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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13구간 제1부
대현마을-장곡산성-사운고택
20261001
1.주류성의 무상감과 사운고택의 새울림
올해 6월 18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대현1리 마을회관 앞에서 동서트레일 12구간을 역방향으로 탐방하여 오서산 상담마을에서 마쳤다. 그로부터 5개월 10여일이 지나서 대현1리 마을에 다시 와서 동서트레일 13구간을 탐방한다. 동서트레일 안내판에서는 동서트레일 13구간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동서트레일 13구간은 대현1리 마을회관에서 위라1리 마을회관까지 이어지는 구간으로, 숲길과 농로, 임도를 활용한 역사·문화 탐방로이다. 장곡산성(주류성), 학성산성 등 백제부흥군의 흔적과 사운고택, 고미당마을, 한국식기박물관 등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하며, 청양군 비봉면의 농촌경관과 금북정맥 문박산의 산림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구간이다. 무한천 양사1교에서는 홍성군과 청양군의 시·군 경계를 이루며, 산성삼거리는 96번과 619번 도로가 분기되어 접근성이 뛰어난 주요 거점지역이다. 내포문화숲길 백제부흥군길 2코스와 연결되어 역사적 의미와 자연경관을 모두 갖춘 구간이다."
동서트레일 13구간은 충남 홍성군 장곡면 대현리와 산성리, 청양군 비봉면 양사리와 강정리, 녹평리, 사점리, 중묵리, 청양군 운곡면 위라리 지역을 통과하여 위라1리 마을회관 앞에서 마치게 된다. 동서트레일 13구간은 홍성군 1개 面 2개 里 지역과 청양군 2개 面 6개 里 지역을 통과하는 탐방로이다. 동서트레일 13구간 탐방 체험을 3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1부(대현마을-사운고택) : 날씨가 잔뜩 찌푸려 있다. 10월의 첫날 날씨처럼 마음이 어두워져서는 안된다. 마음을 밝게 다잡으며, 충남(忠南) 홍성군(洪城郡) 장곡면(長谷面) 대현리(大峴里) 대현마을 버스정류소에서 대현1리 마을로 들어간다. 12구간을 이곳에서 출발하여 역방향으로 탐방하였기에 마을 곳곳이 눈에 익다. 동서트레일 12·13구간 시종점인 대현1리 마을회관 앞에서 동서트레일 13구간은 백제부흥군길 2코스와 동행한다.
대현1리 마을은 쌀을 거둬들여 보관하였던 큰 창고인 대부창(大釜倉)이 있었다고 하여 대부동(大釜洞)이라 불리는 마을과 그 맞은편의 봉수지맥 능선이 병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병티(평티)라 불리는 고개 아래에 평촌(坪村)이라고도 불리는 평티마을이 자리한다. 평티마을은 옛날 나라에 큰 난리가 났을 때도 이 마을 만큼은 안전하였다고 하여 평안을 병풍처럼 두르고 산다고 하여 평티마을이라 불린다고도 한다.
대현1리 마을회관 뒤 대부동을 지나 장곡산성 고개를 오른다. 고갯길에서 내려보면 대현1리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봉수지맥이 장곡면 대현리와 상송리를 경계하여 숯고개를 지난다. 숯고개는 옛날에 고개 양쪽으로 참나무가 많아서 그 참나무로 숯을 구어 팔았다고 하여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봉수지맥은 동쪽으로 능선을 이으며 움푹 들어가 안부를 이루는데 이곳이 병티이고, 그 아래에 자리한 마을이 병티마을이다. 동서트레일 12구간 때 봉수지맥과 동행하여 그 분기봉인 오서산 금자봉 아래의 임도를 통과하였다.
