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상징 <50>
46. 문
일찍이 우리나라에서는 문의 격식만 보아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신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문은 마치 신분의 상징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성서의 세계에서는 문이 ‘안과 밖, 어제와 오늘, 성과 속, 생명과 죽음의 갈림목’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이나 지옥에도 문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은 도읍 또는 성, 신전 등을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특별히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적 가운데서도 특히 악령을 두려워했습니다. 악령 따위를 물리치기 위해서 에집트에서는 문 양쪽에 사자 상을 놓았습니다. 이 전통이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가 신전 앞은 으레 사자나 해태가 지키게 하곤 했습니다. 절의 문간 양쪽에 서 있는 사천왕상도 악령을 물리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가 늘 쓰는 말 중에도 ‘입문, 문하, 명문, 동문, 문중, 문벌’ 등등. 우리 삶에서 문이 차지하는 큰 몫을 잘 드러내는 말이 제법 많습니다.
로마에는 문을 지키는 ‘야누스’janus라는 신이 있었습니다. 이신은 이중 얼굴이 있어 안과 밖을 동시에 지킬 수 있었습니다. 서양에서는 지금도 ‘야누스 얼굴을 한 사람’이라는 말이 쓰이는데 안팎이 다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야누스는 문 밖에 서 있는 까닭에 한 해의 시작을 가리키는 존재로 간주되어 1월 January의 어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로마에는 또 야누스 신전이 따로 있어서 신전의 문이 닫혀 있을 때는 평화를, 열려 있을 때는 전쟁을 표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시대는 마침 ‘팍스 로마나’ Pax Romana(=로마의 태평)시대였으므로 문은 줄곧 닫혀 있어 평화의 임금이신 예수님 탄생에 걸맞은 시기였습니다.
예전에는 전쟁에 이기면 임금을 위해 개선문을 세웠습니다, 성서도 결약의 궤를 선두로 행렬이 성전 문을 통하여 개선하던 때의 장엄한 입성의식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오래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왕께서 듭신다.”(시편 24,7)고 하였는데, 이는 전쟁에 승리하신 영광의 왕 야훼를 환영하기에는 문이 너무 낮지 않은가 하는 재미난 발상입니다. 예수님의 입성을 경축하는 수난주일(성지주일)에는 항상 이 시편 24를 노래합니다.
오스만. 터키 제국 황제의 궁전은 ‘수려한 문’이라고 불렀습니다. 일본에서도 천황을 ‘미카도’ 라고 칭하는데 그 것은 황거(皇居)의 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서 안에서도 문은 중요합니다. 우선 하늘과 땅의 경계에는 문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그 끝이 하늘까지 닿는 사다리 아래에서 잠에서 깨어난 야곱이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여기가 바로 하느님의 집이요, 하늘 문이로구나.”(28,17)하고 외칩니다.
도시의 문으로 들어가면 곧 광장이 있어 그 도시의 중심을 이루었습니다. 재판을 한다든가 계약을 맺는 일도 다 여기서 이루어졌습니다. 오기 4장에는 다윗의 증조부 보아즈가 이방인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는 마당에서 문 앞에 보인 모든 시민과 장로들이 그 증인이 되어 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구원받는다.”고, 당신 스스로가 문임을 말씀하십니다. 묵시록에는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3,20)라고 하십니다. 실은 이 대목이 성서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들이 마음의 문을 열기만을 밖에서 지그시 기다리십니다. 마음의 문이 열리면 드디어 안으로 들어오시어 다정하게 한 사람 한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묵시록 21장 12절에는 새로 완성된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는 문이 열둘이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어서 25절에는 “그 도성에는 밤이 없으므로 종일토록 대문을 닫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문은 앞서 보았듯이 도시를 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세웠지만, 새로운 하느님 나라의 문은 온 세상 사람들을 맞아들이기 위해 언제나 활짝 열려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대성당 문 위에 열쇠를 들고 계신 예수님 상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문을 여는 열쇠를 가지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이는 바로 베드로에게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 16,19)고 하신 말씀에 의해 그에게 하늘 문 열쇠가 맡겨졌다고 생각하게 된 연유입니다.
언젠가는 죽지 않으면 아니 될 우리들, 베드로 성인과 사이좋게 지내시도록 권하는 바입니다.
미셸 크리스티안스 지음(장 익 옮김) - 분도출판사