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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줄요약
보살은 바깥 경계를 탓하기 전에 보는 마음과 보이는 대상이 모두 자기 마음의 분별에서 나타난 것임을 통달해야 합니다.
2. 머릿말
지난 회차에서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여러 가르침을 설하시지만, 그 궁극적인 뜻은 분별로 헤아릴 수 있는 경계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자각의 경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妄想非境界,聲聞亦非分。
망상비경계, 성문역비분.
哀愍者所說,自覺之境界。
애민자소설, 자각지경계.
망상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경계도 아니고 성문이 분별하여 알 수 있는 영역도 아니며,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은 스스로 깨달아 증득해야 하는 경계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수행자는 어떻게 해야 이 자각의 경계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번 회차에서 부처님께서는 보살이 자기 마음에 나타나는 경계와, 대상을 붙잡는 마음의 분별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무엇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세속의 소란과 익숙한 습관과 무명의 잠에 휩쓸려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입니다.
수행자는 초저녁과 한밤중과 새벽에도 스스로 깨어 정진하며, 그릇된 견해와 언설에 끌리지 않고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별의 모습을 직접 관찰해야 합니다.
3. 한문원문
復次,大慧!若菩薩摩訶薩欲知自心現量、攝受及攝受者妄想境界,當離群聚、習俗、睡眠。
부차, 대혜! 약보살마하살욕지자심현량、섭수급섭수자망상경계, 당리군취、습속、수면.
初、中、後夜,常自覺悟,修行方便。
초、중、후야, 상자각오, 수행방편.
當離惡見經論言說,及諸聲聞、緣覺乘相。
당리악견경론언설, 급제성문、연각승상.
當通達自心現妄想之相。
당통달자심현망상지상.
4. 한글번역
다시 대혜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자기 마음에 나타난 경계와, 붙잡히는 대상과 그것을 붙잡는 자의 분별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무리 지어 모이는 일과 세속의 습관과 잠을 멀리해야 합니다.
초저녁과 한밤중과 새벽에도 항상 스스로 깨어 수행의 방편을 닦아야 합니다.
그릇된 견해를 담은 경론의 언설과 성문승과 연각승의 모습에 대한 집착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에 나타나는 분별의 모습을 통달해야 합니다.
5. 경전의 종지
1)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자기 마음에 나타납니다
이번 원문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자심현량(自心現量)’입니다.
자심현량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경계가 자기 마음과 무관하게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 축적된 업습과 분별을 통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바깥에 완성된 세계가 있고, 자신은 그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에는 각자의 기억과 욕망과 두려움과 판단이 깊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똑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비난으로 받아들입니다.
같은 비가 내려도 농부는 기뻐할 수 있고, 여행을 떠난 사람은 불편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이 사람마다 서로 다른 세계로 나타나는 까닭은 바깥의 경계만으로 경험이 결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마음이 경계를 받아들이고 해석하여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능가경》은 바로 그 마음의 작용을 알아차리라고 가르칩니다.
2) 붙잡히는 대상과 붙잡는 자
원문에는 ‘섭수(攝受)’와 ‘섭수자(攝受者)’가 함께 나옵니다.
섭수는 마음이 받아들이고 붙잡는 대상이며, 섭수자는 그 대상을 붙잡는 주체입니다.
쉽게 말하면 보이는 것과 보는 나, 미워하는 대상과 미워하는 나, 욕망하는 대상과 욕망하는 나입니다.
우리는 대상이 바깥에 먼저 존재하고, 독립된 내가 그것을 바라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능가경》은 대상과 주체가 분별 속에서 함께 성립한다고 말합니다.
좋아하는 대상이 생겨날 때 그것을 좋아하는 나도 함께 생겨납니다.
미워하는 대상이 생겨날 때 그것을 미워하는 나도 함께 세워집니다.
대상을 붙잡는 순간 그것을 붙잡는 ‘나’가 만들어지고, ‘나’라는 생각이 강해질수록 바깥의 대상도 더욱 단단한 실체처럼 보입니다.
능가경의 수행은 이 능취와 소취, 곧 붙잡는 마음과 붙잡히는 대상이 모두 분별에서 함께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3) 분별을 없애기보다 분별의 모습을 통달해야 합니다
當通達自心現妄想之相。
당통달자심현망상지상.
