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4.
욕심이 아니다
갈수록 태산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때로는 이유 없이 죽어버린다. 보지도 못한 까치가 쪼아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텅 빈 농토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찹찹하다. 빈 땅이라 죄스럽고 귀농귀촌지원센터 공무원들에게 미안하고 이 땅을 바라볼 다른 교육생들에게 무안해서 비워두기가 힘에 겹다. 육묘장이나 구례 시장에 가서 적당한 모종을 싸서라도 땜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지 오래다.
다 알고 있다. 사십 년을 부대끼면 살았는데 모를 리가 있겠는가. 말 한마디면 느낌도 알고 의지도 가늠할 수 있다. 아내는 고수와 루꼴라를 좋아한다. 이제는 열무와 부추를 심자고 고집한다. 그런데 말대로 따르기가 녹록하지 않다. 5월 하순이다 보니 육묘장은 끝물이다. 구례 시장 종묘사나 모종 가게에서도 원하는 것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모종 주세요. 쉬운 모종 주세요.” 주인이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쳐다본다. ‘이거 뭐! 어디서 굴러온 개뼈다귀인가.’라는 눈빛으로 하릴없이 쳐다본다. 힘주어 다문 입술과 내 얼굴로 고정된 시선이 따갑다. 부끄럽다. 아마도 개코도 모르는 귀촌 희망자로 눈치챘을 것 같다. 나 같은 멍청한 놈들을 한둘만 봤겠는가. 아래위 행색을 훑어보고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이것저것 건장한 모종을 추천해 주는 육묘장 주인이 고맙다. 이 시기에 그나마 적당한 모종을 여럿 구매한다.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작두콩 모종 3포기, 잎 당귀 모종 13포기, 참외 모종 6포기, 대파 모종 10포기, 양배추 모종 6포기, 토마토 모종 4포기, 풋호박 모종 4포기, 조선 호박 모종 3포기, 잎 깻잎 모종 6포기. 욕심이 아니다. 빈 땅을 채울 모종들이다. 비워두면 마음이 허하고 채워야 행복할 것만 같아서 시작한 일이다.
이미 가득하다.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교육용으로 나눠준 씨감자 3kg 110쪽이 꽃을 피웠다. 쌈채소로 적상추, 청상추, 적겨자, 청경채, 비트가 각각 15~20개의 모종을 심어 잘 먹고 있다. 땅콩 모종 21개도 뿌리를 내렸다. 고추도 두 종류로 오이고추 10포기와 청양고추 6포기가 뿌리를 내려서 물만 잘 주면 될듯하다. 가지와 방울토마토도 4뿌리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고구마 순도 43포기를 심어 매일 홍수가 날 정도로 물을 뿌리고 있으니 기대된다. 옥수수는 126개의 종자를 42개의 구멍에 파종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어쩌자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배우려고 왔다. 체험이 목적이었다. 경험이 가장 좋은 지식이라 믿고 구례로 왔다. 이제는 내 모습에서 평생을 논밭에서 농사지으신 큰아버지가 보인다. 아주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