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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안] '지대본위화폐' 시대를 상상한다⑧ㅡ한국 원화는 이미 '본위제 화폐'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AI 동료들
앞의 두 회에서 세계연방은행과 그 화폐가 어떻게 작동할지를 그려보았다. 이제 검증에 들어간다. 이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게 작동하므로 하나씩 따져보아야 한다. 먼저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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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본위 없는 화폐를 쓰고 있는가
금본위제가 무너진 이래 세계의 화폐는 모두 피아트, 곧 정부의 신용에 기댄 명목화폐라고 배운다. 원화도 그러하다고들 말한다. 금과 바꿔주지 않고, 은과도 바꿔주지 않으며, 오직 한국은행이 발행했다는 사실만이 그 가치를 보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폐가 실제로 어떻게 태어나는지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늘날 시중에 도는 돈의 대부분은 조폐공사의 윤전기가 아니라 은행의 장부에서 만들어진다. 은행이 대출을 실행하면 그 순간 차주의 계좌에 예금이 새로 적히고, 그것이 곧 새 화폐다. 어딘가에 있던 돈을 옮겨온 것이 아니라 없던 돈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그 대출은 무엇을 보고 나가는가. 한국에서 답은 압도적으로 하나다. 땅과 건물이다. 가계는 주택을 담보로 빌리고, 기업은 사옥과 공장 부지를 담보로 빌린다. 사업의 장래성보다 담보의 크기가 대출의 크기를 정한다.
여기까지 오면 결론은 피할 수 없다. 원화 통화량을 실제로 좌우하는 준거는 한국은행의 재량도, 조세권도 아니라 지가(地價)다. 지가가 오르면 담보여력이 늘어 신용이 창조되고, 지가가 꺾이면 신용이 수축한다. 화폐의 수도꼭지를 쥔 것은 부동산시장이다. 원화는 피아트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뿐, 실질은 토지의 소유가치를 본위로 삼는 화폐, 곧 지가본위화폐다.
부동산 폭등은 화폐량 팽창의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다
통념은 이렇다. 돈이 많이 풀려서 부동산으로 흘러갔다. 이 그림에서 화폐는 먼저 존재하고 부동산은 그 종착지다.
그러나 주택담보대출이 실행되는 순간 원화가 그만큼 태어난다. 순서를 바로잡으면 회로는 이렇게 돈다. 지가 상승 → 담보가치 증가 → 대출 확대 → 그 대출이 곧 화폐 발행 → 그 돈으로 다시 부동산 매입 → 지가 재상승. 부동산 폭등은 화폐량 팽창의 결과가 아니라 팽창 그 자체다. 원인과 결과가 아니라 한 사건의 두 얼굴이다.
오지 않은 미래를 오늘 발행하는 일
이 회로의 심장에 '자본화'가 있다.
지가란 그 땅이 앞으로 해마다 낳을 지대를 모두 더해 현재가치로 환산한 값이다. 교과서 공식으로 쓰면 지가는 지대를 (이자율 빼기 기대상승률)으로 나눈 값이다. 여기 두 개의 팽창 밸브가 있다. 분모의 이자율이 낮아지는 것, 그리고 기대상승률이 높아지는 것. 저금리와 개발기대가 겹치면 분모가 영에 가까워지면서 가격이 폭발한다. 실제 임대료는 그대로인데 가격만 뛰는 국면이 이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여기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지대가, 오늘 담보가 되어, 오늘의 구매력으로 발행된다. 시간을 가로지르는 차익거래다. 30년 뒤에나 실현될지 모를, 어쩌면 영영 실현되지 않을 지대를 근거로 오늘 현금이 만들어진다. 앞서 중국의 출양제를 두고 "미래 세대의 지대를 오늘 당겨쓰는 구조"라 했는데, 한국은 그 일을 정부 대신 은행과 지주가 하고 있을 뿐 구조는 같다. 중국은 정부가 지가를 자본화해 재정을 만들었고, 한국은 은행이 지가를 자본화해 화폐를 만든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이 통계에서 사라진다
이 체제의 가장 교묘한 대목이 여기 있다. 새로 창조된 화폐가 쌀과 옷과 전기요금으로 가지 않고 자산시장으로 직행하니, 소비자물가지수는 얌전한데 집값만 미쳐 날뛴다. 그러면 통화당국은 "물가가 안정적이니 금리를 낮게 유지해도 되겠다"고 판단하고, 그 저금리가 다시 분모를 줄여 자본화를 부추긴다. 물가안정 정책이 자산 인플레이션의 연료가 되는 자기강화 회로다.