자기 마음에 나타나는 분별의 모습을 통달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망상을 무조건 억누르거나 생각을 없애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분별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통달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화가 났다면, 우리는 보통 그 사람이 나를 화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깊이 살펴보면 상대방의 말과 함께 내 안의 기억, 기대, 자존심과 두려움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여러 조건이 결합되어 하나의 해석을 만들고, 그 해석을 실제 사실로 믿으면서 화가 일어납니다.
이 과정을 직접 관찰하면 화와 분별이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여러 조건에 따라 잠시 생겨난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분별이 생겨나는 모습을 분명하게 볼 때, 분별에 끌려다니던 힘도 함께 약해집니다.
6. 심층 분석
1) 왜 군취를 떠나라고 하셨을까요
부처님께서는 보살이 자기 마음에 나타나는 분별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군취(群聚)’를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군취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모이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고 산속에 혼자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말과 평가와 감정에 끊임없이 휩쓸리면서 자기 마음을 돌아볼 틈을 잃는 데 있습니다.
누가 나를 칭찬했는지, 누가 나를 무시했는지, 누가 내 편인지, 누가 나를 싫어하는지를 따지다 보면 마음은 계속 바깥만 향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기 안에서 분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지 못합니다.
잠시 군중에서 물러나는 것은 세상을 버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깥의 소음을 줄이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자기 마음을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세상을 피하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의 움직임을 비추어 보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2) 습속을 떠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습속(習俗)은 오랫동안 반복되어 익숙해진 세속의 습관과 사고방식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롭게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익숙한 방식대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칭찬을 받으면 기뻐하고 비난을 받으면 화를 냅니다.
남보다 앞서면 성공했다고 여기고 뒤처지면 실패했다고 여깁니다.
자신의 기대대로 일이 이루어지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기대에서 벗어나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판단은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분별이라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습속을 떠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관습을 거부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믿었던 생각을 잠시 멈추고 그것이 정말 진실인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왜 나는 반드시 인정받아야 합니까?
왜 저 사람은 반드시 내 기대대로 행동해야 합니까?
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실패라고 생각합니까?
이러한 물음을 통해 익숙한 판단을 되돌아보면, 내 마음을 움직이던 습관의 힘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3) 수면을 멀리하라는 것은 잠을 자지 말라는 뜻일까요
부처님께서는 군취와 습속에 이어 수면(睡眠)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단순히 잠을 줄이고 밤새 수행하라는 뜻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몸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잠을 줄이는 것은 바른 수행이 아닙니다.
불교에서 수면은 육체적인 잠뿐 아니라 마음이 무명 속에 잠들어 있는 상태까지 가리킵니다.
몸은 깨어 있어도 욕망과 분노와 두려움에 끌려다니면서 자기 마음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마음은 잠들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화를 내고 난 뒤에야 화가 났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상처 주는 말을 내뱉은 뒤에야 후회합니다.
오랫동안 집착한 뒤에야 자신이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마음이 깨어 있다는 것은 화와 욕망과 집착이 이미 커진 뒤에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분명히 보는 것입니다.
4) 초야·중야·후야에 깨어 있으라는 뜻
初、中、後夜,常自覺悟,修行方便。
초、중、후야, 상자각오, 수행방편.
초야는 초저녁, 중야는 한밤중, 후야는 새벽을 뜻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밤을 세 시기로 나누어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밤의 여러 시간에도 게으르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특정 시간에만 수행하라는 뜻에 머물지 않습니다.
초저녁과 한밤중과 새벽에 이르기까지 계속 깨어 있으라는 말은 일상의 모든 순간에 자기 마음을 놓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법당에서 좌선할 때만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할 때, 사람을 만날 때, 말을 할 때, 혼자 생각할 때도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특히 밤과 새벽은 바깥의 움직임이 줄어들어 마음의 미세한 작용을 관찰하기 좋은 시간입니다. 그래서 옛 수행자들은 이 시간을 중요한 정진의 시간으로 삼았습니다.
5) 그릇된 경론과 언설을 떠나라는 의미
부처님께서는 그릇된 견해를 담은 경론과 언설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경론이나 말 자체가 잘못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말과 개념을 절대적인 진실로 붙잡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교리를 알고 있어도, 그 지식으로 다른 사람과 논쟁하고 자신을 높인다면 그 지식은 지혜가 되지 못합니다.
