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 20:1~38
월요일 제목을 정함. 우연의 일치로 오늘 큐티가 목자이야기임. 가짜 목자를 심판, 선한 목자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기대에 대해서. 하나님의 작정하심이 있구나!
터키 서쪽 두로아, 에베소 밑의 밀레노에 바울이 남긴 족적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함. 특정인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목자의 역할이 있음. 이번 주, 27년에 받는 편지를 보게 됨. 서울 석관동 청년부 사역할 때, 그리고 떠날 때 선물. 통곡하고 슬퍼하는 시간인데, 그 편지에서는
그때 너무 울고, 미안했다. 그런 말을 들을 말한 상태가 아니었음. 그만 둔 이유가 객관적으로 있었지만, 깊은 동기를 살피면 대형교회의 프로포즈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만 둔 것이라... 죄책감. 좋은 목자로 봐줄수록 스스로를 비웃는 느낌을 가지게 됨. 좋은 목자가 되겠다는 계기가 됨.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목자가 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본문을 살피면 좋을 듯함.
바울이 모금.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가능한 오순절 그 모금을 마치려 부지런히 움직임. 고린도항을 이용해서 가면 빠른데, 거기에 바울을 테러하려는 사람이 있어서 진로 변경. 그래서 일정이 길어졌고 그래서 마음이 급해졌음. "그런 와중에도 돌아봐야만 하는 일은 결코 놓치지 않음!! " 헌금 관리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팀을 꾸려서 다 챙김. 지혜로움. 두 팀으로 갈라졌던 것이 두로아에서 합침. 일요일 노동 후에 모두 모여 성찬 및 말씀 들음. 내일이면 바울이 떠남. 바울은 죽음의 때를 느끼고 마지막 설교라고 생각해서인지 길어짐. 열정이 있어도 사람들이 졸음이 많이 나는 상황. (7~9절), 등불을 많이 켜고 설교는 길어지고. 삼층에서 유두고라는 청년이 낙상 사망사고. 예배 중 사람이 죽었다?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충격적이지만 목사님은 해피엔딩과 사건의 명료한 연상이 좋다. 바울은 아이 몸에 자기 몸을 덮음. 구약 열왕기에서 엘리아와 엘리사를 연상시킴. 죽은 아이의 몸에 몸을 덮쳤던 일. 그것은 내 몸이 죽은 아이에게 어떻해라도 쓰이기를 바라는 열망으로 보여서 숭고하게 여겨짐. 유두고가 살아남. 유두고의 의미는 lucky! 운이 좋음. 직후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예배 진행 및 교제...밤새도록. 이러한 일련의 장면이 생생하게 연상됨. 큰 일이 있었지만 모든 것이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됨. 죽음-부활 소망 등에 대한 믿음이 매우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음. 거기 목자들의 목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하는. 세속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이 모든 것이 사랑으로, 사랑이신 하나님의 이야기이니..참으로 대단한 일.
밀레노에 감. 에베소를 가야 했지만 위험해서 에베소 밑의 밀레노에 감. 대신 에베소의 사람들을 불러 밀레노에서 이야기 함.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기에 유언처럼 진솔하게 하는 이야기임. 자신의 메시지의 핵심을 그들에게 전수해서 사역이 이어지도록 하는 의도임.
바울의 태도 : 내면에서 어떤 마음. 외적으로는 성도와 어떤 관계?
1.(내면 마음) 19절. 겸손과 눈물로 섬김. 어쩌면 자화자찬으로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의 목적을 반영하면 o.k.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는 의도가 아님. 그들에게 그런 태도가 너무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것임. (1) 겸손. "모든 겸손". 그냥 겸손이 아님. 절대로 겸손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음. 목사님은 말도 안되는 사람이 잘난 척하는 것 앞에서는 겸손이 잘 안됨. 이와 같이 겸손이 안 되는 상황에서도 모든 상황에서도 겸손하셨던 예수님 때문에 겸손할 수 있음. 지극한 겸손함으로 자신을 던지신 예수님 때문에 겸손해지는 것이 모든 겸손. (2) 눈물. 이겨서 웃기보다는 약자와 함께 우는 것을 선택했다. 주변의 간사함과 공격을 견디었다. 그들에게 맞서서 내 입장을 관철시키려 노력하기보다는 그럴 시간에 모든 것을 참고 견디신 예수님께 몰입하려고 했던 바울.
