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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섬광, 소음이 뭉개버린 정맥 …맹동산 풍력발전단지
석봉산악회 제1658차 낙동정맥9구간 산행
대상산 명동산833m 경북 영덕군 영해면 영양군 석보면
날짜 2009년 9월 19-20일(무박2일) 석봉 제1658차 산행
산행 거리 산행 시간 29.1km(도상) 10시간57분 (정맥28.3km 10시간39분)
출발 일시 장소 19일 23시 영광도서 앞
산행 시작 시각 20일 02시40분 양구마을 회관 앞 도로
낙동 정맥 시작 시각 02시58분 울치재 산길 진입
낙동 정맥 매듭 시각 13시37분 황장재(포장 도로 휴게실)
산행 매듭 시각 장소 13일 13시37분 황장재
부산 도착 시각 장소 20시30분 영광도서 입구 도로
산행 코스 주요 지점 및 시각
02:40 양구마을 회관-0.8km/18분-02:58 울치재500m 정맥종주 시작-8.9
km/180분-05:58 봉화산734m 헬기장(07:00-07:25 식사) -3km/95분-07
:33 명동산833m-2km/32분-08:05 박심고개610m 임도-1.3km/30분-08:3 5 포도산삼거리690m-3.1km/58분-09:33 630.5m-2.8km/34분-10:07 포산마을 갈림길420m-3km/93분-11:40화매재340m 도로-4.2km/117분-13:37 황장재340m 국도
참가자 17명 강창모 이선균 황정희 박두호 유순옥 노병복 이선화 최계순 조정선 김수환 권선희 박문식 반영숙 이정완 김형구 김사일 김철우
회비 30,000원 지도 1:50000 영양 병곡
날씨 맑음 바람 잘 불어 시원함.
교통편 35인승 관광버스 28인승 개조
산행대장 이선균 회원
기타 강구에서 목욕 식사.
산행 코스 상세한 통과 지점
02:40 양구마을 회관-02:58 울치재500m 정맥종주 시작-03:10 사당-03:50 풍력발전기 단지-04:20 이정표 황장재 창수령-04:03 울타리에 리본-05:33 마당두둑9.3km-05:37 도로 왼편 기슭 리본 산길진입-05:58 봉화산734m-
07:00 식사시작-07:25 식사 후 출발-07:33 명동산833m-08:05 박심고개610m -08:35포도산삼거리690m-09:15 송전탑-09:33 630봉 삼각점 헬기장 확인 못함-09:45 밭(무 사과 재배)-09:50 도로 미포장-09:51 왼편 산길-09:54 다시 임도-09:55 송전탑-10:02 도로서 왼편 임도-10:07 포산마을 갈림길420m-10:20 왼편 산길-10:32 시멘트도로-10:35 도로서 왼편 산길 묘지위쪽-10:45 송전탑-10:50 송전탑-11:40화매재340m 도로-13:07 시루봉553m-13:37 황장재340m 국도
산행 이모저모
낙동9구간의 매듭지인 황장재
버스가 물 흐르듯 부드럽게 운행하지 않아 몇 번이나 잠이 깨었다. 오랜만에 갖는 무박산행은 할 이야기도 많았지만 밤 12시가 지나자 하나 둘 눈을 감기 시작하다니 끝내 버스 안의 등을 전부 꺼 어둠에 휩싸였다. 가로등이나 달려오는 차량의 불빛이 버스 안을 순간적으로 비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어둠보다 더한 침묵에 휩싸여 있다. 차량이 심하게 흔들려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다시 잠을 청한다.
고개를 넘고 골짜기를 달려 영양군 영양읍 양구리 마을창고 앞에 도착한 시각은 밤2시30분이다. 읍도 읍나름이라 양구마을은 전혀 읍 기분조차 느낄 수 없는 동네. 이 동네는 버스 안보다 더 진한 고요에 묻혀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말고 시원한 공기가 금새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동네 개 한 마리가 요란스럽게 짖어 대 몇 채 되지 않은 온 동네가 금방 부스스 일어날 것만 같다.
동네 가로등 불빛아래 서둘러 등산채비를 한다. 요사이는 시골에도 가로븡이 환하게 밝혀줘 참 편리하다. 랜턴 불을 밝히고 산행에 나선다.(02:40) 마을 회관을 지나 도로를 따라 동네 뒤편으로 간다. 울치재를 넘어가는 이 도로는 포장이 되지 않았다. 지난번 내려온 길이라 모두가 랜턴 불빛만으로 익숙하게 걷는다.