봉수지맥(鳳首枝脈)은 오서산(鳥棲山, 791m)의 홍성군 장곡면 광성리 금북정맥 370m 산봉에서 갈래를 쳐서 동북으로 이어져 예산군 신암면 하평리에서 삽교천으로 떨어지는 산줄기로, 이 산줄기에서 가장 높은 산봉인 봉수산(鳳首山, 483m)의 이름을 따서 봉수지맥(鳳首枝脈)이라 이른다고 한다. 길이는 도상거리 약 47.5km이며, 봉수지맥 서쪽으로는 삽교천이 흐르고, 동쪽의 무한천은 삽교천에 합수하여 아산만에 유입된다. 봉수지맥은 충남 홍성, 청양, 예산 지역을 지나는데, 홍성군 장곡면 대현리 지역의 장곡산성(주류성)을 마주보며 지난다. 특히, 봉수지맥에서 가장 높은 483m 봉수산에는 임존성이 위치한다. 봉수산(鳳首山)은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예산군 대흥면 지역의 진산이라고 한다. 장곡산의 주류성과 봉수산의 임존성은 백제부흥운동의 중심지이다. 그렇다면 봉수지맥 산줄기는 백제부흥운동의 대명사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내포문화숲길에는 봉수지맥을 따라가는 백제부흥군길 탐방로 1~3코스가 개통된 것 같다. 이 탐방길에서는 부흥하는 봉황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장곡산성 고개에서 쓸쓸한 기분에 잠겨들었다. 역사의 무상감일 것이다. 설명안내판의 내용이 무엇이든 백제부흥운동이 제 아무리 기세를 올렸다고 하여도 그 세력은 패망하였고, 현재 그 흔적을 찾아 옛 역사의 정신을 읽어볼 뿐이다. 허둥허둥 장곡산성을 뒤로 하고 임도를 따라 장곡면 산성리로 내려갔다. 고개 한 곳을 넘어 철망문을 지나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산성3저수지로 이어지는 삼거리에 이른다. 이 길은 산성3저수지를 지나 홍성문학관과 예당큰집(한국식기박물관)으로도 이어지는 것 같다.
갈림길에서 임도를 따라 고갯마루로 오르면 장곡면 산성리와 비봉면 양사리 일대, 그리고 멀리 넘어가야 할 비봉산 산줄기가 시야에 들어온다. 고개 아래에는 반계천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 무한천으로 유입되고, 반계천 위쪽으로는 홍남동로가 대현리에서 산성리로 넘어와 반계골 태양광 발전시설을 지나 산성삼거리로 이어간다. 반계천이 감아도는 병고랑골 들녘은 황금 물결로 넘실거린다. 아름답다, 시원하다, 찌푸린 날씨 영향에 쓸쓸했던 마음이 맑게 물결치고, 탐방길에 애착이 간다.
동서트레일은 반계천의 징검다리를 건너, 반계천의 병고랑골 들녘의 들길을 따라가다가 홍남동로를 가로질러 고미당 임산물판매장을 지나 반계골의 솔숲으로 들어간다. 소나무숲에는 양주 조씨 조응식 가옥인 사운고택을 중건할 때 기와를 굽던 가마터와 대현리에서 옮겨 설치한 석실묘가 자리한다. 사운고택 앞에는 근래에 조성한 문은원이 자리하고 그 서쪽에 문은정이 자리한다. 사운고택 외원인 문은원에서 지금까지 동행한 동서트레일과 백제부흥군길은 헤어져, 백제부흥군길은 문은정을 지나 학산산성으로 올라가고, 동서트레일은 사운고택 입구로 나가 산성1리 마을회관 앞으로 이어간다.
홍성 사운고택은 양주 조씨 집안의 조태벽(趙泰璧)이 17세기 중후반에 조성한 이후 13대를 이어 조씨 가문이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사운고택의 '사운'은 조중세(趨重世,1847~1898)의 자(字) '사운(士雲)'에서 따왔다고 한다. 조중세는 문경 현감으로 재직할 때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제하고자 홍주 본가의 양식을 실어다가 나누어 줌으로써 백성을 구제하였고, 고종 31년(1894) 홍주의병의 봉기에 군량미로 쌀 239두를 보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사운고택 앞에는 이러한 사운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후손 조응식의 '용진가'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학성산 정기로 반계천 맑은 물/ 달려라 영마야 꽃실은 영마야// 검소와 근면을 행동에 옮기며/ 내고향 일구자 조가의 젊은// 빛내자 지키자 예의와 도리를/ 빛내자 지키자 선비의 정신을// 베풂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며/ 조가네 전통을 이어서 나가자// 나가자 우리는 조가의 젊은이/ 동해에 해뜬다 우리는 용진군" 그래서인지 이 고택이 홍성 조응식 가옥으로 불리다가 이제는 홍성 사운고택으로 불리게 된 것 같다.