그리고 이 나라에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장치가 하나 더 있다. 전세다. 은행 밖에서, 규제 없이, 토지자산을 담보로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거대한 신용창조. 민간판 지가본위 그림자금융이라 할 만하다. 이른바 갭투자란 결국 이 그림자 발권력으로 땅을 사는 행위였다.
누구의 것을 당겨쓰는가
미래 지대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도시화와 인구 이동, 지하철과 도로, 학교와 공원, 그리고 사람들이 그 자리에 모여 살며 만들어내는 온갖 왕래와 교류가 그것을 키운다. 자본화되는 그 '미래가치'의 정체는 앞으로 우리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낼 공유부다.
그런데 지가본위 체제는 그 공유부를 오늘 사적 담보로 전환해 사적 구매력으로 바꿔준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의 몫을, 지금 땅을 가진 사람이 은행 창구에서 현금으로 인출하는 셈이다. 화폐발행이익이 국고가 아니라 지주와 은행에게 귀속되는 구조, 이것이야말로 공유부 사유화의 가장 깊은 층위다.
필자가 다른 글에서 다룬 얀 물리에 부탕의 비유를 빌리면, 꿀벌은 꿀만 만들지 않는다. 날아다니며 꽃을 수분시켜 온 생태계를 먹여 살리고 꿀은 그 부산물일 뿐이다. 지금의 금융은 공동체가 수분해 놓은 자리에서 꿀만 걷어가는 양봉가이며, 그것도 아직 피지도 않은 꽃의 꿀을 선물(先物)로 팔아 오늘 마시고 있다.
'실현되지 않은'이라는 말의 무서움
자본화된 기대는 언젠가 실제 지대와 대조된다. 기대가 실현되지 않으면 가격은 조정되는데, 부채는 명목으로 고정되어 있다. 담보가치는 녹고 부채는 남는다. 어빙 피셔가 말한 부채 디플레이션이다.
우리 시대의 여러 난제 — 생산적 투자로 가지 않는 신용, 청년이 자산 형성의 입구조차 찾지 못하는 현실, 주거비가 혼인과 출산을 가로막는 구조, 수도권이 지대를 빨아들이며 진행되는 지방소멸 — 은 각각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뿌리는 이 회로 하나다.
일본이 먼저 걸어간 길
이 대목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우리에게 일본은 참고 사례가 아니라 경고다.
지가본위를 끝까지 밀어본 나라
1980년대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순수한 지가본위 국가였다. 은행은 사업성이 아니라 담보를 보고 빌려주었고(담보주의), 토지불패 신화가 기대상승률을 무한대로 밀어올렸으며, "도쿄 땅값으로 미국 전체를 산다"는 말이 통용되었다. 앞서 정리한 회로 — 지가 상승이 곧 발권 — 가 극한까지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붕괴했다. 담보는 녹고 부채는 남아, 기업이 이윤 극대화 대신 부채 상환에 몰두하는 대차대조표 불황이 30년 이어졌다.
그런데 일본은 지대본위로 가지 않았다
주목할 것은 그다음이다. 일본은 본위를 땅에서 국채로 옮겼다. 오늘의 엔화는 사실상 국채본위 화폐다. 일본은행이 국채를 대량 매입해 화폐를 발행하고, 정부부채는 국내총생산의 두 배를 크게 넘는다. 담보가 '아직 오지 않은 지대'에서 '아직 걷지 않은 세금'으로 바뀌었을 뿐, 미래를 오늘로 당겨쓰는 구조는 그대로다.
전환의 자산은 오히려 풍부하다
역설적이게도 일본에는 지대본위로 갈 준비가 잘 되어 있다. 고정자산세와 노선가(路線價)라는, 매년 전국의 토지를 평가하는 국가 인프라가 이미 작동한다. 정기차지권(定期借地權) 같은 기한부 임차권 제도의 전통도 있다. 그리고 2024년 4월부터 상속등기가 의무화되어, 소유자가 사망한 부동산이 빈집이나 소유자불명토지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약점은 담보 자체가 마른다는 것
2023년 기준 일본의 빈집은 900만 호를 넘어 5년 전보다 51만 호 늘었고, 비율은 13.8%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인구가 줄면 사용가치가 줄고, 사용가치가 줄면 지대 유량이 줄어든다. 담보가 축소되는 화폐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논지를 뒤집을 수 있다. 빈집과 소유자불명토지야말로 소유가치 체제가 파산했다는 증거다. 쓰지도 않으면서 보유 비용이 거의 없으니 방치하는 것이고, 등기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유량 기반으로 바꾸면 이 문제가 자동으로 풀린다. 쓰지 않으면 지대를 낼 이유가 없고, 내지 못하면 반납된다. 지대본위는 토지의 재순환 장치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일본의 경로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말해준다. 하나는 지가본위의 끝이 어디인지다. 다른 하나는 붕괴 이후에도 담보를 바꾸지 않으면 국채본위로 옮겨갈 뿐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 그 갈림길에 서 있다. 붕괴를 겪은 뒤에 고칠 것인가, 그 전에 고칠 것인가.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앞선 이들이 멈춘 자리
토지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환수하자는 주장은 우리 사회에 오래 있어왔다. 헨리 조지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지공주의(地公主義, 지대공공환수주의) 논자들이 토지보유세 강화와 환수 재원의 공평한 분배를 꾸준히 제기해왔다. 최근에도 종합부동산세 정상화와 장기적인 국토보유세 도입, 공공택지의 민간 매각 중단, 지역 균형발전, 차입자에게만 위험을 떠넘기지 않는 부동산 금융 개혁, 그리고 헌법에 투기 방지와 쾌적한 주거생활 조항을 명시하자는 개헌론까지 묶은 처방이 제시된 바 있다.