2. (외면의 관계)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려 함. 사실 스데반을 생각하면 피에 대해서 깨끗해지 않지만 그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볼 수 있음. 그 일 후에 스데반과 엄청난 대화를 나누었을 것. 나를 만나는 사람이 나 때문에 피를 흘리는 것(억울함)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피해자가 되는 것이 옳은 길이었음. 왜? 예수님이 그 길을 가셨기에 나도 갈 수 있느 여지를 만드셨음. 그래서 나는 기꺼이 그 길을 가기로 했음. 깨끗한 피! 누구에게도 거친 돌이 되지 않기를. (33~34절). 탐심을 억제함. 율법으로 극복할 수 없는 탐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 헌금을 다루는 것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모함. 그래서 바울에게 예민한 사안이었음. 그래서 바울이 고민이 많았던 이슈. 탐심, 매우 강력한 유혹. "모든 것을 거저 주신 예수님이 진짜였고, 내가 받았다는 것이 진짜여야만 탐심을 이길 수 있음." 물질과 공로의식이 흐려져야 탐심이 없어짐. 그 빈공간 안에 연약한 자에 대한 관심으로 채워지는 것임. 연약한 자에 대한 관심으로 채워지면 탐심이 들어올 공간이 없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욱 즐거워지는 현상이 증거 중의 하나. 목자 바울은 "성도들에게" 유익한 것은 뭐든지 다! "목자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김인중 목사님의 여러 성향이 있지만 성도가 유익하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시는 분. (20~21절)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결국 요약하자면, 그것은 회개와 믿음임. 죄를 비우고 예수로 채우는 삶. 그러려면 내가 바라보는 푯대가 선명해야 함. 내가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함. (25~27절) 그 분을 따르는 것이 완전한 자유의 길이다. 그것이 바울의 푯대.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 땅은 분열로 가득. 적개심으로 가득. 복음은 겸손한 용서를 가르치지만 세상에서 그것은 너무나 무능함. 무능하니 고달프고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용서의 길을 선택.... 악함이 지속될 것 같고, 선함이 도저히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 같은 한계에 갇힌 우리. 왜 교회를 다니는 걸까?의 질문을 하게 됨. 이런 의심 속에서, 그때 떠오른 질문 "바울 때보다 더했나?" 바울보다 더 심할까? 목자 바울은 포기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음. 왜? 푯대가 너무 선명했기 때문에. (22~23) 내가 달려갈 길과 사명,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내 생명조차 귀하게 여기지 않겠다. 현실은 너무 참혹하지만. 어떤 세상의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는 옳다는 확신. 결국 로마제국보다 진리는 강했다는 것을 나중에 드러남. 명분이 강하면 뭐해 돈 없으면? 돈 많은면 뭐해, 건강 없으면? 매우 설득력 있는 논리. 그러나 돈이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을 소유, 오히려 돈과 생명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사람, 바울. 나는 이미 영생을 가졌다. 너무나 자유롭다. 이런 내가 돈과 생명에 목을 건다면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천국과 영생이 나를 참자유롭게 만든다. 그들에게도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것이 유일한 상식이 아닐까요? 라고 이야기 하는 것임. 물이 없어 죽어가는 세상에서 무한대로 공급되는 물의 원천을 아는 사람은 여전히 눈 앞의 물을 찾아 다닐 필요가 없는 것 같은 상황.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바울의 사명. '깨어 있으라!', '기억하라!'
(28절) 삼가라(주의해서 깨어 있으라). 깨어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 깨어 있는가?가 더 중요한 일이다. 너는 너 자신과 너의 양떼를 위해서 깨어 있으라. 너를 위하여 '또는' 나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자... "또는"의 의미는 목자, 양떼 등의 대상보다 '본질'을 위하는 것이 곧 목자, 양떼를 위하는 것이 됨. 본질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가? 십자가 냄새가 나는가, 그리스도의 피의 냄새가 나는가가 중요. 반대로 유능한 사업가의 냄새가 나면 안됨. "난 누구, 여긴 어디?"가 고민의 중심임. 깨어 있음. 내가 누군지, 내가 어디 있는지.
너는 : 목자, 장소 : 하나님의 피가 뿌려진 곳. 양떼는 하나님의 피가 뿌려져서 얻은 존재.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 시선을 잃어버리면 내 명분과 욕망으로 오염된다. 그런 시선이면, 대상이 "쨘"하다. 하나님의 시선을 상대를 보게 되면 "쨘"하다. 30년 영화 잭 니콜슨, 매릴 스트립... 아이언 릴?? 둘이 걸어가다 술에 취한 남자를 보게 됨. 부랑자, 창녀인가? 그 전에는? 어린 애. 어린 애라면 대단한 거지. 안으로 데려갑시다. 지겹고 부담스러운 존재의 관점에서 '한 사람'으로 보게 되는 것. 긴장해야 함. 그런 시선을 잃지 않도록. 왜? 그런 시선을 잃은 사람이 교회로 많이 들어오니까. 상황이 어려우면 변수가 상수를 지배하게 됨. 변수가 상수를 갖고 놀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짐.
(32절)
하나님의 말씀이 상수이다. 상수인 말씀이 끌어가게 해야 함. 나는 목표를 이루었는가?보다, 본질적 질문 '나는 목자가 되고 있는가?'. 내가 언젠가, 누군가 내 흔적을 뒤질 때, 나를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는 .. 그런 목자가 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