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1차 (화령재-갈령)
일 시 : 2002. 8. 16(금)
날 씨 : 안개와 구름 그리고 비
일 행 : 역시 혼자
산행시간 : 08:10-13:50 (5시간40분)
도상거리 : 12km (실제거리:약17km)
화령재(08:10)-산불감시초소(09:05)-봉황산(09:50)-비재(11:05)-못재(12:45)-갈령삼거리(13:25)-갈령(13:50)
2개 구간을 3구간으로 나누어서 산행하자니 어중간하다.
8/15일부터 19일까지 하계휴가 기간중 15일은 일기예보에 속아(?) 집에서 머무르고 '출발 순간에 비가오지 않으면 떠난다'는 원칙을 어기고 16일 04:00 비가 오는데도 집을 나선다.
이제는 눈에 익은 길을 달려 익숙하게 원주-충주-수안보(조식)-가은-농암-상주 화북에 도착하고 갈령을 넘어 화령재에 이르는 삼거리에 이른다. 화령재에 주차하여 두고 대간에 들어 산행후 갈령으로 내려와 히치하여 차를 회수할 계산이다. 화령재 오름길에서 우중에 한 노인을 태웠는데 화서면 장(場)에가는 길이라는데 몹시도 불편한 몸을 빗속에 이끌고 장에 가야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화령재 정상에 그를 내려주고 나는 화령각이 있는 곳으로 가서 주차를 하고 우의 입고 채비를 한다. 거금 주고 마련한 우의 성능실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작년 백두대간 준비기간 중에 대관령에서 진고개 까지 우중 산행시 한번 사용했으나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했던 터이다.
화령재-봉황산 (08:10-09:50)
화령재는 대간이 도로공사로 인하여 약 300M 정도가 끊겨버린 곳이다. 날머리에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한 동안 화서면 쪽으로 내려와 고개 삼거리에 있는 농가 뒤로 올라야 한다.
담배 건조장을 살피는 주인과 눈이 마주치자 먼저 인사를 건넨다. 우중이지만 기분 좋은 출발이다. 08:10이다.
오늘은 구간 거리도 짧고 일기도 불순하니 서두르지 않기로 하고 천천히 숲으로 들어서는데 내리는 비에 더해 젖은 잎새가 온 몸을 휘감0는다.
계속 내리는 빗속을 어슬렁거리며 산불감시초소에 닿는다. (09:05)
무지하게 덥다. 고가의 고어텍스 우의가 비를 막는데는 탁월한데 땀의 배출에는 별로인 것 같다. 비를 맞을 각오를 하고 벗어서 배낭에 챙겨 넣고 누각 같은 초소 밑에서 잠시 쉬는데 구름에 가린 산아랫마을(외서면쪽)에서 이장님 목소리와 함께 '꽃을 든 남자' 유행가가 비에 젖은 공기를 타고 이곳까지 선명하게 들린다.
이제 봉황산을 향하여 출발이다. 무성하게 우거진 잡목 숲에 맺힌 물방울이 모두 내게로 쏟아진다. 이제는 춥다. 변덕도 심하지.
몸은 퉁퉁불고(거시기 까지) 고어텍스 등산화에서는 개구리 울음소리와 하얀 거품이 신발 밖으로 스며 나오고 안경에는 물방울이 맺혀 불편하기 그지없다. 와이퍼 달린 안경이 있었으면 하는 어린 마음까지 든다. 그러나 몸은 고도를 450m 올려 봉황산(740.8m)에 이르고 하얀 구름 속에 나 혼자 봉황산 정상에 서서 하염없는 비를 맞고있다. 아무도 없다. 세상이 조용하다. 꿈결같다. 내가 왜 이곳에 이렇게 혼자 있는지.....
봉황산-비재(10:00-11:05)
봉황산에서 비재(310m) 까지는 계속 내리막이다. 비오는 날 내리막길은 무릎에는 쥐약이다. 기온도 낮을 뿐만 아니라 미끄러운 등로로 인해 온몸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비재에 가까워지면서 시야는 조금씩 좋아지는 것이 구름 속에서 내려서는 것 같다. 비재에 이를 즈음 버섯을 따는 심마니와 마주치는데 그는 비밀을 들킨 사람 마냥 멋적어 하면서, 비에 젖고 바지가랑이 흙 범벅인 내가 측은한 듯이 바라본다. 나는 반가운 인사를 전한다.
얼마전 까지 비포장 도로였던 비재는 대간을 끊어 아스팔트로 깔끔하게 포장을 해 놓았고 절개지에는 친절하게 철계단 까지 설치해 놓았다.
