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름에서 짐작하셨다시피 유리 슐레비츠는 미국인, 영국인, 혹은 영어권 국가의 작가가 아닙니다. 그는 1935년 2월 27일,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살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겨우 4살이었던 1939년,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했고 유태인이었던 그의 가족은 고향을 떠나 피난살이를 하게 됐 습니다. 그 후로 8년간이나 부평초처럼 유럽을 떠돌아다니던 슐레비츠 가족은 마침내 1947년, 파리에 정착하게 됩니다. 어린 유리는 어린 시절에 떠돌아다니며 전쟁을 체험하게 된 거죠. 이 때의 유랑생활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그의 예술적 감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한 부모님의 격려로 어린 유리 슐레비츠는 그림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고, 동시에 엄청나게 많 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책방에서 그림책을 넘겨보기를 아주 좋아했는데, 특히 프랑스 만화책에 푸욱 빠졌 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친구들과 만화책을 낼 정도였답니다. 열 두살 때는 그림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고 하니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게 아니네요. |
|
전쟁이 끝나고 슐레비츠 가족은 1949년 이스라엘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곳이야말로 유리 슐레비츠가 다음 10년 동안 고 향이라고 부를 곳이었지요. 이스라엘 정착이후 그의 불안정했던 시절은 작별하고 마침내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유리 슐레비츠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직업경험도 갖게 되었습니다. 목수 일도 해보고, 페인트도 칠해보고, 고무도 장 만드는 사람 밑에서 조수일도 하고요. 그는 1952년부터 1956년까지 텔아비브에 있는 Teachers Institute and the Art Institute에서 디자인과 회화를 공부했습니다. 1956년에 있었던 시나이 전쟁(제 2차 중동전) 동안에는 이스라엘 군대에서 복무했습니다. 그리고서 사해 근처에 있는 키부츠에서 1년을 보냈죠. 그는 군복무에 종사하는 동시에 프리랜서 화가로 서 일했습니다. 그 후 1959년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
|
군복무를 마치고 뉴욕으로 온 슐레비츠는 브룩클린 박물관 예술학교에서 미술을 계속 공부했습니다. 그는 또한 어린이들을 위한 히브리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에서 삽화가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의 일은 무엇을 그릴지, 어떻게 그릴지 엄격히 통제받는 일이어서 그의 뜻대로 펼쳐나갈 수가 없었죠.
1962년, 슐레비츠는 전화를 받으며 끄적거린 자신의 낙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만의 독특한 그림 스타일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는 편집장으로부터 글과 그림을 출판해보라는 권유를 받은 슐레비츠는 1963년, 자기가 직접 쓰 고 그린 어린이 책 “The Moon in my room(내방의 달님)”을 출판했습니다. 그의 첫 작품은 호평을 받아 더 많은 책에 삽화를 그릴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자신이 쓴 책뿐 아니라 다른 작가의 책에 그림을 그릴 기회도요. 슐레비츠의 재능은 그가 1969년 작가 아서 랜섬(Arthur Ransome)이 러시아의 옛 이야기를 다시 써낸 "The Fool of the World and the Flying Ship"에 그린 삽화로 칼데콧 상을 받았을 때 가장 잘 알려졌습니다. |
|
유리 슐레비츠를 유명하게 만든 그의 특징은 바로 동양적인 그림과 함축적인 글입니다. 스무살이 넘어 미국에 갔던 그가 영어를 마스터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겠죠? 영어가 유창하지 못했던 슐레비츠는 그 의 이야기를 문장이 아니라 훌륭한 그림을 통해 펼쳐나갔습니다. 단어는 꼭 필요한 것들로만 뽑아 썼고요. 그는 영어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던 자신이 책을 쓴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 고 있습니다.
“나는 글쓰기에 생각보다 언어가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먼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 해서 우리 문화는 너무 장황하게 말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동양의 전통처럼 함축적인 표현을 하고자 노력했다.”라고 말이죠. 그에 말에선 왠지 말을 아끼되 정곡을 찌르는 한시나 여백의 미를 살린 동양화가 연상되지 않으세요? 아무튼 말을 아낌으로써 그의 문장은 정적인 동시에 아름다움의 정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다양한 스타일의 아름다운 삽화를 그렸습니다. 작가에 의하면 “삽화기법은 내용들이 유기적으로 확대될 때 최상이다.”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삽화에 펜과 잉크, 수채화, 일본의 갈대 펜, 중국 붓 등 다양한 도구를 동원했고, 이를 이용한 동서양의 다 양한 기법 역시 조화시켜 사용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그의 작품은 동양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 유리 슐레비츠는 태극권과 요가, 서예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이런 관심이 작품 속에 나타나는 조용함과 깊이에 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유리 슐레비츠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화하는 그림책 작가입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책을 보면 일러스트레이션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환타지로 시작한 그의 작품들 은 점차 환타지와 리얼리즘의 결합을 시도하여, 완숙한 리얼리즘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고, 일본의 어느 비평가는 유리 슐레비츠의 “새벽(Dawn)”과 “비오는 날(Rain Rain Rivers)”를 두고 ‘리얼리즘 예술의 극치’라고 극찬했습니다. 그의 그 림을 보면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합니다. 그만큼 긴장감 있는 구성이며 동시에 장면 장면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습 니다. 이것은 영화를 좋아하는 작가의 개인적 취향이 작품에 드러나 작품구성이 영화적 전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죠.