사운고택은 장곡면 산성리 원골에 자리한다. 조선 때 관원이 상주하는 여양원(驪陽院)이 있었다고 하여 원동(院洞)이라 불리며 산성리(山城里)에서 으뜸 되는 마을이라고 한다. 원동마을은 산성1리 지역에 속하며 현재는 고미당마을로 불린다.
사운고택 외원 문은원의 목수국 새하얀 꽃들이 시들어 말라 비틀어지고 있다. 가을의 퇴락감, 인생의 종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가을의 맑음이 새로이 태어난다. 국화꽃이 피어 국화향을 날리며 새로운 노래가 맑게 울린다. 사운고택 오랜 건물 앞 문은원은 새로이 조성되어 가을날의 국화꽃 같은 느낌을 준다. 문은원에는 꽃과 나무, 연못, 정자 등 조경이 잘 정비되어 있고, 여러 시비들이 세워져 있다. 대문채의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학산헌' 현판이 붙어 있고, 오른쪽 누마루에는 '수루' 현판이 붙어 있는데, 수루 오른쪽 처마에는 '우화정' 현판이 붙어 있다.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가 이곳에 머물며 뜰 앞의 벚나무에서 꽃잎이 비처럼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우화정(雨花亭)' 이름을 붙였다고 하며, 자하 신위의 글씨를 판각하여 '우화정(雨花亭)' 현판을 붙였다고 한다.
사운고택의 사랑채 학산헌(鶴山軒)과 안채 보현당(寶賢堂), 안사랑채 ‘얼방원(乻方垣)’과 학산서재(鶴山書齋) 등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짜장면 후루룩 삼키듯 보고 나왔다. 길동무들은 벌써 원동마을 밖으로 나가 보이지 않는다. 사운고택 대문채 앞에 설치한 사운고택 설명안내판의 내용을 대충 살폈다. 사운고택의 조성자 조태벽(趨秦碧, 1645~1719)의 조부 조계원(趨啓遠,1592~1670)은 영의정을 지낸 신흠(申欽, 1566~1628)의 사위이며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문인(門人)으로,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영의정에 증직었다고 한다. 신흠의 자연에 은거하여 사는 자의 고독을 노래한 시조 한 수가 떠오른다. "산촌(山村)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무쳐셰라./ 시비(柴扉)를 여지 마라, 날 차즈리 뉘 이시리./ 밤중만 일편 명월이 긔 벗인가 하노라." 아마도 춘천에 유배되었을 때(1616~1621)의 삶을 읊었으리라.
"상촌(象村) 신흠은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을 보필하라고 부탁받은 일곱 대신 중의 한 사람으로, 1613년 계축옥사 때 유배됐다. 1623년 인조반정 후 1627년 정묘호란 때 세자를 모시고 전주에 피난 갔다가 돌아와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가 1628년 사망하였다. "냇가의 해오라비 무스일 서 있는다/ 무심(無心)한 저 고기를 여어 무삼 하려는다/ 두어라 한 물에 있거니 잊어신들 어떠리(냇가의 백로는 무슨 일로 서 있는가? 무심한 저 물고기를 엿보아서 무엇을 하려는가? 같은 물에 있는데 잊어버린들 어떠하겠는가?) 이 시조는 신흠(申欽)이 광해군 때 대북파의 모함으로 유배를 당한 후, 자신의 처지와 대북파의 횡포를 자연물에 비유하여 지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무심한 고기는 사사로운 욕심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유한 것이고, 그 물고기를 호시탐탐 노리는 해오라기는 권력을 잡은 대북파를 빗댄 것이다. 물고기와 해오라기 모두 같은 나라의 백성이고 신하니, 증오를 잊는 것이 어떠하겠느냐는 소망을 담고 있다." - 유자효의 '시조가 있는 아침'에서
2.탐방 과정
탐방 거리 : 19.3km 중 3.0km
탐방 시간 : 5시간 54분 중 1시간 9분
충남 홍성군 장곡면 대현리 국가지원지방도 제96호선 홍남동로 대현1리마을 버스정류소에서 탐방을 출발한다.