울치재에 다다르자 건너편 기슭에서 번개 같이 전기불빛이 잠시잠시 비쳤다가 사라진다. 웅웅 소리도 들린다. 지난번 보았던 풍력발전기에서 나는 소리요 불빛이다. 이정표는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양구리 1.5km 원창수 3.2km.
산길을 들어선다. 17명이 저마다 앞을 밝히고 열심히 걷는다. 랜턴 불빛에 비친 나무들이 시멘트기둥 같이 검은 회색을 감고 서 있다. 작은 봉우리를 급하게 내려가니 사당이 어둠과 나무에 싸여 길 오른편에 있다. 모두가 랜턴 불빛에 매달려 가느라고 사당(祀堂)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났을 것이다. 사당을 들러보지 못한채 나도 허둥지둥 앞 사람을 뒤 쫒아 간다. 언제 이 사당을 또 만날까 들러지 못한게 참 아쉽다.
산길을 갈수록 ‘웅웅’ 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번개불 같은 섬광도 자주 나타난다. 산길이 도로와 합친다. OK목장이 가까워 졌겠지 하고 도로로 들어갔는데 그게 아니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나고 뻔쩍이는 섬광을 일으키는 전기 불빛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로마 신전의 기둥처럼 여기저기에 회색의 유령으로 서 있다. 풍력발전기마다 순간순간 쏟아낸 섬광이 하늘을 덮은 어둠을 가르고 웅웅거리는 소리가 어둠을 스며든다.
OK목장도 목장옆에 있던 고냉지배추밭도 사라졌다. 지난 10년 새 이곳은 천지가 개벽을 했는지 전혀 다른 산천으로 바뀌었다. 맹동산을 중심해 하늘을 가로지르던 그 멋진 낙동정맥은 온데 간데 없고 산줄기도 기슭도 온통 풍력발전기가 차지했다. 헤아려 보지 못했지만 발전기가 100기는 넘을 것 같다. 청정에너지는 무공해 에너지이고 이는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생산 하는 것인데 이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아름답기 그지없는 산천을 깡그리 뭉개고 파괴했다면 이는 자연보호를 역행하는 것이다. 청정에너지를 얻기 위해 청정자연을 허물어뜨린 어처구니없는 현실 앞에 망연자실한다.어둠 속이지만 허물어진채 거칠고 앙상한 모습의 황무지로 변한 땅위로 섬광이 번쩍이고 소음이 하늘을 가르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도로는 포장 되지 않았다. 중심 도로에서 풍력발전기로 오르내리는 도로가 가지를 친다. 온통 발전기와 도로 뿐이다. 풍력발전기로 가는 도로가 아닌 진짜(?)도로를 찾아 가는 게 쉽지 않다. 회원 한사람이 콤파스와 산행지도로 가야 할 방향을 확인한다. 우리는 남쪽으로 가야한다. 도로 삼거리가 나타날 때 마다 꼭 콤파스의 도움을 받는다.
온통 전기불이 번쩍이고 웅웅거리는 소리가 가득해 정신이 약간 혼란스럽다. 처음 풍력발전기를 보았을 때는 호기심도 생겼지만 한 시간을 넘게 도로를 걸으니 별로다. 밤에는 이 도로를 혼자나 둘이서 걷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계소리와 빛이 요란하다. 호김심은 있지만 메마르고 황량해 정감에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산길의 짙은 어둠과 나무 가지를 헤치는 바람소리가 더 자연적이다. 길에는 종주꾼을 위한 안내표식이 거의 없다. 황장재 창수령을 가리키는 오래된 이정표, 마당두둑 9.3km 이정표, 철망에 매달린 리봉을 보았을 뿐이다. 이러다 보니 아무리 콤파스로 확인을 한다 해도 혹시나 도로를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의문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봉화산 봉화대
맹동상상봉도, 철쭉 군락지도, 임도삼거리도 어둠과 겹쳐 전혀 찾을 길이 없다. 도로 옆 풀 속에 ‘2000년 국유임도 개설’을 알리는 표석이 있다. 포장 안된 도로 다시 말해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땅위를 무려 1시간47분간 걸었다. 그동안 우리는 현대판 도깨비불인 섬광이 밤하늘을 예리하게 가르고 외계인이 보내는 메시지 같은 웅웅거림은 우리 귓전을 넘나들며 소음으로 맴돌다 주저앉았다. 여명은 어느새 밝음을 빚어낸다. 풍력발전기가 우뚝 우뚝 서있는 사이로 어둠까지 내려앉아 미로 같은 도로를 힘들게 걸어왔다.