최신작인 “자장자장 잠자는 집” 은 화가인 라이오넬 파이닝거(Lyonel Feininger)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파이닝거는 독일 출신으로, 입체파와 건축의 영향을 받아 비구상미술을 구현한 미국의 대표적인 화가 중의 한 명입니다. 실제 그의 작품을 보면 “자장자장 잠자는 집”의 그림과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두 사람의 그림을 한번 비교해보세요.
라이오넬 파이닝거의 Once in a Blue Moon, 1938년 포스터 |
|
유리 슐레비츠의 "자장자장 잠자는 집(So Sleepy Story)" 표지 | |
|
사람들은 32페이지짜리 그림책을 보면서 그게 뭐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쉽게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유리 슐레비츠는 그런 의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뭔가 무척 간결한 것을 글과 그림으로 나타내기란 대단히 힘듭니다. 오히 려 장황히 설명하는게 더 쉽죠. 우리가 늘 하듯이 말예요. 사실 어른들을 위한 책을 성공적으로 써낸 몇몇 유명한 작가들 이 그림책을 써보려고 시도해보죠. 하지만 시도에 그치고 맙니다. 왜냐면 그림책에는 엄청난 함축이 일어나는 동시에 꼭 필요한 정수만 넣어야 하기 때문에 아주 어렵기 때문이죠. 소설을 쓰는 것이 쉽지 않듯이 그림책을 쓰는 것 역시 그 나름 대로의 고충과, 어려움과, 필요조건이 있는 법입니다. 어떤 종류이든 뭔가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서로 완전히 다 른 필요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리 슐레비츠가 만든 책에는 아름다운 컬러 그림책도 있지만 동시에 흑백그림도 많이 있습니다. 그는 컬러이면서도 흑 백의 느낌을 주는 것이 있고, 흑백이 컬러의 느낌을 주게 쓰는 방법도 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흑백을 보면서 컬러 감각을 개발할 수 있다고 봅니다. 화가가 쓰는 회색의 풍부함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거죠. |
|
1969년,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The Fool of the World and the Flying Ship)”로 칼데콧 상 수상 1974년, “새벽(Dawn)”으로 Christopher Award 수상 1976년, “새벽(Dawn)”으로 International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 Honor List. 1978년, “The Treasure"로 뉴욕타임즈가 뽑은 최고의 어린이책 삽화가상 수상 1980년, “The Treasure"로 칼데콧 아너상 수상 1999년, “Snow"로 칼데콧 아너상 수상 |
|
진정한 그림책에서 그림은 의미를 전달할 뿐 아니라, 글의 의미를 더 명료하게 해 주고 나아가서는 그 자리를 차지하기 도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그림책에서는 글이 점점 더 적게 사용되고 있고 심지어 글 없이 그림으로만 이야기를 전달 하기도 하지요. 유리 슐레비츠는 그림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쾌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림책에서 글은 그림을 반복하지 않으며, 그림도 글을 반복하지 않는다. 글과 그림은 대위적 관계로 서로를 보완하고 완성한다." "진정한 그림책은 전적으로 글미에 의해서 이야기가 전개되며, 글이 사용되더라도 글은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그림책이란 글과 그림의 행복한 결혼(Russell, 1991)" 이라고 단언한 러셀의 정의가 그대로 나타난 것이 유 리 슐레비츠가 이상적으로 보는 그림책이었던 것 같네요.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은 모두 말을 많이 아끼고 있거나, 보 석같은 그림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
SNOW 하늘이 어두컴컴하게 흐려져도 무섭거나 꺼리는 마음이 들지 않는 계절이 바로 겨울입니다. 혹 시나 올지도 모르는 눈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죠. 비록 그 눈도 계속되면 반가운 마음이 사 라질지 모르지만요.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무리 많이 와도 좋기만 한 것이 바로 눈입니다. 달랑 하나 떨어지는 눈 한 송이에 소년의 맘은 들뜨기 시작합니다. “눈이 온다!” 무관심한 어른 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녹아 버릴거라고, 눈은 없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그 어떤 말도 소년의 기대를 꺾지는 못하네요. 티끌모아 태산이라더니 하나씩 내리던 눈송이는 결국 세상을 하얗게 덮기 시작합니다. 1999년에 칼데콧 상을 수상한 이 책은 전반적으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초록색, 파란색, 갈색을 회색과 함께 섞어 썼습니다. 