신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하기 시작한 장곡면 대현리(大峴里) 지역은 삼한시대에 마한의 부락사회국가인 사로국의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백제 때는 사시량현(沙尸良縣)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결성현(潔城縣)의 영현(領縣)인 신량현(新良縣)에 속했었다. 고려 때는 초엽에 여양현(驪陽縣)에 속했다가 뒤에 홍주에 속했으며 조선 초엽엔 홍주군(洪州郡)에 속했었다. 조선 말엽 홍주군(洪州郡) 유곡면(酉谷面)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현리(月峴里), 평촌(坪村), 대부리(大釜里) 일부를 병합하여 대부(大釜)와 월현(月峴)의 이름을 따서 대현리(大峴里)라 하여 홍성군(洪城郡) 장곡면(長谷面)에 편입되었다. - 홍성군청
홍남동로는 서쪽으로 숯고개를 넘어 장곡면 상송리로 이어진다. 맨 오른쪽에 대현마을 임산물판매장 건물이 있다.
홍남동로 832번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면 대현1리 마을회관쉼터 정자 옆에 자손만대 부귀공명비와 공덕비가 서 있다.
쉼터정자 옆에 동서트레일 간이대피소 뎈이 길게 조성되어 있고, 앞에 백제부흥군길 이정목이 서 있다. 이 일대를 대부동(大釜洞)이라 이르는데, 조선시대 이 지역 근방의 얼방·성지·유곡 등 삼면의 쌀을 거둬들여 보관하였던 큰 창고인 대부창(大釜倉)이 있었다고 한다.
대현1리 마을회관 앞에 체력단련장이 조성되어 있고, 그 오른쪽에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종합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내포문화숲길 1코스와 2코스는 초록선으로, 동서트레일 12구간과 13구간은 붉은선으로 표시하였다. 지난 번에는 이곳에서 동서트레일 12구간을 역방향으로 출발하여 오서산 상담마을까지 탐방했다. 이번에는 13구간을 정방향으로 청양군 운봉면 위라1리마을까지 탐방한다.
충남 홍성군 장곡면 대현리 대현1리 마을회관을 지나간다. 회관 앞에 강영식 공적비가 서 있다.
동서트레일은 장곡면 대현리 홍남동로 832번길을 따라가다가 쉼터정자 앞에서 왼쪽 홍남동로 852번길을 따라간다.
대현마을 뒤 동쪽에 장곡산성 능선이 이어진다. 동서트레일은 민가 뒤쪽 길을 따라 장곡산성 능선으로 올라간다.
동서트레일 13구간과 백제부흥군길 2코스는, 이곳에서 동서트레일 12구간과 백제부흥군길 1코스와 갈라져 장곡산성으로 올라간다.
대현1리 마을회관 앞에서 홍남동로 832번길을 따라 쉼터정자 옆 백제부흥군길&동서트레일 이정목으로 올라왔다.
홍남동로 832번길에서 홍남동로 852번길을 따라 장곡산성 방향으로 올라간다.
홍남동로 832번길과 852번길 갈림목에 근로자 휴게실이 자리한다.
홍남동로 852번길 옆에 흑염소를 사육하는 흑영소 농장이 있다.
홍남동로 852번길 전신주에 내표문화숲길 방향 표지판이 붙어 있다.
홍남동로가 장곡면 대현리에서 숯고개를 넘어 장곡면 상송리로 넘어가고, 봉수지맥이 숯고개를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녹용은 사슴뿔의 한약명이다. 녹용은 특히 기질이 허약한 사람, 기력이 부족한 사람, 정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대단히 좋은 보약이다. '본처비요'에 녹용은 정기를 발생시키고, 혈액의 영양이 되며, 현기증에 특효가 있고 양기(陽氣)를 보하여 성욕을 왕성케 하며 배와 힘줄을 곧게 하고 신기허약(腎氣虛弱)과 냉(冷)한 것을 다스리며 관절이 아프거나 기운이 없을 때 효과가 좋고 냉, 대하를 고치는 작용을 하며 모든 허손 (虛損)과 노상(勞傷)을 회복시킨다고 기록되어 있다. 흔히, 녹용을 어릴 때 많이 먹이면 머리가 나빠지고 둔해지며, 비만아가 된다고 하는데. 이는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라는 것이 한방 임상에서 밝혀지고 있다. 어릴 때일수록 녹용을 적당히 복용시키면 발육이 촉진되고 뇌가 발달되며 면역성이 좋아져 잔병에 걸리지 않게 된다. 또, 학생들에게는 머리를 좋게 하는 청뇌탕 등에 녹용을 넣어쓰면 그 효과가 배가되어 체력을 보장하고 뇌력을 증강시켜 학습 효과를 크게 높여준다. 일반성인의 보정약(補精藥) 즉, 팔미환 등에 녹용을 가미하여 쓰면 보정 강정제로 약성이 변한다. 대체적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 증상에 준하여 체질에 맞게 녹용을 가감하여 쓰면 그 효과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녹용은 대개 태양인 체질에 적합하다. 