이곳 풍력발전기는 영양풍력발전단지라고 부르며 영양군 석보면과 영덕군 창수리 맹동산 일대에 자리잡았다.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주)영양풍력발전공사가 1천8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풍력발전기 1.5Mw급 41기 (영양군 22기, 영덕군 19기)를 건설, 이미 상업발전에 들어갔다. 스페인의 풍력발전회사인 약시오나에서 전액 투자 했으며 앞으로 2차30기, 3차30기를 증설, 총101기가 산꼭대기나 능선 정수리에 들어 설 것인데 2010년까지 공사를 마무리할 것이라 한다.
증설을 포함 5천억원이 투자될 이 공사가 완공되면 20만가구분의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공사에 따른 자연파괴와 문제점에 대해 지자체는 물론 언론 등에서 깊은 관심을 보였 왔지만 많은 부작용한 대해 명쾌한 해답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공사는 경북도가 중심이 돼 추진했는데 혹시 도에서 이 무공해 에너지 유치와 생산에만 눈독을 들여 조속히 진행하다보니 자연파괴나 보호에 대한 것을 깊이 아우르지 못한 것 같은 인상을 현장에서 느끼게 한다.
41기 밖에 세우지 않았는데 왜 100기가 넘는 것으로 여겼을까. 이는 풍력발전기가 우후준순 같이 눈에 들어오는데다 그 터전이 넓고 황폐해 오통 여기저기에 풍력발전기만을 있는 것 같아 이것이 풍력발전기가 아주 많은 것으로 짐작하게 만들었다.
웅장하고 거대한 자연파괴 현장을 밝은 날에 보았더라면 웅장하고 거대하게 세워진 풍력발전기와 더불어 잘 잘못을 더 깊숙이 살필 수 있을 것인데 아쉬웠다. 날이 밝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곳과 점차 멀어졌다.
이젠 풍력발전기도 뒤로 밀려났다. 오르막 도로를 걷는다. 문득 예전보다 넓은 진 도로지만 10년 전의 이 길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왼편에 산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아니라 다를까 왼편 숲에 리본이 많이 달렸다. 그곳으로 갔더니 산길이다.(05:37) 오늘 참 오랜만에 산길을 걸으니 느낌이 새롭다. 곧 봉화산일 것이란 기억이 나서 주변 동료들에게 “곧 봉화산”이라고 알려준다. 숲길 오르막을 얼마 걷지 않아 올라선 봉우리에는 표식과 헬기장이 있다.(05:58) 표식은 해발734m(지도 732.3m)다.
울치재 남쪽-OK목장-진달래 군락지-맹동산상봉-임도삼거리-봉화산 아래쪽을 잇는 산줄기는 이제 없어졌다. 어쩌다 일부가 남았다 해도 주변 꼴이 바뀌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청정에너지 생산이라는 목표 속에 파괴되는 청정자연. 그리고 이왕 공사를 하려면 친환경적으로 할 수 없을까. 어둠 속에서도 넓게 닦아 놓은 포장 안된 도로, 흙과 땅이 허옇게 드러난 발전기 마당과 빈터. 공사 한 뒤에 맨살을 드러낸 땅에다 나무를 심던가 해서 새롭게 가꿀 수는 없는가. 비록 산줄기는 사라져도 산천은 되살려야 하는데. 맹동산상봉 남서쪽 기슭에 있던 천마농장 곰취농장도 산천이 이렇게 됐는데 온전 할리 없다.
숲속에 적당히 자리 잡아 식사를 한다. 온통 새벽에 지나온 풍력발전기 이야기가 밥이나 반찬보다 더 맛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식사 후 얼마 걷지 않아 명동산이었다.(07:33) 작은 안내판은 해발 833m이지만 지도는 812.2m다. 고스락에 세워진 그렇게 높지 않은 철탑에는 소형 태양열발전기, 감시카메라, 확성기를 갖췄다. 하지만 헬기장은 없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지나온 풍력발전단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악몽 같기도 하고 신기한 곳을 거쳐 나온 것 같기도 하고.
화매재--벌초를 하러 온 차가 길 옆에 주차해 있다.