덕분에 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눈이 쌓이면 서 점차 밝아지는 하늘은 소년의 가벼운 마음을 나타내는 것만 같습니다. 유리 슐레비츠는 이 작품으로 "골든 카이트 상(Golden Kite Award)"을 받은 후, 답사에서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밝혔습니다. 두 주정꾼이 가로등을 가리키며 격한 논쟁을 벌였답니다. 한 사람은 해라고 주장했고, 다른 한 사람은 달이라고 우겼죠. 그러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누가 옳 은지 물었습니다. 이 사람 왈 "미안하지만 여러분, 난 이 동네에 안 사는데요." 이 이야기가 나 타내고자하는 것은 바로 local truth(어느 한 곳에서만 통하는 진실)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날씨는 그렇지 않죠. 한 곳의 날씨가 좋다고 다른 모든 곳도 좋은 것은 아니니까요. 어느 해인 가(수상소감을 말하던 때로부터 2년 전이라니까 1996년인 모양입니다.) 그가 사는 마을에 엄청 난 눈이 내렸답니다. 눈이 16번이나 내렸다네요. 그런데 옆 동네는 상대적으로 온화한 겨울 날 씨였다지 뭡니까. 그야말로 날씨는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소재였던 거죠. 그는 불평하 는 대신 그림책을 만들었고 그게 바로 이 "SNOW" 입니다.
|
Rain Rain Rivers 작가가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이 책은 마치 무성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화려한 배경도, 재치 넘치게 떠드는 목소리도 없지만 보고나면 어딘가 뿌듯한 그런 영화 말입니다. 기울어진 다락방에서 한 소녀가 비 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온통 회색으로 흐려진 하늘과 어두운 건물들은 보는 사람을 침울하게 만드네요. 하지만 이 소녀는 오직 밝은 면만이 보이는 모양입니다. 내일이면 보트를 띄울 수 있겠다고 기대하니까요. 한편 다 같은 비지만 들판과 언 덕, 풀밭, 연못에 내리는 비는 그 느낌이 정말 다릅니다. 뭔지 모르게 상쾌한 느낌이 들고, 자연 의 순환을 상기시킵니다. 대지 위에 내린 비는 모여 개울로 가고, 다시 강으로, 바다로 달려갑 니다. 비가 내립니다. 하지만 내일은 새로운 식물이 자랄 터이고, 새들은 목욕을 즐기겠죠. 아 이들은 진흙탕에서 맨발로 놀 것이고, 소녀는 물 위에 비추인 하늘을 뛰어넘을 겁니다. 바다에서 일어난 높은 파도는 왠지 일본 그림에서 본 듯한 냄새를 풍깁니다. 차이라면 눈이 번 쩍 뜨이는 색이 아니라 유리 슐레비츠 특유의 착 가라앉은 색채겠죠. 내리는 비에 대해 한마디 씩 내뱉은 감상이 모여 마치 시적인 울림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극도로 아낀 말과 묘사가 정수 만을 끌어낸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일본의 한 어린이문학 비평가는 이 책과 Dawn (새벽)을 보고 “리얼리즘 예술의 극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
The Treasure 아이잭이라는 너무나 가난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우리말로 ‘이삭’이네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입니다. 어느 날 그는 왕궁 옆 다리 밑에 가서 보물을 찾으라는 꿈을 꿉니다. 처음엔 무시했던 그도 꿈이 3번이나 반복되자 결국 여행을 떠납니다. 흐음, 그의 이름이 뭔가 이중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숲을 지나고 산을 넘는 험난한 여행 끝에 도착한 목적지. 왕궁 옆에 위치한 다리인지라 경비병들이 늘 지키고 있습니다. 덕분에 아이잭은 곧장 보물을 찾지는 못하고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를 주목한 경비대장은 사연을 듣자 웃으며 말합니다. 자 기가 꿈을 믿는다면 당장 노인의 고향에 돌아가 아이잭이란 노인의 아궁이 밑을 찾겠다고요. 아이잭은 인사를 하곤 다시 고향으로의 머나먼 여정길에 오르지요. 마침내 도착한 집 아궁이 밑에서 아이잭은 보물을 찾습니다. 감사의 표시로 그는 기도를 할수 있는 회당을 짓고 경비대 장에게는 값비싼 루비를 보냅니다. 그리고 다시는 가난하게 살지않았답니다. 굉장히 잔잔하면서도 의외의 결말을 가진 책입니다. 흔히 보는 ‘흥부놀부전' 스타일은 착한 주 인공이 고난을 겪긴 하지만 결국에는 큰 부자가 되어 잘 살았다는 얘기로 끝납니다. 그런데 주 인공 할아버지는 텅 빈 페이지에 너무나 가난했다는 말 하나만 달랑 나올 정도로 빈털터리였습 니다. 그랬던 그가 보물을 찾은 후에도 부자로 살았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저 흡족하게 살 았다는 것 뿐이었죠. 과연 그가 찾은 보물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증을 느끼게 합니다. 물질적 인 보물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것이 더 있지 않았을까 하고요. 혹시 나눔에 대한 만족감은 아니었 을까? 감사의 마음은 아니었을까? 가까운 곳에 있는 보물을 두고 먼 곳까지 인내하며 찾아간 참을성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새록새록 드는게 자꾸만 곱씹어볼 여지를 남겨둡니다.
