽어주셨습니다.

 

이 기간에 읽은 부분에서, 토마스 찰스는 그가 나중에 신부로 맞이한 어떤 여인으로 인해 너무도 힘들어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토마스 찰스와의 결혼을 주저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녀는 곧 결혼에 응할 듯이 하다가도 갑자기 결혼 공포증에 빠지곤 했었습니다. 그러면 토마스 찰스는 우울증에 빠졌고 매주 커다란 고통을 안고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부친은 전기 속의 서신들을 무척 좋아하였습니다.

 

그런 굴곡을 여러 번 겪은 후 어느 영광스런 주일 밤 그녀는 드디어 토마스 찰스의 구혼 요청에 "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이 대목에서 좋은 소식이라고 기뻐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남편인 스페데릭과 제가 결혼하기 전 주일에도 부친은 토마스 찰스의 전기를 읽어주었습니다. 그때 솔직히 저는 혼자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이 속상해, 다음 주일 밤에 나는 여기 있지 못할텐데!" 부친의 열심은 어찌나 컸던지 우리 모두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실례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우리들의 성찬석(石)인 언약파(Covenanters)들의 거대한 기념비를 보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이 기념비는 스코틀랜드 남서쪽의 야산 지대에 세워져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언약파들은 당국에 잡힐까 봐 야산에 올라가서 성찬식을 가졌었습니다. 기념비까지 가는 길은 무척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우리는 황소들의 초장과 웅덩이와 철조망을 통과하여 겨우 목적지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서정적 아름다움을 지닌 장소로서 일종의 야외 원형 집회소와 같았습니다. 여기에 세워진 높은 기념비의 맨 꼭대기에는 성찬식의 잔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던 위대한 언약파들을 기리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제가 그날 기억하는 가장 뚜렷한 사건은 우리가 도착했을 때의 부친의 행동입니가. 그는 기념비를 올려다보더니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언약파들을 사랑했었고,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해 열심이었으며, 그들을 복음 안에서의 형제들로 존경하였습니다. 그가 보였던 모자를 벗은 동작은 언약파들에 대한 그의 깊은 경의의 표출이었습니다.

 

4. 성경. "성경을 읽어라. 성경은 생명의 떡이며 너희 영혼의 건안과 양식을 위해 마련된 만나이다." 부친은 로버트 머리 맥체인(Robert Murray McCheyne)의 매일 성경 읽기표를 따라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는 성경을 좋아하는 부분만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을 다 읽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필요한 본문들을 별도로 공부했지만 정규적으로 성경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저의 부모님들은 적어도 53,4년 동안 로버트 맥체인의 성경 읽기표를 따라 꾸준히 성경을 통독하였습니다. 이 계획표를 근거로 해서 보면 저의 부친은 자신의 설교 준비를 위한 성경 읽기 이외에, 신약을 적어도 110회 통독한 셈입니다.

 

부친은 3월 1일에 돌아가셨는데 공교롭게도 2월 28일의 매일 성경 읽기 본문의 마지막 장이 고린도전서 15장이었습니다. 마치 주께서 저의 부친에게 앞으로 있게 될 몸의 부활을 지적해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부친은 성경을 정규적으로 읽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알았고 성경을 사랑하였습니다. 임종이 가까왔을 때 그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 구절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그는 앤에게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자족하라는 말씀을 짚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우리들의 지상의 장막이 걷혀지면 훨씬 더 나은 상급이 우리를(그를)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는 성경 말씀을 손으로 짚어 보이거나 혹은 종이에 써서 보여주려고 애썼습니다. 그가 임종 무렵에 읽었던 것은 웨일스 찬송가와 성경 뿐이었습니다. 아버라본에서의 그의 초기 설교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당시 그는 28세였습니다.)

 

"여러분이 죽음의 침상에 누웠을 때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여러분과 여러분의 모든 죄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대신 돌아가셨다는 것을 또한 확신하며, 내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을 굳게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친은 이 사실을 그대로 증명하였습니다. 그는 훌륭하고 적극적이며 광범위한 독서가였지만, 이 세상에서 그에게 진정 중요했던 유일한 것은 그가 가장 애독했던 하나님의 말씀이 지적하는 '진리'였습니다. 이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랑에 대한 옛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저의 부친에 대한 회고담을 마치기 위해 '진리의 힘'이라는 소책자에서 몇마디 인용하려고 합니다. 다음의 인용문은 부친의 임종을 목도한 우리 모두의 인상을 잘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토마스 스코트(Thomas Scott)에 관해서 책을 쓴 존 스코트 목사의 증언입니다.

 

"그의 인생이 끝나는 말년에 그는 천국을 갈 준비가 다 된 듯 하였습니다. 그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자기의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그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겸비하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을 누렸으며, 복음 전파에 대한 거룩한 열정을 가졌고, 자기 가족과 자기 둘레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하늘 아버지의 뜻에 복종했으며, 그의 구주의 공로와 은혜를 전적으로 신뢰하였습니다. 그는 나이가 차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캐서우드/마틴 로이드존스의 딸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