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이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앎이로다』(5:3-4).
로마서의
논리성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도는 1-2절에서 의롭다 함을 얻은 성도들이 누릴 세 가지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난 다음에, “다만
이뿐 아니라” 합니다. “영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하고, 환난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그리스도인들도 현실적으로는 여러 가지 환난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기 때문입니다.
①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3상) 합니다.
㉠
“다만 이뿐 아니라”,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더 할 말이 남아 있다. 이제까지 말한 축복하고는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환난”은 실제적인
문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셈입니다. 목회자의 입장에서 1-2절의 축복을 말씀하면서, 성도들의 이런 호소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
“목사님께서는 지금까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성도들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고, 은혜 안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당장 이러 이러한 문제들이 발등에 떨어져 있답니다. 이 환난의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 더 이상 고난은 따르지 아니 할 것으로 여깁니다. 그렇게 부추기는 설교자들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만사형통을 기대했다가 시련을 당하게 되면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급기야는 낙심에 빠지고 마는 것을 보게 됩니다.
②
형제여, 우리가 영화 된 후에는 더 이상 고난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련과 환난을 대비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상은 우리
주님께서도 피곤함과 목마름과 굶주림을 맛보신 세상이며, 주님에게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퍼부은 세상이며, 종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세상입니다.
㉠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하십니다. 또한 우리 몸에는 많은 죄의 요소가 남아 있습니다. 마치 금광에서 캐낸 금광석을 제련하듯,
영광에 들어가기까지에는 많은 연단의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
베드로 사도는 실제로 그와 같은 표현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 야고보도 붓을 들자마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2-3) 하고 말씀합니다.
③
본문을 보십시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하고 말씀합니다.
㉠
환난을 당하거든 참고 인내(忍耐)하라고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환난을 당하거든 승리(勝利)하라고
말씀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하고 말씀합니다. 환난 중에 어떻게 즐거워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환난
자체는 즐거운 것이 못됩니다.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히 12“11) 하고 성경도 이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환난 중에 어떻게 즐거워합니까? 그것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봇도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눈물도 있고, 웃을 줄도 아는 감정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전 7:14)는 말씀같이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苦難)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榮光)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8:18) 하고, 생각해 보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
문제를 생각하면 궁상을 하게 되어 더욱 깊이 빠져들어 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환난(患難)을
말할 때에, “현재의 고난(苦難)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8:18) 하고, 영광(榮光)과
함께 다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④
본문도 2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하고 말씀한 다음에, 3절에서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하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합니다. 환난 자체를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 넘어 영광을 바라보기 때문에 즐거워 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⑤
“환난은 인내를”(3하) 낳는다고 말씀합니다.
㉠
세상적으로도 인내심(忍耐心)이
없는 사람은 쓸모가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다가도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이내 좌절하고 맙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군대들에게는 더욱 인내가 긴요한
것입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하십니다. 신앙의 경주마당에서
승패는 인내심(忍耐心)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울은 사도된 첫째 표로 “참음”(고후 12:12), 곧 인내심을 꼽고 있습니다.
⑥
“인내는 연단”(4상)을 낳는다고 말씀합니다.
㉠
“연단”은
인정 받기위한 필수 과정(過程)입니다.
우주선의 부속 같은 중요한 부품을 만들려면 재료의 강도를 시험해 보고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 하고
말씀합니다.
⑦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4하) 합니다.
㉠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인가 아닌가는 시련을 통과해 보아야만 압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은 시련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리 떠나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당하면 당할수록 점점 소망(所望)을
굳게 붙잡고 하나님께 다가갑니다. 밤중에 온 몸이 쑤시고 불덩이 같이 열이 나면, 빨리 날이 밝기를 기다림과 같은 이치입니다.
㉡
“환난아 너는 성도들로 하여금 소망을 포기하게 할 줄로 생각하고 있다만, 환난이 닥치면 닥칠수록 성도들은 소망을 더욱 더 굳게 붙잡고 있다”
하고 말씀하는 셈입니다. 형제여,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한 말씀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
압력 밥솥에도 안전장치가 되어 있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타이어에 공기를 넣을 때에도 일정한 압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다루심이겠습니까?
⑧
끝으로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 하고, “이룬다” 하심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여기서 “이룬다”는 뜻은 무엇인가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한 과정, 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마치 고려청자를 만들기 위한
과정에 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엡 2:10)는 말씀대로, 형제는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작품(作品)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형제를 영화롭게 하시며 영원한 영광에 참여 하게 하기 위해서 지금 그 작업을 하고 계시는 중입니다.
⑨
그러므로 성도들은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 할 수가 있습니다. 환난은 이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
환난 자체를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기 때문에 참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과정을
마다하시겠습니까?
㉡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하고, “환난”으로 시작하여,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고, “환난→ 소망”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유념하십시다. 우리도 이 말씀에 화답하여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8:24)
하고 고백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