|
The Secret Room 만화를 보는 것처럼 굉장히 화려한 색채의 그림책입니다. 악인의 얼굴이 가면을 쓴 것처럼 딱 딱하게 각이 져있고, 검은색과 파란색으로 나온 것 역시 만화를 연상시킵니다. 왠지 모르게 디 즈니 만화 ‘알라딘’에 나오는 ‘자파’를 연상시키는 음흉한 얼굴입니다. 만화영화를 보면 범인들, 혹은 악인들이 늘 초록색이나 파란색 계통의 차가운 얼굴색으로 나오잖아요. 사막을 지나던 왕은 현자를 만나 묻습니다. 왜 네 머리는 흰데 수염은 검으냐고요. 이 현자 왈 “제 머리카락이 더 나이 들었으니까요.” 이 대답이 맘에 든 왕은 자기 얼굴을 99번 볼 때까지는 다른 사람들에겐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궁전으로 돌아온 왕은 재상에게 같은 질문을 합니다. 대답이 궁해진 재상은 왕의 수행원에게서 정보를 얻어 현자를 찾아갑니다. 금화 천 냥도 마다하고 현자가 요구한 것은 달랑 동전 99개 뿐. 재상이 내놓은 대답에 놀란 왕 은 당장에 현자를 불러다 해명을 요구합니다. 현자는 왕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 99개를 내밀며 왕의 얼굴을 99번이나 더 보았다고 대답하죠. 왕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받고 당상 재무장관으 로 임명합니다. 세월이 흘러 현자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자 재상의 질투심도 커져선 현자를 모 함하게 이릅니다. 그가 왕의 보물을 집에 숨겨두고 있다고요. 아, 귀도 얇아라. 그동안의 신임 도 다 잊고 왕은 당장 현자의 집으로 달려가고, 같이 따라간 재상은 문이 잠긴 비밀의 방을 찾 아냅니다. 그런데 막상 열어보니 이 방은 비어있지 뭡니까. 설명을 요구하는 왕에게 현자는 대 답합니다. 이 방은 바로 현재의 지위와 권세, 부와 관련없이 자신은 왕이 사막에서 만난 사람과 같은 사람임을 되새기고자 만든 곳이라고요. 현자의 지혜에 다시 한번 감탄한 왕은 재상을 쫓 아내고 현자를 그 자리에 세웁니다.
|
The Golden Goose 그림동화로 잘 알려진 ‘황금거위’를 작가가 다시 풀어낸 작품입니다. 아마도 작가는 여기선 언 어에 대한 부담감 없이 그림에만 몰두했을 것 같네요. 그래서인지 무채색 풍이 아니라 화려하 고 밝은 느낌의 그림이 가득 차 있습니다. 숲에서 만난 노인에게 음식을 나누어준 바보 막내아들은 황금거위를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 거 위를 본 사람들마다 물리칠 수 없는 소유욕(한마디로 욕심이죠!)을 느끼곤 건드렸다가 다들 철 썩 들러붙고 맙니다. 심지어 거위가 아니라 들러붙은 사람을 건드렸을 때조차도 달라붙고 마니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네요. 줄줄이 사탕처럼 막내아들과 거위가 가는 곳을 쫓아갈 수밖에 없 으니 완전 낭패입니다. 이 꼴로 임금님이 사시는 궁전까지 가는데 거기엔 웃지 않는 공주님이 있었죠. 이 공주님이 글쎄 요 패거리를 보더니 그만 웃음을 터뜨렸지 뭡니까. 덕분에 공주님과도 결혼 하는 행운을 얻습니다. 물론 그 전에 물에서도 가고 땅에서도 가는 배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 이 있긴 했지만요. 그것도 처음에 음식을 나누어준 노인 덕분에 쉽사리 만들어서 왕의 승낙도 받아내고요. 결국 이 커플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황금거위도 황금알과 황금거위새끼를 줄줄 이 낳으며 자알 살았답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옛 진리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책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