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은 진정한 자신을 알고, 능력을 발휘할 해
이학주(문학박사, 한국문화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정월 풍속에 <쥐불놀이>가 있다. 논밭 둑에 불을 놓아 쥐와 해충을 멀리 쫓아내고자 했던 불놀음이다. 불은 뜨거운 열기로 나쁜 액을 모두 쫓아낸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쥐불이야!”라고 아이들은 외치며 다녔다. 말로 주문을 외어 확실히 쫓아내고자 한 행위였다. 불을 놓고 주문을 왼 것은 쥐가 병균을 옮기고 곡식을 갉아 먹어 피해를 주기 때문에 정월대보름이 되면 행했던 풍속이었다. 또 농촌에서는 정월의 첫 쥐날에는 밤 11시에서 1시 사이 디딜방앗간에 가서 방아를 찧었다. 이 시간은 자시(子時)라 하는데 쥐를 뜻하는 시간이며, 하루가 처음 시작되는 시간이다. 하루를 방앗간에서 열어 풍요가 들기를 기원하면서, 방아소리에 놀라 집안에 있는 나쁜 쥐가 멀리 도망가기를 바라서 행한 행위였다.
그런데 이런 풍속을 달리 보면 쥐가 사람과 참 가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하기야 옛날 밤에 자다가 보면 쥐가 천장으로 가는 소리를 매일 들을 수 있었고, 음식그릇을 놔둔 찬장 안으로 드나드는 쥐를 매일 목격할 수 있었으니 대수로울 것이 없었다. 그 때문에 쥐에 얽힌 속담도 많고 이야기도 많다. 오죽 했으면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쥐를 퇴치한다고 학생들에게 쥐를 잡아 오라고 했을까. 학생들이 등교할 때 쥐꼬리를 들고 온 쥐가 양동이 위에 수북이 쌓였던 기억을 나이 좀 든 사람들은 모두 기억할 것이다.
쥐는 병균도 옮기고 곡식도 갉아 먹었지만, 쥐에 대한 좋은 이야기도 많다. 속담에 “쥐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부자로 산다.”거나 “쥐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부지런하다.”고 한다. 쥐의 행동과 습성을 보고 한 말이다. 그리고 쥐는 예감(豫感)능력이 있다고 한다. 동해안 일대에서는 배서낭을 모셨다. 그때 배서낭이 사람에게 위험이 닥쳤을 때 울음소리를 내는데, 쥐와 새와 뱀소리로 알려준다고 믿었다. 풍파가 일어 배가 뒤집힐 징조가 있다든가, 산사태가 날 것 같다거나 지진이 일 것 같은 징조를 알려주는 능력이다. 이런 징조가 있으면 쥐가 그를 알려주기 위해 소리를 내거나 쥐가 떼로 몰려 도망을 간다. 그러면 뱃사람들은 그런 징조를 알고 그날은 배를 타지 않든가 예방을 했다.
이처럼 쥐는 사람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전하는 설화에도 쥐의 특징을 살리고 의인화 하여 전하는 이야기가 많다. 삼국유사 <사금갑>설화에는 쥐가 일이 일어날 징조를 알아 임금에게 말을 해서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홍만종의 순오지에는 <두더지의 혼인>이란 설화가 전하고, 함경북도 무가 <창세가>에는 쥐가 물과 불의 근원을 알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또 <금은보화를 준 쥐>라는 설화에는 개암을 먹은 쥐를 닦달하자 금은보화가 담긴 상자를 주었다고도 한다. 이 가운데 <두더지의 혼인>이야기와 <창세가>이야기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두더지의 혼인>은 원 제목이 <언서혼(鼴鼠婚)>이다. 언서는 두더지이니 두더지의 혼인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를 추리면 다음과 같다.
두더지 한 마리가 새끼를 칠 때가 되었다. 혼인을 하고 싶은데 제일 높은 데 있는 자와 하고 싶었다. 두더지가 생각하니 제일 높은 데 있는 자는 하늘이었다. 그래서 하늘에 올라가서 “저랑 혼인해 주십시오.”라고 청혼을 했다. 그러자 하늘은 “내가 비록 온 세상을 뒤덮고 있지만 해와 달이 아니면 나의 덕을 드러낼 수 없으니, 나보다 더 높은 것은 해와 달이다. 해와 달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두더지는 해와 달을 찾아가 청혼을 했다. 그러자 해와 달은 “내가 비록 밝게 비추고 있으나 구름이 가리면 밝을 수 없으니 나보다 더 높은 것은 구름이다. 구름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두더지는 구름을 찾아가 청혼을 했다. 구름은 “내가 비록 해와 달을 가릴 수는 있지만 바람이 불면 모조리 흩어지니 바람이 더 높다. 바람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두더지는 바람을 찾아가 청혼을 했다. 바람은 “내가 비록 구름을 헤쳐 놓을 수는 있어도 저기 서 있는 돌부처는 움직일 수 없으니, 돌부처가 더 높다. 돌부처를 찾아가 보라.”고 했다. 두더지는 돌부처를 찾아가 청혼을 했다. 돌부처는 “내가 바람은 두려울 것 없으나 오직 두더지가 내 밑을 뚫고 들어오면 자빠지는 것은 면할 수 없으니, 사실은 두더지가 더 높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두더지는 가만히 잘난 체하며, “천하에 제일 높은 것은 나다. 나보다 더 높은 자가 있거든 나서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같은 두더지끼리 혼인을 하였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나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다. 아무리 사회적 직위가 높고 명예가 높고 부자라고 하여도 그것은 남의 것이다. 아무리 부자여도 나에게 단 십 원도 그냥 주지 않는다. 두더지는 두더지와 혼인을 해야 하듯 남 넘볼 필요 없다. 나 잘난 맛에 살면 된다. 나를 아껴주는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이어가면 된다. 내가 나를 높일 때 내가 훌륭해 지고, 내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창세가>에서 보듯 쥐는 미륵(彌勒)도 알지 못하는 물과 불의 근원을 알고 있었다. 부싯돌로 불을 일으키는 원리와 물이 땅속에서 샘솟는 원리를 알고 있었다. 쥐가 그렇듯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참 많은 데도 불구하고 단지 알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사람은 감춰진 능력이 참 많다. 그 능력을 밖으로 이끌어내서 현실에 활용하면 정말 누구보다도 잘 살고 행복해 질 수 있다.
쥐띠 해, 경자년(庚子年)은 특히 나이가 익숙해 도(道)를 깨우친 해를 뜻한다. 무엇이든 자신을 돌아보고 도가 찬 능력을 꺼내 발휘할 해이다.
(강원다문화복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