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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1~7(52)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성도 2022.12.18
허운석 선교사는 ‘내가 왕바리새인입니다’라는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23살 때 예수를 영접한 후 그녀는 신학대학에 가서 목사가 되었고, 1991년 브라질 아마존에 파송을 받아 선교를 떠납니다. 선교를 시작하면서 남편 김철기 선교사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원주민들의 반대와 듣도 보도 못한 아마존 독충에 물려 온몸이 피고름으로 얼룩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허선교사는 그곳에서 27년 동안 사역을 하면서 예배당과 건물 17동을 건축하고 신학교도 세워 100명의 졸업생과 50명의 목사를 배출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에 폐암 말기 암 판정을 받고 피를 토하면서 쓴 책이 바로 ‘내가 왕(王)바리새인입니다’입니다.
그녀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안에 펄펄 살아 역사하는 ‘왕바리새인’의 모습이 사라져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책망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자들이었지만, 이중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으로 인해 종교를 자신의 밥벌이로 이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전 안에서의 행동과 성전 밖에서의 모습이 너무나 달라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허선교사는 “십자가 없이 은사와 능력을 받으면 무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십자가도 모르면서 은사를 사모하지 말고, 혹여 은사를 받았다면 사용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나 같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교회에 출석하면서 축복을 받아 잘되고, 은사를 많이 받아 다른 이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신앙의 목적은 나는 낮아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높아지는 것이며,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고, 내가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의 길을 곧게 만드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오실 길을 곧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먼저 낮추고 희생하면서 섬기는 모습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를 부르고 계십니다. “나와 함께 가자! 고난의 자리에 나와 함께 가자. 절망의 자리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의 자리에 함께 가자!”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이 다음 주일입니다. 성탄을 앞두고 주가 오시는 길을 곧게 만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길을 넓히고 만드는 자가 되어야지, 주님이 가시는 길을 가로 막고 어지럽히는 자가 되어서 안 됩니다. 교회를 이롭게 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지 교회를 어지럽히고 하나님을 아프게 하는 자가 되어서 안 됩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구자로서 세례 요한의 사역과 그의 예수에 대한 증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것을 예고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3절,“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3절에서는 성도가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해야 하는 두 가지 행동을 요구합니다.
1)주의 길을 예비하라(Prepare the way for the Lord)
주님의 길을 예비하라는 말은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맛난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음식을 만들기 이전에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맛난 음식을 만드는 장면을 머릿속에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것을 미리 준비해야 하나요? 맛난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질 좋고 신선한 재료를 장만해서 손질하고 다듬어야 합니다. 재료만 준비했다고 음식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요리할 수 있는 도구도 준비해야 하고, 요리에 적당하게 들어가는 여러 종류의 양념도 모두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요리를 시작하고 마치게 되면, 맛깔 나는 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는 말도 같은 내용입니다.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성도의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로 주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고, 기도로 주님이 명령하신 것을 이행하고, 기도로 주님의 듯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기도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기도하고 순종하는 모습도 있어야 합니다. 기도와 순종, 믿음과 실천, 이 모든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모습과 행동입니다. 저는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항상 맛난 음식을 준비해서 요리하는 모습으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make straight paths for him)
여기의 ‘곧게 하라’는 원어의 뜻은‘곧고 평평하게 만들다’라는 의미입니다. 특히 본문에서‘오실 길’은 세상에 있는 길이 아니라,‘성도의 마음’을 가리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도는 마음을 곧게 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고자 결단하고 행동하는 성도는 곧고 올바른 길로 가야 합니다. 구부러지고 패이고 높아진 마음을 버리고 평평하고 평탄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성탄절이 곧 다가 옵니다.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을 어떤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맞이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주님의 길을 예비할 수 있으며, 내 마음을 곧게 하여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이 될까요?
1. 회개의 모습으로 주님의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4절, “세례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세례요한은 등장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회개를 선언했습니다. 메시야를 학수고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메시야를 원하는가? 당신들이 정말로 메시야를 만나고 싶은가? 그러면 당신들이 먼저 회개해야 한다” 이 땅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시급한 것이 죄로부터 결별하면서 멀어지는 회개를 요구하였습니다.