진단에 관한 한 필자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토지 소유의 극심한 불평등, 노동소득을 압도하는 불로소득, 전세와 갭투자가 부추긴 투기, 그리고 그 끝에 놓인 청년의 결혼과 출산 포기까지. 앞에서 짚은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이 연재는 한 걸음을 더 딛으려 한다.
지금까지 지대 환수는 조세의 문제로 다뤄졌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 이 나라에서 부동산은 자산시장의 한 부문이 아니라 화폐가 태어나는 주된 통로다. 주택담보대출이 실행되는 순간 원화가 그만큼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지대 환수는 세제 개편이 아니라 화폐제도의 문제로 다시 놓여야 한다.
이 차이는 말장난이 아니다. 조세의 언어 안에 머무는 한 그것은 늘 "내 재산에서 떼어가는 것"으로 읽히고, 그래서 세금폭탄 논쟁에 갇힌다. 종합부동산세가 겪은 일이 그러했고, 국토보유세가 문턱을 넘지 못한 것도 그래서였다. 옳은 진단이 30년 넘게 제기되고도 번번이 좌초한 데는 내용 못지않게 프레임의 문제가 있었다고 필자는 본다.
보유세는 사실 통화정책이다
앞의 공식으로 돌아가 보자. 매년 지대의 일정 비율을 공동체가 환수하면 분자가 그만큼 줄어든다. 환수율이 높아질수록 자본화될 몫이 줄고, 이론상 전액 환수에 가까워지면 지가는 영에 수렴한다. 투기할 대상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헨리 조지가 150년 전에 통찰한 바가 이것이다.
그렇다면 보유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다. 보유세는 통화정책이다. 자본화 계수를 낮춰 담보 기반을 축소하고, 그럼으로써 부동산발 화폐창조 회로의 밸브를 잠그는 거시 조절판이다. "세금으로 집값 잡기"라는 익숙한 프레임보다 훨씬 깊고, 반론에도 강하다. 금리 인상은 방아쇠만 건드리고 증폭기는 그대로 두기 때문에, 담보의 성격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회로는 다음 저금리 국면에 어김없이 되살아난다.
이렇게 자리를 옮겨 놓으면 논쟁의 성격도 달라진다. 금리를 올릴 때 아무도 "내 돈을 빼앗아간다"고 하지 않는다. 통화량을 조절하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대 환수도 같은 반열에 놓일 수 있다면, 지금까지 이 개혁이 부딪혀온 벽의 상당 부분은 성격이 바뀐다.
이름을 바꾸자 — '기본지대'
여기까지 왔다면 이름도 바뀌어야 한다. 필자는 이것을 기본지대(基本地代)** 부르자고 제안한다.
'세'라는 글자가 붙는 순간 그것은 국가가 내 재산에서 떼어가는 것이 되고, 세금폭탄 프레임에 그대로 걸린다. 국토보유세 논의가 번번이 좌초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이름 때문이었다고 필자는 본다. 그러나 지대는 다르다. 지대는 빌린 자가 빌려준 자에게 치르는 값이다. 땅의 가치를 만든 것이 공동체라면, 토지 보유자는 공동체로부터 그 사용권을 빌린 자이고, 기본지대는 마땅히 치러야 할 사용료다. 징수가 아니라 정산이 되는 것이다.
'기본'이라는 말은 두 겹으로 일한다. 하나는 기본소득·기본주택·기본금융으로 이어지는 정책 언어에 편입되는 효과이고, 다른 하나는 '기본'이 곧 바탕, 즉 본위(本位)의 어감을 품는다는 점이다. 화폐가 무엇에 근거해 발행되는가라는 물음에 "기본지대에"라고 답할 수 있게 된다. 지가본위에서 기본지대본위로. 이름 안에 이미 통화적 지위가 새겨져 있다.