특히, 녹용은 보약으로만 아는데 녹응은 보약이자, 치료제의 역할을 한다. 신장을 보하여 뼈의 발육을 돕고 흥분성 강장제로 원기를 보하여 주는 효과가 있어 몸이 수척하며 팔, 다리에 힘이 없고 저린 증상을 치료한다. 골수를 보하여 빈혈을 치료하며 심장 쇠약에 유효하며 간질 증상을 일으키는 것을 치료한다. 허리와 척추가 아프고 통증을 느낄 때 긴요하며 소변을 정상적으로 유도하며 혈뇨를 사라지게 한다. 염증이 오래 지속되는 증상에 신생조직을 발육 촉진시킨다. 남성 호르몬 부족으로 생기는 정력부족, 요의빈삭(오줌이 자주 마려운 증세), 요슬냉통, 이뇽, 혈골, 남성의 유정(조루증이나 몽정)을 치료하고 부인의 자궁 출혈, 불임증 등을 치료한다. 성욕을 항진케 하며 산전산후에 빈혈을 치료하는 데 유일한 효과가 있으며 전신의 허약과 요통을 치료한다. 이외의 기록이 있으나 중점 내용을 발췌하였습니다. 김남선(영동한의원 원장 한의학박사) 대현사슴목장 (0451)642-6154
푸르른 잎이 무성한 은행나무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장곡산성 방향으로 올라간다.
장곡산성 0.4km 지점, 은행나무 앞에 백제부흥군길&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다.
장곡산성 고개로 올라가는 임도에서 장곡면 대현리와 상송리를 경계하며 이어지는 봉수지맥을 바라보았다. 봉수지맥 아래에 자리한 마을을 평티마을이라 이른다고 한다.
"윗골 서쪽의 마을을 산의 모양이 병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평티라고 부르는데, 고개 아래 마을도 고개 지명 따라 평티라고 부르며 또한 평촌(坪村)이라고도 부르는데 옛날 나라에 큰 난리가 났을 때도 이 마을 만큼은 안전하였다고 하여 평안을 평풍처럼 두르고 사는 마을이라 평티, 평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 홍성군청
장곡산성 임도 고개에 여러 안내판들이 설치되어 있다.
장곡면 대현리와 산성리를 경계하는 장곡산선 능선 고개 북쪽에 홍성 장곡산성 설명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홍성 장곡산성은 오서산(해발 791m)에서 북동쪽으로 연결되는 남쪽 봉우리(해발 255.5m)와 북쪽 봉우리(해발 208.8m)를 연결하여 돌로 쌓은 성이다. 전체 둘레는 약 1,352m이다. 성을 쌓은 시기는 백제시대로 추정된다. 산성 주변은 계곡이 좁아 군사 활동에 적합한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동·서·북쪽에 출입문 터의 흔적이 있다. 산성 안에서 건물 터 10여 개소와 주춧돌, 무덤 등이 발견되었는데, 석곽묘인 돌덧널무덤에서는 청동방울, 백제 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사시', '사시량', '사라', '관' 등이 새겨진 기와 조각도 발견되었는데, 이곳이 백제 사시량현의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주변에는 백제의 산성인 학성산성, 태봉산성, 소구니산성 등이 띠를 이루고 있어, 전략적 요충지로서 백제부흥군의 거점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장곡산선 능선의 고개에 야생동물 대치요령, 이정목, 장곡산성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장곡산성 북쪽 능선에 홍성 장곡산성 설명안내판, 장곡산성 능선 고개에 장곡산성(주류성) 설명안내판이 각각 설치되어 있다.
660년, 백제의 사비성과 웅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함락되자 백제부흥운동을 펼쳤던 성이다. 왜에 있던 풍(豊)왕자를 모셔와 왕릉을 잇고 주류성을 왕성으로 삼아 백제부흥운동을 맹렬하게 전개했던 곳이다. 주류성으로 불리는 곳은 여러 곳이 있는데, 장곡산성 안에서 발견된 옛 건물터와 주변의 지형과 전해오는 전설 등을 통해 이곳 사람들은 장곡산성이 주류성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서기>에 주류성의 위치를 짐작케 하는 내용 중 '험준한 산악지형에 있어서 농사짓기 어려운 땅으로 백강과 가깝고 하루 만에 사비성 공격이 가능하며 임존성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홍성군 장곡면의 장곡산성이 주류성일 가능성이 크다.
