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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사슴 주보에 첨부된 복음송가를 함께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 “ 목마른 사슴 시냇가를 찾아 헤매이듯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금보다 귀한 나의 주님 내게 만족하신 주 당신만이 나의 기쁨 또한 나의 참 보배~~~~ 후렴!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참소망 나의 몸 정성 다 바쳐서 주님 경배합니다!! ♬♬♩♩
목이 타는 여름 갈증을 느끼는 여름 유독 여름 되면 냉장고 문을 더 많이 여는 김승권 목사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나를 향하여 김 목사야! 목이 타 물을 마시는 것 만큼 내 영혼이 주를 향한 갈급함이 있느냐 물으십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묵상하려면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고라 자손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는 제목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누구일까?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심령상태가 어떠한가를 알수 있습니다. 주님을 찾기에 갈급한 예배를 갈급한 영혼들이 하나님을 갈망하는 시입니다.
시인은 영혼의 목마름을 사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1절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라고 했습니다. 원래 지형적으로 이스라엘은 뜨거움 나라입니다. 가뭄의 때인 4∼10월이 오면 보통 시냇물은 말라 버립니다. 그래서 시내는 마른천이 되어 물이 흐른 흔적만 남습니다. 이처럼 중동지역은 참 물이 귀합니다. 특히 동물 중에 사슴은 열이 많은 동물로 활동을 하거나 뛰게 되면 다른 동물보다 열이 많아 갈증을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슴은 열이 오를 때마다
시냇가로 달려가 갈급함으로 목마름을 채우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사슴의 목마름처럼 시인도 지금 영혼의 목마름으로 갈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시작도 하나님이여!......... 라고 시작되고 있지않습니까? 또한 2절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시인은 영혼의 목마름으로 갈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의 목마름을 통하여 시들어 있는 내 영혼의 갈급함을 어떻게 회복 할 수 있을까요?
1. 눈물로 나아가야합니다.
시42:3 "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만인들이 지금 하나님이 없다며 손가락 질을 하며 비웃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왜 저모양이냐? 하나님이 있으면 어떻게 저 사람을 저렇게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소리를 듣다 보면 점점 낙심이 됩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이 모양 이대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시인은 불쌍한 영혼들을 향해 흐르는 눈물이 주야에 음식이 되는 것처럼 계속되었습니다. 영혼을 위한 눈물이 있어야합니다.
한 천사가 천국 문을 열기 위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의 피 한 방울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굳게 닫힌 천국 문은 꼼짝도 안 했습니다. 그는 급히 다시 세상으로 와서 슬픔 가운데 죽어간 한 여인의 한숨을 거두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흘린 노인의 눈물 한 방울을 담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자 천국 문이 열렸습니다.
눈물은 화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약한 소금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실이 담긴 눈물은 굳게 닫힌 천국 문도, 돌같이 굳어진 사람의 마음도 녹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슬픔보다는 기쁨을, 울음보다는 웃음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때론 신앙생활 가운데 눈물을 흘려야 할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특히 믿음 없는 자들의 몰지각한 비난과 비판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민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면서 맡기고 어린아이처럼 울 수 있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위로의 손수건을 드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고 평강의 품에 안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탄식의 눈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처럼 “ 내 눈물이 주야로 눈물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이 어디있으냐 조롱하는 불신자를 향하여 매일 음식을 먹듯 눈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영혼의 목마름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합니다.
4절...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시편 기자의 과거는 하나님의 집으로 예배하러 올라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하나님의 집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거룩한 안식일을 지키며 지냈는데 지금은 그 신앙생활의 걸음들이 추억으로 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여 지금 마음이 상해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음껏 예배할 수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마음껏 성일을 지킬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먼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자도 아니고 나라의 주권을 다 빼앗긴 식민지 시대도 아닙니다. 교회의 문을 닫게 하는 폐쇄사회도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있습니다.
어떤 문제일까요? 우리 영혼이 메말라 영양가 없이 쓰러져 가고 있는데 생존하시는 하나님의 전을 갈망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마디로 주님을 찾기에 목마름이 없습니다.
