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한 장의 긍정
김이랑
탁탁탁, 둔탁한 소리가 한밤의 고요에 파문을 일으켰다. 가로등 빛을 받아 은행잎이 노랗게 빛나는데, 그 아래에서 한 노인이 쇠지레로 무언가를 두들기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노인이 부수는 그것은 초저녁에 내가 내다버린 의자였다.
몇 년 전, 증권사 사무실을 철거하는 현장을 지날 때였다. 폐기물 더미 옆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나뒹구는 의자가 눈에 띄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것은 값 비싼 의자였다. 마침, 쓰고 있는 의자가 수명을 다해 새것을 사려던 참인데, 버릴 거면 하나 가져가도 되냐고 물으니 인부는 대수롭지 않은 듯 허락했다. 그 중 나은 걸 고르자는 셈법에 선뜻 만 원을 건네고 나서 등받이가 높은 의자를 골랐다.
의자는 손볼 곳이 많았다. 덜그럭거리는 팔걸이며 삐걱거리는 허리며 윤기 잃은 가죽이며, 중년의 사내처럼 잔고장이 있었다. 내친김에 나사를 죄고 기름을 치고 가죽 영양제를 발랐다. 세심한 손길이 보약이었는지 의자는 새것처럼 되살아났다.
의자에 앉아 먼저 앉았던 사내를 생각했다. 사내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서성이고 먹고 살아야한다는 명제 앞에서 현실과 타협하기도 했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등 높은 의자에 앉지만 기쁨은 잠시, 그만한 책임을 짊어지고 더 오르지 못하면 바닥으로 뛰어내려야한다. 조직의 계급에서 내려가는 사다리는 없기 때문이다.
뚝뚝뚝 소리가 나면서 의자 등받이가 헐거워졌다. 수리해서 더 쓰고 싶었지만 부품을 구할 수 없었다. 무정물일지라도 몸을 부대끼며 나눈 정은 생각보다 질겼다. 노란 폐기물 딱지를 붙이고도 단박에 버리지 못했다. 효용을 다하면 나도 폐기된다는 동병상련 때문일까. 의자를 길가에 내놓고 나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고민이 많은 이십 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다들 자리를 내줄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술안주다. 변두리 시장에 나를 내놓자니 뚝 떨어진 몸값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자본주의의 본성을 알면서도 내 가치 하락을 부정하나 그것은 집착일 뿐이다.
헤어질 때는 멀어지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머리에 서린 하얀 성상, 불룩한 뱃살, 느려진 걸음, 푸른 날의 당찬 어깨와 꼿꼿한 허리가 아니다. 세월이 더 흐르면 몸의 각도도 달라지고, 누군가는 밀리다가 더 밀려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자신에게 남은 가치를 줍고 있을지도 모른다.
쇠붙이 한 덩이가 한 끼 밥이나 될까만, 노인은 다리 부분만 떼어 손수레에 실었다. 그러곤 계단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생의 시름이야 담배연기에 실어 허공에 날린다 해도 그 독소는 폐부에 켜켜이 쌓여 숨을 더 가쁘게 할 것이다. 연기로 폐활량을 재고 타들어가는 담배를 보며 남은 생의 길이를 가늠하는 것일까. 노인이 거푸 담배연기를 들이켰다 내뱉었다.
노인은 지천명 고개를 넘은 아들 하나쯤 있을 나이다. 아들은 세파에 허리가 꺾여 다시 일어나지 못했을까. 아니면 피붙이라고는 다 떠나고 홀로 남았을까. 그 내력을 모르는 나는 노인의 몸짓이 노동인지 노역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바닥을 딛고 사는 누구도 노인의 굽은 등에 낙인烙印을 찍을 수 없다는 명제는 안다.
한줄기 갈바람이 불어온다. 이파리 몇 낱이 유려한 궤적을 그으며 낙하한다. 푸른 날 자랑이기에 지난여름 폭풍에도 한 낱도 놓지 않은 이파리, 초라해지지 말라고 은행나무는 제 이파리들을 노랗게 물들여 지상에 뿌린다. 시인詩人 릴케는 낙엽이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진다’고 했는데, 저 몸짓이 거부라면 지상에는 불만과 원한만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이제는 낙엽 한 장의 가치를 긍정할 때다. 자리를 내주며 이제는 내가 앉을 자리가 아니라고 침을 뱉는다면 남이 버린 가치를 줍는 노인의 몸짓을 무엇으로 긍정할 것인가. 길바닥에서 주운 긍정으로 나는 의자 등에 붙은 노란 딱지를 낙관落款이라고 정의하고 내일을 낙관樂觀해보는 것이다.
인생의 가을에도 사계절은 어김없이 순환한다. 꽃이 피면 고마운 걸음으로 마중을 나가고 낙화가 아쉬우면 배웅을 나가야지. 여름이 오면 푸른 숨결에 춤추다가 가을이 오면 공손한 손으로 열매를 받아야지. 그래도 한 시절의 추억이 아까우면 오늘처럼 벌레 먹지 않는 잎을 줍다가 겨울이 오면 내면의 밭에 들어 쟁기질해야지.
길에서 주운 한 장의 사색이 한 끼 밥이나 될까만, 한 생이 버린 가치일지라도 누군가에겐 긍정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 둔다. 노인의 손수레에 실린 골판지며 전단지처럼 가벼운 것도 모아두면 이다음에 마음의 양식은 될 것이므로, (좋은수필 2019 4월호)
약력 : 독도문예대전 대상, 천강문학상 우수상, 목포문학상 신인상, 농어촌문학상 소설부문 최우수상 등 다수 수상. - 수필가 - 스토리텔링작가 - 김이랑 문예교실 운영(문장반, 수필반, 동화반) - 시사논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