장곡면 대현리에서 장곡산선 능선 고개를 넘어 장곡면 산성리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장곡산성 100m 지점을 알리는 이정목이 서 있는 장곡산성 임도에서 왼쪽 숲길로 내려간다.
숲길을 따라 무성한 조릿대 터널을 통과한다.
조릿대 터널을 통과하여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산비탈을 오른다.
장곡산성 0.4km 지점, 산비탈을 올라 고갯마루에서 왼쪽으로 내려간다.
고갯마루 능선 숲길을 내려가다 이정목이 서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나무계단이 설치된 산비탈을 내려가서 곧바로 왼쪽으로 꺾어 임도를 따라간다.
나무계단길을 내려와서 내려온 산비탈의 나무계단을 뒤돌아보았다.
산비탈의 나무계단길 출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 철망문을 통과하여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갈림길 위쪽에 세워진 이정목을 따라 왼쪽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오른쪽 소로는 산성3저수지로 이어지는 듯.
장곡산성 1.2km, 학성산성 2.4km 지점, 갈림길의 이정목을 확인하고 왼쪽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임도 고갯마루에서 내려보면 홍남동로가 지나고, 홍남동로 언덕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되다. 이 일대와 솔숲 마을을, 뒷산에 돌이 많고 마을 앞에 맑은 물이 흐른다고 해서 반계(磻溪) 또는 여양이라고 부르며, 소하천 옆으로 병고랑골 들녘이 펼쳐진다.
장곡면 산성리(山城里)는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한 곳으로 삼한 시대에 마한의 부락사회국가인 사로국이 있었던 곳이다. 백제 때에는 사시량현(沙尸良縣), 신라 때에는 결성군(潔城郡)의 영현(領縣)인 신량현(新良縣), 고려 때는 여양현(驪陽縣)에 속했다가 뒤에 홍주에 속했다. 조선 초엽에 홍주군(洪州郡)에 속했으며 조선 말엽엔 홍주군(洪州郡) 얼방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상냉리(上冷里), 하냉리(下冷里), 학성리(鶴城里)와 화성면(化城面)의 옥계리(玉溪里) 일부와 유곡면(酉谷面)의 은동(隱洞) 수문리(水門里) 일부를 병합하여 산성(山城)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산성리(山城里)라 하고 홍성군(洪城郡) 장곡면(長谷面)에 편입되었다. - 홍성군청
소하천의 징검다리를 건넌다. 하천 건너편 일대를 반계(磻溪)라 이르며 이 소하천을 반계천이라 이르는 듯.
학성산성 1.7km, 장곡산성 1.9km 지점, 홍남동로 아래쪽의 들길 출입구에 백제부흥군길&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다.
홍남동로와 들길 갈림목에서 건너온 반계천을 뒤돌아보았다.
홍남동로가 산성삼거리 방향으로 달리고, 반계천이 병고랑골 들녘을 돌아 흐르며, 동서트레일은 병고랑골 들길을 따라간다.
병고랑골 들녘의 들길을 따라간다. 홍남동로 도로표지판 위에 다락골 성지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병고랑골 들길에서 홍남대로 출입구로 나가 홍남대로를 가로질러 맞은편으로 건너간다.
학성산성 1.5km, 장곡산성 2.1km 지점, 홍남대로 앞쪽 100m 거리에 지방도 제619번 무한로 분기점이 있다.
국가지원지방도 제96호선 홍남동로를 건너 (주)한결임산, 고미당 갤러리와 고미당마을 종가음식체험장을 지나간다.
홍남동로 앞쪽에 '무한로'가 분기하는 산성삼거리가 보이며, 동서트레일은 고미당 표지판 뒤에서 왼쪽 숲길로 이어간다.
홍남동로 고미당 휴게소&임산물판매장 표지판 앞 이정목에서 숲길로 이어간다.
병고랑골 들길을 따라와 홍남동로를 건너서 고미당 앞으로 이어왔다. 이 일대를 반계 또는 여양이라 이르는 듯. 홍남동로는 장곡면 산성리 반계 지역을 지나 서쪽 장곡면 대현리 방향으로 올라간다.