비재(11:05)-못제(12:45)-갈령삼거리(13:25)-갈령(13:50)
비재에서 부터는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꾸준히 고도를 높혀 갈령과 형제봉을 지나 1057.7m의 천황봉에 이르게 된다. 오늘의 목적지는 갈령 삼거리까지이며 화북면 상오리와 동관리를 잇는 49번 국도 갈령으로 내려서게 된다.
비재를 출발하면 고도 200여m를 급격히 올려치는데 이마에 동여맨 수건이 땀과 비로 범벅이되어 두 번을 짜서 다시 매고서는 오름을 마치고(510봉) 다시 급경사로 내리 꽂고 다시 솟구쳐 지도상에 전망바위로 짐작되는 널다란 바위에 도착하지만 비는 그쳤으되 또다시 구름 속이다.(11:50) 시장기를 느껴 24시간 마트에서 준비한 김밥을 게눈 감추듯 해치운다. 누가 보면 걸신들린 사람처럼 보일게다.
산행 중 가장 생각나는 메뉴는 자장면과 삼겹살이다. 그래서 대개 산행 후 첫 번째 만나는 중국집은 지나치기 쉽지 않고 집에서 삼겹살과 소주로 마감을 하게된다.
이제 백두대간중에 유일한 연못이 있는 못제를 향한다.
시간상으로 못제에 도착할 즈음 주위를 살피니 오목한 지형에 습지식물이 무성하고 갈대가 수북한 못제가 모습을 나타내는데 연못이라기 보다는 주변 능선에 쌓인 약 500평 정도의 골짜기 형상이다. 구름 속에서 보는 그 모습은 신비스럽기도 하고 왠지 으스스 하기도 하다. (12:45)
[인용]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대궐터산에 성을 쌓고,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황충과 싸울 때마다 연전연승하자 황충이 견훤을 이기는 비법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위하여 부하를 염탐시켰는데, 견훤이 이곳 못제에서 목욕만 하면 없던 힘도 저절로 생겨 승승장구한다는 사실과 견훤이 지렁이 자손으로 지렁이는 소금물에 약하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어 황충이 부하를 시켜 못제에 소금 300석을 몰래 풀었는데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견훤이 못제에서 목욕을 하고 난 뒤 힘을 잃고 말았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황충이 견훤을 공격하여 승리를 얻어냈다는 전설의 못제이다
물을 존재를 확인해 보려고 슬그머니 내려가 본다. 뱀이라도 밟히는 느낌이라 발끝이 오그라들지만 20여m를 키보다 큰 갈대를 헤치고 들어가도 물이 없음을 확인하고 되돌아서 올라오는데 뒤에서 뭔가 당기는 느낌이다. 담력훈련 한번 잘 했다.
못제 바로 위는 헬기장이고 이 곳의 전망이 좋다는데 오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속속 나타나는 암릉들이 이제 본격적인 속리산 권으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계속 이어가면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좌측에는 많은 리본이 있고 직진하면 낡은 리본 1개가 길을 안내하는 큰 암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좌로 우회할 것이냐. 정면돌파냐. 망설이는데 한번 지나는 길 정면 돌파로 결정한다.
30여m의 암벽 날등을 보조자일 없이 비오는 날 기어오르는 모험을 하는데 중간 부분에서 후회를 한다. 뒤를 돌아본 것이 잘못이다. 밑이 아득한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여기서 잘못되면 백두대간 완주는 고사하고 도움을 줄 아무도 없기 때문에 우회할걸 하는 후회가 든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곳이다. 그렇게 그곳도 지났다.
본격적으로 장대비 비가 내린다. 갈령 삼거리를 지나(13:25) 도착했을 때는(13:50) 처량하기 짝이 없다.
이재는 화령재에 있는 차를 회수해서 집에까지 돌아가기 위해 차를 히치해야 하므로 젖은 수건으로 머리도 닦고 넣어두었던 우의를 다시 꺼내 입고 치장하고 지나가는 차에 힘차게 손을 흔들어 보지만 그냥 씽씽 지나칠 뿐이다.
한참만에 상주행 1톤 트럭을 얻어 타게 되는데 감사할 뿐이다. 물에 빠진 새앙쥐꼴로 시트를 다 젖게 할 것 같아 미안해 하니 수건을 받쳐준다. 화령재 입구에서 하차해서 고개위로 빗속을 다시 걸어 올라가는데 아침에 노인을 태운 그 지점에서 나도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화령재에 도착하여 속리산권 첫 산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