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까치의 둥지를 품은 운조루 서어나무의 꽃망울이
연한 붉은 빛으로 봄을 부르고 있다.
(2016. 04. 02)
운조루를 지은 유이주(柳爾胄, 1726~1797)는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정도로 힘이 넘치는 무신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집 솟을대문에 그가 잡은 호랑이 뼈를 줄줄이 걸어 놓았다.
호랑이 뼈의 주인공 유이주가 바로 이곳의 문화 유씨 입향조다. 그는 대구 입석동 출신이지만, 구례에 인접한 낙안에 수령으로 왔다가 세선(稅船)이 부서져 조세가 제때 올라오지 못하자 배를 파손시킨 죄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난 그는 가족을 거느리고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로 이주하였다. 그가 이주한 땅은 본래 지역의 토호(土豪)인 재령이씨(載寧李氏) 일가 소유였으며, 돌이 많고 척박하였으나 풍수지리로 볼 때 미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형상의 명당으로 전해내려 왔다.
유이주는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훗날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양반 주택으로 평가 받는 운조루(雲鳥樓)를 구상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관직 생활 중 대규모 국가 건축공사를 맡아 진행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운조루를 설계하였으며, 공사는 그의 조카인 유덕호(柳德浩)가 맡았다.
운조루는 1776년(정조 즉위) 9월 16일 상량식을 가졌고 6년만인 1782년(정조 6) 유이주가 용천부사(龍川府使)로 있을 때 완성했다. 7년간의 공사 끝에 99칸의 주택이 완성되자 그는 저택에 일가친척들을 모아 함께 살도록 하였다.
1790년(정조 14)에 유이주는 1775년(영조 51) 재령이씨와 혼인한 조카 유덕호를 양자로 들여 재령이씨(載寧李氏)와 인척관계를 맺게 되면서, 운조루의 집터 또한 완전하게 그들로부터 양여 받게 되었다.
'운조루'라는 당호는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왔다. 관직을 집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의 기쁨을 생생하게 그린 시다. 「귀거래사」의 雲無心以出岫(운무심이출수 : 구름은 무심히 산봉우리를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 : 날다 지친 새들은 집으로 돌아올 줄 아는 구나)의 구절에서 첫 자를 당호로 정한 것이다.
넓은 대지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여 개방적으로 짓는 전라도 한옥과 높이를 강조한 경상도 한옥이 잘 조화를 이룬 건축이다. 영남 사람으로 호남에 뿌리내린 유이주의 삶이 녹아 있는 셈이다.
유이주는 운조루를 준공한 기념으로 소나무와 서어나무 두 그루를 마주보고 심었으나 마을 앞 도로를 확장하면서 소나무는 아깝게도 잘려나가고 서어나무만 길옆에 겨우 삶의 터전을 유지하고 있다.(운조루 9대 종부 이길순씨의 증언)
별로 쓰임새도 없고 느티나무나 은행나무처럼 오래 살지도 못하는 서어나무를 기념수로 택한 유이주의 뜻을 알 수는 없으나 그가 무인으로서 나무줄기의 울퉁불퉁한 모습이 마치 무인의 우람한 근육을 닮았다고 하여 이 서어나무를 택한 것은 아닐까?
운조루 준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심은 서어나무
(2016. 03. 26)
숲은 인간이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저희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치른 후 음수(陰樹)의 특성을 가진 한 무리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어 차지한다. 우리나라 남해안과 높은 산꼭대기를 제외한 현재 남한의 대부분을 온대림(溫帶林)이라고 하는데, 이런 곳의 최후 승리자는 바로 서어나무와 참나무 무리다. 온대림의 대표주자로서 흔히 서어나무를 내세운다. 그만큼 넓은 면적에 걸쳐 수천수만 년을 이어온 우리 숲의 가장 흔한 나무 중 하나가 서어나무다.
70대 중반에 이른 늙은이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산자락을 오르내리는 ‘토요산방’의 도반들이 자주 찾아가는 팔공산 염불암으로 가는 길에는 특히 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철마다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어 화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붉은빛을 바탕으로 펼치는 서어나무의 새싹은 단연 돋보이는 주연배우다. 같은 서어나무끼리도 약간씩 잎이 피는 시간 차이가 있으므로 갓 피어날 때의 붉음에서부터 주황색을 거쳐 연한 녹색으로 이어지는 단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나무의 줄기에 요철이 생겨서 마치 금강역사의 근육처럼 보인다.
(2016. 3. 26)
서어나무의 어원은 ‘서목(西木)’을 우리말로 ‘서나무’라고 했다가 발음이 자연스러운 ‘서어나무’가 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서어나무는 독특한 줄기의 모양에 먼저 눈이 가기 마련이다. 줄기의 매끄러운 표면에 세로로 요철(凹凸)이 생겨서 마치 잘 다듬어진 보디빌더(bodybuilder)나 사찰을 지키고 있는 금강역사의 근육을 보는 것 같다.
서어나무는 몸체를 불려나가는 메커니즘이 좀 색다르다. 표면이 매끈한 대부분의 나무는 잎에서 만들어진 광합성 물질과 뿌리에서 흡수한 수분 및 영양분들을 이용하여 나이테를 만들 때 치우침 없이 골고루 분배한다. 그러나 서어나무는 나이테의 어느 한 부분에 집중적으로 더 많이 양분을 준다. 양분을 많이 받은 부위의 나이테는 넓어지고 적게 받은 부위는 좁아진다. 나무를 잘라 놓고 보면 나이테는 보통 다른 나무들이 간격이 일정한 동심원인데 비하여 서어나무는 나이테 간격이 일정하지 않아 파도처럼 들쭉날쭉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줄기의 표면이 울퉁불퉁해진다.
따라서 공예품을 만들거나 판자로 만들어 쓰기에는 부적절하여 별로 쓰임새가 없는 나무로서 일부 방직용 목관이나 피아노 엑션, 운동구, 농기구 등으로 쓰이는 이외에는 주로 땔감용으로만 사용될 뿐이다.
잎보다 약간 먼저 피는 수꽃의 모양
위로 뾰족하게 나오고 있는 잎
(2016. 03. 26)
서어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같은 나무에서 피는데 잎보다 약간 먼저 4~5월에 피며 처음에는 연한 붉은 빛에서 차츰 연록 색으로 변한다.
이른 봄 서어나무의 잎은 아주 진한 붉은 빛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색다른 봄꽃 같다. 핏빛처럼 빨갛던 새순이 어느 샌가 잎의 형태를 갖추어가면서 아주 고운 연두 빛이 되어 사방에 펴진다. 서어나무가 주는 신록의 싱그러움을 따라갈 만한 나무는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제대로 벌어진 잎새는 긴 타원형이며 열에서 열두 쌍 정도의 가지런한 잎맥을 가진다.
넓은 터에 호남과 영남의 건축양식을 조화롭게 지은 운조루 전경
연당의 소나무 뒤로 보이는 서어나무
(2016. 04. 02)
나무정보
•나무등급 : 보호수(1982. 12. 3 지정)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길 59(오미리 103)
•나무나이 : 250년
•나무높이 : 18m
•나무둘레 : 3.2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