교회론의 권위자인 한스 큉 박사가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나라 일간신문 기자가 찾아가서 면담한 적이 있었답니다. 이때 한스 큉 박사는 참으로 소름끼치는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21세기에는 기성 교회가 쇠퇴해집니다. 21세기가 되면 일반 사람들의 종교적 관심도는 점점 더 커져서 불건전한 영성운동이 활발해질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뉴에이즈... 점성술..사탄위장전술 락음악...) 그런데 이러한 예언이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계속 합니다. "앞으로 산업화가 계속되어 민주주의 발전되면 사람들이 오랫동안 당연한 존재로 여겼던 하나님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느날 내 마음에 있는 하나님이 증발해버린다는 것입니다. 끔찍하지 않습니까?
6.25일자 미국시장조사 스트래치지 애널리틱스(SA) 최근보고서에 의하면 대한민국이 스마트폰 보급률1위 67.6% 2위 노르웨이보다 10%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급률이 3000만명인데 놀라워요 이젠 필수품으로 없으면 안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폰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금융 쇼핑 영화 행정 심지어는 퇴근 후 자동으로 밥하는 취사까지도 책임을 집니다. 모든 것이 편리해졌습니다.
심지어는 예배까지도 내 손 안에서 움직입니다. 우리교회는 아직 어제 TV로 영상예배를 드리지 않지만 이런 예배도 괜찮아 라고 하면서 폰으로 예배드렸다며 주일을 건너 뛰고 세상으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예배의 목마름이 점점 사라질 수 있는 오늘의 현실을 생각해 셨습니까? 상상만해도 끔찍합니다. 거룩한 교회에서 하나님께 드린 예배 함께 하심을 믿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TV에서 영화를 다이나믹하게 보아도 영화는 영화 간에서 보아야 합니다. 예배가 그렇습니다. 주님 전에 나와 현장감 있는 예배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주향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의 목마름을 사모함으로 채워 매일 매일 행복한 예배자로 넉넉함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3.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어야합니다.
5절....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인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지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낙망과 불안입니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 좌우에 있는 낙망의 덫 불안의 덫에 걸리면 반드시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이제는 자유다 해방됐다 하며 마음을 놓는 순간 그들에게는 홍해바다라는 문제가 놓여있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백성은 우왕 좌왕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가자니 홍해바다요 뒤로 후퇴하자니 애굽군대가 쳐들어오지요 마치 오늘 우리 앞에 이런 영적문제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홍해 앞에서 후퇴하거나 좌우로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지 않고 오직 홍해 앞으로 전진하게 하셨습니다.........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어디를 보았나요? 살길을 향하여 우왕좌왕 날리 법석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 이놈들 가만히 서 있으라 하나님이 오늘 하시는 일을 바라보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즉 앞에 있는 홍해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홍해를 바라보라는 것은 곧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청년들과 함께 애양원교회 손양원목사님 순교기념관을 찾았을 때 놀란 것은 새롭게 단장해 놓았습니다. 8.15 광복절이기도하지만 오늘따라 많은 성도 외국에서까지 기념관을 탐방하려 왔습니다. 체계적으로 갖추어져 있어서 가이드까지 대기시켜 손목사님 감동된 글을 소개하는데 얼마나 은혜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별명이 삼경목사라고 합니다. 목사님을 만나면 세 번 놀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목사님의 외모가 초라하고 볼품이 없어서 첫 번째로 놀라고, 두 번째, 조그마한 체구에 품어져 나오는 소리에 놀라고, 세 번째는 설교말씀에 놀란다고 합니다. 그래서 별명이 삼경목사라고 합니다.
손양원목사님을 현장에서 역사로 만났을 때 감동은 손양원목사님께서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음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느냐?’....... ‘예수님을 믿으니 순교도 할 수 있느냐?’ 다들 자신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님은 우리는 할 수 없으나 주님은 할 수 있게 해 주심을 삶으로 증명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1949. 6.26일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기 몇 달 전 손양원 목사님을 오산학교 교장으로 청빙하고자 애양원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은 환우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고 김구선생님의 부탁을 거부하셨습니다. 그때 김구선생님이 손양원 목사님께 써 주신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이양연의 시인데 이렇습니다.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발걸음을 어지러이 말 것은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이 遂作後人廷(수작후인정)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에)”이런 내용입니다.