숲길을 올라가면 소나무숲 넓은 뜰이 펼쳐진다.
250년전 홍성 조응식 가옥(우화정)을 중건할 때 기와를 굽던 가마터라고 한다.
돌이 덮인 봉분이 소나무 아래에 있고, 그 뒤쪽에 석실묘가 있다.
석실묘(石室墓)는 삼국시대에 그지역을 대표하는 귀족계층의 묘지이며 석곽묘라고도 일걷는다. 관내 도산, 광성, 신동, 행정, 천태, 대현리 등 수십기가 잔존하나 대부분 훼손 방치되어 향토문화를 보존하고 후세들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대현리 산 43-5 정원희 임야에서 이전하였다. 규모(内徑)는 가로 240cm, 세로 90cm, 높이 80cm이다.
석실묘 앞에서 사운고택(士雲古宅)의 외원(外苑)인 문은원(文隱苑)을 내려보았다.
사운고택의 문은원에서 백제부흥군길 2코스는 학성산으로, 동서트레일 13구간은 양사2리 마을회관 방향으로 갈라진다.
사운고택(士雲古宅) 앞 문은원(文隱苑)에 목수국들이 시들고 있다.
문은원(文隱苑)의 북서쪽 끝에 문은정(文隱亭)이 조성되어 있다. 백제부흥군길 2코스는 문은정을 지나 학성산으로 올라간다.
문은원(文隱苑)에 여러 시비들이 세워져 있는데 이지엽 문학비에 '해남에서 온 편지' 시가 새겨져 있다.
아홉 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 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 하고 지난 설에도 안 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안 그냐./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잔 혔다/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 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 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 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 이지엽(李志燁, 1958~)의 '해남에서 온 편지' 전문
식어가는 그늘의 무게에/ 도루루 말리는 고사리 목숨/ 내일은 저 별을 보듯 반만 믿고/ 풋내기 아씨 시(詩)랑 혼야(婚夜)로 들자
문은원(文隱苑) 입구에 문은원 안내판과 최강렬 시비가 서 있다.
조식을 먹고서야 낫의 날을 세운다/ 동네를 걸어라 조모라기 인사 받으며/ 논밭에 도착하여 하늘 보고 담배 피고/ 밭에는 풀이 많고 논에는 물대기 어려워/ 관개수로 인수하여 아랫 논에 물을 대고/ 정오가 되어서야 그늘로 찾아드네/ 오늘은 오찬 국수가 별미 되어 좋구나
사운고택 문은원 안내판 옆에 위라1리 마을회관 16.1km 지점을 알리는 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다.
문은원(文隱苑)은 사운고택(士雲古宅) 외원(外苑)으로 학성산이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고 동편으로는 반계천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내려 크고 작은 들판이 형성되어 있다. 원골(원문동)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두 노거수를 지나 사운고택 앞에 이르면 소담스런 연못이 반기고 낮은 앞산을 전경으로 소나무숲이 감싸고 있어 선비들의 쇄락(灑落)한 정서(情緒)를 느끼게 한다. 원문동에 자리한 이 고택 정원은 양주 조씨 집안의 조태벽(趙泰璧)이 17세기 중후반에 조성한 유래가 전하며, 이후 13대를 이어 조씨 가문이 지켜오고 있다. 사랑채 누마루 수루(睡樓)에서 유명한 문객들이 그 풍광을 소재로 시를 읊었고, 조선 영조 때 문신 자하(紫霞) 신위(申緯)가 "꽃비가 내리는 집"이란 뜻으로 지은 당호(堂號) 우화정(雨花亭)의 편액이 걸려 있다. 문은원과 문은정(文隱亭)은 조선 헌종 때 문신인 조병노(趙秉魯)의 아호(雅號) 문은을 따서 이름으로 지어 편액을 새겨 걸었고, 또한 문은 선생과 충직한 말(忠馬)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더불어 전해내려 온다. 새롭게 조성된 사운고택의 외원 문은원(文隱苑)은 왕벚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다양한 수목이 조성되어 있고, 산철, 배롱나무, 산수유 등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어 나지막한 언덕의 소박한 정자에는 봄 향기 그윽하여 고택의 격조와 운치를 한껏 더해 준다.
초등학교 교사를 역임한 조응식(1929~2010)님의 용진가 노래비가 사운고택 솟을대문을 마주하여 서 있다.
