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흑돼지가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이 된다고 문화재청이 예고했다. 제주 흑우와 제주 마에 이은 세 번째 낭보다.
3세기경 중국의 고문헌 위지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될 만큼, 제주 사람들에게 흑돼지는 친근한 존재였다. 울타리 안에 서너 평 정도의 땅을 파 통시를 만들고, 양지 바른 곳에 돼지 집을 지어 먹이를 주며 애지중지 길렀다. 한 식구였다. 쇠막의 두엄이나 보리 집을 통시에 넣으면 긴 주둥이로 갈고 분변을 뿌리며 돗거름을 만든다. 퇴비 생산꾼이었다. 암퇘지는 한 해에 두어 차례 새끼를 낳아 가정경제에 보태었다. 살림 밑천이었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흑돼지는 곡식을 장만하고 나온 체와 식사 후 설거지에서 나온 음식찌꺼기가 섞인 구정물이 주식이다. 가난한 시절이라 돼지 먹이는 풍족할 수 없었다. 배가 고프니 인분도 감지덕지였다. 그로 하여 외지인들은 제주인에게 똥돼지란 별명을 붙여 폄하했다. 그 시절 육지부에 나간 제주인은 얼마나 망신스러웠으면 고향을 숨기려 했을 것인가.
돼지우리와 뒷간이 어우러진 돗통시 문화, 이는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가난을 극복한 제주 선인들의 지혜의 산물이다. 자연의 이치에 따른 선순환 구조의 삶이다. 사람이 먹은 음식물이 소화되어 대변으로 배출되고, 이를 돼지가 받아먹어 배변하면 두엄과 섞이어 질 좋은 돗거름이 된다. 그 거름이 보리를 튼실하게 키우면 그것은 다시 사람의 음식이 된다. 선순환이다. 자연스러움이다. 오히려 칭찬을 받아 마땅한데도 똥돼지로 비하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제주 흑돼지는 군자의 풍모가 있다. 명절날 맛있는 음식을 목에 차도록 먹은 어린애, 배가 뒤틀리면 잽싸게 드들팡에 올라 설사 똥을 싼다. 인기척에 반가워 달려온 돼지는 머리에 물똥 벼락을 맞는다. 똥 눈 볼기를 물수도 있지만 불평 한 마디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오물을 털어버린다. 어린이의 설빔 옷은 엉망이 된다. 돼지가 원망스러워 엉엉 우는 아이, 이를 무심히 쳐다보며 귁귁 위로해주는 돼지,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풍경이다. 그 뿐인가. 집안 경조사에는 자신을 희생해 맛있는 고기로 상에 올라 손님을 대접한다. 어려운 집안을 돕고 세상을 떠나니 살신성인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흑돼지가 울타리 안에서 사라졌다. 성읍이나 표선 민속촌에 가야 옛 그림자나마 볼 수 있을 정도다. 젊은 날의 추억은 찾을 길이 없다. 똥돼지의 오명을 씻고 천연기념물로 명예를 회복했으니, 돗통시 체험 공간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제주를 찾는 관광객은 그 수를 제한해야 할 만큼 늘고 있다. 제주에 정착하려는 내외국인도 해마다 증가일로다. 그들은 해변을 따라 그림처럼 펼쳐진 자연의 풍광에 탄성을 올리고, 구불구불 휘돌아가는 올래길을 걸으며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신다. 숭숭 구멍이 뚫린 돌담을 보며 갸웃거리고, 제주 신화를 들으며 제주 선인들의 지혜를 읽는다.
치열한 경쟁으로 뒤엉킨 실타래를 풀고, 고단한 삶의 찌꺼기를 날려버린 관광객들의 마지막 만찬은 어디가 좋을까? 제주 흑돼지 전문 식당이 제격이다. 흑돼지 삼겹살을 불판에 구워 놓고, 한라산 맑은 물로 빚은 제주 향이 가득한 소주 한 잔 들이키면 몸도 마음도 하늘을 날 듯 가벼워질 터이다.
배고픈 돼지의 귁귁거리는 소리로 아침을 열고, 밭에서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돼지 울음소리로 해가 저물었던 제주의 옛 정취에 젖은 관광객, 그들은 순박하고 아름다운 제주인의 마음을 가슴에 가득 담고 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