포장 되지 않은 산복도로에 있는 박심고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로를 가로 건너 산길로 접어든다. 어느새 포도산 삼거리에 당도했다. 진행방향의 앞쪽 숲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포도산(747m)이 보인다. 서편 계곡에 야영장을 2곳이나 거느려 그쪽에서 오르내림이 많은 포도산을 한 번 가봐야 하는데 결국 오르지 못하고 갈 길을 재촉한다. 이제 포도산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산모롱이를 돌자 송전탑이 보인다. 문득 저 송전탑은 장구메기에 있는 것이란 기억이 떠오른다. 장구메기는 밭이 있고 이곳에서 길을 못찾아 헤맸던 1차 종주 때가 어렴풋하게 생각에 생각을 더 한다. 그런데 송전탑에 도착하니 장구메기와는 전혀 다른 평범한 기슭이다. 이상해 지도를 보니 이 송전탑은 장구메기에 도착하기 전에 있는 것이다.
기슭과 봉우리를 열심히 넘는다. 다시 송전탑이 보인다. 삼각점이 있는 633봉이다. 능선 오른편으로 넓은 기슭이 번번하게 펼쳐진 이곳은 10년전 세월이지만 눈에 익었다. 이번에는 진짜 장구메기임에 틀림없다. 산줄기를 내려가자 오른편에 밭이 나온다.
사과나무를 심었고 나무 사이로 무를 많이 재배하는지 빼지 않은 채 버려둔 것도 제법 많다. 참 그땐 지금처럼 숲이 우거지지 않아 시야가 참 잘 보였지만 낙동정맥 길은 뚜렷하지 않았고 동네사람들이 다니는 산길이 여기저기에 있었다.
장구메기도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었고 이 밭 옆에 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밭을 똑바로 지나갈 욕심으로 오른편으로 내려 가 왼편 밭 아래로 들어갔는데 습지라 혼이 났다. 다행히 물이 그렇게 많지 않자 신발이 온통 빠지지는 않았지만 신 안으로 물이 들어가 풀쩍 거리며 밭을 지나 송전탑쪽으로 간 게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나는 송전탑 쪽에서 산길을 찾은 다음 다시 이 산길을 따라 되돌아 가 밭 가장자리를 지나 길을 잃고 헤매던 능선까지 갔다 되돌아 온 것까지 생생하다. 밭은 그대로 인데 사과나무를 심은 게 다르지만 그때도 무를 재배하고 있었다. 내가 건넜던 밭 아래 습지는 이제 수목이 울창해 쉽게 접근도 못할 것 같고 밭은 제외하고는 숲이 시야를 가렸다. 낙동정맥 종주길을 제외하곤 이제 다른 산길은 거의 없어져 종주는 한결 편리해 졌다.
밭을 지나 숲속으로 들어와 번번한 산 등을 걷다 미포장 도로로 들어가고 또 왼편 산길로 들어갔다 포장되지 않은 산길로 나와 왼편 고개를 넘는다. 송전탑이 있다. 미포장 도로 왼편에 폭이 좁은 임도가 갈라진다. 도로 아래편에는 꽤 넓은 묘지인데 6명이 예초기 3대를 가지고 벌초를 한다. 기계 소리에 묻어오는 풀냄새가 코를 실룩거릴 정도로 좋다.
임도에 리본이 달려 그 길로 갔더니 도로와 합쳐진 뒤 바로 앞이 삼거리다. 여기가 포산마을 갈림길이라고 예초기를 멘 벌초하러 온 사람이 알려준다. 오른편 도로 바로 아래가 포산마을인데 10분가량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 왼편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간다. 혼자서 벌초하러가는 젊은이와 동행이 돼 포산마을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러던 이야기 하던 젊은이가 꾸뻑 절을 하고는 묘 있는 곳을 넘어 왔다며 되돌아 뛰듯이 간다.
왼편에 깨끗하게 벌초한 넓은 묘지 위로 산길이 있는데 입구에 리본이 달렸다. 우리는 시멘트 도로에서 다시 산길로 접어들었다. 1차종주 때는 도로를 따라 포산마을을 지나갔다. 그 때 좌우 능선을 살피며 어디든 산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았는데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이제는 완전히 낙동정맥 종주길이 능선을 따라 너무나 잘 나 있고 다른 길은 흔적조차 약해져 길 잃을 염려도 없다. 낮은 언덕 같은 봉우리와 산줄기를 걷고 또 걷는다.