"학성산 정기로 반계천 맑은 물/ 달려라 영마야 꽃실은 영마야// 검소와 근면을 행동에 옮기며/ 내고향 일구자 조가의 젊은// 빛내자 지키자 예의와 도리를/ 빛내자 지키자 선비의 정신을// 베풂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며/ 조가네 전통을 이어서 나가자// 나가자 우리는 조가의 젊은이/ 동해에 해뜬다 우리는 용진군" 서기 이천십이년 한여름 우당 이봉연 삼가 씀
사운고택 문간채의 솟을대문으로 들어간다.
사랑채 중앙에 학산헌(鶴山軒) 현판이 붙어 있고, 오른쪽 누마루에는 '수루(睡樓) 현판이 붙어 있다.
누마루 처마에 '수루(睡樓)' 현판이 붙어 있고, 벽에 기와조각으로 꾸민 건곤감리 사괘와 天下太平 글자가 꾸며져 있다.
누마루 오른쪽 처마에 우화정 현판이 붙어 있고, 그 아래 설명안내판이 있다.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가 이곳에 머물며 뜰 앞의 벚나무에서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이름을 붙였다고 하며, 현판 글씨도 자하 신위의 글씨를 판각한 것이다.
청남문을 통하여 안채 보현당으로 들어간다.
안채 오른쪽 벽에 보현당(寶賢堂) 현판이 붙어 있다.
안채 보현당 옆쪽의 측실을 바라보았다.
광채 옆에서 안채 전체 모습을 살펴보았다.
광채 앞에서 왼쪽 안사랑채와 오른쪽 학산서재를 살펴보았다.
서고 처마에 학산서재(鶴山書齋) 현판과 문주에 얼방문화연구소 표지판이 붙어 있다. '얼방(乻方)'의 '얼'은 어른을 뜻하며, '얼방'은 어른(임금)이 머무는 땅을 뜻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안사랑채 벽 처마에 ‘얼방원(乻方垣)’ 현판이 붙어 있다. 안사랑채는 여성을 위한 사랑채로 별당 역할을 한다고 한다.
광채 왼쪽의 부경(桴京, 토지광)은, 도정하지 않은 볍씨를 보관하는 창고이며, 아래쪽 네 면에 구멍 돌씩이 뚫려 있다.
솟대 형상의 낮은 두 돌기둥 머리에 돌오리가 각각 앉아 있다. 오른쪽에 사랑채와 청남문이 있다.
사랑채 누마루인 '수루(睡樓)' 오른쪽 처마에 '우화정(雨花亭)' 현판이 붙어 있고, 오른쪽 문은 안채로 통하는 청남문이다.
사운고택을 대충 살피고 문간채 솟을대문 앞으로 나왔다. 왼쪽에 용진가 노래비, 다리 건너에 문은원이 조성되어 있다.
양주 조씨의 정착은 중추첨지부사 조태벽(趨秦碧, 1645~1719)이 낙향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조태벽은 충정공(忠靖公) 조계원(趨啓遠,1592~1670)의 손자이다. 조계원의 호는 약천, 자는 자장이며, 인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존성(存性)의 아들로, 영의정을 지낸 신흠(申飲)의 사위가 되며,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문인(門人)이기도 하다. 또한 인조 계비인 장열왕후(莊烈王后)의 작은아버지로, 1628년(인조6)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후예 중, 조중세(趨重世,1847~1898, 字 사운)는 문경 현감으로 재직할 때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제하고자 홍주 본가의 양식을 실어다가 나누어 줌으로써 백성을 구제하였고, 고종 31년(1894) 홍주의병의 봉기에 군량미로 쌀 239두를 보내기도 하였다. 이렇게 양주 조씨는 우리 전통 미덕이라 할 수 있는 나눔의 정신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문이 온전하게 이어질 수 있는 근원이 되었다.
사운고택 설명안내판을 살피고 사운고택 대문채와 솟을대문을 다시 돌아보았다.
사운고택 안사랑채 '얼방원(乻方垣)'으로 들어가는 협문에 얼방문(乻方門) 현판이 붙어 있다.
사운고택 입구에서 홍성군 장곡면 산성리 원골(원문동)마을과 들녘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고미당마을로 불린다.
사운고택으로 들어오는 홍남동로 길가에 시비들이 세워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