여기의 회개는 원어(메나토이아스)인데, ‘다시 생각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을 생각하고 헛된 것을 바라보던 행동을 정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마음만 바꾸는 변화가 아니라,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2022년 한 해도 이제 두 주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2022년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나에게서 바꾸어야 되는 행동이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 말과 행동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변화의 요구가 무엇인지 점거해야 합니다.
회개라는 단어를 너무 거창하고 대단한 것으로 미리 짐작하여 정의를 내리지 맙시다. 회개는 어떤 크고 거창한 것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작은 것 하나에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의 말과 나의 행동, 내가 평상시 무심코 넘어 갔던 비신앙적인 행동 하나하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가 됩니다.
세례 요한은 백성들이 죄인 됨을 깨닫고, 구원자이신 예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죄인의 구주로 오신 주님은 회개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는 자칭 의인들에게는 임하지 않습니다. 회개는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가는 일평생을 통해 이루어야 할 성화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그리스도 앞에 회개하는 마음이 되어 주의 오실 길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아이 앰 세컨드 (I AM SECOND)’라는 책에 브라이언 웰치(Brian Welch, 1970 ~ )의 간증이 나옵니다. 화면에 나가는 사진을 보세요. 첫눈에도 예술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웰치는 그래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록그룹의 기타리스트로써 많은 돈을 벌고 인기를 얻었던 스타였습니다.
돈도 벌고 명예도 얻었지만, 공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해서는 안 되는 마약에 손을 댑니다. 한번 접한 마약에서 도무지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서서히 몸과 영혼이 망가져가고 있던 어느 날 친한 친구가 웰치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너에게 이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다.”그러면서 마 11:28절 말씀을 들려줍니다. 마 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웰치의 마음에는 예수의 음성이 가슴을 치는 것처럼 느낍니다. 어릴 때 주일학교를 다녔던지라, 이 말씀을 처음 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상시 알고 있었던 말씀이지만, 이 말씀이 망치처럼 마음을 때리면서 웰치를 흔들어 버립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 주십시오. 제발 제가 마약을 끊을 수 있도록 저를 도와 주십시오”그 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마약을 끊게 됩니다. 결국 웰치는 마약을 끊고 다시 교회로 나가기 시작합니다. 자신에게 돈과 명예를 주었던 록그룹 활동도 그만 둡니다.
그러자 팬들로부터 상상하지 못하는 비난이 쏟아집니다. 하지만 웰치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예수를 전했습니다. 자신의 사진과 “I AM SECOND(나는 두 번째이다)” 문구가 적힌 광고판을 도로변에 설치합니다. “내 삶의 첫 번째는 예수님이시고 나는 그 다음입니다”라고 간증합니다. 이 광고판을 보고 마약과 환락에 빠져 있던 수많은 청소년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한 사람의 회개가 많은 무리들에게 변화를 준 것입니다.
2. 겸손의 모습으로 주님의 길을 맞이하는 성도입니다.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힘을 들이지 않고 요행으로 일이 성취되기를 바라거나, 또는 어떤 착각에 빠져 되지도 않을 일을 공연히 고집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자신의 좁은 식견이나 고집을 피우다가 올바르고 더 큰 것을 놓쳐 버릴 때 사용합니다.
수주대토라는 단어는 중국 사상가 한비자(韓非子)의 오두편(五蠹篇)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춘추전국 시대에 송나라에 밭을 일구며 살아가던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밭을 일구고 있는데, 토끼 한 마리가 숲에서 뛰어 나와 밭 한가운데 덩그라니 서 있는 나무 그루터기로 달려가서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어 버립니다.