경전의 문장은 수행의 길을 가리키지만, 수행자가 자기 마음을 직접 보지 않는다면 경전의 뜻은 관념으로만 남습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보고 달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자각의 경계로 향하는 길을 알려 주는 방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따라 자기 마음을 직접 관찰하는 일은 수행자 자신이 해야 합니다.
6) 성문과 연각의 승상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원문에서는 성문승과 연각승의 모습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성문과 연각의 수행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능가경》은 대승 보살의 입장에서 자기 한 사람의 번뇌를 끊고 해탈하는 데 머물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보살은 자신의 해탈뿐 아니라 모든 중생이 마음의 본성을 깨닫도록 돕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수행의 단계와 깨달음의 모습도 고정된 실체로 붙잡아서는 안 됩니다.
나는 이만큼 수행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높은 경지에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이 상태가 바로 깨달음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수행의 성취마저 새로운 아상을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성문과 연각의 상에 머물지 않고, 수행한다는 생각과 깨달았다는 생각까지 자기 마음에 나타난 분별로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7. 선종으로 보는 마음공부
1) 홀로 있음은 사람을 피하는 일이 아닙니다
선종에서 말하는 고요와 홀로 있음은 외형적으로 혼자 사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 속에 있어도 경계에 끌려가지 않으면 마음은 고요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깊은 산속에 혼자 있어도 과거에 대한 생각과 미래에 대한 걱정에 휩싸여 있다면 마음은 여전히 군중 속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참된 고요는 장소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이 경계를 붙잡지 않고 자기 생각에 끌려가지 않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군취를 떠나는 수행은 사람을 미워하거나 세상을 거부하는 수행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도 자신의 분별을 잃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입니다.
2) 생각을 억지로 없애지 마십시오
자기 마음에 나타나는 망상을 관찰한다고 해서 생각을 억지로 없애려 해서는 안 됩니다.
생각하면 안 됩니다.
화가 나면 안 됩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수행에 실패한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도 또 하나의 분별입니다.
선 수행에서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 자체보다 일어난 생각을 붙잡고 따라가는 것을 경계합니다.
생각은 조건에 따라 일어났다가 조건이 다하면 사라집니다.
일어나는 생각을 붙잡지도 않고 밀어내지도 않으며, 그저 분명하게 알아차리면 생각은 스스로 머물 자리를 잃습니다.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수행의 출발이 아니라, 망상이 일어났음을 아는 것이 수행의 출발입니다.
3) 상대방보다 먼저 자기 마음을 보십시오
누군가의 말에 마음이 불편해졌다면 곧바로 상대방을 판단하기 전에 자기 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 마음은 무엇을 지키려 하고 있습니까?
나는 상대방에게 무엇을 기대했습니까?
상대방이 실제로 한 말과 내가 해석한 내용은 같습니까?
왜 이 말이 나에게 상처가 되었습니까?
이렇게 살펴보면 상대방의 말 자체보다 내 안의 기억과 기대와 자존심이 더 큰 반응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일상에서 자심현량을 관찰하는 수행입니다.
경계를 바꾸기 전에 그 경계를 받아들이는 자기 마음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4)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불편한 대상만 없애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대상이 사라지면 마음은 곧 다른 대상을 붙잡습니다.
미운 사람이 사라지면 또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원하는 물건을 얻으면 다시 다른 물건을 원합니다.
문제는 특정한 대상 하나에만 있지 않습니다.
대상을 붙잡으며 계속 ‘나’를 만들어 내는 마음의 습관에 있습니다.
선 수행은 보이는 대상만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 대상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판단하는 ‘나’도 함께 살펴봅니다.
보이는 것과 보는 자가 서로를 의지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대상도 고정된 실체가 아니고 그것을 붙잡는 나도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5) 깨어 있음은 특별한 체험이 아닙니다
자각오(自覺悟)는 신비한 황홀경이나 특별한 능력을 뜻하지 않습니다.