이에 대해 필자가 최초로 사용하며 제안한 글을 소개한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752
기본지대는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한다. 자본화를 억제해 투기의 토대를 허물고, 검증된 연간 유량으로서 화폐 발행의 준거가 되며, 걷힌 것이 토지배당으로 시민에게 돌아간다. 조세와 통화와 분배가 한 몸인 제도다.
모두가 내고 모두가 받는다
'기본' 시리즈는 대개 시민이 받는 것이었으므로, 기본지대는 자칫 "모두에게 지대를 준다"로 읽힐 수 있다. 필자는 이 오독을 정면으로 끌어안기를 권한다. 기본지대는 내는 제도이자 받는 제도이며, 내는 자와 받는 자가 같은 시민이다. 토지를 평균보다 적게 쓰는 사람은 순수취자가 되고, 많이 쓰는 사람은 순납부자가 된다. 모두가 내고 모두가 받는다 — 이 한 문장이 제도의 정의이자 설득의 핵심이다.
통화정책의 지위를 진짜로 부여하려면 누가 요율을 정하는가의 문제가 따라온다. 금리를 국회가 표결로 정하지 않듯, 기본지대율도 정치적 흥정에서 어느 정도 떼어놓아야 정책수단이 된다. 조세법률주의를 우회할 수는 없으니, 법률로 상·하한의 폭을 정하고 그 안의 조정을 독립기구에 맡기는 절충이 현실적이다. 금융통화위원회에 대응하는 '기본지대위원회'를 상상해볼 수 있다. 자산시장이 과열되면 요율을 올려 자본화를 식히고, 침체하면 낮추는 제2의 조절판이다.
이행의 설계가 성패를 가른다
정직하게 짚는다. 한국 가계는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으로 갖고 있고, 그것이 사실상 노후 대비 수단이다. 그러니 이 개혁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노후 불안의 문제로 체감된다. 여기에 답하지 못하면 지난 실패를 되풀이할 뿐이다.
소득이 없는 고령 보유자에게는 사후납부제(Deferred Payment, 납부이연제)를 적용하면 된다. 구조는 간단하다. 해마다 산정된 기본지대 부담액을 현금으로 내는 대신 장부에 기록만 해두었다가, 매매나 상속 시점에 일괄 정산하는 것이다. 물론 현금으로 내는 쪽에는 그만한 유인을 준다. 이렇게 하면 당장의 현금 부담이 사라지고, 미실현 이익에 과세한다는 반발도 누그러진다. 정부로서는 확정채권을 통해 장기 재원을 확보하게 되니 재정에도 손해가 아니다. 고령층의 유동성 걱정을 덜면서 청년과 무주택 세대에게는 공정한 기회를 열어주는 설계다.
여기에 토지배당을 동시에 시행해 첫날부터 순수혜자가 다수가 되도록 해야 한다. 걷는 이야기와 주는 이야기는 반드시 한 문장 안에 있어야 한다.
토지가 사유인 나라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겠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용광로라 할 맨해튼의 배터리파크시티(Battery Park City)에서 이미 공유부형 지대시장제가 운영되고 있다. 토지를 개인에게 팔지 않고 임대하되 그 지대를 공공이 거두어 도시의 유지와 공공주택 재원으로 순환시키는 방식이다. 토지사유제 국가에서도 지대 공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 사례가 보여준다.
전세 또한 별도의 시간표가 필요하다. 지가가 내려가는 국면에서 가장 먼저 부서지는 고리가 전세이니, 순서를 잘못 잡으면 개혁이 아니라 사고가 된다.
그리고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호주의 수도 캔버라는 취득세를 연간 토지세로 옮기는 데 20년을 잡았고 아직 끝내지 못했다. 이 일은 정권 하나로 끝낼 수 있는 개혁이 아니다.
어떤 본위를 둘 것인가
정리하자. 원화는 아무 본위도 없는 화폐가 아니다. 아직 오지 않은 지대를 담보로 발행되는 화폐다. 그러니 우리 앞의 물음은 본위를 둘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본위를 둘 것인가다. 소유가치냐 사용가치냐, 아직 오지 않은 것이냐 해마다 실제로 오는 것이냐. 기본지대는 그 갈림길에 놓인 이름이다.
다음 회에서는 미국으로 간다. 오늘의 세계 화폐질서를 쥐고 있는 나라이면서, 뜻밖에도 이 사상이 태어난 나라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