농부는 자신이 토끼를 잡기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한순간 토끼 한 마리를 공짜로 얻게 됩니다. 그러자 이 농부는 ‘토끼는 이렇게 죽는가 보다’라고 엉뚱한 생각하고 토끼를 쉽게 가져 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농부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농부는 다음 날부터 농기구를 팽개쳐 놓고, 나무 그루터기 옆에 앉아서 또 다른 토끼가 나무 그루터기로 달려와 부딪쳐 죽기만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토끼가 매일 그렇게 나무에 부딪혀 죽을까요? 절대 아니지요. 결국 농부는 토끼를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농사는 농사대로 망치고 주위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수주대토라는 말에는 비록 주어진 삶이 특별나지 않아도 작은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단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는 이 수부대토에 나오는 어리석은 농부의 모습에서 교훈을 찾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특별한 사건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믿음을 가졌다고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고, 내가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해서 일확천금에 부자가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생활 속에서 소소하게 드러나는 하나의 작은 행동 속에서 나타납니다. 진실된 믿음은 소박한 삶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드러냅니다. 주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한 주간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나의 물질에서 정성껏 십일조를 준비하고 감사함으로 성도들의 주일 식단을 준비하는 모습이 바로 믿음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신앙의 행동입니다.
6절 보세요.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세례요한의 의복과 먹거리를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등장한 세례 요한의 생활 모습을 보고 매우 부르조아의 삶이라 비판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낙타 털옷을 입을 수 있느냐? 반문합니다.
더군다나 ‘석청’은 wild honey(야생 꿀)로 번역되는 꿀이기 때문에, 자연에서 얻는 귀한 꿀이라고 해서 아주 귀한 꿀로 여깁니다. 고로 세례요한의 삶은 검소하거나 소박한 삶이 아니었다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잘 몰라서 하는 비판에 불과합니다. 낙타털 옷(트리카스 카멜루)이며, 메뚜기와 석청(아크리다스 카이 멜리 아그리온)으로 당시 평범한 일반 대중들이 먹고 입었던 옷입니다. 따라서 절대 서민들의 생활과 동떨어진 부자패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례요한은 유목민이 아니면서도 광야에서 지냈으며 극도로 청빈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습니다. 선구자로서의 사명과 메시아의 오심에 앞서 회개를 선포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존 칼빈은 세례요한의 모습을 두고 평가하기를, “금욕과 청빈을 닮아 주의 오실 길을 곧게 준비하는 행동”이라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7절에 보면 세례요한은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라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여기의 ‘신발 끈을 풀기도’라는 말은 당시 집안 하인 중에서도 가장 낮은 직급의 하인이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가장 직급이 낮은 하인이 손님의 신발 끈을 풀어 신을 벗기고 발을 씻겼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일에만 최우선으로 목적을 삼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례요한 의 겸손한 모습과 청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미정 숭실대 교수는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 라는 책에서 조카의 이야기를 합니다. 조카는 뱃속에서 10달을 못 채우고 6개월 만에 세상에 나옵니다. 정확히 910그램의 미숙아였습니다. 어른 엄지손가락 굵기의 다리를 팔랑거리며 손바닥만한 크기로 세상에 나온 아기,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던 여린 생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여린 아이는 6개월 미숙아에게 올 수 있는 모든 합병증을 다 겪어내면서 스스로 자기 생명을 연단합니다. 죽지 않고 버티면서 부모의 기도와 사랑 속에 성장합니다. 구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집 안에 찾아온 복 하나를 대라면, 나는 주저 없이 ‘엄지공주 솔이’를 말한다. 솔이는 세상을 원망하며 좌절과 한숨에 빠져 있던 가정에 화해를 주러 왔다. 연약한 자신의 생명을 통해서 건강한 어른들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였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연약한 이들 속에 숨겨두셨습니다. 그 연약함 앞에 무릎을 꿇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귀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귀하신 주님이 성탄에 우리에게 오십니다. 반드시 주의 오실 길을 곧게 만들어 주님이 오시는 마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탄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에 오시기 원하십니다. 부디 주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회개하는 마음이 되어 주의 오실 길을 곧게 하시기 바랍니다. 소박한 마음이 되어 주의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