지금 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지금 마음에 어떤 생각이 일어나는지 알고, 그 생각을 붙잡으려는 움직임까지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걸을 때 걷고 있음을 알고, 밥을 먹을 때 먹고 있음을 알며, 화가 날 때 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아는 것이 깨어 있음의 시작입니다.
이 단순한 알아차림이 깊어지면 경계와 분별과 자아가 함께 일어났다가 함께 사라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때 수행자는 바깥 경계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기 마음을 스스로 밝힐 수 있게 됩니다.
8. 용어
1) 자심현량(自心現量)
자기 마음에 직접 나타난 경계를 뜻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가 자기 마음과 분리되어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축적된 업습과 분별을 통해 나타난다는 《능가경》의 핵심 개념입니다.
2) 섭수(攝受)
마음이 받아들이고 붙잡는 대상을 뜻합니다. 인식되는 사람과 사물, 감정과 생각 등을 가리킵니다. 문맥에 따라 소취, 곧 붙잡히는 대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섭수자(攝受者)
대상을 받아들이고 붙잡는 주체를 뜻합니다. ‘보는 나’, ‘생각하는 나’, ‘느끼는 나’라고 여기는 자아의식이며, 문맥상 능취에 해당합니다.
4) 망상경계(妄想境界)
분별과 집착을 통해 만들어진 인식의 세계를 뜻합니다. 바깥 경계 자체라기보다 마음이 해석하고 이름 붙여 실체라고 믿는 경계입니다.
5) 군취(群聚)
여러 사람이 무리 지어 모이는 것을 말합니다. 수행의 관점에서는 타인의 말과 평가와 분위기에 휩쓸려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는 상태까지 포함합니다.
6) 습속(習俗)
오랜 시간 반복되어 당연한 것으로 굳어진 세속의 습관과 사고방식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되풀이하는 판단과 반응의 습관을 포함합니다.
7) 초·중·후야(初中後夜)
초야는 초저녁, 중야는 한밤중, 후야는 새벽을 뜻합니다. 밤을 세 시기로 구분한 표현으로, 수행자가 게으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진해야 함을 나타냅니다.
8) 자각오(自覺悟)
스스로 깨어 알아차리는 것을 뜻합니다. 남의 설명이나 이론에만 의지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직접 관찰하는 수행입니다.
9) 승상(乘相)
특정한 수행의 길이나 깨달음의 모습을 고정된 실체로 붙잡는 것을 뜻합니다. 이번 원문에서는 성문승과 연각승의 경계에 머무르는 집착을 가리킵니다.
9. 결론
이번 회차에서 부처님께서는 자각의 경계로 들어가기 위해 보살이 갖추어야 할 실제적인 수행 태도를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마음에 나타나는 경계와 붙잡히는 대상과 그것을 붙잡는 자의 분별을 알고자 한다면, 군중의 소란과 세속의 습관과 무명의 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초저녁과 한밤중과 새벽에도 스스로 깨어 수행하며, 그릇된 견해와 말에 끌리지 않고 자기 마음에 나타나는 분별의 모습을 통달해야 합니다.
수행은 세상 밖에 있는 특별한 진리를 찾아가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보고 있는 세계가 자기 마음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그 경계를 붙잡는 ‘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밝히는 일입니다.
우리는 바깥의 대상 때문에 괴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상을 붙잡고 실체로 만드는 마음을 보지 못한다면, 하나의 대상이 사라져도 마음은 다시 다른 대상을 붙잡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수행자는 바깥의 소란을 탓하기 전에 자기 마음을 살핍니다.
생각을 억누르기 전에 생각이 생겨나는 자리를 봅니다.
상대방을 바꾸려 하기 전에 상대방을 바라보는 자기 분별을 비추어 봅니다.
붙잡히는 대상과 붙잡는 자가 모두 자기 마음의 분별에서 함께 일어난 것임을 통달할 때, 마음은 비로소 경계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자기 마음에 나타난 망상의 모습을 통달하고, 자각성지의 경계로 나아가는 보살의 수행입니다.
願共法界 諸衆生
自他一時 成佛道
10. 참고문헌
《대정신수대장경》 제16책 No. 670 《능가아발다라보경》 권1
구나발타라 한역, 《능가아발다라보경》
보리류지 한역, 《입능가경》
실차난타 한역, 《대승입능가경》
CBETA 전자불전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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