송전탑 두 개를 지나 50분쯤 걸었더니 화매재다.(11:40) 포장도로고 안내판이 서 있는데 영양군에서 단독으로 만들었는지 앞에는 ‘어서 오십시오 고추의 고향 반갑습니다. 영양군’ 뒤편에는 ‘안녕히 가십시오 또 오십시오 영양군‘이란 돼 있다. 보통 군 경계에 있는 안내판은 두 군이 한 면씩 자기 군을 소개하는데 여기 안내판은 영양군만 소개해 이상하고 여기가 군 경계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다.
이곳은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와 영덕군 지품면 원전리 경계다. 우리는 영양군 석보면에서 영덕군 지품면으로 간다. 도로는 삼거리이고 맞은편 왼쪽으로 갈라진 도로에 서자마자 오른편으로 산길이 뚫렸다. 이 길이 정맥종주길이고 지품면과 석보면 경계를 이루며 서쪽으로 뻗었다.
흔히 화매재에서 황장재까지 쉽게 당도할 것으로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 비록 낮은 산줄기를 걷지만 봉우리10개를 넘어야 황장재에 닿는다. 우리가 숲길을 열심히 걸어가자 앞서 가는 젊은이 3명을 만났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바로 이 위에 있는 무덤에 벌초하러 간다고 한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중 나이 많아 보이는 젊은이가 대구에 살고 있다고 동문서답을 한다. 다시 고향이 어디냐니까 영덕 초등학교 옆이라며 얼버무린다.
영덕읍에서 여기까지 와 무덤을 조성할리 없다. 젊은이들의 부모나 선조들이 예전에 화매나 원전리에 살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고향도 정확히 묘지는 기억을 해 두었다가 벌초를 하러 온 것이다. 선조 중 누구 묘인지 알고 하는지 그저 예전부터 해 오던 것이라 벌초를 하는지 알 수 없다. 묘지에는 비석도 없다. 한 젊은이가 예초기를 메더니 기계를 돌린다. 기름냄새와 기계소리가 함께 조용한 기슭에 번진다.
고향을 정확이 몰라도, 묘소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도 그 것과는 상관 없이 지난해까지 벌초를 한 묘지에서 올해도 벌초를 하는 젊은이들. 이 산골까지 찾아온 젊은이들의 정성이 돋보인다. 청정에너지를 얻으려 청정 숲과 자연을 파괴하는 풍력발전기 보다는 고향이 어딘지, 누구 묘소인지 몰라도 해마다 찾아와 벌초를 하는 젊은이들의 정성이 맹목적이지만 한결 인간미가 있지 않은가. 풍력발전기는 풍성한 미래을 위한 횡포일 수 있지만 젊은이들의 벌초는 밝은 미래를 여는 정성이다. 참 좋은 것을 느끼며 걷는다.
봉우리 한 개를 넘었다. 두 개를 넘었다. 이렇게 높지 않은 봉우리8개를 넘자 앞에 봉우리가 우뚝하다. 이번에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안간힘을 다한다. 시루봉 553m라는 팻말이 달렸다. ‘3000산 오르기 1416번째 2008년 12월14일 한형우’ 리본이 달려 있어 기록을 해 두었다.
지금까지 서남서쪽으로 향하던 산길이 이 봉우리에서 왼편(남)으로 확 방향을 바꾼다. 하산길이다. 이제는 영양군에서 벗어나 청송군 진보면 황장리다.
멀리 숲 사이로 포장도로가 보인다. 그렇다고 다 온 것으로 지레짐작하면 안된다. 10개 봉우리 중 한 개가 아직 남았다. 바로 황장재로 내려 갈 것 같은 길은 다시 왼편으로 들어가 낮은 봉우리를 넘어 내려간다. 바로 밑이 도로이지만 철망이 쳐져 있다. 오른편에 난 산길은 철망 옆으로 내려가고 그곳이 철망 끝이다.
포장도로는 34번국도라 차량 통행이 많다. 황장재에는 휴게소도 있다. 오후 1시37분에 도착했다. 아침 2시40분부터 10시간 57분을 걸었다. 선두는 10시간 안팎이, 제일 후미는 11시간5분 정도 걸렸다.
이번 산행은 12시간30분을 예상했는데 풍력발전기 밑의 도로를 걷는 게 시간을 약40분정도 절약해 주었고 바람이 적당이 불어 날씨도 시원했다. 산이 높지 않아 오르막이 그렇게 심하지 않은 것과 점심을 산에서 먹지 않은 것도 시간을 줄여주는 촉매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시간단축을 한건 산행에 참가한 회원들이 열심히 걷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한 결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