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1-13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다도록’
역사적 교훈1_은혜와 징계(1-5절)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교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바울의 답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4장은 인사와 고린도 교회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분쟁에 대한 답변이고, 5장은 음행에 대한 답변, 6장은 성도 간의 소송 문제에 대한 답변, 7장은 결혼에 대한 답변이며, 8-10장은 우상 제물에 대한 답변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사백 년 동안 노예살이했던 애굽에서 자유하는 은총을 입었음에도 그 자유를 남용하고, 패역한 삶을 삶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사실을 상기시킴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을 권면하면서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한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꼭 알기를 바란다’라는 것의 강조적 표현입니다. 바울은 중요한 내용을 전할 때나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사실을 일깨워줄 때 종종 이렇게 표현하곤 합니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라는 것은 ‘출애굽 사건’을 가리킵니다. 특히 ‘구름 아래에 있다’라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 말로, ‘부모의 보호와 양육을 받고 자랐다’라는 것을 ‘부모 슬하에서 자랐다’라고 말합니다. ‘슬하(膝下)’가 ‘무릎 아래’입니다. 그래서 ‘구름 아래’는 ‘하나님 슬하’의 의미입니다.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얼마나 많이 보호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무릎 아래’ 정도가 아니라 ‘눈동자’와 같이 지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홍해를 열어 주셔서, 그 바다를 건너갔다는 것입니다.
구름 아래에 있었다는 것과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니라, 노예가 자유인이 되는 신분의 변화가 일어났으며, 애굽에 속했던 사람이 가나안에 속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 된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1절은 2절에서 이렇게 해석됩니다.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바울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구름 기둥 아래에 있다가 홍해를 건넌 것을 ‘세례’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를 건너기 전에 세례 예식을 행하고, 서약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넌 사건은 정말 세례의 의미를 잘 설명해 줍니다.
애굽이 죄와 사망의 상징이라면, 가나안을 향하는 길은 복과 생명의 상징입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널 수 있었던 것은 헤엄을 쳐서 스스로 가나안 땅에 닿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크고 작은 배를 타고서 힘을 써서 배를 조종했거나 노를 저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열어 주시고, 그 땅바닥을 마르게 해 주셨기 때문에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건너고 나자 홍해는 다시 닫혔습니다. 그들은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를 건너는데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헤엄을 친 것도, 노를 저었던 것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그들 모두가 홍해 물을 한모금씩 마셔서 그 수위를 낮추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홍해가 열리고 길이 났던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결단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적용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세례 교인이 된 것이 우리의 능력이나 지혜, 선함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세상에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세례 교인으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더 이상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고 가나안을 향하는 길만 있듯이, 우리에게도 주님을 믿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고, 하나님을 목적 삼고 걷는 길만 있습니다.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신령한 음식’은 ‘만나’를 가리킵니다. 만나는 몸을 위한 양식이었습니다. 그럼에서 ‘육체의 양식’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신령한 음식’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만나가 땅에서 솟아나지 않고 하늘에서 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주워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만나를 하루분씩만 주우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많이 거둔 사람도 남는 것이 없었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욕심을 부리고 다 먹지 못할 정도로 거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 삶이 썩고 냄새가 날 수 있습니다. 또한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분을 거두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에도 만나는 괜찮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몸을 위한 음식이 신령한 음식이 되었습니다. 동일하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 우리의 먹는 모든 음식은 신령한 음식이 됩니다.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석을 쳤더니 물이 나왔습니다. 수도꼭지 정도가 아니라 강같이 터졌습니다. 그래야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석이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즉 그 물이 터지게 해주신 분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터진 반석’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상징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신령한 반석’이 그들을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동행해 주신 것입니다.
찬송가 384장은 ‘나의 갈 길 다 가도록’입니다. 이 찬송의 2절 하반부 가사가 이러합니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있는 곳으로 찾아오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 앞에서 물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삶이 고달프십니까? 인생이 목이 마르십니까? 가만히 눈을 들어 동행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주님께서 목마른 우리 영혼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심에도 그들을 그것을 몰랐습니다.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홍해를 건넘과 불기둥과 구름기둥, 반석에서 터진 물, 만나로 대표되는 은혜 베푸심을 수없이 보았음에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특히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는데, 10명은 “우리는 그들 앞의 메뚜기와 같다”라고 보고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곳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심히 아름다운 땅이고, 그들은 우리의 먹이다”라고 보고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10명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출애굽의 1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마침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사람에게는 매해가 약속의 땅이 됩니다. 물론 이 땅에서 그 약속의 땅을 마지막으로 받으면, 영원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역사적 교훈2_반면교사(6-11절)
6-11절은 이런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는데 그것을 ‘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본보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본보기(튀포스)’는 ‘맞아서 생긴 자국’을 뜻하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못 자국을 보여주시며 “믿는 자가 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자국’과 ‘본보기’가 같은 말입니다.
혹 몸에 수술 자국이나 불에 덴 흉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그때를 떠올리며 더욱 조심해서 살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불순종을 우리 몸에 있는 상처 자국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더욱더 바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고린도 교회가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우상숭배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서 시내산으로 올라갔을 때, 내려올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금송아지를 하나님(엘로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만드셨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만들어서 숭배했습니다.
우상숭배는 자기가 섬길 신을 자기가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상숭배는 자기를 섬기는 것이고, 우상 숭배자와 자기 숭배자는 동의어입니다.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민수기 25장에 나오는 싯딤에서의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우상숭배하고,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가 우상숭배하고 음행을 저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9-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도 마음이 상해서, 만나도 지겹고, 애굽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불뱀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달아, 그것을 본 사람은 치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광야 생활 내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원망’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일어나곤 합니다. 고린도 교회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과 원망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주어진 상황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여호수아와 갈렙이 ‘진면교사(眞面敎師)’라고 한다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반면교사(反面敎師)’와 같습니다. 우리가 중심으로 진면교사를 본보기로 삼지 않으면, ‘미워하면서 닮는다’라는 말처럼, 반면교사의 삶이 우리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조심 위에 조심(12-13절)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런즉’이 중요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서 있지 못하면서 서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고, 성숙하지 못했음에도 성숙하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는 걸림돌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람의 과정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자라갑니다. 이 세상에 다 자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자람을 잘하기 위해서 말씀을 읽고 쓰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바울은 본문에서 4가지의 경고를 했습니다. 우상숭배, 간음, 하나님을 시험,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고린도 교회에 만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피할 수 있는데, 피하지 않았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습이 고린도 교회에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요구받습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세속적인 욕망 추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 자손이고, 고린도 교회입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기 위해, 올해 우리 교회 표어를 ‘영과 진리로’로 정하고, 말씀 읽기와 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감으로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반면교사의 본보기로 삼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진정한 세례교인으로 살아가시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자손들은 400년간의 노예 생활에서의 해방과 가나안을 약속의 땅으로 받았습니다. 그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를 보았고,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었으며, 반석에서 터지는 물을 마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못하고 우상숭배하고, 정결하게 살지 않고 음행을 저질렀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고린도 교회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복사판과 같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에도 하나님께서 동일한 은총과 역사를 베풀어주셨음을 고백합니다. 바라옵나니 이스라엘 자손들과 고린도 교회를 반면교사로 삼아, 하나님을 존중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세례 교인이 되었습니까? 거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까?
2.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삶과 신앙에서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까?
3. 하나님은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셔서 감당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의 삶과 신앙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피할 길을 경험하였을 때는 언제였습니까?
4. 현존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삶을 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