눈 내린 들판은 길을 잘 알아볼 수 없는 상태라, 사람들은 먼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발자국을 보게 되면 그 발자국을 신뢰하고 그것이 길이겠거니 하고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니 먼저 걸어가는 사람은 그 걸음을 신중히 해야 합니다?
“내가 디딘 발자국은 뒷 사람의 길이 된다”? 이글을 백범선생이 손양원목사님께 남겼다고 합니다. 이런 글이 쓰여진 배경을 설명하는데 제 가슴에 오늘 더 박혀졌습니다........ 손양원목사님이 가신 길은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 오직 그 한 길이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더 좋은 길, 출세 길이 보여도 마다하셨습니다.
오직 애양원 교회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하는 길이 였기에 교회를 지키셨습니다. 손 목사님의 굳은 결심은 오직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마음 뿐이셨습니다.
주향성도여러분!!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망하며 살아가십니까? 이 세상에서 조금 어려움을 겪었다고 불안해할 것도 없습니다.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불안할 때 낙심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소망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의 소망이신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4.자신을 끊임없이 격려해야 합니다.
원래 시편 42편과 43편은 한편인데 나누워졌습니다. 내용이 비슷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1인칭으로 51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라는 주격으로 14번 사용하고 있고 “나를” 목적격으로.... 16번...... “나의”라는 소유격으로 21번 사용하고 있는데 합하여 “나”라는 말을 51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하나님이라는 말은 20번, 그리고 여호와라는 말은 1번 사용되고 있습니다. “나”라는 말을 드러내면서 자신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를 강조하다 보면 자기에게 매여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대한 심정을 간증하면서 자기를 바라볼 때 절망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예요 2절에..... 내 영혼이 5절에도..... 내 영혼아! 이런 자신을 향한 부름은 끊임없이 자신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격려가 있었기에 5절 하반절에....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습니까?
성도여러분!! 우리 앞에 있는 낙심 불안 영적인 침체가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격려하시기를 바랍니다. 승권아!! 너를 지명하여 불렀는데 “내가 침체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을 바라며 일어나자!” 이런 당당한 고백이 있어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건강한 영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와의 대화(Self Talk)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기와의 대화를 부정적으로 하면 부정적이고 불행한 인생이 되고, 자기와의 대화를 긍정적으로 하면 긍정적인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
자기와의 대화에서 성공하면 인생도 성공하게 되고, 자기와의 대화에서 실패하면 인생도 실패하게 됩니다. ........ 지금도 사단은 끊임없이 기회만 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나쁜 말을 퍼뜨려 우리의 영혼을 침체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끊임없이 자신을 격려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자신이 경험한 영적갈등을 있는 그대로 로마교회성도들에게 고백한 말씀이 있습니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자신을 향한 책망을 하지 않습니까?
사실 하나님께서 머리털하나까지 나를 다 아시지만 하나님다음으로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내도 아니고 내가 잘 앎니다. ......... 그러므로 끝임 없이 자신을 격려해야 합니다.
올 여름 유난히 더운 날씨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갔던 광야 생활 처럼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이렇 때 다가오는 것은 영적목마름이요 한편으로는 영적 침체입니다.
그러나 고라자손들이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열정처럼 내 영혼이 목마르지 않기 위해 눈물로 나아가십시다....... 예배를 더욱더 소중히 여기십시다........하나님을 소망을 두고 살아가십시다.......자신을 끊임없이 격려합시다.
다시 한번 찬양할까요?....... ♭♩♪ “ 목마른 사슴 시냇가를 찾아 헤매이듯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금보다 귀한 나의 주님 내게 만족하신 주 당신만이 나의 기쁨 또한 나의 참 보배~~~~ 후렴! 주님만이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참소망 나의 몸 정성 다 바쳐서 주님 경배합니다!! ♭♬♬
내 중심에 계신 성령님을 사모하며 내 영혼이 날마다 갈하지 않도록 성령님 기름 부어주시옵소서!! 성령님께 의지할 때 목마름이 채워지는 역사가 이루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